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고려대분회'] 편집장 열음
“진짜 사장 / 총장님이 / 생활 임금 / 보장하라”
고려대학교 미화·주차·경비 노동자들이 지난 네 달 간 민주광장에서, 중앙광장에서, 그리고 본관에서 외친 구호이다. 1년 단위로 바뀌는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인 학교가 책임지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구호는 조합원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서도, 그들이 입고 있는 조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 1] 빨간 조끼를 입은 고려대분회원들이 본관에 앉아 있는 사진이다. 맨 앞에는 서재순 분회장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하고 있다. 그림 설명 끝.
“고용 승계 / 보장하라 / 근로 형태 / 바꾸지 마”
그리고 18년 전 여름, 100명이 훌쩍 넘는 고려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제2학생회관 소극장(현 418 기념관 소극장)에 모여 한목소리로 외친 또 하나의 구호가 있다. 아직 노동자들이 ‘고려대분회’는커녕[1]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도 묶이지 못했을 적의 일이지만, 구호를 외치는 이들의 눈빛에는 마찬가지의 결연함이 서려 있었을 테다.
올해는 고려대분회가 설립한 지 18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8년간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투쟁이 있었고, 그 투쟁들은 분명 무언가를 변화시켰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승리와 패배는 지난하게도 반복되었고, 투쟁 구호는 그치지 않았다. 이들의 목소리를 한데 응집시킨 동력은 무엇이며 이들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한 결심은 어디로부터 뿌리내렸을까. 그 답은 고려대분회가 지나온 시간에 있을 것임에 그 역사를 훑는다.
1997년 있었던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은 비정규직 형태로 인력을 고용하는 한편 수직화된 하청구조를 적극적으로 채택했고, 그 결과 한국에는 장시간·저임금의 노동 형태가 자리 잡았다. 고려대학교(이하 본교) 역시 ‘비용 절감’을 이유로 1999년부터 용역 회사에 하청을 주고 해당 회사와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 고용 형태로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을 전환하였다.[3] 이러한 고용 전환 이후 노동자들은 학교가 새로운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마다 새로이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는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처하게 되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깨끗하고” “쾌적한” 학교를 유지할 것을 요구받으며 매일 새벽 다섯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의 강도 높은 노동을 이어갔다.[4] 당시는 비정규직 고용 형태가 확산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기 때문에 이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공적 담론이 부재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청소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생계유지에 급급한 상황에서 용역이니 하청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말들은 당장 먹고 사는 일과 동떨어진, 복잡하고도 어려운 얘기였기에 그들은 다만 해오던 일을 성실하게 행할 뿐이었다.
그러던 그들은 5년 후인 2004년 6월 제2학생회관 소극장에 결집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새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의 개악안들이 자리한다. 당시 본교는 인문계는 4월 30일, 이공계는 5월 31일을 끝으로 이전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마무리한 상태였다. 앞으로 1년간 시설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탁할 새 하청 업체가 결정되지 않은 탓에 노동자들은 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도 못한 채였지만, 늘 그랬듯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였다. 그렇게 노동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광을 낸 건물에서 본교는 새 용역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목적의 설명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일부 용역업체들이 새 근로계약서에 추가하겠다며 발표한 안은 다음과 같다.
▼ 기존 오전 5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던 실제 근무 시간을 3교대(주간 6:00-16:00, 오후 14:00-22:00, 야간 22:00-6:00)로 변경한다.
▼ 일요일을 비롯한 휴일 근무를 시행한다.
▼ 여 60세 이상, 남 65세 이상을 고용할 수 없다.
해당 안을 내놓은 업체가 선정될 경우 연령 제한으로 기존 노동자의 70%가 해고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업체가 바뀐 고용 조건에 따른 신규 채용 계획을 내놓지 않은 탓에 남은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할 업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것이 자명했다. 설명회 이후 학교가 60세 이상의 노동자들을 모조리 해고하려 한다는 소문이 소장과 각 건물 반장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고, 이에 고려대학교 시설 노동자들은 6월 18일 열린 규탄집회를 신호탄으로 하여 매일 퇴근 후 제2학생회관 소극장에 모여 고려대미화원협의회(이하 고미협)의 이름으로 총회를 열고 각 건물의 상황을 공유했다. 한편 고려대학교 불철주야(불안정 노동 철폐를 주도할 거야)를 비롯한 학내 단체와 인권운동 사랑방,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회진보연대 등의 시민단체는 ‘고려대 청소노동자 노동권 쟁취를 위한 공대위’를 조직하여 공식적인 노동조합이 부재한 상황에서 학내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고미협은 6월 22일 총회에서 용역업체(인문계 제이디원, 이공계 아이서비스)가 기존 발표한 방침을 고수할 경우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수렴해 근로계약서 서명 거부 결의를 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25일에는 근로형태 변경 반대와 고용승계를 주장한 본관 앞 첫 집회가 이어졌으며, 28일부터는 점심시간을 활용한 본관 점거 연좌 농성이, 29일에는 개별근로 계약체결을 위해 아이서비스가 개최한 설명회 집단 거부 행동과 노동조합 설립 결의가 잇따랐다. 동시에 공대위는 교내 시설 노동자들을 방문하여 노동조합 가입 원서를 수합했다. 노동자들과 학생들 모두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고용 안정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을 한데 결집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하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이렇듯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한 결과, 2004년 7월 1일 고려대학교 청소 용역 노동자들은 전국 시설관리 노조 고려대 시설지부로서 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열고, 총 130여 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고려대학교 시설노조를 창립하였다.
