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핑하고 질문받겠습니다. 오늘 새벽 3시 30분경 망원역 인근 모처에서 가해자 A 씨를 체포했습니다. 연쇄살인 용의자로 의심받던 A 씨는 곧바로 이어진 취조에서 범행을 인정했습니다. 그간 사건 현장에서 일부 나온 지문 대조 결과 A 씨 지문과 같은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강력계 형사 박두식이 언론 앞에 섰다. 수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그의 입을 주시했다. 두식의 표정은 감정 없이 덤덤했다.
“이로써 지난 1년간 총 12건의 인근 연쇄살인 범행이 A 씨라는 걸 저희는 재차 확인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현재로썬 12건 전부를 A 씨 범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A 씨의 추가 범행이 있었는지를 향후 수사해 가려고 합니다. 이상입니다. 질문받겠습니다."
두식은 준비한 원고에서 눈을 떼고 앞을 봤다.
“A 씨 체포 과정에서 몸싸움이나 큰 저항은 없었습니까?”
한 기자가 물었다.
“없었습니다. 저희가 신병을 확보했을 때 A 씨는 도주하지 않고 자리에 있었고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식이 답했다.
“A 씨를 체포한 장소를 모처라고 하셨는데 장소 공개는 왜 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또 다른 기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기본적으로 해당 장소의 이해관계가 얽힌 분들을 위해서 말씀드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장소에서 어떤 범행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아무런 소동도 없이 체포했습니다. 그 장소가 어떤 장소인지 조금이라도 알려지면 경제적으로 피해를 보실 수 있는 분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본질도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향후에도 공개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언론에서도 그쪽으로 포커스를 잡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당부드립니다.”
두식이 단호하게 설명했다. 본질에만 집중하는 것은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직업윤리 중 하나였다.
“A 씨가 12건의 그 연쇄살인을 전부 저질렀다는 건 확실한가요? 혼자 했다는 것도 믿을 수 있는 건가요? 또 다른 밝혀내지 못한 추가 범행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증거 이전에 정황은 가지고 계신 건가요?”
노련한 기자가 치고 들어갔다. 두식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 기자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기자였다. 날카로운 질문을 하기로 유명했다.
“저희는 현재 A 씨의 구체적인 진술과 12건의 현장 중 6건의 현장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을 A 씨와 대조해 일치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절반 이상이며 범죄 수법이 비슷합니다. 그런 결론을 앞으로 두 번 세 번 확인하려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두식이 잠깐 말을 끊고 노련한 기자를 봤다. 기자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두식의 말을 듣고 있었다. 기자는 이따금 펜으로 메모를 했다.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다른 기자들과 달랐다.
“추가로 말씀드리면 단독 범행인지 아닌지는 현재로선 진술만 놓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또 다른 정황도 없지는 않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공범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브리핑을 방송으로 공범이 보고 있을 수도 있어 정확한 건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황이 있는 건 맞습니다.”
두식이 풀 것은 풀고 선 그을 것은 선을 그었다. 두식의 눈엔 노련한 기자가 뭔가를 재차 메모하는 게 보였다.
이로써 2년간 서울 한복판을 공포에 떨게 만든 ‘극악무도’ 연쇄살인범이 잡혔다는 게 전국에 알려졌다.
두식의 브리핑은 ‘뉴스 속보’로 실시간 생방송을 탔다. 당장 오후에 나오는 석간신문부터 시작해 내일 아침 나오는 조간까지 신문사 1면을 차지할 게 분명했다.
예전부터 몇몇 굵직한 사건 브리핑은 팀장 구형석 대신 두식이 도맡았다. 배포 넘치는 두식의 성격 탓이 컸다. 두식은 조금만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특유의 ‘깡’으로 돌파했다. 형석은 그때부터 팀장인 본인 대신 두식이 나서라고 시켰다. 그렇긴 해도 두식이 이렇게 전국 방송을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지막 질문 하나만 받고 끝내겠습니다.”
두식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슬쩍 훔치며 말했다. 열 명 가까운 기자가 손을 들었다. 두식은 자신과 안면이 있는 젊은 기자 한 명을 지목했다. 그가 햇병아리 시절부터 하도 두식을 쫓아다니며 물어 이제는 ‘형님 동생’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두식은 이럴 때 한 번 더 챙겨준다는 생각으로 그를 꼽았다.
“수사는 팀장님이 이끄셨습니까? 체포 과정은 제보를 받은 것입니까?”
두 번째 질문은 이해가 갔는데 첫 번째 질문은 의도된 것이었다. 순간 두식은 ‘저게 전국 방송 앞에서 챙겨준다고 쇼하네 쇼를. 알면서 뭘 물어. 하여튼 여우야’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두식의 웃음 낀 담긴 찰나의 입 꼬리를 언론사 카메라가 가만 둘리 업었다. 수많은 플래시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동시다발로 터졌다.
