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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정치적’인가?”

[학내] 편집장 상민

편집장 상민 / poursoi0911@gmail.com


지난 4월 16일 오후 11시경,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이하 총학)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게시물이 업로드되었다.[1]


[다시 돌아온 4월,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다시 돌아온 4월,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2022년 세월호 8주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되었다.


그리고 이제 8년째,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특조위, 선조위, 특조위 2기, 특수단 등 길고 다양한 이름의 단체들이 정부 차원에서 꾸려졌지만 현재까지도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정치적’인가?

304개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 사건에 대한 기억과 추모가 정치적이고 불순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추모할 수 있을까


세월호는 ‘정치적’으로 이용되는가?

304개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의문제기가 정치적이고 불순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참사를 당한 학생들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한다면 아마도 대부분 16학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몇몇은 아직 학교에 남아 우리와 같이 다시 열리는 대면행사에 설레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억합니다

REMEMBER 20140416

세월호 참사 8주기

제52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버팀돌


4월 16일이 끝나기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올라온 이 게시물은 즉각적으로 고파스와 에브리타임에서 ‘논란’이 되었다. 가장 많은 이들이 불만을 표출한 지점은 ‘진상규명’이라는 말이었다.

게시물과 함께 업로드된 카드 뉴스 중 일부.

고파스에서는 날이 바뀐 4월 17일 오전 12시 10분에 해당 게시물을 캡처한 “총학생회 세월호”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식물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본문에는 캡처와 함께 다음 내용이 있었다.


총학생회 차원에서 원래 진상 규명같은 발언을 했나요..?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 이런 발언은 정치적으로 쉽게 해석되고 언론에서 물기 참 좋아보이는데.... 오늘 끝나기 직전에 올리니까 당황스럽네요


이후 아래와 같은 댓글들이 곧바로 달렸다.


에브리타임에서도 역시 ‘자유게시판’에 12시 21분에 “총학생회 세월호 발언”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두 커뮤니티에서 해당 게시물을 비판한 게시글과 댓글들의 논점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진상규명이 안됐다면 무엇을 더 규명하라는 것인지

2) 왜 다른 안타까운 사건도 많은데 세월호만 추모하는지

3) 왜 총학생회의 이름으로 ‘진상규명’이라는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는지

3-1) 총학생회가 ‘좌파’ 성향, 민주당 계열이라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닌지


총학을 비판하는 게시물들이 양 커뮤니티에서 모두 인기 글이 되자, 총학은 재빨리 해명 글을 17일 오후 3시경에 에브리타임과 고파스의 (총)학생회 게시판에는 물론 학우들이 많이 이용하는 자유게시판(에브리타임), 호랭이광장(고파스)에도 올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월호 게시글의 게시 경위와 오해에 대해 설명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52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버팀돌입니다. 어제 4월 16일 오후에 올라간 세월호 관련 게시글에 대하여 여러 의견과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하여 몇 가지 설명을 드리고자 본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1. 세월호 게시글이 작성된 이유

본래 세월호 침몰사고가 있었던 2014년 이래로 2019년까지 등 총학생회가 존재하던 모든 년도에 세월호 관련 사업이 인권연대국 관할로 매년 일어나는 정규 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해당 년도동안 총학생회에서는 집회 참가, 피켓팅, 연사초청, 학내 분향소 설치, 학생회관 대형 플래카드 게시, 카드뉴스, 대자보 등 다양한 세월호에 관련한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대위 체제였던 2년여간 다른 많은 사업들과 마찬가지로 해당 사업도 중단되었었고 올해인 2022년, 다시 총학생회가 들어서며 다시 다른 모든 사업들과 마찬가지로 세월호 추모사업 또한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과 다르게, 올해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회적 분위기 변화를 비롯하여 토요일이기도 한 점 등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하여 기존의 오프라인 행사 등은 진행하지 않고, 당일에 잊지 않도록 프로필사진 변경 및 카드뉴스 업로드 등으로 축소하여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 '세월호는 정치적으로 이용되는가?' 문구에 대한 설명

많은 분들께서 게시물을 올린 것 자체보다는 해당 내용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주셔서, 해당 부분에 대해서 먼저 의도를 설명드리기에 앞서, 부족한 표현으로 인하여 오해를 산 점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해당 부분, 특히 '우리'라는 표현은 전적으로 총학생회원들(학생들)을 기준으로 작성된 문구입니다. 정당에서 국회의원 등 실제 정치를 하시는 분들의 경우 어떤 것이든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족을 잃으신 유가족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우리 학생들이 추모의 마음과 함께 유가족분들과 연대하는 것은 정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었습니다. 8년이나 지난 세월호를 기억하고 유가족분들과 연대한다고 해서 우리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얻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저희 총학은 어떠한 정당과의 어떠한 이해관계도 없습니다. 정당이나 정파와 무관하게 총학생회로서 말할 일은 말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최근 입학취소가 된 전 법무부장관 자제에 대해서도 학교 측에 촉구 공문을 보내고, 중앙일보 등 언론사 인터뷰 등을 통하여 "입학 취소 목소리가 많다", "답답하다" 등의 의사를 밝힌 바가 있습니다.

