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늦은 밤 10시, 겨울 146호 독자와의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슬프게도 편집회의는 물론 독자와의 만남마저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것이 기본값이 되었지만, 그 덕분에 전국 각지에 계시는 독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승희 님은 지난 144호 독자와의 만남에 이어 이번에도 참석해 좋은 감상을 나눠주셨습니다. 제주도에 거주 중이신 명규 님은 처음으로 《고대문화》를 만나고 독자와의 만남을 신청해주셨습니다. 오랫동안 중앙대학교 교지 《중앙문화》의 편집위원 그리고 편집장으로 활동하신 효석 님과 중앙대 서울캠퍼스 성평등위원회 (이하 성평위) 〈뿌리〉 부위원장이신 홍윤 님 역시 자리해주셨습니다. 귀한 의견과 감상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다시 뵙기를 고대하겠습니다. 겨울호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책 전반 평가
승희 이번 겨울호가 이전 책들보다 얇았잖아요. 그래서 조금 걱정을 했는데, 굉장히 영리한 구성이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글들이 갈래갈래 이어지는 부분도 있고, 또 지방과 퀴어를 엮은 부분에서 정말 잘 뻗어 나갔다, 재밌는 변주였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홍윤 디자인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처음 책을 봤을 때 사라지는 지방 도시들을 직관적으로 전달한 표지 디자인이 되게 예쁘다고 생각을 했고 과월호의 디자인도 봐봤는데 힙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명규 스튜디오 플락플락에서 디자인을 맡았다고 해서 《고대문화》를 알게 되었는데요, 지방이라는 키워드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지방에 살고 있어서 여러 지점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효석 제가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지금은 지자체에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특집이 지방인 게 굉장히 반가웠어요. 시선 코너에서는 ‘시선; Re’로 해서 후속 보도처럼 낸 게 굉장히 좋았어요.
편집실에서
홍윤 학교에 다닐 때 저의 위치는 대부분 학생 자치자 혹은 제도권 바깥의 동아리 같은 걸 하는 활동가였어요. 교지 편집위원회들에 의해 쓰이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래서 기록가에게 정말 큰 애정과 동료 의식을 가지고 있기도 해요. 특히 20년도와 21년도에 중앙대학교 안에서 성평등 의제를 가지고 총학생회 등과 지난한 갈등 관계에 있으면서 학교의 교지 편집위원회에 정말 의존을 많이 했거든요. “이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는 생각이 들면 교지를 찾아봤어요. 총학생회장과 싸울 때도 교지 편집위원회에서 나온 글을 근거로 들기도 했고요. 제가 교지를 쓰는 사람으로서 학교를 바라본다는 감각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되게 존경스러운 한편 닮고 싶은 것이거든요. 민철 님이 써주신 문장에 담겨 있을 시간들을 제가 감히 상상할 수는 없겠지만, 그간 너무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교지를 다 읽어보지는 않아도 교지 맨 앞에 있는 편집장 글 읽는 건 되게 좋아하거든요. 기억에 남는 「편집실에서」였습니다.
승희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폐간을 생각하셨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해봐서 보면서 굉장히 놀랍고 무서웠던 것 같아요. 제가 평소에 사회에 대해 가지는 희망이나 애정이나 낙관이나 비관 같은 걸 고대문화가 똑같이 겪고 있구나 했어요. 깊은 애정과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효석 고대문화의 기조와는 다르게 굉장히 감성적으로 쓰셨잖아요. 그 점이 되게 좋았어요. 우연이지만 《중앙문화》 21년 겨울호에서도 폐간 얘기를 했었거든요.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살아가는구나 생각했고, 민철 님도 제가 서울대 교지 《관악》 폐간호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가지셨을 것 같아 울컥했습니다.
시선; 겨울에서 가을을
상민 주요 언론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다루는 소재를 저희의 시선으로 잊지 말고 기록하자는 생각으로 이 꼭지를 쓰고 있습니다. 네 편의 글이 실렸는데 어떻게 읽으셨나요?
