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에 부쳐
김훈 작가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가 인기다. 시대의 문장인으로 불리는 작가의 작품이니 국내 출판계에서 보기 드문 '예약 구매' 같은 단어가 낯설지만은 않다.
라면이라는 접근 쉬운 도구로 김훈 작가는 다시 한 번 독자의 등을 두드려주고 있다. 지쳐버린 현대인에게 위로를 전할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도 시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걸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잘 버텨보자'라는 논리인데 이는 사실 김훈 작가가 오래전부터 설파해 온 삶에 대한 인식이다.
김훈 작가를 지금의 명성으로 끌어올린 소설 <칼의 노래>에서부터 그의 글에 녹아있는 건 결국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들의 중요성이다. 칼을 어떻게 휘두르느냐에 따라 시대와 국가가 선명해지거나 흐릿해졌다. 한반도 역사에서 그런 사례는 부지기수였으며 김훈 작가가 집어내 칼로 집약한 노래도 그 안에서 존재했다.
뜬금없이 칼을 화두로 꺼낸 것은 최근 국정교과서 논란을 보면서 칼의 서늘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대표가 '유신 알레르기'와 '친일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데 둘은 손에 손잡고 칼을 휘두르려 한다. 자신들의 약점을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니 그 앞에서 역사관이나 사실로서의 역사를 운운하는 것은 선비의 음풍농월밖에 안 되는 국면이다.
펜보다 칼이 강하려면 펜이 토해낸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칼 주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칼 주인들은 귀를 닫고 앞만 본 채 영혼 없이 칼춤을 추고 있다. 펜들과 국민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굿판 주변인으로 밀려난 지 오랜 어두운 시기다.
그들을 보면 '통합 역사관'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눈에 띈다. 이는 혹시 '분단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보수 유권자들의 폐부를 건드린 저들의 수사학이지 않을까. 그게 또 통하고 통하는 걸 보면 사람과 세상의 다양함이란 참 아득하기만 하다.
하긴 '무한 초보'가 올림픽대로에서 칼치기 하고 '베이비 인 카'를 붙인 자동차가 속도위반 하는 세상이니 꼭 아득하지만도 않다.
갑갑하지만 울부짖지 못하는 칼의 노래와 요즘이 똑 닮아 처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