해당 문구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옹호하는 의미로 작성된 워딩이 전혀 아니며, 실제로 옹호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해당 문구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 세력들에 대한 변호로 느껴지신 분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저희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음을 설명드림과 동시에 글의 해석은 의도와 무관하게 읽는 이들의 몫이므로 부족한 글을 게시한 저희의 부족임을 말씀드립니다.


3. 총학생회는 세월호 음모론을 믿는 것인가?

아닙니다.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 인신공양설 등 제가 아는 그 어떤 음모론도 믿지 않습니다. 다만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마저도 정치적 의도로 감싸거나, 혐오발언 등으로 뒤덮이는 현재의 현실의 안타까움을 반영하여 카드뉴스를 작성하다보니 그런 의도로도 해석이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내부 피드백을 하는 과정에서도 어떠한 음모론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으며, 저 역시도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위와 마찬가지로 글의 해석은 의도와 무관하게 읽는 이들의 몫이며 해당 부분 역시 부족한 글을 게시한 저희의 부족입니다.


4. 버팀돌은 운동권 총학인가?

아닙니다. 저희는 사업 진행에 있어서 어떠한 '운동권'적인 진행을 한적도 없으며, 어떠한 정치세력이나 운동권 세력과도 연결되어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임기 종료 때까지 없을 예정입니다. 버팀돌은 어떠한 정파나 세력과 무관하게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라면 마땅히 해야 할 사업들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의견을 덧붙이자면, 어떠한 일을 진행함에 있어 여러 방법론들 중 하나인 '운동권' 혹은 '반(反)운동권' 모두 하나의 방법에만 몰두한다는 점에서 지양되어야 하며 총학생회는 해결을 위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어떨 때에는 운동으로, 어떨 때에는 대화와 협상으로, 그리고 어떨 때에는 또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왜 커뮤니티에 올리지 않고 SNS에만 올렸는가?

우선 해당 게시글의 피드백이 대강 마무리되어서 업로드하게 된 시간이 밤 11시가 안되어서입니다. 에브리타임이나 고파스에 올라가는 게시글의 경우 카카오톡 공지방에 올라가는 게시글과 동일한 내용이며,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은 스토리도 올리는 등 조금 더 프리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밤 11시가 되어가는 시간인만큼 카톡 공지방이 울리는 게시글을 올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고파스 에타를 같은 결로 생각했기에 늦은 시간임을 감안하여 SNS에만 올렸습니다.


끝으로,

총학생회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사회 속에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가지는 영향력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다른 모든 것보다도 중요한 '고려대학교 학우 여러분'을 위한 사업에 힘쓸 것입니다. 저희에게 부족함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언제든 저희 버팀돌의 소통창구를 통하여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내일 있을 4.18 구국대장정을 비롯하여 앞으로 있을 모든 사업, 축제 및 행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선 총학은 1)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고, 2)에 대해서는 ‘기존 총학생회에서 계속해오던 것이어서’라는 것 이외의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3)에 관해서도 자세한 내용 보충 없이 그것이 정치적이지 않다는 기존 게시물의 말만을 반복했으며, 오히려 많이 언급되지 않았던 ‘왜 에브리타임과 고파스에는 올리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만 길게 설명했을 뿐이다.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3-1) 정도인데, 덧붙인 의견에서는 ‘운동권’이라는 비난이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운동{movement}’을 벌인[2] 데서 비롯된 것인가 하는 괴상한 걱정까지 드러난다.


결국 총학의 해명문은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고,[3]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이 있어, 추모와 기억의 의미가 변질되지 않도록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는 추모 게시물에서는 추가적인 설명 없이 문제시된 부분만이 삭제되었다.

수정된 버전의 추모 게시물.

수정을 거친 게시물에는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단원고 학생들이 우리 또래이고, “대면행사에 설레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이유 외에는 어떤 추모의 이유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총학은 모든 사망한 10~20대들 역시 ‘XX학번일 수도 있었다’는 이유로 추모할 예정인가? 갓 태어난 아기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면, “이 아이가 잘 컸다면 고려대학교 41학번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추모할 것인가?

총학은 기존 게시물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정치적이냐고 물었다. 그 물음은 분명 설의법이었으나, 도통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설의법이었다. 왜냐면 어떤 단체가 공동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추모하는 일은 당연히 정치적이고, 또 정치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학은 이러한 설명을 내놓는 대신 재빨리 문제시된 부분을 그냥 삭제해버리는 아주 쉽고 무책임한 선택을 했다.

이제부터 이 글에서는 총학이 대답해야 했으나 하지 않은 세 가지 문제에 대해 답변해볼 것이다.