승희 뉴스를 봐서 대략은 알고는 있었지만, 정확하게는 모르던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외국인 보호소인가 강제 수용소인가」나 「글래스고 기후 조약」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들도 기사에서 단편적으로밖에 보지 못했고요. 주요 언론을 봐도 알기 어려웠던 정보들을 《고대문화》를 보고 안 것에 대한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홍윤 시선이 되게 짧은 꼭지다 보니 어떤 글감을 고를지도 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은데, 많은 이슈들 중에서 이 네 가지가 선정된 배경을 좀 풀어주시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쉬웠던 점은 고려대학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궁금했는데 뒤에 나오는 여학생위원회 인터뷰를 제외하고서는 고려대 내의 일들을 찾기는 좀 어려웠다는 거예요. 만약 제가 학생 자치자로서 다른 학교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아보고자 했으면 저는 고려대에 있는 언론 중에서 《고대문화》를 가장 먼저 봤을 것 같아요. 교지 편집위원회에 대한 신뢰도가 높으니까요. 교지 네트워크 글에서도 교지가 학교 신문이나 방송사와 다른 호흡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신 것 같은데, 그쪽은 사실 전달에 너무 치중되어 있고 단타로 속보를 치는 쪽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심도 깊은 분석이 나오기는 어렵죠. 시선이 한 분기 동안 있었던 이슈에 대해서 톺아주는 느낌이라고 했을 때, 그럼 고려대에서 있었던 일은 어디서 톺아야 하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상민 주제 선정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편집회의 후반부쯤 가면 각자 쓰고 싶은 아이템을 생각을 해오고 그중에서 분량이나 시의성 등을 고려해 선정을 합니다. 학내 이슈를 다루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갈수록 하고 있어요. 특히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저희가 유독 다른 교지에 비해 학내 이슈를 다루는 빈도가 적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려대에서 일어난 일은 중앙 언론에서 다루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봄호는 학내를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효석 학내 이슈가 주류적인 입장에서만 다뤄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소수자 의제나 노동 의제 등 낮은 곳에서 봐야 하는 사건들은 많고요. 그런 것들이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시선; Re: 변희수의 내일, 우리들의 오늘
상민 2021 여름호인 144호에서 '트랜스젠더' 특집의 일환으로 「트랜스젠더, 군인, 죽음」이라는 글을 썼었는데요. 다뤘던 주제가 작년 10월 판결을 통해 어느 정도 결론이 났으니 책에서 다루기는 해야겠는데 어떤 꼭지를 통해 실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전에 얘기가 나왔던 후속 보도 꼭지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새로운 꼭지를 만들게 됐습니다.
승희 이렇게 후속 보도를 해주셔서 좋았어요. 여름호 발간 뒤에도 추가로 우리가 알아야 할 만한 정보가 계속 나왔던 거잖아요. 이렇게 챙겨주신 덕에 그러한 내용을 다 알아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변희수 님이 살아계셨다면 청와대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을 것이라는 이 말이 너무 폐부를 찌르는 현실로 느껴졌어요.
홍윤 어쨌든 교지는 굉장히 긴 호흡의 글이 실리는 매체 중 하나잖아요. 교지들이 갖고 있는 어떤 방향성이나 정체성이 있을 것이고 한 교지의 여러 호가 묶였을 때 보이는 그 교지만의 큰 그림이나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교지라는 물성이 있는 매체 하나가 이전 호와도 호흡할 수 있게 하는 기획이 좋은 감각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곧 있으면 변 하사님 일주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시의성을 가지기도 하는 것 같고요. 누군가의 죽음이 상징화됐을 때, 매년 그의 죽음을 기리면서 더해가는 의미들이 있고 더해지는 담론들이 있을 텐데 그게 한 겹 쌓인 글이어서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지 네트워크를 만들며; 흔들리지 않을 우리의 목소리
상민 여름호 끝나고부터 기획을 했는데 결국 겨울호에 싣게 된 글입니다. 여러 단체가 함께 이렇게 시간을 맞춰서 뭔가를 기획하는 게 아주 쉬운 일은 아니다 보니까요.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승희 타대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 이곳 교지도 읽어봤는데, 두 교지가 스타일이 엄청 다르거든요. 그런데 편집위원들끼리 말씀 나누시는 걸 보니까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고 다들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시는 것 같았어요. 지키고 싶은 게 있고, 또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게 있고, 학생들한테 이걸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으니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하려 부단히 노력하시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지막에 또 ‘우리는 학벌주의의 수혜자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거기에 합당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고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대표하는 거지 고대의 여론을 대표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확실한 방향성을 딱 잡아주신 게 《고대문화》다운 마무리였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 가치관에 동감합니다.
