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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상이 징계에 불복했다

[학내 '총학생회장 논란?' 보도 그 이후] 편집위원 숙영

지난 《고대문화》 147호에서는 이른바 ‘총학생회장 논란’으로 불린 이규상 씨의 성폭력 가해 공론화 사건을 다룬 바 있다. 해당 사건은 임기 초반의 일시적인 잡음처럼 여겨졌고 이규상 씨는 부적절한 대응과 모르쇠로 일관했으며 공동체적 해결이란 것은 언급되지도 못했다. 공동체적 해결이란 성폭력 문제가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 양자 간의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화적, 구조적 차원에서 성찰, 논의되고 해결책이 모색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규상 씨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으나 그가 이에 대해 불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건이 새로운 상황을 맞은 현재,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더 해야 할까.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남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타임라인

1) 1월 초 피해자가 인권·성평등센터(이하 성센)에 신고

2) 2/25(금) 성센 심의 결과 통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2차 가해 사실 인정됨. 이규상이 재심의를 요청, 기각됨.

3) 4/29(금) 학생상벌위원회에서 이규상 징계 조치: 무기정학, 회원자격 정지, 총학생회장 자격 박탈.

4) 5/1(일) 오전 이규상 징계 사실 등 알려짐: 동아리연합회 회장이자 등록금문제공동대응특별위원장인 이용재 씨가 학교 본부로부터 ‘등록금심의위원회(결산)회의(5/6 예정)에 신임 학생위원 위촉과 관련하여 귀 위원회의 의견 회신을 요청드립니다’는 내용의 공문을 받았고(4/29), 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 임시회의 소집 공고를 내면서 학생회장의 궐위 사실이 학내 커뮤니티에도 알려짐.

5) 5/1 오후 이규상 - 고파스,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에 ‘인권성평등센터 징계 처분 관련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 업로드.

: 요약

- 주장: 무기정학 처분은 부당하다. 애초에 성센의 조사과정부터 신고인 중심적으로 전개되어 공정하지 못했다(신고인이 제출한 자료 전혀 열람할 수 없었음. 아니라는 입증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음. 커뮤니티에 올린 자신의 게시물은 2차 가해가 아니라 신고인의 부당한 주장에 대응하기 위함이었음.). 상벌위원회의 경우에는 이러한 성센의 결과 통지서를 순전히 집행하는 역할만 수행했다. 학교 본부가 “지극히 정치적이고 공정성을 위반하는 비합리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학생 자치가 잠시라도 흔들리는 것이 선례로 남는다면, 학생회는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그저 수직관계에서 학교와 공문을 주고받는 행정처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 대응 예고: 회칙[1]에 따라 중운위에서 회원 재인준 받기 위해 회의 소집 요청. 법원에 해당 징계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넣을 예정(5/2 (월)). 법원의 판결을 받아 다시 총학생회장직 수행할 것. “총학생회가 얼마나 강할 수 있는지 학교 본부에 각인”, “총학생회를 쉽게 보고, 부당하게 총학생회를 탄압하는 일은 앞으로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것”, “개인의 싸움을 이어가는 동시에 학생 자치의 역사에 흠이 생기지 않도록 할 일을 온전히 하겠”다. 

6) 19:00 중운위 임시회의 소집. 이규상 ‘총학생회원 인준에 관한 건’ 안건 부결. 회칙 적용되는 상황 아니라는 판단, 징계의 부당함은 중운위가 아니라 법원의 판결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는 내부의 주장. 

7) 학내인권단체협의회[2]에서 이규상 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구하기 위해 대자보전을 기획하고 진행함(6/6-6/21).

8) 6월 초, 법원에서 이규상의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기각됨. 

9) 재보궐선거 무산 후 6월 13일부터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모집 중. 


징계 불복에 대한 비판

고려대학교 인권성평등센터(이하 성센)의 심의 결과 이규상 씨의 성추행 사실과 2차 가해 사실이 인정되어 지난 4월 29일, 학생상벌위원회에서 이규상 씨에게 무기정학 징계를 내렸다. 이번 징계는 학교에서 피해자의 성원권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인정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물론 이러한 성원권의 회복은 이규상 씨가 한때 대표자로 있었던 학생사회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한편 이규상 씨는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 이번 징계가 부당하고 과도하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게시했다.


이규상 씨는 본인에 대한 징계를 학생사회를 흔들려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은 성추행을 저지르지 않았어야 했으며, 저지른 후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쇄신을 향한 의지를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징계가 내려지기 전까지 그가 보인 행보는 정반대였다. 그는 성추행을 했다. 그리고 고소 협박을 통해 피해자의 입장문이 널리 알려지는 걸 막으면서도 자신의 입장문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하며 적극적으로 2차 가해를 했다. 거듭해서 내놓은 입장문에서는 변명이나 억울함만이 담겨 있었을 뿐, 반성이나 쇄신을 향한 의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기 위해 앞선 사실들은 모두 지운 채로 이규상 개인에 대한 징계를 학생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면서 학생 대 학교의 대결 구도를 짜고 있는 것이다.  


