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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Jan 14. 2018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옳지 않은 이유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정치 개입 수준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두고 남북단일팀을 추진한다. 아직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 다만 이따금 몇몇 이슈들은 논의 자체가 당사자에게 상처이자 피해가 된다. 대표팀 선수들에겐 한참 대회 직전 분위기를 다잡고 컨디션 조절에 집중해야 할 시기다. 당장 선수들에겐 자기 입지가 흔들리는 이런 외부 충격에 영향을 받는 것조차 의아하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들은 선수 생활만으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비정규직을 전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이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에게 무슨 면목으로 국가가 이제 와서 출전 자격을 축소하거나 아예 박탈하려 하는가.


대회 엔트리가 23명으로 정해진 가운데 북측 선수단을 여기에 추가하는 건 특정 선수의 출전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선수에겐 조금이라도 뛸 기회조차 뺏기는 사태가 된다. 분명 이건 축소나 박탈이다.


냉장고에 초코파이가 몇 개 있어서 그걸 육남매가 조금씩 나눠 먹겠다는데 갑자기 집에는 잘 들어오지도 않던 아버지가 나타나 사촌형제들도 다 불러서 먹으라고 호통치는 격이다. 선수들은 4년 가까이 홈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만 보며 살았다. 그런데 대회를 코앞에 두고 갑자기 정치권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면서 모든 게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스포츠에는 '정치 콤플렉스'가 있다고 본다. 이건 철저히 내 주장이다. IOC도 그렇고 FIFA도 그렇고 모두 정치적인 이용을 거부한다고 명문화해 뒀다. 이것 자체가 정치가 스포츠를 뒤흔들 때 걷잡을 수 없이 어긋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오죽하면 장웅 IOC 위원이 자꾸 자신한테 북한 정치권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정치가 스포츠 위에 있다"라고 답했을까.


거의 모든 분야가 그렇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면 아예 언급조차 안 하지 'A는 우리에게 신경 꺼'라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고 하는 말도 유명한 말로 인정되는 게 '칼은 펜보다 강하다'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물리적으로 칼이 펜보다 센 데 구태여 누가 그런 말을 할까.


사실 정치 개입에 대한 거부감은 스포츠에서만 커 보이는 게 아니다. 다른 거대 분야인 경제도 그렇고 문화도 마찬가지다. 경제인들도 틈만 나면 경제 문제를 정치인들이 나서서 정치로 풀려 한다고 비판한다. 최근에 불거진 블랙리스트 사태처럼 문화는 정치에 휘둘린 역사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차고 넘친다.


결국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문제는 체육계나 스포츠계 리더들이 나서서 목소리 높여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분명히 주지해야 할 건 이는 단순히 아이스하키 하나의 사례로 끝나는 게 아니란 거다. 관련 업계를 둘러싼 앞으로의 인식 자체를 어떻게 프레이밍 할 것인가에 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문제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높아서? 지지자들이 무서워서? 촛불 민심으로 되찾은 민주 정부라서? 국정농단 속 체육계가 저지른 잘못이 너무 커서? 두려울 수 있는 이유를 찾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나 또한 지금 정부를 지지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한 남북 관계의 긴장 완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거시적인 개입과 이용 차원의 용인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정치가 스포츠를 이용하고 스포츠 역시 그를 적당히 묵인하면서 챙길 건 챙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스포츠 경기 자체에 대한 개입으로 이어지는 건 곤란하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엔트리 확대는 상대 팀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정치 개입을 금지하는 IOC 규정에도 위반될 수 있다. 반박 논리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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