1)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진상규명이 안됐다면 무엇을 더 규명하라는 것인지

‘세월호 진상규명’이라는 말이 포괄하는 범위는 아주 넓다. 구체적 과제로만 “침몰 원인과 구조 실패 이유, 정부 대응의 적정성, 국정원과 기무사의 유가족 사찰, 청와대의 참사 인지 시각 조작, 정부의 특조위 방해, 언론의 전원구조 오보” 등이 있다.[4] 그렇다면 총학이 게시물에서 말한 ‘진상규명’은 정확히 이중 어떤 것을 의미한 것일까? 총학 측이 기존 게시물에서 삭제한 부분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그리고 이제 8년째,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

특조위, 선조위, 특조위 2기, 특수단 등 길고 다양한 이름의 단체들이 정부 차원에서 꾸려졌지만 현재까지도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원인’이라는 말 앞에는 의미상 어떤 말이 생략되어 있다. 총학 측에서 의도한 생략된 구절이 ‘침몰한’인지 ‘구조하지 못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은 댓글이 ‘박근혜가 일부러 침몰시켰다는 거 아니냐’와 같은 조롱으로 채워진 것을 보아 대체로 고파스와 에브리타임은 전자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이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인 세월호를 둘러싼 수많은 음모론 역시 대부분이 침몰 원인을 두고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은 정말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공식적으로는’ 그러하다는 것이다. 세월호 인양 직후인 2017년 4월 11일 출범되어 지난 2018년 8월 6일 활동을 종료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는 내부에서 갈린 의견을 봉합하지 못하고 최종 보고서를 두 가지 안(내인설, 열린안)으로 나누어 발간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언론은 일제히 ‘결론 못 내린 채 선조위 활동 종료’라는 식의 보도를 내놓았다.[5] 하지만 내인설과 열린안은 동등한 위상을 가진 채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가설이 전혀 아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결정적 원인은 급선회로 인한 급경사 발생이다. 그렇다면 급선회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밝히는 것이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규명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보군으로는 크게 세 가지, ①조타 과실, ②기계 결함 그리고 ③외부 원인이 있었다. 일찍이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은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중고선 도입 후 무리한 증개축에 따른 무게중심 상승, 과적, 화물 고박 부실, 평형수 부족 등 복원성[6]이 매우 취약한 상태로 운항 중 사고 해역에서 ‘조타수의 조타 과실’로 급선회 및 급경사가 발생”한 것으로 결론지은 바가 있다.[7]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는데 법원이 그런 판결을 내린 것은 조타장치에 이상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였으나,[8] 이러한 맥락이 소거된 언론보도로 인해 민간 영역에서는 ‘앵커설’과 ‘잠수함설’과 같은 외력설이 힘을 얻게 되었다.[9] 급선회 원인으로 조타장치 이상보다 외력을 말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것은 외력설이 “가장 광범위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설(박상은, 2021: 25)”이었기 때문이었다.[10] 《한겨레》는 김어준 씨 등이 주장한 ‘앵커설’을, JTBC는 네티즌 ‘자로’ 등이 주장한 ‘잠수함설’을 다루며 외력설이 ‘언론 검증을 거친 합리적 의혹’이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가지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11]