[그림 2] 고려대학교 제2학생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시설노조 창립총회에 참여한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그림 설명 끝. ©사회진보연대
고려대학교 노조는 용역계약서에 기재되어 있던 ‘여 60세 이상, 남 65세 이상을 고용할 수 없다’라는 조항을 삭제하고 100% 고용승계를 보장받았다. 뿐만 아니라 업체로부터 도급 계약서에 휴일 근무는 지원자에 한해서 시행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항목을 포함할 것 역시 약속 받았다. 새로이 계약서에 명시된 항목으로는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할 것’도 있었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교섭을 통해 노동 시간과 임금 외에도 근로 환경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장하려 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고려대학교 노조는 상기한 항목을 포함해 기존 계약서의 독소 조항을 삭제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약서를 수정할 것을 확약 받은 후에야 집단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쟁의의 주목적이었던 고용승계와 임금 인상을 이뤄내는 한편 3교대가 아닌 기존의 근무 형태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고려대학교 노조는 최초의 투쟁으로부터 승리를 거뒀다고 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었다. 새 용역업체인 제이디원은 2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 변형 근로로 2시간 연장근무(6:00-10:00 전원, 10:00-16:00 남50% 여85%, 16:00-18:00 남 50% 여 15%)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며, 청소 노동자의 85%는 토요일, 15%는 일요일에 작업하는 형태로 휴일에도 근무하게 할 것임을 못 박았다. 해당 근무 형태가 정착될 경우 이전과 총 근무 시간은 같다고 할지라도 노동자들이 체감하게 될 노동 강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음이 자명했다. 또한 이러한 노동 시간 쪼개기형 근무표를 이행할 경우 조합원별로 근무 시간이 달라지는데, 이는 조합원들이 퇴근 후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데 차질을 빚게 해 노조가 파편화될 우려마저 있었다.
즉 용역업체와의 협상을 차치하더라도 고려대학교 노조가 갈 길은 역시나 멀었다. 학교와 용역업체라는 공공의 적은 그들을 빠르게 단결할 수 있도록 했고, 그 결과 규탄 집회가 있은 지 2주 만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기념할 만한 성과임이 분명하지만, 급하게 조합이 꾸려진 만큼 내부의 안정화와 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이뤄낸 것 이상의 승리는 물론이고 당위성에 대한 합의가 필요했다. 노동조합의 당위와 고된 노동 이후 시간을 내어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해야 할 당위, 무엇보다도 당장의 이익과는 무관할지라도 결속하고 연대해야 할 당위 말이다. 막 출범한 고려대분회는 각개의 과제를 안고 앞으로의 투쟁을 준비했다.
2004년 창립총회에서 전국시설관리노조 고려대지부(준)가 밝힌 앞으로의 목표는 완전한 고용승계와 연월차 및 생리휴가 보장, 직접고용 계획 수립 등이었다. 이중 고용승계는 2004년 노조 창립 당시 성취해냈지만, 그 외의 항목들에 대해서는 긴 투쟁이 예고되어 있었다. 특히 용역을 낀 간접고용 형태 아래에서 학교는 “우리는 미화원의 직접적인 사용자가 아니”라는 핑계를 댔고, 용역업체는 수틀리면 입찰을 포기하겠다는 태도를 보였기에[5] 앞으로의 투쟁은 꽤나 지난할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러나 고려대학교 노조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진짜 사장”이자 원청인 학교에 책임을 직시할 것을 요구하며 크고 작은 쟁의를 이어갔다.[6] 그러는 동안 시간은 부지런히 흘러 2011년이 되었다.
