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집위원 기영
2009년 1월 20일, 국가의 폭력 진압으로 여섯 명의 국민이 사망하였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용산 참사’로 기억한다.
용산참사 13주기를 이틀 앞둔 2022년 1월 18일,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 제도개선 위원회는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인 살인개발과 국가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전히 추모’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은 용산참사를 ‘온전히 추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온전히 추모할 수 없는 이유로부터 빈곤사회연대[1]는 2022년 1월 22일 토요일, 용산 참사를 기억하고 용산정비창 개발의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기 위한 시민 참여프로그램인 ‘용산 다크투어’를 진행하였다. 투어는 어떻게 운동이 되는 것일까.
1. 용산역 광장-오전 9시 55분
출발 시각 5분 전까지 도착해달라던 공지에 맞추어 용산역사에서 내렸을 때 용산역 광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대부분 모여있었다. 거대한 용산역사가 만드는 그늘 때문인지 영하 2도라는 기온보다 더욱더 춥게 느껴졌던 오전이었다. 주최 측에서는 관련 자료와 다크투어에 참여한 이들을 식별하기 위한 마스크, 퍼포먼스에 활용할 종이와 펜이 담긴 봉투를 나누어주었고 자체 촬영팀과 언론사들은 부산스럽게 취재 준비를 했다. 이날 투어를 신청한 인원은 총 99명. 예상보다 많이 모인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기 위해 다크투어는 시간대를 다르게 하여 3개 조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용산역 광장에 참여자들이 모여있다.
용산다크투어의 시작 지점인 용산역 광장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이 왼쪽, 오른쪽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왼편의 사진에는 용산역광장에 높게 솟아있는 튤림 모양 조형물 아래에 서른 명 가량의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서있다. 오른편에는 용산역 광장 계단 앞에 10명 가량의 사람들이 플랑을 들고 서있다. 본격적으로 행사를 시작하기 이전이라 사람들은 두리번 거리고 있다. 플랑의 배경은 용산정비창 지도를 어둡게 한 것으로 용산다크투어라는 글씨가 크게 써있다. 그림 설명 끝.
2. 용산역 구름다리-오전10시 18분
용산역 뒤편 3번 출구는 구름다리를 통해 서울드래곤시티(노보텔앰배서더)와 연결되어 있다. 서울드래곤시티는 2014년 착공에 들어가 2017년 완공된 특급 호텔이다. 호텔로 이어지는 깨끗하고 넓은 통로와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구름다리의 희뿌연 창문에는 내부에서 정확한 높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솟은 호텔이 가득 보인다.
용산역에서 특급 호텔인 서울드래곤시티로 이어지는 구름다리를 각각 안과 밖에서 찍은 두 장의 사진이 왼쪽 오른쪽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왼편의 사진은 구름다리의 내부를 찍은 것으로 다크투어 참여자들이 나란히 줄 맞추어 지나가고 있다. 추운 날씨로 다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다. 오른편의 사진은 외부에서 보이는 구름다리의 모습이다.사진의 왼편에는 특급호텔이 높게 치솟아 있어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오른편에는 낮은 층수의 상가 건물과 주택들이 놓여있다. 이 사이를 하늘 색의 구름다리가 지나가고 있다. 구름다리는 특급호텔과 연결되어 있다. 구름다리의 아래에는 컨테이너 상자가 2개 놓여져 있다. 그림 설명 끝.
“텐트촌에 대해 설명해 드리기 전에 여러분들이 계시는 구름다리부터 짧게 말씀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원래 용산역에서 외부로 나가는 통로 역할을 했었죠. 그런데 한 4~5년 전에 여기 보이시는 호텔이 개장을 하면서 호텔로 향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호텔이 개장하기 전에는 여러분이 계시는 자리에 좌판 노점상분들이 계셨고요. 저녁에 여기서 거리 노숙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런데 개장 첫날 호텔 측 용역이 배치되었고 전부 다 쫓겨나게 되었죠. 여기가 원래는 철도공단에서 관리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관리 주체가 임의로 호텔 측으로 넘어가면서 여기 계셨던 분들이 퇴거당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고요.”
호텔 앞에는 비닐과 각목 등으로 얼기설기 지어져 있는 텐트촌이 있었다. 해설이 없었다면 호텔의 압도적 크기에 텐트촌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곳은 2005년경 종교 단체의 무료 급식을 계기로 모여든 집 없는 이들이 형성해 현재는 서른 명 정도의 홈리스가 거주하는 텐트촌이다.