하지만 이후 2017년 3월 26일 인양된 세월호 선체에서 외관상 충돌 흔적이 발견되지 않음에 따라 이러한 외력설은 음모론에 불과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커지게 되었고, 선조위에서도 2018년 2월경 있었던 검사에서 세월호의 솔레노이드 밸브[12] 고착이 확인됨에 따라 기계 결함으로 의견이 어느 정도 모였던 바 있다. 문제는 외부에서 외력설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앵커설’을 다룬 김어준 씨와 김지영 감독의 〈그날, 바다〉의 예고편이 공개되며 선조위 내부에서 소수였던 외력설 지지 세력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날, 바다〉의 개봉 다음 날인 2018년 4월 13일, 선조위 내부에서 ‘세월호 핀안정기 외력 검증 TF(이하 외력검증 TF)’가 꾸려지며 외력설에 공식적인 지위가 부여되게 된다.[13] 그리고 이후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에 의뢰되어 이뤄진 자유항주 모형시험의 결과 수용을 놓고 외력검증TF에 속한 선조위원들과 그렇지 않은 선조위원들의 의견이 갈린다. 마린은 외력 요소를 제거한 두 차례의 모형시험을 진행했고, 외력 없이도 선조위가 제시한 세월호의 복원성 수치 범위 내에서 사고 당시의 항적이 구현됨을 밝혔으나 외력검증TF는 이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외력을 작용시킨 3차 모형시험을 진행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외력검증TF의 기대와 달랐고, 마린은 3차 시험의 예비보고서에 “외력 가설은 기각됐다”는 문구까지 넣었었으나 이는 외력검증TF의 요청으로 “외력 가설은 비현실적 시나리오”라는 말로 변경되었다.[14]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은 외력검증TF 소속 선조위원들은 “무리한 증개축에 따른 선체 무게중심 상승, 과적, 고박 불량, 평형수 부족 등 복원성이 불량했던 세월호가 운항 중 조타장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으로 급선회하다가 쓰러졌다”는 내인설을 인정하지 않고, “외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열린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정리해보자면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과학기술적으로는 이미 밝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담론은 이미 박근혜 정부의 명시적 책임을 요구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기 좋은 열린안은 공론장에 잔존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호 침몰 원인은 여전히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되었다.[15] 총학은 어떠한 음모론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열린안은 고의침몰설까지는 아니지만 외부로부터 충격이 있었음을 가리키고 있는 안이다. ‘침몰원인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말은 열린안이 맞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고, 이는 외력설(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음모론)에도 타당성/신빙성이 있다는 주장이 된다. 고로 총학의 해명문에서 말한 것처럼 어떠한 음모론도 믿지 않는다면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표현을 다른 식으로 바꿔 써야 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았을 때 총학이 ‘진상규명’ 부분을 삭제한 것은 타당한, 내지는 별다른 수가 없는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세월호 진상규명’이라는 말은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한 직접적인 원인을 밝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구조 방기, 국정원과 기무사의 유가족 사찰, 청와대의 참사 인지 시각 조작, 정부의 특조위 조사 활동 방해, 언론의 전원구조 오보에 대한 총체적 진실을 모두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문제들에 관해서 역시 밝혀진 바가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구조 방기의 경우만 보아도 말단에 있는 이들(선장, 선원, 해경 123정장)에 대한 기소와 처벌만이 이뤄졌을 뿐 “대통령, 국가안보실장, 대통령비서실장 등 세월호 참사 당일 작동되어야 하는 국가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었는지, 작동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로 인해 초래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하는지(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종합 보고대회 자료집, 2021.12.08.: 20)”에 대한 조사는 아직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중앙대책본부를 방문하기 이전까지 묘연한 7시간의 행적조차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16] 박근혜 탄핵 이후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은 세월호 참사 당일의 행적을 포함한 대통령 기록물을 ‘국가안보, 국민경제 안정 등을 저해하거나 정치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인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지정했다. 대통령 지정 기록물로 지정되게 되면 국회의원 2/3 이상의 동의, 고등법원의 영장 발부 등이 있지 않은 이상 최장 15년(사생활 관련은 최장 30년)까지 비공개된다. 즉 180석을 차지했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혼자만의 힘으로 이를 추진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것을 민주당이 추진한 적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4.16 세월호참사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기록물 공개결의에 관한 청원’이 관련 소위 회부 요건인 10만 명의 청원을 받은 지 1년 반이 넘었음에도 아직 심사조차 들어가지 않은 상황이다.[17]


총학은 이렇듯 구체적으로 어떤 진상이 더 규명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야 했으나, 유가족과 연대한다는 뜻이라는 것 외에는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앞서 길게 설명한 내용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관성적으로 “매년 일어나는 정규사업”에서 그래왔듯 ‘진상규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고, 그것의 ‘비정치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유가족들도 ‘진상규명’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음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를 만들고, 외력설이 선조위 내부에서 힘을 잃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한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유가족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유가족과 연대하려는 것뿐이었다는 말로 자신들의 비정치성을 입증하려 한 총학의 입장문은 유가족을 ‘순수한 피해자’로만 바라보고, ‘순수하지 못한’ 유가족은 색출해내 비난하는 사회의 납작한 시선에 기반하고 있었다.


2) 왜 다른 안타까운 사건도 많은데 세월호만 추모하는지

이 질문은 세월호 침몰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한 입장이 여전히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침몰을 ‘(해상교통)사고’로 바라보는 진영과 ‘사회적 참사’로 바라보는 진영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고’의 인식론에서 세월호의 침몰은 많은 사람이 희생된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전히 ‘사고’일 뿐이며, 책임의 주체는 그 교통사고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해경과 안전기준에 한참 미달하는 배를 무리하게 운항시킨 세월호 소유주 및 그 회사이다.[18] 하지만 세월호 침몰을 ‘참사’로 파악하는 쪽에서는 이 사건을 “단순히 우발적인 실수로 빚어진 교통사고”가 아닌 다양한 주체의 과실과 무능력, 무책임이 구조적 요인과 맞물리며 벌어진 ‘참사’로 규정한다. 그 지점에서 세월호는 다른 ‘안타까운 사건’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고대문화》 2020 가을호 칼럼 「끝나지 않은 장송곡」에서 정리한 세월호 담론 지형.