2011년은 서울지부 내 대학 시설노조들의 투쟁사(史)를 훑을 때 단연 분수령으로 꼽을 수 있는 해이다. 이전까지의 대학 시설노조 투쟁은 1년 단위로 하청업체가 바뀌는 상황 속 고용승계를 주장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했고, 임금투쟁 시 요구했던 임금도 최저임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고려대분회 역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매년 구조조정 저지와 임금 인상에 소리 높였고 서울 소재 대학들의 시설노조와 연대해 집단교섭을 벌였지만, 사회는 이들의 투쟁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학교야 간간이 골치가 아팠을지 몰라도 언론과 대중 일반의 주목까지는 이끌어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고려대분회를 둘러싼 외부의 상황 역시 그다지 좋지 않았다. 민주노총 산하에 있었던 대학노조의 일부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한국노총 산하 전국사립대노조연맹을 결성하며 민주노총 소속 대학노조의 결속이 와해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홍익대학교에서 벌어진 ‘벼락해고’는 노동자들을 결집시키는 한편 대학 내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가시화했다. 2011년 벽두, 홍익대학교의 청소·경비·주차 등을 맡아온 용역업체는 용역 계약 만료일을 앞두고 계약 입찰을 포기했다. 홍익대가 용역업체들에 법정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간당 4,120원 수준으로 단 3개월뿐인 용역 계약 연장을 요구한 탓이다. 용역업체와의 계약이 무산되자 홍익대는 “이제 당신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집에 가라”라고 말하며 노동자들이 근무하던 건물의 비밀번호를 바꾸고 그 자리에 근로장학생, 교직원, 조교 등을 배치했다. 학교와 용역업체의 갈등으로 무려 170명에 달하는 시설노동자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본관 점거 농성에 들어갔고, 대학생들과 시민들, 노동운동 단체들이 이들과 연대했다. 특히 간접고용 형태에서 연말마다 고용 승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타 대학 시설노동자들이 이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함께 들고 일어났다.[7]
[그림 3] 당시 홍익대학교 곳곳에 붙었던 ‘외부세력’들의 메시지이다. “나는 외부세력이로소이다!!! / 외부세력보다 못한 홍대 총학은 각ㅋ성ㅋ하라”라고 적혀있다. 그림 설명 끝. ©프레시안
고려대분회를 비롯한 민주노총 산하의 대학노조들은 홍익대 총학생회에 의해 ‘외부세력’이라고 명명될 만큼 홍익대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여 노동자들의 복직과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홍대 투쟁을 계기로 그간 대학 시설 노동자들이 감수해왔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시민들에게 알려졌고,[8] 홍익대분회는 49일간의 본관 점거 농성 끝에 2월 20일 전원 고용승계 및 임금인상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비록 근본적 문제 중 하나인 간접고용 형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홍익대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에 얽힌 부조리에 여론이 공분한 이상 개별 사업장에서 임의로 노동자들을 부당해고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워졌음은 분명했다.
이에 대학 시설노조들의 교섭 방향도 이전과는 달라졌는데, 고용승계 투쟁에만 몰두할 필요가 사라짐에 따라 교섭권과 단체협약 승계 등을 추가로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을 교섭하는 일이 가능해졌다.[9] 특히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고려대분회, 연세대분회, 이화여대분회 소속 800여 명의 조합원은 홍대 투쟁이 여론의 물살을 탄 직후 바로 파업을 강행하며 전체 청소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상향하고자 했고, 이러한 투쟁의 호조건 속에 시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집단교섭 적용 대상이 되는 사업장도 늘게 되었다.[10] 냉정히 말하자면 홍대 투쟁에 연대한다고 해서 고려대분회가 당장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없었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이 홍익대 노동자들의 부당한 상황에 나의 일인 듯 나선 까닭에는 동료 사업장의 쟁의가 결국 우리 사업장이 얻을 수 있는 이익과도 연관될 수 있다는 가망, 무엇보다도 새해 첫날부터 사지로 내몰려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는 저의에 대한 공감이 자리했을 테다. 결국 이 투쟁을 계기로 하여 대학 시설노조 쟁의의 판도가 크게 뒤바뀌었으며, 결과적으로 승전보는 홍익대를 넘어 고려대에까지 울려 퍼지게 된 것이다. 2011년 있었던 홍대 투쟁은 조합원들에게 당장의 이익과는 무관할지라도 결속하고 연대하는 일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확신을 남겼다.