“여기(홈리스 텐트촌)도 마찬가지로 2010년대 중반 넘어서부터는 역세권 개발 엄청나게 이야기 나왔잖아요. 그러면서 사실 퇴거 위협이 계속 있었습니다. 심지어 2~3년 전에는 구청 사회복지과에서 나와서 임의 계고장을 붙여놓았어요. (…) 겨울 앞두고 그런 조치를 했던 건데 제가 전화해서 물어보니 해명이 더 가관이었습니다. 겨울에 계시면 고생이니 좋은 곳 가시라고 붙여놓은 것이라고. (…) 유휴부지이기 때문에 20년 넘게 텐트촌이 무사할 수 있던 것이었는데 최근에 개발 이슈 있으면서 주변의 주민분들도 계속 동요하고 계신 상황입니다. (…) 면세점 입점하고 국가에서도 최근에 국토부에서도 이제 유휴부지 활용해서 대학기숙사, 연합기숙사 짓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었는데. 이럴 때마다 불안해하시고. 그래서 저희도 개발 관련 정보 있을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해서 확인하고 알려드리고 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홈리스 행동 안형진 활동가)”
용산역과 특급 호텔 서울 드래곤 시티 사이로 놓여져 있는 홈리스 텐트촌이다. 사진 중앙애는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천막 등을 엮어 만든 움막 5개 가량이 모여있다. 겨울이라 상록수 몇 그루를 제외한 나무들은 잎 없이 갈색으로 메말라 있다. 홈리스 텐트촌을 기준으로 오른 편에는 파란 외벽의 용산역이 있고 왼편에는 지붕이 녹슨 컨테이너 상자 하나가 놓여져 있다. 우거진 나무 뒤로는 상가 건물들이 있다. 그림 설명 끝.
활동가분의 소개처럼 홈리스 텐트촌이 위치한 곳은 국가 철도공단이 소유하고 있는 유휴부지이다. 철도 유휴부지는 철도를 복선화하고 선로를 직선으로 개량하는 사업 중 발생하게 되는 자투리 공간으로 대부분 폭이 좁고 길이가 매우 긴 형태로 전국에 산재해 있다.[2]
그 형태 때문에 큰 건물을 세우기 어려워 놀리는 땅인데다가 국유지이다보니 10여 년 넘게 홈리스 텐트촌은 철거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 시내의 부족한 주거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개발 계획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으며, 홈리스 텐트촌이 위치한 용산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난 12월 국토교통부와 교육부가 용산 철도부지에 대학생연합기숙사 건립을 추진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22년 중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부지 매입비와 토지 사용료 비용을 절감한 만큼 기숙사 이용비를 1인당 월 15만 원 수준으로 제공할 방침이다. 당장 서울로의 집중 현상이 없는 것이 되기는 어려운 만큼, 공공성이 담보되는 주택 공급 대책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에 오랫동안 그 공간을 점유해온 홈리스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
무조건 개발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개발인지이다. 여러 인프라와 일자리, 상업시설, 인적 네트워크 등이 집중된 서울이라는 도시는 다수에게 생존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공간이다. 이 자체에 대한 비판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일단 서울에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주거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업대상지 원주민의 이주와 재정착이 보장된 선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집주인이나 세입자에 대한 대책도 그러한데 소유권을 기반으로 실제 법적 권리를 없는 셈 치는 홈리스의 권리가 보장되어 왔을 리 없다. 대학생을 위한 저렴한 비용의 기숙사를 건설하는 것과 홈리스의 주거권, 생존권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에 대한 논의가 전무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개발 앞에 서른 명의 홈리스는 올해 어디로 가야 할까.
3. 용산정비창 정문-오전 10시 48분
구름다리를 거쳐 용산역을 빠져나와 용산정비창으로 향했다. 용산역에서 용산정비창까지는 걸어서 20분가량, 투어 가이드를 맡은 활동가분께서 사전에 공유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이동할 것을 안내해주셨다. 짧은 시간 동안 귀와 눈으로 우리가 밟는 길의 긴 역사를 담으며 열심히 걷다 보니 용산정비창 정문이 나왔다.
용산정비창은 무엇인가. 우선 글자 그대로만 본다면 ‘용산’에 위치한 철도 ‘정비’를 위한 장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현재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부속기관인 용산정비창은 일제강점기 때 역사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에는 일반철도에서 사용하는 기차를 수용하고 정비하는 곳이었다.
