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회’ 생각났던 조국 청문회 시청 소감
날을 새워 14시간짜리 청문회를 다 봤다. 왜 후보자가 장관이 되어야 하는지와 당사자를 둘러싼 도덕 검증이 맞섰다.
주관적인 시점에선 ▲청문회가 왜 그토록 미뤄졌는지 확인 ▲어느 쪽의 과반수는 사모펀드 뜻을 모름 ▲알면서도 질문을 반복했단 추측도 가능 ▲어쩌면 국민은 사모펀드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밀어붙였을 수도 있음 ▲유일하게 참석한 증인은 진짜로 웅동학원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에 출석 ▲막판에 나온 가정에 근거한 질문엔 답하지 말라는 우회적 조언은 하이라이트 ▲이것은 실로 노련미에서 나온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충고 ▲불금엔 국회의원들도 일하는 걸 싫어함 등을 느꼈다.
정치적인 개인 입장은 저 안에 넣어두고 많은 걸 되돌아봤다. 내가 대충 배운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그야말로 수많은 연구 주제가 나왔다. 이 국면에서 한 달여가 넘게 제기된 보도들과 그를 둘러싼 미디어의 어젠다 세팅이 먼저 떠올랐다. 객관성을 앞줄에 내밀고 뒤에서 굿판을 벌여 작두 탄 행위도 겹쳤다. 도대체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많던 보도들은 왜 삭제돼 총량이 줄고 있을까.
한편으론 이런 ‘풀영상’이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시대가 축복이라는 긍정도 싹텄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이런 날 것의 향연을 사후 편집된 아침 신문으로 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 안에서 편집자의 주관 개입과 외줄 타기 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풀영상 그 자체도 완전히 객관적이냐 물을 수도 있는데 이것은 오징어 회를 속초 부둣가에서 먹느냐 동네에서 먹느냐 만큼이나 확연하다. 날 것을 먹는 평범한 시민에겐 회 맛을 더해주고 혹시 모를 불안감을 잠재울 한 잔의 소주가 필요하다. 그것이 미디어의 역할이 아닐까.
수년째 미디어가 지탄받고 있지만 이런 날 것이 전방위적으로 유통되면 그 안에서 누군가는 핵심을 짚어내 가치판단을 할 것이다. 미디어는 그런 이들에겐 해설을 도와주고 동시에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정확한 어젠다 세팅을 하는 것이 숙명이 됐다.
그래서인지 무슨무슨 저널리즘 같은 것이 몇 년 간 유행처럼 번졌는데 결국 본질로 회귀했다. 동대문에서 파는 옷에 단순히 어떤 백화점 상표를 붙이느냐만 남은 것처럼 보일 때도 많았다.
‘대중’이란 단어를 좋아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와 비슷한 ‘다수’로 지칭하고서라도 ‘연결된 시민’은 아둔하지 않다. 다시 쓰지만 ‘연결’이다. 늘 그렇듯 당장 내 옆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본래의 나보다 지혜로워진다. 이것은 지식이나 경험 차이 때문이 아니다. 살아온 궤적이 60억 인구만큼이나 제 각각 다르기 때문이며 그래서 읽고 듣고 의견을 나눌수록 지혜의 총량은 상승 곡선을 그린다.
여기서 떠오르는 경험이 하나 있는데 내가 군대에 갔을 때만 해도 한창 혼잡했던 시위에 나가거나 단순 참여한 경험이 있느냐를 물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한쪽에선 아마도 ‘연결’을 두려워했을 것이라고 나는 지금까지 추측한다.
청문회 막판 진실한 사람과의 1시간여 술자리를 생각했다. 그것은 정말 괜찮은 책 1권을 읽는 데에 3시간이 투입된다고 봤을 때 오히려 얻는 것이 많다. 그런 이기적인 계산이 떠오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