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메랄드빛 바다에도 감흥이 없었다. 계속된 여행은 낯선 풍경을 익숙하게 바꿔놓았다. 익숙함은 그전과 같은 안일함마저 키웠다. 습도 높은 날씨와 이글거리며 정수리에 꽂히는 태양도 무던한 시절이었다. 미국을 가로지른 뒤 동남아로 향하는 여행 일정에 마지막을 걷던 참이었다. 한여름 끈적끈적한 습도는 들쩍지근한 향으로 변화해 등짝에 달라붙었다. 도저히 맥주를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저녁이었다.
“한국 분 같은데 일행이 있으신가요?”
‘산초’가 내게 다가오며 뱉은 첫마디였다. 길게 내려뜨린 머리에 짙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눈 안에는 흰자와 뚜렷이 대비되는 검은 눈동자가 꽉 차 있었다. 영민하면서도 본질을 꿰뚫어 보기 좋은 눈이었다.
“혼자이긴 한데......”
어물쩍거리는 내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산초는 내 옆에 앉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산초는 손에 들고 있던 맥주병을 내려놓았다. 주위에서 저런 미녀가 구태여 내 옆에 앉는다는 게 신기하다는 듯 수군대는 게 느껴졌다.
“피부가 많이 타신 걸 보니 하루 이틀 여기서 지내신 건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오랜 시간 여행하신 것 같네요. 그렇다면 여기가 처음은 아니고 여러 군데를 돌다가 마지막 휴양지쯤?”
산초의 끝을 올리는 의문은 완벽한 정답이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자리 뚱뚱한 남자들은 묘한 웃음을 흘렸다. 아마도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며 지켜보자는 말을 자기들끼리 하는 듯했다.
“산초라고 해요. 어머니가 한국 분이신데 사실 여기 사람들처럼 긴 이름이 있죠.”
맥주병을 들이켜는 산초의 손은 무척이나 가늘고 길었다. 내 옆자리에 바로 앉았지만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나 우리의 눈높이를 봤을 때 키도 제법 클 것이 당연했다.
우리는 2시간 정도 떠들었다. 깊은 대화를 한 것도 아니고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처음 보는 묘령의 여자와 그런 얘기를 할 성격도 아니어서 그것은 떠들었다는 표현이 맞았다.
산초는 25살로 나보다 4살 어렸다.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과 지금은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낸다는 것 외에 개인적인 얘기는 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어느 나라 사람이며 아이들에게 도대체 무얼 가르친다는 것인지는 나도 묻지 않았고 산초가 먼저 말하지도 않았다. 우리 곁엔 들쩍지근한 동남아 특유의 공기가 그득했다. 그걸 날리기 위해 마시는 맥주의 취기가 땅에서부터 올라올 뿐이었다. 심각함과 진지함은 필요하지 않았다.
“제가 타로를 좀 보거든요.”
산초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카드 더미를 꺼냈다. 그렇게 믿지도 않던 타로카드가 내 앞에 놓였다.
산초는 나의 꿈, 결혼 생각, 직업에 대한 믿음 정도, 갈망하는 것 등을 타로로 풀어 내보였다. 물론 나는 믿지 않았고 다만 그걸 드러낼 필요는 없었기에 웃으며 넘겼다. 낯선 이와 여행지에서 깊은 대화를 할 필요까진 없다는 단언 속에 피어오른 유희였다. 내게는 어느 순간 수군거리는 뚱뚱보 남자들의 시선을 즐기는 도도함도 번졌다. 나와 산초가 같은 한국말을 쓴다는 이유가 있어 너희가 부러워하는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취기 가득한 오만함도 존재했다. 맥주병은 쌓여만 갔다. 분위기와 풍경만 보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완벽한 밤이었다.
이건 무려 30년 전의 일이다.
지금 나는 몹시 두렵다.
정확히 말하면 한여름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 시원한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그 끝이 낭떠러지인 것을 알며 그 앞에 다다른 모습이다.