물론 이곳이 유명한 까닭은 철도 정비라는 기능 때문이 아닌 서울 시내에 대규모 건설투자가 가능할 정도로 넓은 국공유지라는 점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은 언제든지 토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수 있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는 동시에 땅을 소유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언제든 집값이 급등하여 내쫓길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현재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곳의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용산정비창의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용산정비창은 코레일의 부속기관이다. 코레일은 15조 원이 넘는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정비창 토지의 민간 매각을 포함한 정비창의 상업 개발을 주도하려 했다. 이명박의 서울시장 임기 당시 유행처럼 퍼진 뉴타운 개발로 인해 서울 부동산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코레일 소유의 정비창 부지에 한정한 개발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다.
2006년 오세훈은 서울시장을 재임하며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그 일환으로 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주거지를 통합했다. 이에 사업부지는 약 57만 제곱미터로 확대되어 개발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2007년, 철도공사와 삼성물산이 출자하여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와 총사업비 31조 원 규모인 드림허브를 설립한다. 이후 2009년 삼성물산이 사업시행자 지위를 포기하며 롯데관광개발이 들어오게 되는데 개발방식을 둘러싸고 롯데와 코레일 간의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2013년 3월 드림허브는 최종 부도를 맞이한다.
그리고 2013년 10월 서울시가 용산국제업무지구 구역지정을 해제함으로써 사업은 공식적으로 취소된다. 이후 10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개발 계획이 종종 언급되기도 하였으나 모두 구체 개발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부지는 사실상 공터로만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정부가 2020년 ‘8.4 부동산 정책’의 하나로 용산정비창에 공공주택 1만 가구 공급 계획을 밝히기도 했으나, 이 역시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정책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사퇴했던 오세훈은 2021년 다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다. 오세훈 당시 후보는 용산정비창을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여 “서울과 대한민국을 넘어선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부상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당선되었다. 오세훈 시장은 올해 1월 11일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용산 국제업무지구 조성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고, 올해 상반기 안으로 용산정비창에 대한 구체 개발 가이드라인이 발표될 예정이다. 용산정비창 내 주택 공급을 전체 건물 연면적의 30% 수준으로 제한하되 업무시설을 확충해 국제업무지구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정부와 용산전자상가 등 주변 지역에도 주택을 공급해 공급 물량을 최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06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재임 당시의 개발계획과 그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문틈 사이로 용산정비창 부지가 보인다.
용산정비창을 찍은 사진 용산역과 특급 호텔 서울 드래곤 시티 사이로 놓여져 있는 홈리스 텐트촌이다. 사진 중앙애는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천막 등을 엮어 만든 움막 5개 가량이 모여있다. 겨울이라 상록수 몇 그루를 제외한 나무들은 잎 없이 갈색으로 메말라 있다. 홈리스 텐트촌을 기준으로 오른 편에는 파란 외벽의 용산역이 있고 왼편에는 지붕이 녹슨 컨테이너 상자 하나가 놓여져 있다. 우거진 나무 뒤로는 상가 건물들이 있다. 그림 설명 끝.
용산정비창을 찍은 두 장의 사진이 왼쪽, 오른쪽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왼편의 사진에는 높게 솟은 가림막 문틈 사이로 용산정비창이 조금만 보인다. 문틈 사이로 용산정비창을 보기 위해 모인 다크투어 참여자들의 뒷모습이 문틈 앞에 있다. 오른편의 사진은 문틈 사이로 찍은 용산정비창의 전경이다. 그림 설명 끝.
살짝 열린 문틈으로 허허벌판이 나왔다. 서울에도 아직 이렇게 넓은 공터가 있구나. 몰려든 인파에 당황한 듯한 경비 노동자는 들어오지 말라 저지하는 가운데 그 앞에서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활동가가 정비창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였다.
“10여 년 전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려고 하다가 무산돼서 지금 이렇게 허허벌판이 방치된 채 있습니다. (...) 이 정비창 개발이 들썩이면서 그때 삼성물산의 대표 컨소시엄을 한 30여 개 부동산 투자 기업들이 모여서 SH공사와 투기를 위한 다국적 법인을 설립해서 개발하려다가 결국 무산이 됐고요. 그때 이 국제업무지구 개발이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이라고 하면서 용산 일대를 들쑤셔 왔습니다. 그래서 바로 근처에 있던 용산 4구역에서도 아주 빠른 개발을 추진했고 빠른 철거와 빠른 내쫓김 가운데서 참사가 일어났습니다.(빈곤사회연대 이원화 활동가)”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죽음 앞에 이렇게 말한다. ‘◯◯의 죽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무력해진다. 용산정비창에 국제업무지구가 세워지지 않고 공공 개발이 된다고 할지라도 죽은 사람들이 돌아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의 죽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죽어야 했던 이유를 기억할 것이라는 다짐으로, 그런 세상을 단호히 거부하고 바꾸어 나갈 것이라는 다짐으로. 그렇기에 용산 다크투어의 마지막 장소는 용산참사 현장이어야 했다.