상민 이 글의 필자인 민철도 ‘우리 힘들다’ 이런 얘기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후반부는 《연세》의 전 편집장님이신 지긍 님이 쓰신 부분이에요. 글을 받아보고 이런 방향성으로 갈 수 있구나 하면서 신기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효석 사실 네트워크의 가장 큰 고민은 지속 가능성이잖아요. 대학 공동체는 구성원의 교체 주기가 굉장히 짧고 대표의 리더십에 좌지우지되는 면이 있기도 하고요. 또 교지 자체의 업무량도 많은 데다가 각자 살길 찾기도 바쁜 면이 있어서 주도했던 사람이 없어지면 실무력도 잃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네트워킹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좋은 거잖아요. 우리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한 확신도 얻을 수 있고 연대만큼 힘이 되는 게 없고, 정보나 생각도 나눌 수 있고요. 그리고 유사시 도움도 청할 수 있다는 점들이 좋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좀 더 뿌리를 단단히 내렸으면 합니다. 잘하시겠지만, 너무 빠른 확장보다는 체계를 잡으면서 천천히 굳건히 나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특집 여는 글: 당신의 고향
다연 나서부터 쭉 수도권에 거주 중이어서 이 글을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대학에 와서 만났던, 여러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했던 말들, 그리고 그 친구들이 자신의 고향에 대해 했던 말들을 생각하며 쓰게 되었습니다.
효석 많은 교지들이 학술지나 문집으로부터 출발했는데, 교지가 문집이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글이어서 좋았습니다. 이렇게 문학적으로 여는 글을 써서 주제를 전달한다는 점이 《고대문화》의 특징인 것 같아요.
홍윤 고향이 주는 목가적이고 평화롭기만 한 이미지가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지 묻는 문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흔히 지방에 가지고 있는 그런 이미지들이 사실 허상에 불과하고 폭력적인 것인 한편, 사실인 부분도 있지만 어쨌든 그것조차 흔들리고 있다는 내용이잖아요.
명규 겨울호에서 이 글을 제일 처음으로 봤어요. 글이 지방에 사는 저한테 크게 다가왔던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지방에 사시는 분이 이 글을 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수도권에 사시는 분이 쓰셨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네요.
특집: ‘소멸 예정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상민 ‘지방’이라는 특집 주제는 사실 민철이 회의 초반부터 밀었던 주제거든요. 그러다 보니 글이 뚝딱뚝딱 잘 써졌다고 합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승희 분량에 비해서 전하는 바가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보량 자체가 많다기보다 어떻게든 인사이트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보를 주셔서 신선했어요. 이 도시가, 이 지역이 왜 발전이 안 될까 하는 부분에 대해 자기만의 답을 내려고 한 노력이 보였어요. 다만 지금 당장 지역이 발전이 안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마무리되잖아요. 그래서 뭔가 더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 지점은 특집의 다른 글들에서 해소가 됐던 것 같습니다.
효석 주제에 대한 필자의 애정이 정말 느껴져서 좋았고요. 취재를 해본 입장에서 거리 인터뷰를 시도하신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부족한 피드백일 수도 있겠지만 아쉬웠던 점을 조금 얘기해보자면, 내용이 조금 더 응집성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출산율 얘기로 시작을 해서 도시재생 이야기가 나오는데 34~5쪽은 기본 계획이나 도시 확장에 관한 내용이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필요한 정보 값일 수는 있겠지만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수 있는 흐름인 것 같아요.
