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연어

by 반동희

20대 후반의 남녀가 소주를 마셨다.


"건우, 넌 요즘 어떨 때 제일 슬퍼?"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난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봤을 때."

남자가 잔을 내려놓으며 차분히 답했다.


"거꾸로 가는 연어? 그건 무슨 뜻이야?"


"남들 다 도심지로 출근하는데 나 혼자 도심지에서 빠져나갈 때 드는 느낌이야."


"아아, 나 그거 뭔지 알 것 같아. 예를 들어 다들 강남역이나 역삼역 같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건우 너 혼자 그곳으로 들어갈 때 같은 거지?"


"맞아 그거야. 그나마 역에 들어갈 때거나 지하철을 탈 때면 괜찮지. 아예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을 때면 정말 그 느낌 이상해."


"개찰구? 그건 왜?"


"나 혼자 이쪽에서 교통카드를 찍으려는데 반대편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개찰구 뒤로 줄을 서 있으면 마치 저들과 내가 1대 100 정도로 맞서 싸우는 기분이야."


"맞서 싸우는 기분이라. 사실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수아, 그건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넓게 봤을 때 건우 네가 이 세상에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그들과 싸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한정된 일자리?"


"건우, 넌 이 세상에서 무한대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모든 것은 유한하다고. 봐, 우리의 영원할 것 같던 대학생활도 끝나서 이렇게 푸념이나 하고 있잖아. 심지어 우린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도 잊고 살지."


"그런 유한함이 갑자기 일자리랑 무슨 연관인데?"


"간단하게 돌려보는 거지. 일자리는 창출이란 의미가 통용될 수 없어. 억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지. 그랬다가 또 자연히 사라지는 거고."


"뭐, 지금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라진 직업이나 일자리 그런 얘기하는 거야?"


"아마도? 그렇지만 난 거기에 더해 우리가 괜한 프레임에 빠져 있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거야."


"프레임이라면? 일자리에 대한 하나의 틀에 갇혀 있단 거야?"


"그렇지, 그건 아무리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려 해도 만들어질 수 없는 거야. 결국 제한된 고용 가능 인원만 있을 뿐이고 그건 하루하루 달라지는 거지. 오늘 멀쩡히 일 할 수 있던 사람도 내일 갑자기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처지가 될 수도 있으니까."


"어려워. 그러니까 어쨌든 네 결론은 우리가 이렇게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한정된 일자리라는 근본적인 위치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빗겨 나 있단 거네?"


"뭐, 그런 셈이야. 나도 아까 건우 네가 말했듯이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그렇게 지하철을 탈 때면 여기까지가 나한테 허락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유한하단 의미에서 보면 아르바이트 생활도 언젠가는 끝나겠지. 어쨌든 수아, 그럴 때 어때? 연어가 떠오르지 않아?"


"연어? 단순히 그 사람 무리를 헤치고 나가는 것 같아서?"


"그게 어떻게 단순해? 난 세상과의 충돌과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바다에서 살다 물살을 거스르며 고향인 강으로 돌아가는 연어와 네가 어떻게 같아? 그건 좀 이해가 안 되는데?"


"이거 봐 이거 봐, 이래서 수아 너도 직장 생활 안 해본 사람이라는 티가 난다니까?"


"건우, 넌 뭐한 것처럼 말한다? 아무튼 어째서 그게 연어와 꼭 맞는다는 건데?"


"수아, 들어봐. 직장에 다니는 순간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있는데 그건 직장에서 살다가 집에서 쉰다는 거야."


"조금 웃겼어 건우, 그럼 지금 철저한 시간적 배분을 뜻하는 거야?"


"바로 그거야. 일주일에 5일을 직장에서 보내는데 그마저도 노동 시간은 세계 최고인 나라가 우리지. 야근이다 뭐다, 전부 따지면 굳이 계산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러니까 건우, 네가 생각하기엔 그 아침 시간에 회사로 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고향에 가는 것 같은 연어라는 거야?"


"그렇지, 집이 고향이 아니라 회사가 고향이라는 거야."


"완전 반대네?"


"응, 내가 연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연어지. 물론 연어가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는지 어떠한 지는 두 눈으로 보지 못해서 모르겠어. 그런데 그 사람들 표정은 하나같이 똑같아. 연어의 표정은 아닌 거지."


"똑같이 무미건조하며 활기찬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는 거지?"


"응, 특히 수요일이면 그 똑같이 복제된 군상의 동일성에 놀라울 정도야."