“저는 팀장 아닙니다. 팀장은 따로 있습니다. 떨린다고 해서 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팀장이라고 붙여서 혹시라도 잘못 보도 나가면 안 됩니다. 말씀드렸듯이 떨린다고 제가 대신 나올 정도로 팀장이 수사는 잘하는데 소심합니다. 들어가면 수당 달라고 할 겁니다.”
두식은 일부러 더 무던하게 대꾸했다. 순간 취재진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살인사건 용의자를 잡고 그것을 브리핑하는 자리라 대놓고 웃진 못했지만 나직한 미소가 동시에 번졌다. 브리핑에서 이런 답변이 오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것은 취재진의 기삿거리를 풍부하게 해주는 짤막한 스토리로 충분했다. 보수적으로 보면 방송사고 감이었다.
두식의 답변 이후 더 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두식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셔 그만 눈을 감았다.
“이제 좀 정신이 드나?”
두식이 눈을 떴을 때 웬 할아버지가 그를 내려다봤다. 내려다봤다는 것은 두식이 쓰러져 있다는 걸 뜻했다. 두식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방금 전 브리핑을 하고 있었는데 뭐지? 꿈인가?’
“이 친구야. 정신 좀 드느냐고.”
웬 할아버지가 다짜고짜 언성을 높였다. 희고 긴 수염이 산할아버지 같았다.
“네. 근데 누구시죠? 이건 뭐고?”
두식이 정신을 차리고 겨우 고쳐 앉아 물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왼쪽 뒤통수도 아려왔다.
“자네 지금 반신반인이야. 반신은 말 그대로 죽어서 신이 된다는 것이고 반인은 절반은 인간이란 거지. 어디로 갈 거야?”
노인이 물었다.
“느닷없이 무슨 말씀이세요?”
두식은 대답도 대답인데 몸 한쪽이 쓰라린 것을 참기 어려웠다. 왈칵 무언가 쏟아지는 것도 느꼈다. 피였다.
그제야 두식은 자기가 왼쪽 어깨와 오른쪽 옆구리에 칼을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지나치게 욱신거렸다. 다행히 왼쪽 어깨는 약간의 피딱지가 뭉쳐있었다. 그렇지만 두 곳 모두 출혈이 계속됐다.
“그대로 오래 두면 자연스럽게 죽어. 알잖아? 그래서 묻는 거야. 시간이 없어.”
노인은 질문으로 몰아쳤다. 흰 수염이 어디 선가 약간씩 부는 바람에 찰랑였다.
“형사 생활 더 할 거야? 아니면 이대로 갈 거야?”
“저한테 선택은 있고요?”
두식이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선택을 운운하는 거 보니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있나 보네. 대부분은 대꾸도 못하고 울거나 이게 뭔지 상황 파악에만 수십 분을 쓰는데. 역시 정신력은 강해. 자네.”
노인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저는 이대로 못 죽습니다. 가세요. 가시고 저도 좀 있으면 동료들 올 텐데 병원 가서 치료받고 살아야 합니다. 뭐야 진짜 이거.”
두식이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필요 없다는 듯 노인한테 저리 가라는 뜻으로 손을 저었다. 짜증 투가 가득했다.
“뭘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노인이 꿈쩍도 않고 캐물었다. 귀찮음에 두식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잡아넣어야 할 인간이 하나 있거든요. 이대로 가면 억울해서 제 분에 못 이겨 아버지 못 봐요.”
두식은 이 상황이 어이없지만 우선 노인의 말에 대꾸는 하고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기분에 휩싸여 말했다. 피가 계속 쏟아져 호흡이 가빠졌다. 솔직하고 빠르게 뜨고 싶단 생각이 꿈틀댔다.
“신화그룹 말하는 거야?”
노인의 질문에 두식은 멈칫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 인간은 뭐고 이 상황은 뭔가.
“뭐죠? 지금 이 상황이? 할아버지는 누구신데 이래요?”
두식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상처부위가 더 욱신거렸다.
“그거 참 급하시네. 내가 하나만 말해줄까? 자넨 신화그룹 그 사람 쉽게 못 집어넣어. 평범한 인간이 어찌 신의 영역에 다다른 악마 같은 인간을 잡으려고 해? 무던한 노력이 필요해. 보아하니 그래도 정신력은 일품이네.”
노인의 말이 두식은 몹시 거슬렸다.
“신의 영역에 다다랐다니요? 그 인간이 나라에서 어떤 짓거리를 하고 어떤 존재인 거 저도 아는데 그렇게 구분할 건 아니지. 악마인지 천사인지 알 바 없고 신이라니 개뿔.”