그날 산초는 내 인생을 설계했다. 그것은 매우 구체적으로 앞을 내다본 것이었으므로 이제 와서 보면 판을 짠 것과 헷갈릴 정도다. 산초의 모든 예상은 인생의 갈림길마다 재차 떠오를 정도로 맞았다. 그날 이후 30년을 지나면서 한 번도 산초의 타로카드는 틀리지 않았다. 29살 이후 산초가 예상한 결혼 시기와 직업적 변화와 사회적 지위 변화 등 그녀가 정한 “모든 예측은 2달 내외”라는 선언 아래 착착 맞아떨어졌다.
나는 산초의 타로카드가 들려준 시기에 결혼했고 가족을 꾸려 지금은 은퇴를 앞두고 있으며 그에 따라 사회적 지위도 달라졌다.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산초는 크게 그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으므로 그것은 맞은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닌 해석의 영역으로 남았다.
문제는 죽음이었다. 산초는 내가 언제 생을 마감할지 묻지도 않은 그것을 예단해 들려주었다. 산초는 우리가 “이것까지만”이라고 했던 마지막 맥주병을 내려놓을 때 그 말을 했다. 산초는 내가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이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가 산화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그 시기는 나이 60에 다다른 어느 날로 규정됐다.
산초가 정확히 말한 ‘산화’라는 죽음은 어느 순간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순간 지구라는 무대에서 퇴장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제 나는 막 60이 되었고 이를 앞둔 59세 10개월부터 12개월은 이미 지났으니 남은 시간은 60살의 2개월이 되는 셈이다.
살면서 산초의 예상이 턱턱 맞을 때마다 기뻤지만 어느 순간은 숨이 막혔다. 정해진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갑갑함이 목을 죄어왔다. 특히 산초가 내게 ‘자의식 과잉’이라며 한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순간이 40살쯤 찾아올 것이란 예상을 했을 때 하필 그것 역시 적중했다. 나는 그즈음 온종일 집에 처박혀 내가 다다를 수 없는 높은 곳과 경험하지 못할 성취감에 몸을 떨었다.
산초는 도대체 그날 왜 나에게 다가와서 그런 예측을 했을까. 그러면서 기어코 흘려들었던 그것들이 맞아떨어져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옭아매었을까. 나는 그 의문을 평생 풀지 못하고 이제 인생의 황혼기 앞에서 겁먹은 노년이 되고 말았다.
곱씹으면 기억나는 한 마디가 있긴 하다.
“세상은 한계를 뛰어넘으라고 해요. 한계를 뛰어넘으라고 채찍질하죠. 뛰어넘고 또 뛰어넘으라고 그렇게 주입해요. 하지만 그 뒤엔 또 다른 한계만 있을 뿐이죠. 끝끝내 다다르지 못한 것들은 저 미지의 세계에 수북이 쌓여 배달을 기다릴 뿐이죠. 그건 특정인을 향하지 않아요. 그저 내던져질 뿐이죠. 하필 그 차례에 내가 그 한계를 받아들여 몸속에서 느낄 뿐이에요. 일종의 전체가 떠안아야 하는 과제를 받을 뿐이죠. 그렇게 되면 만족을 모르는 지금의 그 표정은 반대급부로 더 큰 절망과 시기를 낳을 게 뻔하고요. 그걸 알아야 해요. 그럴 시간에 중요한 건 빵을 먹어 속을 든든히 채우고 자신과 내 가족의 주변을 돌보는 거예요. 나와 내 타로카드는 지금 그걸 말하고 있어요.”
알쏭달쏭한 자기 개발서 같은 이 말이 산초가 타로카드를 집어넣으며 내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산초가 술집에서 나갈 때 뚱뚱보들은 내게 휘파람을 불며 같이 따라가라고 손짓했다. 산초가 술집을 나갈 때 그녀의 머리카락은 술집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끈적한 바람에 휘날렸다. 그녀가 입은 긴 카디건의 끝도 덩달아 바람에 휘날려 신비감을 더했다.
나는 술김에 용기를 내어 산초를 뒤따라 나갔다. 하지만 그녀의 걸음이 빨랐는지 아니면 내가 늦었는지 1달러만 달라는 꼬질꼬질한 아이들의 빈 손이 내 눈앞에 놓인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