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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Jun 21. 2017

남북 스포츠 교류 '피로감'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해 IOC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대표팀 발탁에서 우리 선수가 피해를 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앞서 지난해 강릉 선수권대회에서 우리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북한을 3-0으로 꺾었다. 내년부터는 아예 우리와 북한의 참가 디비전 자체가 다르다. 그만큼 실력 차가 큰 게 사실이다. 강팀과 약팀이 한 팀을 만들 때 강팀에서 빠져야 하는 이는 명백한 피해자다. '자유 의지'가 뭉개진 채 훈련했던 동료들과 이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선수들은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며 대표팀 훈련에 임했다. 여느 스포츠팀에서 대표팀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랬다가 이제 와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해야 하니 몇몇은 빠지라고 한다면 이는 정치 논리에 따른 스포츠 본질 훼손이다. 훈련 일정이나 장소 같은 부차적인 것들은 정부에서 지원해 줄 수 있지만 결국 경기에 뛰는 건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을 남북 단일팀이라는 국가 논리로 가로막을 명분은 전 세계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도 없다. 이를 협의 없이 문체부에서 강행한다면 우리도 북한과 다를 바 없다. 현장 의견을 듣지도 않고 아무런 개선책 없이 문체부가 해당 사안을 추진해선 안 되는 이유다.


최근 몇 년간 남북 스포츠 교류를 둘러싼 비판 여론에는 어느 정도의 피로감도 섞여 있다고 본다. 1990년 제11회 북경아시아 경기대회 공동 응원을 시작으로 탁구, 축구, 농구, 태권도, 아시안게임, 하계유니버시아드, 올림픽에서 단일팀이니 공동응원이니 공동입장이니 하는 화합의 장이 마련됐다. 하지만 항상 그때뿐이었다. 돌아서자마자 등 뒤로 솟아오르는 미사일을 바라보는 일도 있었다. 정치가 저지른 문제였든 스포츠 자체의 힘이 약했든 결과는 주로 예상에서 벗어났다. 지금도 군대에선 '화전양면전략전술'이란 걸 병사들한테 주입하면서 '북한은 상황이 불리할 때 대화를 제의하고 유리할 땐 무력으로 우리를 공격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엔 스포츠 교류와 관계없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치닫던 남북 관계가 근거로 활용된다. 이 반복 학습이 축적되면서 일반적인 눈높이에선 현실 피로감으로 퍼지는 중이라고 나는 본다.


"남북 스포츠 교류가 관계 개선에 힘이 되느냐?"는 질문에 감정적으론 "그럴 수도 있다"고 답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스포츠가 가진 힘과 장점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명확한 근거를 내놓을 수 없다. 북한 정권이 바뀌어서 과거와 전혀 다른 판세가 펼쳐졌다고 하기에도 논리가 빈약하다.


도종환 장관은 10월28일 강원도 양구에서 열릴 '2017 아시안컵 역도 선수권대회 및 아시아 클럽대항 역도 선수권대회'에서도 대한역도연맹 주도의 북한 선수단 참가를 추진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 체감으로는 이런 이슈가 크게 관심도 못 받을뿐더러 오히려 괜한 짓을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경색된 남북 관계 해소를 위해 정치권에서 움직이는 동시에 스포츠 교류로 트랙 하나를 더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남북 스포츠 교류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이 엿보인다면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


우리가 메가 스포츠 이벤트를 두고 경제 효과 등을 뻔질나게 추산했는데 이제는 남북 스포츠 교류에서도 그런 판이 한 번쯤 깔리면 어떨까 싶다. 데이터의 정확성이나 현실성 등 후속 담론은 뒤로 미뤄두고 사회 구석구석에서 보는 예상 데이터를 뽑는 거다. 관련 논문이나 보고서를 보지 않은 건 아닌데 부족하다. 인문사회학적인 해석도 중요하지만 다른 쪽에서 내놓는 시각도 담론을 키운다. 엊그제 '한반도기' 흔들었는데 다음날 머리 위로 미사일 솟아오르던 황당함 좀 풀어보자.


*이 글은 스포츠문화연구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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