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돌아 산책 가자
빵돌이가 낑낑거린다. 평소 잘 짖지도 않는 녀석이 저 정도면 꽤 의사 표시를 하는 거다. 현관문을 달려가서 두 앞발로 쾅 친다. 그리곤 나한테 다시 온다. 나가자는 거다.
'산책?'이라고 대꾸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셈이다. 아무리 나랑 사는 동거인이라도 다른 강아지들보다 뛰어나게 똑똑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 대신 운동 능력은 정말 엄청나다. 뛰고 달리는 데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산책 나가면 그 모든 종합 선물 세트를 볼 수 있다. 손바닥으로 겨우 들었던 녀석이 엄청난 운동 능력과 이른바 '피지컬'을 자랑할 때면 내가 먹인 사료와 물과 간식들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얘기하는데 빵돌이의 단순 지능은 평범한 듯하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라는 신념으로 키운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강아지들이 한다는 '하이파이브'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손' 정도는 하는데 그건 그냥 하이파이브를 아래로 하는 거로 알고 하는 듯하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어쨌든 빵돌이는 머리 쓰는 일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그런데 이 '산책'이라는 단어만큼은 빵돌이가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 어째서 너라는 강아지는 그 단어만큼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알아듣게 됐을까.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지는데 그럴수록 아득해지는 물음이다. 내가 유추할 수밖에 없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산책은 크게 별거 없다. 빵돌이는 뒷산을 구석구석 쏘다닌다. 나는 신문이나 읽고 있던 책들을 들고나가 본다. 가끔은 뒷동산 벤치에 누워 하늘도 보고 괜히 운동 부족인 거 같아 팔굽혀펴기 기구에서 죽 노동을 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무언가를 읽는다.
그때마다 빵돌이는 킁킁거리기 바쁘다. 풀 냄새를 맡는다. 나무 냄새를 맡는다. 고인 물 주변에서 알 수 없는 냄새도 맡는다. 가끔은 다른 강아지의 소변이나 대변 흔적을 맡는데 다행히 금방 고개를 돌린다. 집에서도 치워줄 사람 없으면 대변을 안 보는 녀석이니 적어도 나보다는 깔끔 떠는 성격인 게 확실하다.
산책을 아침에 해도 저녁 되면 나가자고 하는데 어떨 때는 솔직히 버겁다. 맨날 팬티조차 안 입고 사는 녀석이야 편하겠지만 나는 산책 갔다 들어오면 빵돌이 발을 닦여야 한다. 물티슈로 간소화하긴 했는데 그것도 매일 하면 하루쯤은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도 조금의 틈만 나면 나가자고 하는 녀석을 볼 때마다 '야 그냥 나가서 살아'라는 말이 속으로 치민다. 솔직히 집에 혼자 있으면 거의 다섯 번에 한 번 정도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알아듣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태도 변화가 전혀 없다는 거다. 말은 허공을 가를 뿐이고 빵돌이의 눈빛은 내 눈을 가를 뿐이다.
가끔은 강아지란 생명의 본질이 뭘까 깊이 고민해 보기도 한다. 존재 이유 말이다. 인간의 틀을 벗어던지고 보면 분명 저들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려고 태어난 이들은 아닐 거다. 빵돌이의 조상도 그러했으며 어떤 우연으로 나와 만난 빵돌이 역시 마찬가지일 것으로 믿는다. 그냥 우린 어쩌다가 같은 집에 살게 됐으며 그전에 앞서 어쩌다 보니 인간과 강아지로 각각 태어난 운명이다.
'개'라는 생명의 존재는 결국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만 든다. 수백 년 전의 강아지와 인간이 함께 했다는 뼈와 흔적이 나오고 관련 연구가 많지만 정확한 답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어째서 빵돌이를 비롯한 강아지들이 사람처럼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귀 두 개를 갖고 있는가 하는 우연도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다.
다양한 인간의 성격만큼이나 개들 성격도 각양각색인 걸 보면 분명 개는 인간을 위해 태어난 동물이 아니다. 그 자체로서 본질이 있을 것이며 어쩌면 인간이 지구에 없다면 더 많은 영역에서 자유롭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번지다 보면 나는 빵돌이에게 건 목줄을 쉽게 매만질 수가 없다. 함께 산책하는 길마다 반려견의 목줄을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엄포를 하고 있는데도 어쩐지 그렇다. 그래서 자꾸만 사람 없는 뒷동산에 가서 목줄을 슬쩍 푼다.
백분토론은커녕 도대체 개의 존재가 무엇인지 빵돌이나 동네 개들과 얘기라도 하고 싶은데 그건 불가능하다. 이건 내가 아랍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해 IS 조직원의 가담 유혹 메시지에 논리적으로 그들 말로 반박할 확률보다도 낮다. 한 마디로 언어로는 저들과 소통할 수 없다.
간혹 개들의 언어를 번역해준다는 기계가 뉴스에 소개되는데 지금 그 수준의 번역 정도는 개 키우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자기 반려견의 행동만 보고도 알 수 있다.
빵돌이를 처음 데려올 때만 해도 정말 독립적이면서 의사소통이 잘 되는 반려견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속된 말로 매일 가는 산책에도 저토록 흥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과 개는 태생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어떠한 영역이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달리고자 하는 욕구, 냄새를 맡고자 하는 습성, 고립되지 않은 공기를 마시고자 하는 본능 등등 개가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사실 인간은 인간의 시각과 관찰로만 정의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개들이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뒷집 백구와 앞집 누렁이가 서로 몇 날 몇 시에 소변을 비롯한 어떠한 흔적으로 메시지를 남겨 각각 연락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개가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상 개들이 지구 곳곳에 남겨둔 흔적을 냄새 맡으면서 과거 인간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던 시절을 본능적으로 회상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개가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지금 사는 주인집이 너무도 답답한데 막상 나가면 편하게 밥 먹고 살 곳이 없어 그런 곳이 어디 없나 찾아다니는 행위는 아닐까.
오늘도 물음표 가득한 질문들로 빵돌이와 산책을 한다. 사람의 기준으로 저들을 바라보지 않는 것 하나만 제대로 해보겠다고 오늘도 약속한다.
"빵돌! 산책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