두식은 노인의 말이 경박스럽다고 생각해 의도적인 반말로 끝을 흐렸다. 노인은 크게 웃었다.
“내가 이래서 한 번 와본 거야. 신의 영역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알고 느껴봐야 소용이 없어. 그때 되면 자네는 또 허무하게 쓰러져서 이렇게 나를 만날지도 몰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차라리 지금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어?
웃음 끼를 지운 노인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두식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속했다. 속마음을 들킨 게 놀라웠다. 자신이 이런 처지에서 정체도 모르는 노인 말에 끌려가고 있다는 게 분했다.
“뭘 도와주실 건데요? 제가 제 손으로 잡겠다는 건 변함이 없는데 그럼 뭘 도와주실 건데요?”
두식은 밑지는 심정으로 물었다.
“도플갱어라고 아나? 완벽한 도플갱어를 줄게. 수는 자기가 짜. 어때? 그러면 자존심이 좀 허락되나? 아주 살짝 튕겨만 주는 거잖아.”
노인은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로 만들어 튕기는 시늉을 했다. 게다가 노인은 두식이 전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는 눈치로 거들먹거렸다.
“도플갱어?”
두식은 자신이 어렴풋이 알고 있는 도플갱어를 떠올렸다. 자신이 꿈꾸는 이상의 모습을 한 똑 닮은 인간이거나 정반대의 인간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쨌든 모습이 누가 봐도 닮았다는 것이었다.
노인이 도플갱어를 만든다고? 그걸로 뭘 하라고? 더군다나 도플갱어가 죽으면 본인도 죽는다던데? 어디서 주워 읽었거나 들은 것들이 연상됐다.
“걱정 마. 무의식에 있을 거야. 무의식에. 자넨 이 시간부터 이 모든 걸 인지할 수 없어. 도플갱어든 뭐든 이런 걸. 그래야 편할 것 아닌가. 그렇지 않고 의식하면 정신병 걸려. 그저 그렇게 흘러가겠지. 나머진 노력이라고.”
노인은 혼자 너털웃음을 지었다. 두식은 어이가 없어 그저 바라만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럼 신화그룹 어디까지 어떻게 가는지 내가 지켜봄세. 그다음은 그걸 보고 또 생각하지. 일어나서 가라고. 일어나서 이제 제 갈 길을 가. 그리고 부탁하자면 직감을 믿어. 자네의 직감. 타고난 그 직감을 놓치지 말라고.”
노인이 웃으며 두식에게 손을 저었다. 노인은 두식을 내버려 두고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노인의 뒷모습을 두식은 앉아서 두 팔을 뒤로 해 버틴 채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야 주변을 보니 온통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하고 수증기처럼 투명했다. 왼쪽 어깨와 오른쪽 옆구리의 통증은 참지 못할 정도였다. 특히 오른쪽 옆구리는 심각하게 찔렸는지 아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노인이 멀어져 저 멀리 점으로 보이자 정체모를 빛이 눈을 찔렀다. 카메라 플래시가 퍼져 나오는 빛이었다면 이 빛은 직선으로 뻗어 나오는 바늘처럼 날카로웠다. 두식은 눈이 부시다 못해 아팠다.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쯤에서 내가 개입해야 이야기가 끝난다.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두식이 도플갱어를 찾아 나섰냐고? 무의식은 놓쳐도 솟아오를 직감 정도는 따르지 않았겠냐고?
그렇지 않다. 현대인의 일상은 삶을 침범한다. 일상과 삶은 다르다. ‘살아지는 것’은 일상이고 ‘살아가는 것’은 삶이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는 살아지는 일상을 걷다가 눈을 감을 뿐이다. 우리가 눈 감았을 때 일을 우리는 모른다.
두식이 무의식에서 벗어나 눈 뜬 순간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졸다가 깼을 때였다. 무의식은 흔적도 없었다. 찰나의 무의식은 한 인생을 충분히 그리고도 남는다. 두식의 삶을 풀어줄 핵심 키워드인 도플갱어를 찾는 것도 그렇게 손쉬울 것 같으면서도 힌트 하나 없이 사라졌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딱 하나만 가져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놓쳤을 때 그 인생은 어디로 가는가. 왜 이 일을 하지? 왜 아등바등 살고 있지? 고통스럽게 고민하다가도 일상에 쫓겨 생각을 멈출 때 달라지는 건 결국 무엇인가.
지독한 일상은 두식에게도 살아지는 것에서 벗어나 살아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두식의 무의식은 그렇게 닫혔다. 이것이 과연 두식만의 일일까. 여기서 우리는 답을 구할 수 없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