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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Dec 26. 2017

강원도를 가른 건 누군가

요즘의 평창동계올림픽

강원도 지역신문 기자한테 전화했다. 오랜 친구면서 동기다. 인턴 시절 서울역 노숙자의 하루 벌이가 얼마인지 몸으로 확인했던 친구다. 당시 그는 며칠을 감지 않아 떡이진 머리와 허름한 복장을 하고 "한 푼 주세요"를 외쳤다.


나는 그때 "너는 아침에 세수만 안 해도 아무도 의심 안 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참았다. '좋지도 않은 머리 그만 쓰고 쟤처럼 하라'는 소리를 듣던 터였다. 그렇게 나와 달리 우직했던 그는 요즘 기자 생활 8년 차를 달리고 있다. 여러 부서를 돌다 체육부로 온 지 몇 년 됐다.


"평창 논조 왜 그래?"

"갑자기 전화해서 왜 또 그런 걸 물어."

"기사 말고 너 얘기를 해봐."

"갈라졌지 뭐."


전화로 일문일답했다. 주로 내가 물었고 그가 답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둘러싼 강원도 내 분위기가 찜찜하다는 게 수화기 속 한 줄 평이다. 주로 젊은 층에서 올림픽이 창피해졌다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


돈만 가져다 쓰는 행사라는 비판을 받던 것도 옛일이다. 대회가 코앞에 다가오자 터무니없이 비싼 숙소 값과 급등했던 집값의 급락 등 투기 자본의 갈지자 춤을 보고 있다. 메가스포츠 이벤트 개최로 '세계 속에 평창' 혹은 '비상하는 강원도'라는 극찬을 기대했던 지역민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내려앉은 지역 이미지 때문에 대회 이후가 더 걱정이라는 볼멘소리도 싹트는 중이다.


그나마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북한의 참가를 종용하는 등 '평화 올림픽'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건 중앙 정부가 챙겨갈 수 있는 정치적 해갈이다. 3수 끝에 개최권을 따내면서 '우리가 해냈습니다'라고 길게 뻗은 현수막이 강원도 내 거리마다 걸린 게 엊그제다. 이제는 대놓고 그런 자화자찬을 하기엔 멋쩍은 분위기가 평창에서 먼저 퍼지고 있다. 차라리 "이왕 이렇게 됐으니 망할 수는 없지 않으냐"라고 되묻는 이들이 솔직하다. 경기장 입장권이 몇 퍼센트 팔렸는지가 매일 핵심 이슈일 정도로 불안감이 안쪽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중이다.


조선 시대부터 500년간 보호된 가리왕산이 평창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파괴됐다. '청정 강원도'가 산을 깎고 환경을 파괴해 올림픽에 나선 것이다. 이것부터가 어불성설로 받아들여졌다.


분산개최 요구는 아직 이권을 챙기기 전의 투기꾼들이 단박에 돌려세웠다. 비선 실세의 꼭두각시이자 몰상식했던 정치 지도자는 넋 놓고 보고만 있었다. '65조 경제 효과'를 끼워 맞춘 채 주판알을 튕긴 경제학자들은 옆에서 그들을 감쌌다. 그렇게 상식선에서의 논의는 닻을 올리지도 못하고 일찌감치 함몰됐다. 그리고 이들의 오랜 주장은 발화 자체가 사실이라는 단편적 사고에 갇힌 일부 언론의 비행 속에서 주민 사이사이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사후활용과 얼빠진 경제효과에 대한 비판론이 커져 오늘까지 왔다. 강원도 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평창이 더는 그때의 평창이 아닌 것이 되었다.


강원도는 지금 국민체육진흥법 36조 개정안에 집중하고 있다. 평창이 고향인 염동열(자유한국당) 의원이 2014년 3월 발의한 논제다. 이는 최근 지적받고 있는 평창동계올림픽 사후활용방안 등과 연계된 적자를 국민체육진흥기금 등 중앙정부 돈으로 메우자는 뜻이다.


지역 교수와 이른바 '유지'라고 불리는 힘 좀 쓴다는 이들의 측면 지원도 한창이다. 여론을 모으고 응축하는 통계 집단에서는 대회 이후 연간 116억 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한다면서 이러한 주장에 후방 지원을 하고 있다. 65조 이득을 자신했던 이들이 불과 6년 만에 획기적인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 또 다른 계산법이라도 발견한 것일까.


강원도에서 '올림픽세' 명목으로 추가 세금을 걷자는 절충안은 예전 분산개최처럼 꺼내선 안 될 말이 됐다.


대한민국에 앞서 세계 속의 평창을 그리며 외쳤던 이들이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 이러한 재원 마련을 위해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아이스하키에 '경빙'을 적용해 스포츠 도박 자금을 유치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투기 자본으로 배를 불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생각은 3수 내내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2011년 대회 유치 당시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로 가장 기대하는 항목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42.2%가 '경제발전'을 꼽았다. 가장 높은 수치였다. 전부 강원도 오피니언 리더들이 잔뜩 사탕발림해놓은 효과였다. 달콤한 사탕을 주민들 입속에 넣어줬던 그들이 이제는 그 사탕 전부 불량식품이라며 도망치고 있다.


강원도를 들여다보며 "갈라졌다"라고 하는 이한테 도대체 누가 갈라놓았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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