특집: 풀뿌리 언론이 지켜낸 ‘코뮌 민주주의’가 세상을 구할 것이다 - 지역의 삶과 밀착해 성장하고 진화하는 진짜 풀뿌리 언론 《옥천신문》 이야기
상민 조금 급하게 기고를 받았어요. 앞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민철 글이 지역언론을 다룬 글과 함께 있을 때 시너지가 있으리라고 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잘 읽으셨는지 제일 궁금하기도 한 글입니다.
승희 처음 읽었을 때 이렇게 좋은 기고 글을 받아서 특집 주제를 ‘지방’으로 정하셨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라니 놀랍습니다.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노력을 하며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를 일궈내려고 하시는지, 또 그 중요성을 본인이 알고 실천하려 하시는지 잘 드러나서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풀뿌리 운동이 정말 너무 나약해 보이지만 결국에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순수한 해결책이 되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하는 입장에서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면서 존경스럽게 잘 읽었습니다.
특집: 말은 제주로, 사람은 모르겠고, 퀴어는 일단 서울로?
해진 제가 지방에 살다가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퀴어라서 정말 자연스럽게 떠올린 주제였어요. 다른 편집위원이나 외부 독자분들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라고 하실 때마다 ‘아 특이한 건가?’ 계속 생각했어요.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승희 서울이라고 해서 퀴어가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 완전히 갖춰져 있지는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행복의 조건은 장소와 환대, 안정이지 자본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신 게 너무 좋았습니다. 자본과의 연결고리를 끊어주신 게 정말 뜻깊다고 생각해요. 인정과 안정을 찾아주는 데 꼭 돈이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 자체가 훨씬 중요하지.
홍윤 에필로그에서 ‘퀴어’가 음성인식 프로그램에 인식되지 않은 것에 대한 의미 부여가 너무 좋았어요. 그건 일상생활에서 퀴어가 쓰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개발자들의 편견 내지 무관심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퀴어라는 말을 이용자들이 많이 쓰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겠죠. 그게 실제의 원인이 아닐지라도 그 원인을 추측하고 추론하고 또 오히려 원인이라고 치부함으로써 만든 의미화들이 있잖아요. 이런 의미화가 일종의 위로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명규 요즘에는 지방에도 퀴어 축제들이 많이 있고, 지방에서만 사는 퀴어들도 전보다 많아졌고, 대전 같은 경우에도 관련 커뮤니티들이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필자분은 ‘지방의 퀴어라면 불행할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적으신 건지, 혹은 지방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지방의 퀴어, 지방에서만 산 퀴어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조금 의견이 궁금해요.
해진 지방에 사는 퀴어가 무조건 불행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들이 ‘그래도 서울’ 하듯이 물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서울이 지방에 비해서 퀴어가 살기에 편하다는 건 현실이라 생각했어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썼던 게 조금 드러난 것 같습니다. 또 사실 글 쓰는 중간에도 지방에서만 사는 퀴어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염려하기는 했었는데 저도 그렇고 인터뷰이분들도 그렇고 당사자가 아니라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홍윤 지방에 있는 퀴어가 반드시 불행하다는 결론은 내리는 것은 정말 성급한 일이지만, 그래도 서울로의 진입이 사회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그 기회가 정말 서울에 강하게 편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한테는 대학도 퀴어 공동체에 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서울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서 퀴어 공동체에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또 그곳이 이름이 알려진 4년제 대학인 것도 퀴어 공동체에 속하고 또 다른 미래를 꿈꾸는 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운이 좋게 지금의 공동체에 진입해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고 그 사람들과 앞으로 여생을 함께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그제서야 서울이 아닌 삶을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특집 닫는 글: 무제
상민 특집 닫는 글은 열음이 썼습니다. 겨울호가 열음의 네 번째 책인데 그중 특집 닫는 글 3개를 열음이 썼어요. 거의 닫는 글 담당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본인의 국문과 자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다연의 여는 글하고도 이어지는데, 여는 글이 먼저 나왔고 그 글을 열음이 받아서 썼어요. 어떻게 읽으셨나요.
