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지트를 세워간다

부루마블 한 지가 언제였더라…

by 반동희

어릴 때 하던 부루마블은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한 게임이다. 지금 볼수록 더욱 그렇다. 드넓은 곳에 자기만의 땅을 갖고 그 공간을 창조하는 매력이 특징이다.


게다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걸 부루마블 제작자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나 보다. 부루마블은 누구나 토지를 갖고 그곳의 건물주가 될 수 있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현대판 판타지를 시대에 앞서 구현했다.


요즘 이 부루마블을 볼 때마다 실생활이 겹친다. 문구점과 편의점과 마트에서 생각보다 자주 부루마블을 보는데 현실의 일정 부분이 딱 이 게임처럼 보인다. 단순히 건물주라는 이 시대 만능키를 생각하는 게 아니다. 열심히 차례에 따라 주사위를 던지고 그 대가로 땅을 사서 돈을 모은 뒤 건물을 짓는 게임 방식에서 삶을 반추하게 된다.


이를 테면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그 대가로 자신만의 아지트를 하나둘씩 채워가는 것 말이다. 모두가 건물주는 될 수 없으니 여기의 맛집과 저기의 술집과 거기의 여행지 등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하나둘씩 기억과 추억을 쌓는 행위가 나는 부루마블 게임 방식처럼 보인다.


세심하지 못한 나도 자주 가는 카페부터 고깃집과 돈가스집까지 얼추 몇몇의 마음속 내 공간이 있다. 기쁠 때 찾는 곳과 슬플 때 가는 곳이 있으며 누군가와 속 깊은 얘기를 하기 위해 발걸음 하는 곳도 있다. 이 모든 걸 뭉뚱그려 '아지트'로 규정하는데 내 주변을 봐도 누구나 한 두 개씩의 그런 가게나 장소가 있다.


그런 뜻에서 보면 맛집 프로그램이나 여행 명소 프로그램이 계속 유행하는 것도 이 연장선에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잘 먹고 잘 놀고 싶어서 그런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들 시청자 중 적지 않은 수는 그 밑바닥 심리에 아지트가 녹아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남들은 어떤 자기만의 아지트를 갖고 있는지 엿보고 싶어 하는 그런 심리 말이다.


이런 분석이 어느 정도 옳다면 부루마블은 다시 한번 멋진 게임이 된다. 서울과 부산은 물론이고 파리를 사서 빌딩주까지 될 수 있다.


어린아이는 비좁은 공간을 좋아하고 심지어 육아 전문가들은 아이들도 자기만의 작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봐도 단칸방 할아버지네서 베개를 내 주위로 빙 둘러쌓고는 "내 방"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살면서 곳곳에 익숙한 장소를 아지트로 갖는 건 낯선 곳에 가서 "ㅇㅇ이 왔다 감"이라고 적는 원초적 감정과도 직결된다. 흔적을 남기는 게 마음 속이라는 점만 다를 뿐 부루마블 빌딩과 단골 돈가스집과 동해 혹은 서해 바다는 감정 이입의 도화선이 같다.


오늘 밤 나는 여수 밤바다 앞 어느 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홀짝이며 이 잡글을 썼다. 새로운 곳에서 아지트를 하나 더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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