우리는 왜 일하는가? 저마다의 답이 있을 거다. 누구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어느 순간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예를 들어 ▲날씨는 춥고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출근해야 하는 어느 날 ▲모처럼 저녁 약속을 잡아 퇴근 30분을 남겨뒀는데 상사가 내일까지 보고하라며 서류 뭉치를 던져준 어느 날 ▲다음 달 두 번째 주 토요일 친구들과 모임을 잡아놨는데 회사가 그날 워크숍을 가겠다고 전체 메일을 돌린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먹기 싫은 술을 억지로 먹다가 잠깐 밖에 나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고 쓴웃음 지은 어느 날 등등이 지금 당장 생각난다. 모두 주워 들었거나 내가 직접 경험한 사례다.
어쨌든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어느 순간 나는 왜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시 아직 그러지 않았다면 사회생활이 짧거나 앞으로 분명 그런 날이 있을 거라고 단언한다.
노동이 나를 삼켜버려 더는 내가 예전의 나 같지 않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노동이 내 삶을 끌고 가며 나는 거기에 딸려가기 바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반드시 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하지만 신성함이 곧 인간 본연의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뜻하는 건 아니므로 이는 당연한 갈등이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때는 자유롭고 즐거울 때다. 우리는 자유와 즐거움을 얻기 위한 노동을 지나치게 신성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이 가져오는 경제적 보상이 현대 사회 속 우리의 자유와 즐거움을 보장하는 셈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노동한다.
경제적 보상이 노동의 궁극적 목적이 아닌 사람도 간혹 있을 수 있다. 재산이 많은데도 사회적 시선과 지위를 위해 취미로 일하는 부류들 말이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취미이지 노동이 아니다. 취미와 노동은 하는 것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 목적에 따라 분류된다. 대다수 평범한 사람에겐 노동에 따른 경제적 보상이 노동의 이유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이 보상 때문에 노동은 취미가 아닌 노동이 된다.
먼 옛날 그러니까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먼 옛날에는 대다수 인간이 농사를 지어 추수가 끝나면 얼마간이고 온종일 놀기도 했다. 그에 앞선 더 옛날 인류는 사냥이나 수렵활동을 해서 배가 차면 나머지 수많은 시간을 놀거나 쉬면서 보냈다. 당시 예술 활동이나 놀이문화는 지금 봐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데 이는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어디서 듣기로 유토피아가 탄생한다면 모든 인간은 글을 쓰고 시를 짓고 춤을 추고 노래하며 스포츠를 할 것이라고 한다. 유희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루덴스는 생각 이상으로 근거 있는 소리인 셈이다.
어제가 '근로자의 날'이었다. 그것도 5월 황금연휴 사이에 끼어있는 근로자의 날이었다. 그렇지만 주변 분위기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휴일이지만 대기업과 공무원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많은 이가 평일처럼 출근했다. 모 대기업에선 납품 업체인 중소기업에 이번 황금연휴 기간 내내 업무에 매진해 납기일을 맞춰 놓으라고 했단다. 이제는 너무 들어서 지겨운 '갑질'이란 단어를 다시 몰고 온 행태다.
내가 아는 지인은 아예 근로자의 날 쉬니까 그다음 날인 2일에 출근해서 보고하라며 일거리를 숙제로 받기도 했다. 마치 근로자의 날을 자기들이 만들어준 것 같은 태도다. 갑질의 역사는 이렇게 또 무한 반복됐다.
상황이 이러하니 대선후보마다 내놓은 노동 공약에 눈길이 간다. 나는 어제 근로자의 날을 맞아 대선후보의 노동공약을 비교하는 기사를 써서 송고하기도 했다. 쭉 훑어보니 사실상 특정 후보 한 명만 제외하면 다들 큰 틀에서의 문제 인식은 같았다. 종합하자면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시간 일하면서도 소득 양극화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법에 명시된 정시 퇴근이 '칼 퇴근'이라 불릴 정도로 비정상적인 노동의 나라가 대선후보 대다수가 바라본 현재 대한민국이다. 아마 취미로 노동하지 않는 이 땅의 대다수 시민도 이러한 인식에 동의하리라 본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 문제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낮은 출산율과 혼인율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를 낳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애를 키우려면 돈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이 불합리한 노동의 나라는 그런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 결혼이 사라지고 출산율이 낮아질수록 인구 절벽이 심해져 또다시 다람쥐 쳇바퀴 도는듯한 수많은 사회 문제가 순환할 모양새다.
얼마 전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재차 '헬조선' 논란이 일었다. '미친 노동 환경'이라는 그쪽 업계 사람들의 말이 한 젊은 청춘의 자살로 재차 조명받았다. 이 역시 매우 슬프지만 반복 또 반복되는 이야기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그런 것은)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故 이한빛 PD는 유서에 이렇게 남겼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게 비단 방송 종사자만의 일일까.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출근하지만 정작 풀칠할 시간도 사치일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질문한다. 우리는 왜 일 할까? 일에 잡아먹혀 사는 게 당연한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보면 씁쓸하다.
20대 중후반이 되면 누구나 취업을 꿈꾼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취업한 뒤 얼마가 지나면 거의 모두가 퇴직을 꿈꾼다. 삶 전체를 망가뜨리는 일에서 벗어나 일을 하지 않아도 적당히 먹고살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거다. 당연히 결혼이나 자녀 계획은 언감생심이다. 여기 어디에 노동의 신성함과 자아실현이 끼어들 수 있을까. 흙수저들은 흙 퍼먹기도 어렵게 병들어버린 오늘날 대한민국 노동 현장이다.
IT 종사자들이 몰려 있는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는 하도 야근이 잦아 사무실마다 켜져 있는 불빛을 두고 "오징어 배가 뜬다"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있을 정도다. 도시 한복판에 살지 않고 살지 않으니 잡히지도 않는 오징어를 찾고 있는 모습에서 블랙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