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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Nov 17. 2017

이랜드와 김병수 그리고 기업 구단

이랜드 푸마 축구단은 이랜드에서 운영했던 축구단이다. 이랜드가 1992년 12월 기독교 선교 축구단인 임마누엘 축구단을 인수해 창단했다. 실업 축구 무대에서 참여했던 이랜드 푸마 축구단은 1998년 2월 말 해체됐다. 이유는 모기업의 재정 악화였다.


이후 이랜드 산하 축구단은 2014년 서울 이랜드FC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서울 이랜드FC는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을 홈으로 재탄생했다. 이랜드는 서울 동남권 팬을 확보하는 동시에 내심 서북권 상암에 있는 FC서울과 '수도 라이벌' 마케팅을 펼치겠다고 자신했다. 전 세계 수도에 복수의 축구단이 있는 것이 근거로 뒷받침됐다.


박성경 이랜드 부회장을 축구단 구단주로 하며 미국 MLS 밴쿠버 화이트캡스FC를 벤치마킹하는 등 이랜드FC의 창단 과정은 속전속결이었다. 축구계 역시 1995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창단 이후 19년 만에 탄생한 기업 축구단이라며 이랜드FC가 하루빨리 1부 리그에 올라와 FC서울과 수도 라이벌을 형성하길 바랐다. 그렇게 되면 국내 축구 시장 파이가 커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랜드FC는 2015시즌 K리그 2부 리그인 챌린지에서 화려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1부 리그인 클래식으로 승격할 것이란 기대가 산산이 조각났다. 이랜드FC는 첫 시즌 챌린지에서 4위에 머물렀다. 이영표의 지도자로 불리며 이랜드FC의 구단 마케팅까지 신경 썼던 마틴 레니 감독은 시즌 후 질됐다.


뒤이어 박건하 김병수 감독을 거치면서도 이랜드FC는 1부 리그 승격을 하지 못했다. 감독 교체는 매년 발생했고 그러다 오늘(17일) 김병수 감독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자진 사퇴 형식으로 지휘봉을 내려놨다.


이랜드FC는 2015년 첫 시즌 이후 3명의 감독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한 시즌에 감독 한 명씩을 소비한 셈이다. 기대 이하의 성적은 불안함으로 번졌으며 불안함은 구단의 돈줄을 쥐고 있는 모기업의 조급증으로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모기업은 어차피 프로축구 감독 후보군이 많다는 걸 인식했다. 데려와서 즉각 성적을 내지 못하면 내치고 내쳐지면 바로 또 다른 이에게 책임을 맡기는 다른 구단의 방식을 너무도 일찍 알아버렸다.


다만 도덕적으로 해당 방식을 지적할 순 있어도 모기업의 논리까지 싸잡아 비판하긴 힘든 면이 있다. 이랜드는 기업 활동으로 돈을 벌어 자기들 입맛에 맞는 구단 운영을 적법절차 안에서 하고 있다. 구단 감독을 배터리처럼 갈아치운다는 도덕적 비판은 할 수 있어도 왜 그러한 결정을 자꾸 하느냐며 이를 막을 순 없다.


스포츠를 모르는 인사를 쓰든 아는 인사를 쓰든 이랜드는 기업 구단이다. 기업 구단의 내부 결정은 모기업이 하게 되어 있다. 시민이 주주가 되어 의사결정을 하는 등 외국에 존재하는 진정한 시민 중심의 프로스포츠 구단이 아니다.


마침 이랜드 관계자들과 접촉하는 경우가 많아 사정을 조금은 안다. 그 시각에서 보면 이랜드는 작년부터 계속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매각에 매각을 단행했다. 최근 부채 비율 250%대까지 끌어내리면서 이제 겨우 그들이 원한 몇몇 계열사 상장 작업과 지주사 전환 등 기업 활동에 힘을 주고 있다.


이 상황에서 '축구 천재'라고 불렸던 한 명의 축구인을 감독 자리에서 밀어내는 게 얼마나 작디작은 일인가. 이랜드의 과거 여러 행보와 그들이 보고 있는 대상을 고려하면 모두 일순간 지나가고 마는 소나기 같은 일인 셈이다. 축구와 경제 문제가 동시에 얽혔을 때 축구가 이를 이겨내길 바라는 건 한국에서 불가능하다. 그게 기업 구단이면 더는 말할 가치도 없다. 언젠간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대중문화와는 또 다른 한국 프로스포츠 고유의 성격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이랜드FC의 가장 우선 과제는 1년이라도 빨리 1부 리그에서 뛰며 모기업이 원하는 마케팅 효과를 만드는 것이다. 애초 그걸 목표로 탄생한 축구단이다. 이랜드의 일차적인 프로축구단 접근 지점은 여기였다. 그런데 그게 지금 뒤틀리고 뒤틀려 예상보다 더뎌지고 있는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유료 관중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들이 자랑했던 서울 연고지 효과는 씨도 못 뿌렸다.


게다가 이랜드는 앞서 쓴 대로 90년대 말 한 차례 축구단 정리를 한 경험이 있다. 그들이 화려하게 2부 리그에 닻을 올렸을 때가 생각난다. 일각에서 이랜드FC의 1부 리그 승격이 빨리 되지 않으면 구단 운영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예상이 슬그머니 불을 피우는 중이다.


하루아침에 구단 행정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는 것에 더는 할 말이 없다. 자생력 없는 프로스포츠나 글자만 앞에 '프로'자 붙은 스포츠 구단이 존재하는 한 계속 발생할 일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다. 예를 하나 들자면 평창동계올림픽이 스포츠 행사인가? 아니다. 그건 경제로 시작해서 경제로 끝나는 이벤트다. 중간 도구로 스포츠가 있을 뿐이다. 한국은 이러한 스포츠의 도구화가 유독 다른 나라보다 심하다.


적어도 국내에서 스포츠에 프로자가 붙는 이상 자본에 좌우되지 않는 움직임은 없다. 얼마 전만 해도 이랜드는 자체 영상 제작으로 김병수 감독의 내년 계획을 홍보했다. 이 모든 게 물거품 된 것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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