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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Jul 17. 2017

'이승엽'이라는 한 인간의 단편

이승엽 선수가 어제 마지막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쏟아지는 관련 보도를 보며 '국민 타자'란 수식어가 왜 붙었는지 돌아봤다. 아마도 홈런 개수나 타격 실력 때문만은 아닐 거다. 이승엽 선수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인용한다.


"야! 이 XX놈아!"


모든 사람의 눈과 귀가 한 사람을 향하고 있는 순간 느닷없이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향한 욕설이었다.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2003년 9월. 당시 대한민국 스포츠계 최고의 관심사는 이승엽 선수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 도전이었다. 수많은 팬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외야석에 진을 치고 있었고 이승엽 선수는 스포츠 스타를 넘어 '국민 타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연일 홈런포를 쏘아대는 이승엽 선수를 좇아 기자들도 삼성 경기가 열리는 전국의 야구장을 따라 다녔다. 이승엽 선수는 이런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기자들한테 늘 예의가 바르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승엽 선수이었지만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자 팀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해 언론과의 접촉에 신중을 기할 때였다.


실제로 삼성은 그해 8월말까지 64승 40패 2무로 선두 현대에 6게임차로 뒤진 2위를 달렸다. 하지만 9월 이후 12승 13패 2무로 부진하면서 3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또 정규시즌에서 삼성에 10게임차로 뒤져 4위에 머물렀던 SK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2연패를 당하며 전년도 챔피언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팀 분위기를 의식해 언론의 지나친 관심을 불편하게 생각했지만 이승엽 선수는 그래도 최대한 예의를 지켜 언론을 상대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9월 하순 어느 날 그는 좀처럼 잊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하고 만다.


광주 구장에서 벌어진 KIA와의 원정경기에 앞서 이승엽 선수는 타격 훈련을 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많은 취재진이 이승엽 선수의 방망이를 주시했고 그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타격 훈련을 마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누군가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야 이 XX놈아! 너는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냐?"

'아니? 천하의 이승엽 선수에게 이런 욕설을 퍼붓다니? 아무리 순둥이라도 이런 수모는 참기 어려울 터인데….'


이런 생각을 하며 욕설의 장본인을 보니 A스포츠신문의 S기자였다. 그는 1990년대 말 삼성을 담당하며 이승엽 선수와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기자는 이승엽 선수가 아시아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되자 건방지게도 자기를 아는 체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듯했다.


이승엽 선수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당시는 국민적 관심을 받아 무척 예민할 때였다. 자주 만나던 야구기자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기자, 사회부 기자들도 그를 주시하면서 시시콜콜한 뒷얘기도 모두 기사로 만들어내던 시기였다.


이승엽 선수는 역시 '쿨'했다. 잠시 욕설의 주인공을 바라보던 그는 "아, S기자님. 제가 몰라 뵈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깍듯이 인사를 한 뒤 더그아웃 뒤로 사라졌다. 그러자 S기자도 겸연쩍은 듯 서둘러 자리를 떠났고 이 일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다. 기사화되지도 않았다.


이승엽 선수는 과연 이 해프닝을 정말 '쿨'하게 잊어버렸을까. 정답은 '아니다'였다. 이승엽 선수가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에서 4년을 보낸 뒤 오릭스 버펄로스로 이적하게 된 2010년 12월 기자회견장에서 나는 7년 전 일에 관해 물었다.


"2003년 9월 그 심한 욕을 듣고도 왜 가만히 있었어?" '혹시 기억이나 할까?'하고 생각했지만 그는 7년 전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승엽 선수는 "그럼 그 자리에서 화를 내겠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무안을 당하겠지만 저에게도 좋은 게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이승엽 선수는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스타였다.


*출처 = 고석태 「야구의 뒷모습」 2012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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