학교 본부에서 어떤 개인을 탄압하기 위해 부당하고 과도한 징계를 내린다면 이는 당연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다. 실제로 2005년 당시 학교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려 했을 때 이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인 학생들에게 학교가 출교, 무기정학을 내렸던 사실이 있다[3]. 출교라는 부당한 징계에 고려대 학생들뿐 아니라 많은 시민이 연대하며 복학을 요구했다. 이처럼 학교가 부당한 징계를 내린 실제 사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에 내려진 이규상에 대한 징계는 이전에 내려졌던 몇몇 부당한 징계들과 분명히 다르다. 4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성추행 사실을 외면하고 당선 이후에도 2차 가해까지 하며 피해자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무시한 결과 내려진 징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징계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과거의 ‘진짜로’ 부당했던 징계들에 대한 투쟁에서 쓰인 것과 비슷한 수사를 사용하는 모습은 과거 투쟁했던 이들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이규상은 성센이 진행한 심의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교내 성인권침해사건 발생시 선택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있는 구제 절차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는 점에서 문제다. 피해자가 참고할 수 있는 매뉴얼에 성센에 신고하는 등의 선택지가 제시되어 있는 것은 성센의 처리과정에 따라 마땅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규상은 적절한 절차에 따라서 내려진 징계 조치에 대해 비합리적이라거나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의 교내 성폭력 사건 처리에 안 좋은 선례를 만들고 있다. 성폭력의 ‘공동체적 해결’이란 것을 이야기할 수조차 어려운 고려대에서 그나마 해결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인 성센 조사와 징계조차 믿지 못하는 것으로 만든다면 교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앞으로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데에는 이규상 씨의 책임이 크다. 사건 이후 만회할 기회가 여러 번 주어졌으나 그는 이를 외면했다. 사건 직후에 마땅히 해야 했을 대응을 4년 동안 미뤘고 당선 직후에 결국 공론화가 해결 방법으로 선택되었을 때도 부적절한 대응을 했다. 공론화를 통한 고발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피해자의 소진을 불러오기에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고, 또 성폭력에 대한 공동체 내부의 논의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성센이 징계를 통지하는 것은 지금의 에타 여론처럼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납득이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공론화까지 그 결과가 묘연해지면서 피해자가 사건 해결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이제는 성센 신고밖에 남아있지 않던 상황이었다. 피해자의 회복과 공동체적 성찰을 위해서는 다른 방안이 가능했어야 했으나, 이규상 씨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인해 존재할 수 있었던 선택지들이 지워져 나갔다. 


학생사회에 지장을 주는 것은 이규상 씨에게 징계를 내린 학교 본부가 아니라 이규상 씨 본인이다. 피해자에게 고소 가능성을 언급해서 공론화를 차단하고, 반성 및 쇄신은커녕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는 등 성폭력에 대한 공동체적 해결의 여지를 제거하고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끌었다. 자정작용이 더욱 어려운 환경으로 만든 것이다. 또한 학생사회 내부에서의 해결이 어려워져 학교 본부까지 이 문제가 넘어가고 결국 징계가 내려진 이 상황에 대해 그는 반성해야 한다. 그의 주장처럼 만약 이 징계로 인해 학교 본부와 학생회 사이의 관계가 수직적으로 형성되고 유지된다면, 이는 학생 사회 내부에서 사건에 대한 해결을 이뤄내지 못하고 학교 본부가 문제 해결의 권한을 갖게 되는 상황까지 만들어버린 이규상 씨의 잘못이다. 


그러나 이규상 씨는 그러한 반성 없이 해당 사건에 대한 판단을 또다시 법원이라는 더 큰 권위에 의탁했다. 만약 법원이 이규상 씨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였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는 다시 복귀하고 성폭력 사건에 대한 논의는 중단되어야 하는 것인가? 애초에 이규상 씨가 제기한 것은 ‘효력정지가처분’이므로 성센의 조사과정이나 징계 과정이 정당했는지 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지 성폭력 사건 그 자체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절차가 부당하다는 판단이 나왔다면 이는 이규상 씨의 가해사실이 없다는 식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이 곡해되어 형성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결국 제대로 시작한 적조차 없는 논의를 법원이라는 국가기관의 권위를 끌어다가 또다시 원천 차단하면서 공동체적 해결이라는 것을 점점 더 묘연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법원이 이규상 씨의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학생회장이었던 본인도 아니고 학생회나 중운위도 아닌 법원에 의해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결국 또다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법원에 넘겨준 것은 아닌지, 그럼으로써 성폭력에 대해 공동체로서 생각하고 이야기할 기회를 포기한 것은 아닌지 우리는 성찰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공동체적 해결에 실패한 것은 학생회장의 위치에 있었던 이규상 씨의 책임이 크지만, 동시에 우리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원 판결 이후 이규상 씨의 말하기가 멈추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피해자의 회복과 성폭력에 대한 성찰은 묘연하다. 사건 이후에도 우리의 삶과 피해자의 삶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야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더 해야 할까? 이어질 글에서 이에 대해 함께 살펴볼 것이다.


편집위원 숙영 / sonsy213@gmail.com


[1] 총학생회칙 제4조 2항, 졸업 자퇴 퇴학 등으로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학부과정 소속이 아니게 된 자는 그 즉시 회원자격을 잃으며, 정학 등의 사유로 등교가 정지된 자는 그동안 회원 자격이 정지된다. 단, 회원의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 자는 중앙운영위원회의 의결로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회원으로 인준받을 수 있다.

[2] 현재 학내인권단체협의회는 비거니즘 동아리 뿌리:침, 소수자인권위원회, 여학생위원회, 장애인권위원회로 이루어져 있다.

[3] 이건희 회장 항의시위자에 고려대의 반지성적 징계 방침 (2005.05.16). 한겨레. 


참고문헌

안형우 (2005.05.16). 이건희 회장 항의시위자에 고려대의 반지성적 징계 방침.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343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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