승희 말씀해 주신 거 듣고 나니까 정말 여는 글하고 닫는 글이 이어져서 지금 또 신기하게 한 번 더 바라보던 중이었어요. 이게 확실히 받아서 쓰셔서 이어지는 그런 게 있네요. 국문과셨군요. 역시… 다른 과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을까 싶네요.
칼럼: 무엇이 나이팅게일을 죽였는가
다연 겨울호에 뭘 써야 할까 생각하고 있던 즈음에 칼럼 앞부분에서도 소개한 연극 〈섹스 인 더 시티〉를 관람했어요. 간호사 처우가 열악한 건 알았지만 연극을 보고 충격이 컸어서 이것과 관련한 글을 꼭 쓰고 싶다는 욕심이 든 한편, 종사자분들의 이야기를 안 들어볼 수 없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여러 간호사분들께 연락을 해서 인터뷰를 하고 중간중간에 제가 설명하는 식으로 글을 구성했습니다.
명규 태움 또는 간호사들이 겪는 부당한 처우에 대한 얘기는 코로나 전에도 많이 있었는데 아직도 처우가 바뀌지 않았더라고요. 이런 내용을 인터뷰로, 또 표 같은 것을 같이 첨부해서 이해하기 쉽게 한 부분들이 좋았습니다.
승희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읽었는데도, 신입 간호사 퇴직률 45%이 절대 정상적인 수치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 숫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들어가 있을까요. 수치를 제시하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수치 속에 포함된 고통을 또 잘 설명을 해 주신 것 같아서 참 좋았습니다.
소특집: 총여학생회, 그 사라짐의 기록
상민 〈뿌리〉의 폐지가 있었던 게 10월 초였잖아요. 근데 그때가 저희 겨울호 회의가 이미 절반가량 진행된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글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해야겠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뿌리〉 쪽에 연락하는 것도 고려를 했었는데, 저희가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 때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하시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또 이 일이 아예 대학사회 바깥의 일이었다면 또 달랐을 것 같은데 중앙대라는 데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까 〈뿌리〉만을 다루기에는 고려대의 교지라는 위치가 애매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내용은 《중앙문화》나 《녹지》에서 잘 다뤄주시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결국에는 저희 학교 여학생위원회(이하 여위)와 인터뷰를 하는 쪽으로 갔고, 또 우연찮게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폐지의 역사를 다룬 글의 존재도 알게 돼서 결국 소특집이 되었습니다. 우선 「총여학생회, 그 사라짐의 기록」 얘기를 먼저 해볼까요.
홍윤 연식이 좀 된 글이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글에서는 이렇다고 했는데 이미 폐지되거나 논의가 끝난 경우가 꽤 있었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을 팔로우업을 해서 각주에서 설명을 해 주셔서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이 글을 아예 2021년 버전으로 깔끔하게 업데이트시킨 게 아니라, 2018년에 쓰인 글에 대해 사실 2021년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고 얘기를 해주셨다는 점에서 총여가 연달아 폐지되던 그 사건이 2021년에, 지금 다시 호명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느끼게 해주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들어 있던 글이 깨어난 건데, 그것이 저희의 폐지로 인한 것이니 약간의 책임감도 느끼면서 읽었습니다.