"하지만 그것조차 희망하며 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같은 애들이 매우 많잖아?"


"맞아, 아이러니에 아이러니를 거듭하는 재미있는 현상이지."


"어째서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을까?"


"그걸 알면, 우리가 그렇게 수많은 입사지원서를 썼을까?"


"하긴 그것도 그래. 그런데 이미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 하는 건 아닐까?"


"수아, 결국 너는 지금 적당한 일자리와 적당한 휴식과 욕심 부리지 않는 삶, 뭐 이런 걸 말하고 싶은 거야?"


"아마도 임신과 출산이라는 제한적인 조건을 거쳐야 하는 여자 입장에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주제야."


"그런 부분까지 고려한다면 수아 네 말이 맞겠다."


"어째 대화가 좀 어려워지는 것 같지 않아 우리? 술이 다 깨는 것 같은데."


"대화가 어렵다고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어쨌든 답은 매우 간단한 곳에 나와 있는 거니까."


"그건 무슨 뜻이야 건우? 네 생각엔 이런 것에 답이 있다고? 그게 뭔데? 아니 어디 있는데?"


"간단해.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웠던 바른생활 교과서에 다 있어."


"하하. 건우, 너 또 웃겼다.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야 그거까지는?"


"그렇지 않아. 우리가 아는 대화니, 양보니, 배려니, 양심이니, 질서니 하는 것들을 우린 배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배우지 않았다고 생각해."


"어째서 건우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린 이 단어를 정말 사전적인 뜻에서부터 응용의 뜻과 제대로 된 용법까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체계적인 걸 얘기하는 거야?"


"체계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그런 가치와 단어의 속살을 배우지 않고 그냥 뭉뚱그려서 배웠다는 거지. 그런데 그마저도 매우 짧게 스쳐 지나가며 곧장 입시와 주입식 교육에 빠지게 되는 거고. 그 결과는 아까 내가 지적한 힘이 다 빠져버린 연어가 된다는 뭐 그런 나의 논리야."


"건우, 나도 그건 공감하는 바야. 그렇지만 우리의 이런 생각과 대화는 취업하지 못한 주변인들의 푸념 정도로 받아들여지겠지?"


"수아, 애석하게도 나 역시 그렇다고 봐. 우리가 어디 가서 이런 소릴 해봐야 아무것도 모르는 이의 푸념이라고 들을 게 뻔해. 마치 내가 개찰구에서 사람들과 맞선 그런 형국이 되는 거겠지. 완전히 반대의 반대가 되는 거야."


"비유하자면 바른생활 교과서를 배우던 시대는 이미 너무도 오래됐으니까?"


"어쩌면 그런 시대는 있지도 않았던 것 같아. 껍데기만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시대가 없었기 때문에 언젠간 오지 않을까? 모두가 깨닫게 되는 그런 시대 말이지. 왜 그런 거 있잖아. 사회는 결국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는 뭐 그런 이론들. 바른생활의 가치들이 조금은 되살아나지 않을까."


"수아, 거기서 균형이란 게 뭐일 것 같은데? 아니 그런 걸 주장하는 이들은 어떤 지식과 관점을 배웠겠지? 다시 말하지만 우린 바른생활을 겉만 배웠다니까. 정확히 말하면 인간 기본 가치의 내적 의미와 외적 의미를 깨닫지 못했단 거지."


"건우, 글쎄 그런 부분은 완벽히 이도 되지 않을뿐더러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는 거 아니야?"


"수아, 여기서 우리의 차이가 조금은 생기는구나. 미안, 오늘은 내가 지친 연어들의 수요일 얼굴을 보고 곧장 이렇게 와서 더 그 부분에선 비관적인 것 같아."


"아니야 건우, 피곤하기도 했을 거고. 어쨌든 밤에 아르바이트하며 낮이 거세된 삶을 사는 것이란 우리가 오늘 말한 연어들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니 이해할게."


"그래 수아, 퇴근하고 만나서 그런지 금방 해가 눈부시다. 이제 그만 마시고 들어가서 자자. 또 자야 밤에 아르바이트 나가지."


"그래 건우, 우리도 언젠가는 연어가 되겠지. 그때는 꼭 퇴근하고 저녁에 술집에서 소주를 마셔보자. 이렇게 잠깐씩 해뜨는 공원 의자에 앉아 새우깡에 홀짝이지 말고."


둘은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해는 어느덧 강렬히 아스팔트를 달궜다. 1시간 전만 하더라도 발 디딜 틈이 없었던 지하철역은 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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