물론 세월호가 대한민국사{史}에서 유일한 사회적 참사는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정경유착과 관료주의, 안전불감증과 규제 완화로 인한 인재라는 점에서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의 연장선상에 있다.[19] 그럼에도 세월호가 다른 사회적 참사와 다른 점은 국가가 구조과정에서조차 적극적으로 책임을 방기했다는 점, 그리고 추후 진상규명 과정에 있어 국가가 제대로 협조하기는커녕 조사를 방해하고 유가족을 사찰하는 등의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 사건에 대한 법적·정치적·도덕적 책임은 일체 부정하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불순 세력’으로 몰아갔고, 이후 유가족은 “거액의 보상금과 각종 특혜(대학 특례 입학이나 의사자 지정)를 요구하는 ‘세금 도둑’으로 몰렸다가, 끝내는 광의의 ‘종북 세력’으로 낙인찍히게 되”[20]었다. 이러한 국가의 탄압과 은폐 속에서 세월호 참사는 ‘진보’ 진영 내에서 “국가 권력의 독점적 행사자인 주권자가 모종의 의도를 갖고 국민을 죽여 버린(정용택, 2016: 173)” 사건이 되어갔다. 따라서 그 주권자가 탄핵당하고 세월호가 인양되자 국민적 관심은 자연히 식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관심을 되살리기 위해 다시 음모론이 등장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21] 즉 자극적인 음모론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김어준 같은 이들을 막으려면, 우리는 세월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참사는 그만큼 말해지지 않으니 세월호 역시 말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사회적 참사는 현재보다 더 많이 말해져야 하고,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사건이었는지, 얼마나 슬픈 일이었는지만이 아니라 그것을 불러일으킨 구조에 대한 반성과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테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 사회운동은 여객 산업 전반 및 해양 안전에 대한 전면적인 제도 변화를 이끌어냈어야 했으며,[22] 천안함 사건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군인들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고 다친 ‘산재’[23]에 대해 국가가 제대로 책임을 지라는 담론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두 참사 모두 소위 ‘진보’와 소위 ‘보수’ 간의 진실 공방, 진실게임의 소재가 되었고 이는 살아남은 피해자들을 고통에 빠뜨렸다.

세월호 참사를 조롱하기 위해 쓰인 글이긴 하나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천안함 생존 장병은 이렇게 말한다: “보수는 이용하고 진보는 외면했다.”[24] 세월호는 정반대일 것이다. 총선까지 압승한 이후 세월호는 민주당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월호 변호사라며 국회에 들어간 이마저 더 이상 세월호를 말하지 않는다. 또한 천안함의 경우도 안보를 강조한 보수 정권에서 정작 58명의 생존 장병에 대한 대접은 엉망이었다. 그들은 국가유공자 신청을 ‘스스로’ 해야 했으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을 경우에 신청할 수 있는 상이연금의 존재도 제대로 안내받지 못한 채 사고로 인한 PTSD 치료비 등을 모두 개인이 지불해야만 했다.[25] 또 생존 장병들이 사건 당일에 대해 침묵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보상을 받았다는, 사실과 전혀 다른 루머에 대해 국가가 해명해주지 않음에 따라 생존자들은 ‘왜 양심선언을 하지 않느냐’는 비방에 시달려야 했다.[26] 천안함도, 세월호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의 아픔도 치유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A 사건이 일어난 날에 ‘왜 B 사건은 말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보다는 A 사건이 발생한 날에는 A 사건에 대해, B 사건이 발생한 날에는 B 사건에 대해 말하자. 한 사건을 말하기 위해 모든 사건에 대해 말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사건도 말해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다음은 한 세월호 생존 학생의 인터뷰 중 일부이다.


사람들한테 뭔가 행동을 해달라는 것은 솔직히 너무 바라는 거구요. 생각해보니 기억해달라고 한 것도 너무 바란 거 같더라고요. 왜냐면 저는 그 사고를 당한 당사자니까 그 날짜라든지 사건이 어떤 건지를 알고, 잊을 수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저희도 다른 사건을 기억 못하면서 저희 사건을 기억해달라고 하는 게 좀 이기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대구지하철참사하고 천안함 사건 날짜를 기억하려고 해요. 각자의 방식대로 기억하고 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만.[27]


3) 왜 총학생회의 이름으로 ‘진상규명’이라는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는지

앞서 말했듯 세월호를 ‘정치적’ 사안으로 만든 것은 박근혜 정부이다. 당시 정부는 유가족들의 청와대 행진을 막고, 관련 영화 상영을 훼방 놓고, 유가족을 사찰하면서 ‘숨기는 자가 범인’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그리고 야당인 민주당은 그렇게 형성된 전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세월호는 ‘정치적인’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 정치적이냐고 되묻는 총학 게시물은 황당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당연히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구조할 인력과 시간이 있었음에도 304명을 구조하지 못한, 그리고 그 책임을 묻어버리기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른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고, (상식적이라면) 그 진상규명을 5년간 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규탄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정치적이다.