또 이 글을 읽으면서 특히 잘 쓰였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서울이 아닌 지역의 총여학생회가 언급됐다는 점이었어요. 기성 언론에서 총여학생회를 다룰 때는 사실 서울에 있는 대학밖에 다루지 않아요. 동국대, 성균관대, 연세대가 과잉 대표됐던 이유도 ‘서울’에 있는 ‘명문대’였기 때문이고요. 총여가 시대에 뒤처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지성 있는’ 요즘 대학생의 표본인 것처럼 언론이 프레임을 짜는 동안 지방에서도 정말 많은 총여학생회들이 없어졌어요. 제주대학교가 작년에 총여 해산 투표를 했거든요. 그런데 저 기성 언론에서 기사 딱 하나 봤어요. 그마저도 성평위 폐지에 대한 기사를 아카이브를 하다가요. ‘제주대에서 총여 폐지 선거를 하는데. 얼마 전에는 성평위가 폐지된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서치가 걸려서 찾게 된 거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참… 서울이 아닌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학생의 성 정치에 대해서 톺은 글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의미에서 되게 귀한 글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승희 《고대문화》는 원래 고대문화 편집위원들의 목소리가 전면에 드러나는 글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외부기고도 맡기시고, 《이화》와 《연세》의 전 편집장들도 글을 쓰셨고요. 이 글도 인터뷰를 싣는 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잖아요. 여러 단체가 연대를 하고 있다는 내용을 글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실제로 많은 단체와 학교들이 연대하고 공을 들여 이번 《고대문화》가 완성이 됐다는 느낌을 받아서 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소특집: 열 번 찍어도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 고려대 여학생위원회 인터뷰에 덧붙여
홍윤 주인공으로서 먼저 얘기를 해보자면 (웃음), 사실 쓰실 줄도, 쓰고 계시는지도 당연히 몰랐어요. 성평위 폐지가 결정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인스타그램에서 페미니즘, 퀴어, 교지 등등의 계정을 모두 팔로우하는 것이었는데요, 그중 고대문화도 있었죠. 그런데 겨울호 발간 안내 게시글에서 이런 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배송 신청을 하고, 저희 위원들과 공유도 했어요.
처음에는 ‘왜 우리한테 연락을 안 하셨지?’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막상 기사를 읽고 나니, 그리고 지금까지도 곱씹어 보면 정말 좋은 접근이고 기획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기사의 앞부분에서 언급을 해 주신 2018년 총여가 연달아 이제 도미노처럼 폐지된 사건을 아카이브 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때 활동하셨던 당사자분들이랑 인터뷰를 할 때도 그 활동가분들이 상민 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셨거든요. 어차피 우리한테 인터뷰가 들어와봤자 항상 같은 걸 물어본다는 거예요. ‘너네가 왜 폐지되었냐’, ‘이게 시대의 흐름이라는 진단에 동의하냐’ 혹은 ‘어떻게 폐지되었는지 과정을 설명해달라’. 서울의 대학에서 총여가 3개나 연달아 폐지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좋은 먹잇감이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총여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싸웠는지, ― 총투표의 양상도 다 달라서 어느 학교에서는 투표 보이콧으로 전략을 잡고, 어떤 데에서는 투표를 하되 반대를 찍자는 식으로 전략을 다 다르게 세웠잖아요 ― 왜 그런 식으로 판단을 했으며 그 결과는 어땠는지, 결과까지 가는 논의의 과정에서 이 사람들이 어떤 말을 들었어야 했고, 어떤 말을 하려고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기록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겪어보니까 기록을 하는 게 일단 힘들고, 그런 걸 할 정신도 없거니와, 스스로 사건으로부터 거리 두기가 안 되는 점도 크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당시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아무리 심층적으로 다루려고 노력을 해도 이 일은 이때만으로 끝나지 않으니 몇 년이 지났을 때야 비로소 의미화가 가능해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당시에는 폐지가 결정되자마자 만들어서 언론이랑 교지들한테 쫙 돌렸었던 그 보도 자료에 있는 것 이상으로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저희도 정리된 바가 부족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에 대해 고려대 여위가 대신 말씀을 해주셨다는 게 너무 반갑고 감사한 기회처럼 느껴졌어요. 저 역시도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우리를 폐지하고자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의 의견도 당연히 궁금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사실 너무 원색적인 경우가 많을뿐더러 굳이 듣지 않으려고 해도 들려오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보면 더 두려우면서도 긴장되는 건 동료들의 평가인데, 고려대 구성원분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보시는지 이 지면을 통해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인터뷰를 보면, 하림 님이 저희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고 하면서 저희와의 만남을 회고를 해주시더라고요. 전에 《석순》과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분들이 거기서 저희를 보고 느꼈던 바를 이렇게 《고대문화》라는 매체에서 풀어주셨고, 그리고 저는 그 인터뷰를 보고서 《고대문화》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오늘 이 간담회에 오게 된 거잖아요. 그런 시간 차를 둔 우리 간의 소통도 너무 좋았어요.
