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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May 21. 2018

월드컵이 경험하는 자리라면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 인터뷰와 댓글들

"제대로 축구를 모르면서 인신 공격을 할 때다. '신태용 네가 감독이냐' '너 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우리나라 축구가 안 된다' 뭐 이런 식이다. 축구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화풀이하면서 하는 거다."


"우리나라 국민이 평상시에도 축구를 좋아하고, 프로리그 관중들 꽉 차고, 그런 상태에서 대표팀 감독을 욕하고, 훈계하면 난 너무 좋겠다 생각한다. 그러나 축구장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월드컵 때면 3000만 명이 다 감독이 돼서 죽여라 살려라 하는 게 아이러니컬하다. 이들은 대표팀 경기 외엔 관심이 없다. 그런데 대표팀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일본·중국만 가도 관중석이 80% 찬다. 우리는 15~20%인데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게 너무 힘들다. 물론 좋을 때도 있다. 대우받는 것도 있고, 축구에선 대통령 같은 존재 아닌가. 양면이 있는 것 같다. 그걸 스스로 잘 조절하려고 한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토로했다.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는데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했다고 본다. 이제 월드컵은 경험하는 곳이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가 됐다. 과거 1승도 못했던 시대를 훌쩍 지났다. 대표팀이 4강 진출과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하면서 '다음 월드컵을 위한 희망' 같은 건 하나 마나 한 말장난으로 돌아갔다.


내 기억으론 과거 홍명보 감독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선수 구성을 놓고 언론과 댓글에서 비판과 잡음이 이어지자 너무 많은 이들이 대표팀과 감독을 흔든다고 호소했다.


월드컵이 증명하는 자리라면 증명할 수 있도록 문제를 풀 시간과 그만의 방법을 믿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 감독은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최종 권한을 가진 자리다. 해당 종목 안에서의 마지막 결정은 감독에게 있다. 이 권한에는 자신이 가진 계획 아래 선수 구성과 팀 분위기를 조성하여 상대와 맞붙어야 하는 의무도 녹아있다. 인터뷰도 그러한 분위기 조성 도구 중 하나다.


다수가 갈망하는 히딩크 감독이 처음 부임해 한 일 중 하나도 인터뷰를 일원화하는 것이었다. 선수들을 팀으로 묶고 지금부터 모든 개인의 입장은 팀 입장으로 인식된다는 강조 아래 언론 대응을 정했다. 그 연장선에서 봐도 이번 신태용 감독의 발언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대표팀을 흔드는 여론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는 '대내용' 메시지로도 기능했다.


비판하려는 이들은 비판받는 것에 먼저 익숙해야 한다.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손석희 앵커가 대학 강의에서 강조한 말이다. 비유가 적절한진 모르겠지만 인터넷 여론엔 그러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내던져진 비판을 가장한 비난이 많다.


국내 축구 감독들은 점잖은 편이다. 외국 감독들은 취재진과 막말 직전의 설전까지 벌인다. 이때의 취재진이 대중을 대신하는 게 맞는다면 이는 감독이 다수와 자신의 철학을 놓고 비판에 반박하며 토론하는 셈이다.


국내 감독이라고 언제나 근엄하고 판에 박힌 말을 하며 고분고분해야 할 필요는 없다. 신태용 감독이 팬이 해달라는 사인 요청을 무시하거나 경기장에 안 와도 좋으니 입 다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진 않았다. 국내 축구 환경에 대한 구조도 짧게 짚었고 자신이 가진 권한과 의무의 양면성도 언급했다.


다만 이번 발언이 월드컵 이후였다면 좀 더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은 있다. 부상 병동의 팀 상태와 월드컵 소집 기간 축소 등 과거와 달라진 환경은 지금 대표팀의 부담 요소이자 훗날 비판 상황에서의 해명 도구로 존재해서다.


반대로 월드컵 활약 뒤 이런 상황들은 대표팀이 극복한 장애물로써 긍정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강력한 '수’를 어느 시점에 내느냐 하는 점에서의 감각은 부족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비난 폭격'을 받을 정도로 못할 말을 한 건 분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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