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노란 리본'의 풍화

by 반동희

기차를 탔다. 수원역에서 멈췄다. 한 여자가 앞자리 통로 쪽에 앉았다. 그 여자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여자는 졸고 있었다.


창밖에서 지금 막 탑승한 여자의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여자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는 창에 쳐 있는 커튼을 걷어보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여자는 자고 있는 창 쪽 여자 때문에 열 수 없다고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여자와 엄마는 2 분여 간 커튼의 작은 틈 사이로 작별의 아쉬움을 풀었다.


저들이 하루빨리 다시 만나길 속으로 빌었다. 엄마 없이 자란 나는 둘 사이의 연민을 정확히 꿰뚫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핏줄의 당김은 매우 강렬하게 알고 살았다. 그래서 더 둘의 아쉬움을 지우는 웃음이 따뜻하며 아련했다.


열차가 출발하며 머리 위 짐칸에 올려둔 내 가방을 봤다. 가방 지퍼에 달아놓은 노란 리본이 틈으로 흘러나와 달랑거렸다. 노란 리본의 풍화와 바람에 대해 곱씹기 시작했다.


"너무 이념적인 것 아니냐?"

몇 달 전 한 지인이 내게 물었다.


"기억하자는 거예요. 남들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그냥 제 개인적인 소망인 거죠."

난 이렇게 대꾸하고 넘겼다. 그가 내 모든 걸 알 필요는 없었으며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답을 마치니 씁쓸한 기운이 입안 가득 퍼졌다. 개인적 소망이라고 대꾸한 내 소박함이 처량해졌다.


생명을 상징하는 리본이 이념적 장치로 치환된 것에 나는 억울했다. 어째서 이 사회는 노란 리본의 색을 시간으로 깎아내 이념을 덧입히는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곧장 스마트폰을 잡아들었다. 검색창을 띄워 노란 리본의 기원과 의미를 찾았다. 생각해보니 정신없이 살면서 노란 리본이 가진 본래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 채 휘날렸다. 그마저도 세월의 풍화 앞에서 사람들은 이념적이라는 소리까지 하고 있으니 어딘지 구슬펐다.


이제 한국에서 이 노란 리본의 의미는 어지러웠던 그 날의 사고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 노란 리본은 사건 이후 여전히 차가운 바다처럼 변한 것 없는 것들을 대변하는 매개체였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와 택시를 몇 번 갈아탔다. 덜컹거림을 참고 나니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바다 앞에 서서 이제 '꺽 꺽' 소리 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에서 흐르는 눈물의 농도는 예전과 같았다.


"동생아,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아. 여기도 이렇게 추운데 그 추운 바다 밑에서 아직도 뭐하는 거냐. 빨리 나와라. 빨리 나와서 이 형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 떼어내고 같이 신나게 축구나 한판 하자. 형 지난달에 취직해서 이제 아르바이트도 전전하지 않는다. 같이 먹고 싶었던 피자 실컷 시켜 먹어보자."


내 외침은 갈매기의 "깍 깍"과 엉겨 붙어 공허해졌다. 저 뜨거운 곳에서 올라온 그 소리는 목구멍과 입을 지나 공기와 만나자 순식간에 풍화했다.


기차가 다시 떠올랐다. 앞자리에 앉았던 여자와 여자의 어머니가 헤어지던 장면이 되살아났다.


"아 형, 진짜 수학여행 안 간다니까? 대학 가서 내가 아르바이트하면서 돈 벌면 여행 많이 다닐게. 진짜야. 형도 힘든데 무슨 수학 여행비야. 그렇게까지 해서 가고 싶지도 않아."


동생은 그날 아침까지도 내게 투덜거렸다. 난 부모 없이 자란 나와 어린 동생을 대하는 세상의 차가움이 싫어 악착같이 그 돈을 모았다. 그리고 그게 지금의 바다로 나를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안하다 동생아. 아무도 너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지만 난 너에게 미안하다."


가방에선 여전히 노란 리본이 흔들렸다. 갈매기는 더욱 "깍 깍"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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