이제 중앙대학교 성평위의 폐지는 다른 학교 총여학생회나 대안 기구를 폐지하자고 주장할 때 좋은 선례가 될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경희대를 근거로 저희가 없어졌는데, 앞으로 다른 전학대회들이나 확대 운영위원회들에서는 “중앙대를 봐라, 폐지했잖아. 너네도 이제 사라질 때가 됐어”라고 할 텐데, 그럴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당연히 던져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상민 님이 그런 부분에서 역할을 해 주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중앙문화》를 비롯해 글에서 인용해주신 다른 글들도 다 제가 성평위 투쟁을 할 때 읽고 배웠던 글들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글이라는 것을 매개로 우리가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언젠가 서로에게 인용이 되어주고 서로에게 각주가 되어 주면서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저한테는 또 용기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승희 인터뷰 중에 민주주의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잖아요. 백번 공감하고, 진짜 울부짖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다수결이 곧 민주주의가 아니잖아요. 모두의 평등한 발언권이 인정될 때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할 수가 있는 건데, 이를 다 망각한 듯한 사회와 총여들을 사라지게 만든 현실이 다 똑같다고 느껴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고대문화》에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채록해 주신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홍윤 약간씩 패턴이 다 달라 보이지만 이들이 폐지의 근거로 들고 있는 건 반복되거든요. ‘돈을 형평성 있게 쓰지 못한다’와 같은 굉장히 소비주의적인 관점이요. 이런 소비주의적 공정성에 기반한 주장이 이전까지의 총여 폐지론에서는 그나마 학생 사회에서, 회의에서 말할 수 있는 공적 언어로 제기되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학생회비는 모두가 내는데 총여에 대한 선거권이나 총여 사업의 대상은 일부인 것이 문제다’ 하는 식으로, 좀 가공된 언어로 비판했다면 저희가 폐지될 때는 이른바 ‘이준석스러운’,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원색적인 표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의 그런 말들이었어요. 저도 중앙대의 성평위가 폐지되는 과정이 역대 총여 폐지 수순을 짜깁기한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점을 한번 정리해 주신 문단이 있었거든요. 좋은 진단이라고 생각했고요. 분명 후세대에게 좋은 기록이 될 거예요.
물론 그런 걸 안다고 해서 대비하고, 폐지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저도 이거 다 알았는데 못 막았죠 (웃음). 그런데 그래도 선례가 있다는 걸 아는 건 그 자체로 활동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감각도 주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당사자들한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서 이런 정리가 너무 좋고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번번이 총학생회와 부딪힐 때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있는데, 사실 대부분의 매체에서 그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이 불만일 때가 진짜 많았거든요. 이번 《고대문화》에서 접근해 주신 이 방식은 꽤 건강하게 여성 자치에 좋은 기록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희 그런데 한편으로는 훌륭한 인사이트들이 많다 보니 ‘아 이걸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글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흐름들, 예를 들어 총여가 궐석이 돼서 회장 자리에 나오는 사람이 없었던 상황에 깔려있던 여러 맥락들이 있잖아요. 탈정치화, 백래시, 또 공정 담론이 주류가 된 상황 등등. 또 총여 폐지를 말했던 사람들이 다들 공식 석상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민주주의와 연결되는 부분도 있고요.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되어 버린 지점들을 짚었어도 좋았겠다는 그런 마음도 듭니다.
홍윤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다만 이번에는 시간이 좀 촉박했던 것 같고 (웃음), 내년 봄이나 여름에 또 교지들이 나올 텐데 그때 어디에선가는 좀 다뤄주셔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승희 님이 짚어주신 반복되는 흐름을 진단하는 데에 이준석이 너무 좋은 키워드를 만들어줬다는 생각도 들어요. 맨날 공정 타령을 하잖아요. ‘그들’이 저렇게까지 하는 맥락이 아주 명쾌한 키워드로 너무 잘 보이게 된 것 같아요. 2018년에 그나마 젠틀한 척을 하면서 숨겨오던 그 검은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됐으니까요.