“구호 외치고 이동하겠습니다.”
“투기가 아닌 삶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용산정비창 공공공성 강화하자! (강화하자! 강화하자!)”
4. 용산참사 현장-11시 27분
이제 한 바퀴를 돌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용산역이 길 건너 다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까 용산정비창에서도 자그마하게 보였던 주황색 건물이었다. 활동가분은 주황색의 높다란 건물 앞의 누렇게 마른 잔디밭 앞에 멈추었고 순간 의아했다. ‘여기가 참사 현장이라고?’ 참사가 있었다는 그곳에는 “용산 센트럴 파크 헤링턴 스퀘어”라는 이름의 43층짜리 주상복합 빌딩만이 있었을 뿐이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4구역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 중 경찰의 강제/폭력 진압과정 중 발생한 화재로 인하여 철거민 다섯 명, 경찰특공대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망루가 세워진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던 때였다. 현장에서 이원호 활동가도 말했지만 용산참사는 ‘망루 위’의 진실과 ‘망루 아래’의 진실 모두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사건이다. ‘망루 위’의 진실이 폭력적인 진압 과정에 대한 것이라면 ‘망루 아래’의 진실은 철거민들이 망루 위에 올라야 했던 이유 그 자체이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용산4구역이 뉴타운 개발의 장은 아니었으나, 2001년 초대형 개발 사업이 발표되면서 용산4구역의 땅값은 10배 가량 치솟았다. 오세훈 시장이 추진한 국제업무지구로의 개발 계획은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삶의 공간이 아닌 자산으로서의 토지 가격의 급등은 그 공간에서 사는 이들을 필연적으로 내쫓는다. 용산4구역 개발이 어느 지역보다도 빠른 속도로 추진되면서, 당시 거주민의 83%를 차지하던 지역의 세입자들은 대책 없이 쫓겨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존권을 위한 철거민들의 격렬한 투쟁이 발생했으며 폭력적인 진압은 생존권 요구에 대한 정부의 대답이었다.
망루가 선 지 채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폭력 진압이 되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용산참사 부지는 7년간 공터로 방치되었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한 대로 이후 재개발 인허가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행위가 하나의 이유였고, 뒤이은 부동산 침체기 역시 당장의 개발을 어렵게 했다.
망루 위에서 죽은 이들의 장례식은 1년이 흘러서야 치러졌다. 이후 유가족과 대책위는 참사가 일어난 곳에 추모 공간을 만들고자 했지만 ‘사람 죽은 자리에 비싼 돈 내고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결국 어렵게 합의된 추모 수목마저 심을 수 없게 되었다. 참여자들이 선 잔디밭은 ‘추모 수목’이 있었어야 했던 자리였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무 대신 그 자리에 섰다. 참가자들은 나눠 받은 국화꽃을 내려놓고 용산참사 현장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희가 13년 동안 이렇게 용산을 알리고 있는 이유는 또다시 그 용산 참사와 같이 대책 없이 쫓겨나는, 대책 없이 그냥 삶을 무너뜨리는 그런 재개발 정책이 무엇 하나 바뀌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 여러분이 아까 보셨던 정비창 부지가 그 부지만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도 용산 4구역과 이 일대를 전체를 다 개발하는 그런 사업의 일환이었습니다. 우리 지역이 그 개발에 중심에 있었고 상당히 앞서갔던 거죠. 지금 13년이 지났어요. 무엇이 바뀌었을까요.(용산참사 유가족 이충연 씨)”
마른 잔디 위에 주최 측이 제작한 흰색의 직사각형 팻말이 놓여져 있고 흰 국화 수십 송이가 팬말을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다. 팻말에는 ‘잊지 않은 우리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요구합니다.’라는 글씨가 중앙에 크게 쓰여져 있다. 중앙의 글씨를 중심으로 윗쪽에는 보다 작은 글씨로 ‘용산참사 13주기, 기억하고 추모합니다.’가 아래쪽에는’폭력도 살인개발도 없는 그곳에서 편히 쉬소서!’라고 적혀있다. 그림 설명 끝.