더 나아가서 세월호는 단순히 정파적 의미에서 정치적이기보다는 사회구조 전반의 개혁을 요구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이어야 한다. 세월호는 단순히 무능한, 혹은 악의를 가진 지배권력으로 인해 발생한 참사가 아닌 “신자유주의적 국가 개혁의 산물인 규제 완화와 공공 부문의 민영화, 안전·위험 부문의 외주화, 고용 조건의 유연화(정용택, 2016: 173)”가 누적되어 만들어진 사태이기 때문이다. 재난 방지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그것의 복구에 필요한 비용을 계산해 어느 선까지 재난 방지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세월호 참사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분명 세월호는 정파적 의미에서도 정치적인 사건이고, 박근혜를 또는 문재인을 규탄하는 것이 가지는 의미도 분명 있지만, 거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세월호에 대해 정파적으로만 접근하는 이들은 대부분 말로는 진상규명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진상규명을 원하지 않는다. ‘진실’이 알려지지 않는 편이 서로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 지정 기록물 공개와 같이 좁은 의미의 진상규명이든, 해양수산부의 선박 관련 규제 완화나 해경의 수색업무 외주화 등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넓은 의미의 진상규명이든 진상규명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본론이다. 총학생회는 정치적이어서는 안 되는가. 정치적이라는 말을 특정 정치권과 유착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정의라고 말하고 싶다. 총학생회는 고려대학교 학생사회의 대의기구라는 점 자체만으로도 정치적인 조직이다. 고려대 총학은 이제껏 한 번도 천안함에 대한 추모 게시물을 올리거나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 그런 와중 이번 총학이 처음으로 천안함과 관련된 게시물을 올렸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거기에는 정치적인 선택이 들어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매년 해오던 세월호 추모를 하지 않는다면? 거기에도 정치적 선택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5.18, 6.10 등 하나의 상징이 된 날짜에 총학과 같이 대표성을 띠고 있는 단체는 침묵을 하는 것조차 정치적이다. 그렇다면 기조를 확실히 정해 앞으로는 학교와 학생사회 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는 메시지를 내지 않기로 결정을 하든지, 아니면 이왕 추모를 할 것으로 마음먹었다면 제대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내야 했다 (만약 전자를 선택한다면 총학은 정말 학생 복지기구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며, 사실 이 역시 그러한 정치적 입장을 선택한 것이다[28]).


총학은 세월호를 추모하며 외부 원인을 말하는 음모론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있음을 지적하고,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하겠다며 당선된 정부가 왜 5년간 진상규명을 못 했는지를 비판하고 (추가적으로 새 정부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에 협조할 것을 당부하고) 한국 사회의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함을 말했어야 했다. 해명문을 올린 다음 날인 4월 18일에는 총학이 말한 대로 3년 만에 열리는 대면 행사인 4.18 구국대장정이 있었다. 구국대장정 기조에는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논의를 통해 함께 보완해 나가며 사회 안전보건조치를 강화하고 중대재해를 예방하라”가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와 사회적 참사를 모두 포괄하는 법률이다. 하다못해 총학은 이왕 기조로 삼은 중대재해법과 연결지어 더 안전한 국가를 만들라는 요구라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총학이 내놓은 게시물에는 “아직도 진상은 규명되지 않았다”라는 모호한 메시지만이 있었고, 그렇게 말하는 자신들이 ‘정치적’이지 않음을 항변하는 데 두 문단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헐레벌떡 자신들이 ‘운동권’이 아님을 고백하고, 문제시된 부분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여기에서 보이는 것은 요즘 학생사회, 특히 커뮤니티 중심으로 형성된 학생사회에서 요구되는 ‘탈정치’에 대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합하려는 총학의 모습이다. 본래 게시물에서 살아남은 “참사를 당한 학생들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한다면 아마도 대부분 16학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몇몇은 아직 학교에 남아 우리와 같이 다시 열리는 대면행사에 설레하고 있었을 것이다.” 부분의 경우도 애써 세월호를 학교 공동체와 관련 있는 것으로 엮으면서 자신들의 추모가 ‘비정치적’임을 피력하려고 애쓰고 있지 않았는가 (학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들에 대한 추모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앞서 이야기했다). 비록 ‘세월호 진상규명’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파괴력으로 인해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이후 총학생회가 커뮤니티에서 잃어버린 ‘민심’을 회복한 방법은 갑작스럽게 화제가 된 ‘인권과 성평등’ 교육 강의에 관해 학교 당국과 간담회를 진행하겠다는 게시물을 올린 것이었다.[29] 총학생회는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에브리타임과 고파스를 모니터링하며 작은 이슈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학우들의 불만 사항에 재빨리 반응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겠으나,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까지도 소수 여론인 커뮤니티의 의견을 학우 전체의 의견으로 파악하고 심하게 눈치를 보고 있던 것이 버팀돌의 모습이었다. 이는 큰 국가 비전보다도 ‘소확행’ 공약, 마이크로 공약을 내놓던 이번 대선후보들을 연상시키는데, 중앙정치의 탈정치가 유행이라고 해서 총학생회의 탈정치화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 작은 ‘해프닝’은 2주 뒤 총학생회장이 징계를 받았을 때 고파스나 에브리타임 이용자들로부터 ‘좌파’라는 이유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민주당의 세 지자체장 성폭력 사건 이후 민주당이 여성과 ‘이대남’ 중 어느 쪽의 지지도 받지 못하게 된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그분이 그러실 리가 없다’고 항변하는 맹목적인 지지자조차 없었다는 점뿐이다.


