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맨은 졸업이라도 했지…

by 반동희

중학교 1학년 때 부추랑 친했다. 도시락 반찬으로 한 달간 부추만 싸들고 다녔다. 나중엔 입에서 신물이 났다.


그래도 그것밖에 못 담는 할머니 마음은 오죽할까 생각하며 불만 없이 도시락 가방을 들었다. 나는 사춘기 남자에게 벼슬과도 같은 '최전방 공격수'를 맡고 있었다. 부추 정도로도 충분히 동그랑땡 친구들이랑 밥 잘 먹을 수 있는 깡다구와 자격이 있었다.

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한 친구가 밥을 먹다 나에게 "풀맨"이라고 놀렸다. 바로 그 친구 주먹에 원투 펀치 꽂았다. 나도 쓰리 포 맞았는데 아프지 않았다. 뜯어말리는 애에겐 훅을 날리며 다시 그 "풀맨"을 외친 애를 때려눕혔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부추만 보면 그날의 동그랑땡이 생각난다.

부추와 동그랑땡 얘기를 쓴 이유는 단순하다. 저녁 뉴스를 보다 그 냄새가 코끝에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적인 글을 여기에 쓸 생각은 없다. 사람 사는 세상 모든 게 정치 행위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배제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그 정도로 내가 정치나 거대 담론에 큰 식견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요즘 보면 과거 무상급식으로 장난질 쳤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고개를 내민다. 이면은 뻔하다. 선거철이 다가왔다는 증거다.


택배 기사들의 어려움이 담긴 보도를 접했다. 손바닥 안에서 모든 걸 하는 세상인데도 여전히 누군가는 물 마시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다. 4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는 택배시장의 단물은 어디로 갔는지 그들의 땀에선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풀맨"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 그 감정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풀맨은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졸업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택배 기사의 삶이 더 나아져 일용직 노동자에서 졸업하는 날이 과연 올까 싶다. 오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


졸업 없는 지위란 게 참으로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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