제가 앞서 사건의 의미화에는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성평위 폐지의 의미화는 몰라도 기존 총여 폐지와 연결되는 의미화는 가능할 정도의 데이터가 축적된 것 같고, 이번에 《고대문화》에서 《이화》의 글과 고려대 여위의 목소리를 연결해 주신 게 그 의미화의 첫 시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여건이 되는 사람끼리 자료를 부지런히 모으고 정리해서 내년 상반기에 내보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22학번분들이 학교에 딱 왔을 때 저희의 책자가 학교에 있는 그 매대들에 쫙 깔려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분들의 눈에 들어오는 첫 글자가 이런 언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대학’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그런 곳이고, 또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공간이니까요.
리뷰: 자본은 우정을 잠식한다… 정말로?
상민 이 글은 제가 현재 활동하는 영화감독 중 가장 좋아하는 켈리 라이카트의 신작을 자본주의 경제 동학을 바탕으로 분석한 리뷰입니다. 이 영화가 ‘우정’에 대한 찬가, 혹은 자본주의의 악마성을 비판하는 영화로만 너무 단순하게 읽히는 것 같아 이에 반대해보고자 했습니다.
승희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메시지를 끌어내 주신 게 참 인상 깊었어요. 지금 우리 사회에 자본주의에 대척되는 상상력이 엄청나게 고갈된 상태라고 느껴지거든요. 이게 탈정치라는 악영향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틀을 벗어난 시선이 인상 깊고 좋았습니다.
마무리 소감
상민 홍윤 님은 가능하시면 소감과 함께 〈뿌리〉의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함께 이야기해 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홍윤 우선 소감은, 제가 주인공이 된 기념으로 참석했는데 정말 즐거웠고요. 앞으로 다른 교지에도 관심을 더 많이 가지게 될 것 같아요. 이제 대학을 졸업하지만 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한 관심을 줄이지 않을 거예요. 그 관심을 이어줄 수 있는 창구로 여전히 교지를 택할 것 같으니 어쩌면 저희가 다음에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또 〈뿌리〉는 어쨌든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의 마인드로 다음 행보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폐지를 기점으로 〈뿌리〉의 실무력이 많이 줄어든 상태이기는 해요. 하지만 여전히 저희한테 연대 요청을 해 주시거나 어떤 의제를 같이 논의하자고 제안하는 단체들이 있어서 저희가 꽤 큰 스피커가 되었다고 느껴지거든요. 페미니스트가 큰 발언권을 가진 스피커가 된 게 오랜만인 것 같아서 그 책임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저희가 신경을 쓰고 있는 건 어떻게 코로나 학번분들을 대학생으로서, 특히 대학생 페미니스트로서 사회화할 수 있을까 거든요. 학우 여러분을 탈정치화를 빙자한 보수화로부터 복귀시키는 데에 힘을 쓰고 싶어요. 그래서 내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를 나름 벌여보려 하고 있습니다.
효석 저도 타 교지 독자 간담회를 와보는 것이 처음인데 너무 즐거웠습니다. 다른 대학 교지를 하시는 분들과 얘기하는 것도 재밌었어요. 교지 하는 사람들은 일단 좋은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어가지고 (웃음). 저는 다른 교지를 볼 때 항상 편집장의 여는 글과 편집후기를 먼저 보는데 다음 호의 상민 님의 「편집실에서」와 편집위원 분들의 편집후기도 기대하겠습니다.
승희 아직도 「편집실에서」가 계속 기억에 남아요. 눈앞의 현실들에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최선인 것 같고, 그게 또 제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가 될 것 같아요. 《고대문화》를 읽고 이렇게 독자 간담회에 참여하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저에게는.
명규 지방의 퀴어 글을 먼저 보고 이 책을 펴게 됐어요. 교지를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져서 참여하게 됐는데 같이 다양한 얘기들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요. 아직 PDF로만 책을 봤는데 물성이 있는 책은 또 느낌이 다르잖아요. 실물 책을 받으면 다시 한번 음미하면서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