‘세상은 커뮤 밖에 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밈으로 자주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커뮤니티 역시 하나의 사회이고, 그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뽑은 총학생회장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이지 ‘고파스 및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에브리타임 게시판지기’가 아니다. 고파스와 에브리타임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의견만 과대대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2월에 처음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었을 때도 커뮤니티의 여론만을 믿고 끝까지 회장직에서 사퇴하지 않은 그는 결국 불미스럽게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30]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세월호를 추모한다는 것

다시 세월호 이야기로 돌아오자. 고려대 총학은 세월호를 추모해야 하는가? 답은 예일 수도 아니오일 수도 있다. 그저 ‘안타까운 죽음’이라서라면 당연히 ‘아니오’이다. 당장 코로나19로 ‘안타깝게 죽은’ 사람이 국내에만 2만 명이 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누군가는 ‘안타깝게 죽는’다. 핵심은 구조이다. 적어도 단체의 차원에서 추모를 한다면, 구조적 문제를 지적할 때만 그 추모는 의미가 있다. 특히 시간이 흐른 사건일수록 그러하다.


이제 매년 3월 26일이면 에브리타임에서는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않겠습니다’와 같은 제목의 게시물이 1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아 ‘HOT 게시물’에 선정되곤 한다. 그러나 천안함도, 세월호도 단순히 ‘잊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건이 어떤 구조적 원인으로 발생했고, 어째서 국가는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으며, 왜 피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는지를 묻지 않는 추모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겠으나, 학생사회 차원에서는 턱없이 모자라다.


내년 4월 16일에도 ‘세월호 추모 게시글 업로드’는 총학생회의 달력행사일 것이다 (물론 총학생회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이번 게시글과 같이 ‘영혼 없는’ 카드 뉴스라도 올리는 것이 아예 세월호 추모 달력행사가 사라지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본인들이 무엇을 왜 추모하는지도 모르는 채 이번과 같은 게시글이 올라온다면 학내 커뮤니티에서의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결국 세월호 추모는 달력행사에서 아예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이미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학생회는 더욱, 제대로 정치적이 되길 바란다.[31] 또한, 언젠가는 대의기구로서의 총학생회가 더 이상 세월호를 추모할 이유가 없어지기를 바란다.


편집장 상민 / poursoi0911@gmail.com


[1] https://www.facebook.com/831321543599228/posts/5612732985458036/

본 링크로 접속한 뒤, 오른쪽 상단의 ‘…’을 누르면 뜨는 ‘수정 내역 보기’를 통해 수정 전 게시물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2] 총학은 선본 시절 공약인 SK미래관 개방 시간 연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당선 이후 서명 운동과 학교 측과의 면담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시범 연장 운영을 이끌어냈으며, 3월 21일부터 4월 2일까지는 ‘교육권리찾기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3] 고파스 ‘호랭이광장’에 올라온 해명 글은 23건의 신고를 당했고, 이에 신고가 10건 이상 접수된 게시물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배심원 평결을 통해 총학생회 계정은 1주일간 고파스를 이용할 수 없는 ‘강등’ 처리를 당했다.

[4] 김성수 (2021). 51.

[5] 같은 글. 71. 「선체결함 vs 외부영향 팽팽...참사 원인 못 찾은 세월호 선조위」(한국일보, 2018.08.07.)과 같은 기사가 대표적이다. 

[6] 복원성이란 수면에 평형 상태로 떠 있는 선박이 파도·바람 등 외력에 의해 기울어졌을 때 원래의 평형 상태로 되돌아오려는 성질을 말한다 (선박안전법 제2조 8호).

[7] 대검찰청 (2014.10.06).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수사 설명자료: 사고원인․구조과정․실소유주 및 해운비리․각종 의혹.

[8] 조타수 역시 조타 과실 혐의를 지속적으로 부인했으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조타수가 조타기를 35도 전타 상태로 수십 초 동안이나 유지했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온 바 있다(김성수‧송원근, 2015.04.16; 김성수, 2021: 60에서 재인용).

[9] 김성수 (2021). 80.

[10] “잠수함 충돌이 급선회의 원인일 경우 해당 잠수함 승조원들은 물론 잠수함 운항조직(한국 해군은 물론 미군 잠수함일 경우 미군까지도)에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소위 은폐를 도운 정부 책임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앵커설은 누군가 일부러 닻을 내렸다는 주장이기 때문에 잠수함설보다 더 고의성이 강조되며 침몰을 명령한 자를 찾을 수 있는 가설이다(박상은, 25, 강조는 필자).”

