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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Jun 10. 2017

한국축구, 월드컵 탈락해도 괜찮다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는 대회다. 4년마다 열리는데 한국도 당연히 나가는 대회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이 월드컵에 출전하는 게 당연시됐다. 잊어선 안 된다. 상업화에 찌들었어도 예선을 통과해야 나설 수 있는 게 월드컵이다.


요즘 월드컵 예선 시즌이라 자칫 본선 진출 실패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보는 시각을 접한다. 그 안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감정 없는 자동화 기계이자 도구로 전락한다. 그들을 이끄는 외국인 감독은 '내셔널리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절박하지 않은 이방인이 된다. 나는 이게 또 다른 광기가 아닌가 우려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대한민국 축구가 자정작용을 거치려면 한 번쯤은 월드컵에 나가지 못해도 된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이 그 발상의 전환을 하기에 최적기다.


'A매치'에 매몰돼 국가대표팀만 우뚝 솟은 기형 구조 때문이다. 국내 축구 행정의 모든 방향은 A매치와 이를 잡아 돌리는 대한축구협회 일부 계층의 의중으로 축약된다. 왜 대다수 A매치가 서울에서만 열릴까? 왜 그렇게 적응이 필요하다는 중동을 포함해 해외 원정 평가전이 적을까? 거의 대부분은 축구협회가 거둬들이는 돈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지금이야말로 축구협회의 방패막이가 될 사람이 없는 시기여서다. 과거 축구대표 부진은 감독 경질 선에서 정리됐다. 지금은 슈틸리케 감독 체제다. 슈틸리케는 외국인이다. 월드컵 탈락의 분노와 울분이 터졌을 때 그는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면 그 비판의 촉수는 어디로 향할까? 축구협회다.


잠깐 1998 프랑스 월드컵을 떠올려보자. 차범근 전 감독을 그렇게 경질해 대회 도중 귀국까지 하게 해야 했을가? 백번 양보해 그럴 정도의 일이었다면 오히려 차범근이라는 감독 한 명으로 끝낸 게 논리에 맞지 다. 당시 보도를 되짚고 전후 사정을 깎아 사실만 집약해도 차 전 감독이 그렇게까지 될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황상 축구협회와 이를 비호한 세력이 차범근이라는 스타성에 교묘히 '책임 프레임'을 덧씌워 방패로 내던진 것이다. 비슷한 예로 최근의 홍명보 전 감독 사례를 꼽을 수 있지만 이는 어느 부분에선 다른 면이 있기에 자세히 쓰지는 않겠다. 어쨌든 과거를 봤을 때 외국인인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월드컵에 떨어져야 그나마 비판의 시선이 축구협회까지 가기 쉽다. 축구 영웅을 허망하게 잃는 일도 당연히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월드컵 탈락이 자정작용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의 근거는 뭔가. 나는 이걸 앞서 언급한 '당연시되는 월드컵 참가' 분위기에서 찾고 싶다. 8회 연속 참가한 월드컵을 하루아침에 못 나간다면 대중이든 팬들이든 분노가 거셀 것이다. 그때의 반성과 담론은 외국인 감독 경질에서 절대 멈추지 않고 축구협회의 근간까지 들어갈 것이다. 특히 이때 스포츠계 지식인이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포지션에서 축구협회를 사조직처럼 고용 승계하고 있는 현대가를 비판한다면 변화의 물결이 싹틀 수 있다. 안민석 의원은 대놓고 '현대축구협회'라고 하던데 정주영 회장의 88올림픽 개최 공로와 정몽준 전 회장의 2002 월드컵 개최 막판 뒤집기를 고려하면 다소 공격적이긴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에는 침체한 K리그와 이를 두고 '먹튀'하는 일부 시도민 구단 높으신 분들을 향한 경고도 녹아있다. 한국처럼 국가대표와 해외 축구리그가 중심인 국가에서 정치권에서 발화해 탄생한 기업 구단 외에 시도민구단이 돈을 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렇다. 현직 축구선수들한테는 실례가 될 수 있으나 지금 프로축구판 자체가 선수와 구단을 홍보 치적 위에서 뛰는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국가대표가 되고 스타 선수가 되어 확실한 자기 브랜드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선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누가 우물 안에서 좀 더 멀리 뛰느냐 아옹다옹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는 시각이 분명히 외부에 있다.


이 모든 걸 따졌을 때 한 번의 소용돌이를 거쳐 자정작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 시작점이 아쉽게도 월드컵 탈락밖에는 없어 보인다는 거다. 축구협회 수익이 떨어지고 스폰서나 언론이 무서운 줄도 알아야 그 아래 판도도 바뀐다. 현대가 연계 문제도 그래야 이슈된다.


물론 승승장구해서 월드컵 연속 진출을 이어가는 가운데 변화의 움직임까지 있으면 가장 좋다. 그런데 이를 기대하기엔 이미 8회나 월드컵에 나가고 그 과실이 어떻게 뿌려지는지 경험했다. 9회라고 다를까? 연명 치료밖에 안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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