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정혁 Jun 05. 2018

그래서 왜 월드컵이 중요한데?

러시아 월드컵에 대한 잡문

월드컵 열기가 별로라고 아우성이다. 축구대표팀을 향한 '댓글 조롱'은 다반사다. 16강 진출은커녕 1승도 하지 못할 것이란 반응이 대다수다. 스포츠 전문채널마다 트는 '2002 월드컵 다시 보기' 따위의 편성은 의례적이다 못해 관성적이기까지 하다. 며칠 안 남은 개막 전까지 크게 무언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누구는 퇴보한 대표팀 경쟁력을 꼽고 누구는 과거와 달라진 선수들의 정신력과 배부름을 탓한다. 그 와중에 '인터넷 분석가'들은 4-4-2가 최선이라고 하고 강팀을 상대로 한 3-5-2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한다. 글만 보면 당장 전력분석원이 쓴 것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이론이 빼곡하다. 물론 전문적으로 축구를 한 사람들이 보면 코웃음 칠 일이다.

실제 축구는 '피파온라인이'나 '풋볼매니저'와 다르다. '인간 문어'라는 이영표 해설위원조차 예상과 주장엔 '사견'임을 덧붙여 조심스럽게 덧붙이는데 이론 박사들이 전술까지 첨삭하는 건 난센스다.


선수들 정신력이 나약하고 경기력이 떨어졌다는 것도 추상적이다. 정신력은 단순히 아픈 것을 참으면서 온 힘을 다해 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안엔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는 중심과 평소 혹은 그 이상의 어떠한 욕구를 끌어올려 경기에 임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것을 축구게임 가상의 선수처럼 계량화할 수 있는가. 과거보다 스포츠 심리가 더욱 중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기력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따지면 과거보다 해외 리그에서 더 많은 선수가 활동하고 오히려 신체 조건과 과학적인 트레이닝으로 다진 지구력 증가 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늘과 과거를 비교하려면 단순히 지금의 팀과 과거의 팀을 비교할 게 아니라 시대의 배경 속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들여다보는 게 합리적이다. 차라리 현대 축구를 둘러싼 후방 지원이 전 세계 공통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


월드컵 홍보나 '붐 조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그리 고개가 끄덕여지진 않는다. 온갖 SNS를 비롯한 홍보 채널이 다양해졌으며 스포츠마케팅과 스포츠산업은 매년 다르게 성장하는 판이다. 저 옛날 2002 월드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관련 업종과 종사자들의 전문성은 높아졌다.

오히려 각종 즐길 거리가 많은 시대 속에서 수용자가 흩어졌다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마치 예전 농구대잔치 세대가 고스란히 프로농구 초반 흥행을 이끌다가 그들이 떠나면서 강렬한 경험을 하지 못한 세대가 그저 그런 수용자로 남은 것처럼 말이다.


'체험의 깊이'에서 실마리를 찾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장에서 공 차고 강렬한 월드컵을 경험한 세대는 이미 너무 바빠졌다. 30대 중반을 넘어 그 이상 세대가 되었으며 그들에겐 더 이상 월드컵에 열광하는 게 '잠깐의 여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자리 잡았다. 4강 신화도 한때였고 16강 진출 실패로 엿가락 던지던 때도 한때였다는 걸 그들은 무의식으로 인지했다. 월드컵이 삶에서의 그 어떤 큰 변화가 되기엔 무리이며 순간의 오락이라는 걸 안 것이다. 게다가 4년마다 오던 그 축제의 해갈은 주말 밤을 채우는 해외축구가 상쇄하고도 넘친다.


그보다 어린 세대는 어떠한가. 대면 소통보다는 비대면 소통이 편하고 축구로 땀 흘리기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축구게임하는 게 익숙한 '체험'이 됐다. 맨눈으로 운동장을 쳐다보고 축구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 호흡할 기회도 스스로 찾지 않아 편집된 화면으로서의 '콘텐츠 축구' 외에는 체험할 경우의 수가 적어졌다. 이는 매년 줄고 있는 K리그 관중 수가 증명한다.


TV에서 보는 해외축구 선수를 게임으로 조작해보고 그 안에서 계량화된 수치와 수학 공식처럼 얽힌 포메이션을 가장한 디지털 반응을 먼저 체험하는 게 지금의 젊은 축구팬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더 두드러질 게 뻔하며 대개 이런 이들이 앞서 언급한 전술 지적을 내던진다.


젊은 세대부터의 축구 인식 자체를 이뤄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대표팀과 월드컵을 향한 시선은 더욱 악화 일로를 걸을 것이다. 축구계 인사들이 나서서 "대표팀에 비판보다는 격려를 해줘야 한다"라고 백번 얘기해봐야 그들의 눈높이는 TV 속 해외 선수들로 고정되고 선수 평가는 게임 속 능력치처럼 숫자로 시뮬레이션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인식 변화를 일으켜 월드컵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아직은 정답이 없어 보인다. 아마도 유럽 축구 선진국들처럼 대표팀 경기는 그저 또 하나의 콘텐츠로 기능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이미 모든 분야에서 국가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세계적인 하나의 정체성이 파생 개념을 만드는 게 일상이다. 월드컵 혹은 스포츠라고 예외는 아니다. 학계나 전문가들이 나서서 월드컵이 일반 시민들에게 어떠한 효용 가치를 지니는지 분석해 내놓지 않는 이상 이 원론적인 문제에서 나오는 질문은 당분간 유효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월드컵이 경험하는 자리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