“앵커설은 항적조작과 앵커 투하를 명령한 자, 잠수함설은 충돌 사실을 은폐한 자가 책임자로 귀결되는 구조였고, 이는 모두 박근혜 정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김성수, 63)”.

[11] 김성수 (2021). 62.

[12] “솔레노이드 밸브는 조타실에서 타각 신호를 주면 유압을 조절하는 아주 작은 밸브로, 전기 신호가 준 타각만큼 타가 돌 수 있도록 유압을 주고 다시 닫혀야 한다. 그런데 이 밸브가 고착되면 조타 신호를 주지 않았는데도 타를 끝까지 돌리는 신호를 주게 된다(박상은, 2021: 24).”

[13] 박상은 (2021). 29.

[14] 김성수 (2021). 70.

[15] 선조위 활동 종료 이후 특별법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 대책 및 재발 방지 제도 마련을 위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꾸려졌다. 사참위의 활동기간은 2018년 12월 11일부터 2021년 3월 10일까지였으나 2020년 12월 특별법 개정을 통해 올해 9월 10일까지로 연장된 바 있다 (조사기한은 2022년 6월 10일까지).

조사기한의 마지막 날인 지난 6월 10일 사참위는 기자회견에서 최종보고서에 “외력 가능성도 있지만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외력 가능성을 조사했으나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있음을 밝혔다. 선조위에 이어 사참위마저도 외력설을 완전히 기각하지 못한 것이다.

[16] 물론 이 7시간 동안의 공석을 그사이 어떤 대단한 일이 있었다는 음모론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정용택, 2016: 171)”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음모론을 잠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그 시간 동안의 대통령의 행적은 밝혀져야 한다.

[17] 아이러니하게도 21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대통령 지정 기록물의 비공개 원칙 개정을 위한 법안은 지난 4월 김정숙 전 영부인 옷값 논란 이후 국민의힘의 홍석준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이다.

[18] 진태원 (2015). 135.

[19] 김동춘 (2015). 171.

[20] 정용택 (2016). 179.

[21] 김성수 (2021). 72.

[22] 최원 (2016). 147.

[23] 김승섭 (2022). 194.

[24] 같은 책. 140.

[25] 같은 책. 195-197.

[26] 같은 책. 163-165.

[27]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2016). 114.

[28] 관련해서는 지난 겨울호에 수록된 ⸢열 번 찍어도 뿌리는 뽑히지 않는다 — 고려대 여학생위원회 인터뷰에 덧붙여⸥의 마지막 페이지(104쪽)를 참조하라.

[29] 현재 고려대학교 학부 과정에서는 ‘인권과 성평등’ 교육을 1년에 한 번씩, 총 4번 이수해야 졸업이 가능하나 이수하지 못해 졸업을 하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는 누군가의 게시물이 에브리타임에서 화제가 되며 ‘총학 세월호 게시물’ 다음의 ‘떡밥’이 되었다.

[30] 관련해서는 이어지는 학내보도를 참조하라.

[31] 김주영 (2021.05.). 학생회는 이미 정치적이므로 더욱 정치의 전면에 나서라 [대자보].


참고문헌

단행본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2016).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창비.

김동춘, 진태원 외 (2015).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현실문화.

김승섭 (2022).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난다.

정용택, 최원 외 (2016).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 그린비.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2016). 세월호,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논문 및 저널

김성수 (2021). 세월호 침몰 원인 논쟁의 형해화(形骸化)와 언론: 저널리즘의 규범적 원칙을 중심으로 한 비평적 분석. 과학기술학 연구 제21권 제2호, 50-90.

박상은 (2021). 왜 세월호 참사 조사는 종결되지 못하는가? - 재난의 책임 배분 딜레마와 세월호 침몰 원인 논쟁. 과학기술학 연구 제21권 제2호, 5-49.


보고서 및 자료집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종합 보고대회 자료집 (2021.12.08.).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4∙16재단.


대자보

김주영 (2021.05.). 학생회는 이미 정치적이므로 더욱 정치의 전면에 나서라 [대자보]. Retrieved from https://www.facebook.com/kuboardrecord/posts/2890130104567297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김성수 (2021.11.12.). 사참위-KBS가 띄운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학계 "근거 부실" 혹평. 뉴스타파. Retrieved from https://newstapa.org/article/FaQfy

______ (2022.06.10.). [현장에서] 의혹 기각하고도 “기각” 말 못한 ‘홍길동 사참위’의 마지막 책무. 뉴스타파. Retrieved from https://newstapa.org/article/VFsxB

박수지 (2017.04.17.). 법제처 유권해석도 안받고…‘박 전 대통령 기록물’ 이관 강행.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1123.html

_____ (2017.05.03.). 황교안, 세월호 7시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33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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