무책임한 것은 누구인가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마이크로 정책’이 유행이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큼직한 공약보다도 각 지역에 대한 세부공약 내기에 열을 올린 것이다[3].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는 ‘용산정비창 부지 내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의 경우 구체 공약이 있는 것은 아니나 같은 당의 오세훈 서울시장이 오는 6월 지방선거 출마를 통해 4선 서울시장에 도전할 예정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큰 반대가 예상되지는 않는다. 참사 이후 개발과정이 지지부진하며 ‘잠시 소강’ 상태였던 용산정비창의 개발 방향을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안 없이 막대한 이윤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개발 계획들을 보면서 용산정비창 부지에서 용산참사 현장으로 이동하는 길, 잠시 멈추었던 이촌고가교 위에서 진행한 퍼포먼스를 생각한다. 빈곤사회연대에서 준비한 퍼포먼스는 인스타그램 화면처럼 꾸며진 종이 테두리가 붙여진 투명 셀로판지 위에 자신이 원하는 용산정비창의 개발된 모습을 그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한 번에 서기에도 밭은 다리 위에서 참여자들은 옹기종기 앉아 집과 나무와 사람들을 그려냈다. 그들의 손에서 허허벌판 용산정비창 위에 공공주택이 솟아올랐다.
투어 참가자들이 이촌 고가교 위에서 빈곤사회연대에서 준비한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있다.
세계 주거의 날을 사흘 앞둔 지난해 10월 1일, 주거/반빈곤운동 활동가들이 용산정비창 부지를 점거하는 일이 있었다. 활동가들은 용산정비창 부지 한가운데 ‘100% 공공임대주택, 불로소득 환수, 소유가 아닌 거주를’이라고 쓴 대형 플래카드를 펼쳤다. 또 ‘미래를 위해 점거하자’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용산정비창을 행진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 점거를 보고, 혹은 100% 공공주택을 요구하는 이들의 구호를 보며 너무 과격하다거나 ‘현실을 모르는’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1월 26일 열린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토론회’에서의 발언처럼 “100% 공공주택을 요구하는 것은 공공택지 개발에서 모두 (공공)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제한적 의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개발을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이 누군가에게는 내쫓김에 대한 위험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한 토지 사용’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구체적인 운동의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그 의미를 알아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정말 무책임한 것은 누구란 말인가.
고가교 위에서 사람들이 셀로판지 위에 그린 개발의 모습들을 기억한다. 용산정비창의 공공 개발이 모든 주거와 개발 문제를 해결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공공 개발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공공 개발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도 안다. 용산정비창의 공공 개발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 남길 것들을 생각한다.
편집위원 기영/7191zero@gmail.com
[1] 빈곤사회연대는 빈곤을 개인의 책임이 아닌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로 보아 반신자유주의 반빈곤 연대운동을 지향하며, 사회구성원으로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 기본생활소득 △ 노동권 △ 공적 사회서비스 확보를 ‘민중의 기본생활권’ 쟁취를 위한 주요 과제로 제시하는 단체이다.
[2] 철도 유휴부지 위치도. 국가철도공간. 접속일 2022.03.12..
[3] 마이크로 정책이라 하지만, 공약의 실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큰 방향에서 나라의 운영 방안을 말하는 것이 아닌 지역자치단체장의 공약 수준에 불과한 정책을 남발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참고문헌
논문 및 보고서
이원호 (2012). ‘철거민운동의 역사와 주요쟁점 -개발에 맞선 운동의 확장으로, 또 다른 용산참사를 막아내자’. 도시와 빈곤, 제 97호, 39-57.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대토론회 자료집 (2022)
기사 및 온라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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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2021.04.29.). 수백 명 목숨 앗아간 자리…”집값” 앞에 추모는 혐오가 되었다. 한국일보. Retrieved from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42718030003719
유엄식 (2022.01.11.). 용산정비창 주택 줄이고 세운 통합개발…오세훈표 ‘새판짜기’. 머니투데이. Retrieved from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10615373743750
이유진 (2019.06.14.). 용산참사 생존자 안타까운 극단적 선택…진상규명위 “국가폭력이 죽였다”.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9077.html?_ga=2.212649172.1148790684.1644933799-260245509.1594564912
정현수 (2021.12.30.). “’반값’ 15만원에 들어오세요”…용산 철도부지에 ‘대학 기숙사’짓는다. 머니투데이.Retrieved from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12301003462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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