[그림 4] 전면 파업에 들어간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분회 소속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연세대학교 본관 앞에서 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그림 설명 끝. ©연합뉴스
홍대 투쟁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고려대분회는 대내외적으로 보다 적극적인 투쟁을 이어갔다.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중앙광장에는 새빨간 몸짓이 끊이지 않고 넘실거렸는데, 그 몸짓은 2017년에는 경비 노동자들의 정년 연장 및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선전전이었고[11] 2018년에는 기만적 방식으로 용역 비용을 절감하려는 학교를 향한 새벽 피케팅이었다.[12][13] 안타깝게도 그 결과가 매번 즉각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일례로 2012년, 고려대분회는 학교의 청소 노동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벌였지만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본교는 원하청 형태로 시설 노동자들을 부리고 있다. 노동자들이 몇 년째 목 놓아 외치고 있는, 고된 육체노동 후 몸을 씻기고 뉘일 휴게실 및 샤워실을 설치해달라는 요구안 역시 여태 수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합원들은 빨간 조끼를 벗을 줄을 몰랐다. 싸우다 보면 끝끝내 얻어낼 수 있음을 경험한 까닭이고, 이미 알게 된 이상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까닭이다.
지난 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고려대분회는 민주광장에서, 중앙광장에서, 그리고 본관에서 440원분의 임금 인상과 휴게실 및 샤워실 설치를 촉구했다. 그 결과 7월 28일 오후, 협상이 타결되어 이들은 400원만큼의 임금을 추가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고작 400원을 위해 한 학기 내내 학교와 싸운 이들을 두고 미련하다고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400원이든 130원이든 260원이든 이들을 계속 투쟁할 수 있게 하는 힘은 구체적인 금액에 말미암지 않는다.
“훗날 또다시 이런 일이 생겼을 때, 그리고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 이 글을 참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14]
지난 봄과 여름 캠퍼스 곳곳에서 넘실거리던 몸짓들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물결이 어디서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 대체 무슨 동력으로 여태 굽이칠 수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했기에 고려대분회의 지난 투쟁을 더듬었다. 그러던 중 2018년 봄, 어느 편집위원이 조합원들과 함께 겨울을 지난 후 남긴 당부를 발견하였다.
이번 투쟁의 주요 협상안이었던 임금 인상은 관철되었지만 또 하나의 오랜 요구안인 휴게실과 샤워실 설치는 아직 보장받지 못했다. 오는 11월, 학교는 새 용역업체를 입찰하기 위한 공고를 낼 예정이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또 어떤 개악안을 맞닥뜨리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여름 땡볕 아래에서 함께 흘렸던 땀과 끝끝내 얻어낸 경험은 조합원들로 하여금 계속하여 투쟁할 수 있도록 할 테고 계속되는 투쟁은 이들에게 이 여름 얻어낸 이상의 것을 가능케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일은 어느 날 또다시 반복될 것이고, 그 일은 분명 이전에도 있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훗날 또다시 이런 일이 생겼을 때, 그리고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 이 글을 참고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갈무리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투쟁이 우리에게 지난함보다는 무한한 가능성과 용기를 남길 수 있기를 바라며.
편집장 열음 / yeoleumse@gmail.com
[1] 정식 명칭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고려대분회’이지만 이 글에서는 ‘고려대분회’로 줄인다.
[2] 해당 소제목에서 서술한 내용은 다음의 기사를 적극 참고하여 재구성하였다: 빠른 그러나 빠르지 않은 노동조합의 출범 (2004.07.08.). 사회진보연대.
[3] 간접 고용 형태에서 학교는 연초마다 학내 시설 노동에 필요한 노동자의 수를 추산한 후 하청업체에 용역비를 제공한다. 즉 학교가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업체에 예년보다 적은 양의 용역비를 제공할 경우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정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간접 고용은 하청업체에서 개악적인 조건을 들고 와 노동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더라도 학교가 이를 방관할 명분이 된다.
[4] 용역으로 고용 형태가 전환되며 학내 미화 노동자는 기존 인원의 절반가량으로 줄었고, 이에 노동자 한 명이 청소해야 할 실질적인 평수는 450평(연구실 27개와 강의실 7개, 복도 3개에 계단, 각층 화장실과 쉼터 등)에 임박했다. 주어진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계약서 상에 명시된 시간보다도 이른 새벽 5시에 학교로 출근해야 했다.
[5] 실제로 2004년 노조 출범 당시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이공계와 계약 예정이던 아이서비스는 최저임금 인상분 지급 및 노조 설립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입찰을 포기하였다.
[6] 일례로 2009년 폐기물관리업체와 폐지 처분권을 두고 갈등했던 일을 들 수 있다. 당시 학내 청소노동자들은 강의실이나 연구실에 나뒹구는 이면지와 신문, 종이 상자, 버려진 책등을 폐지 수거업체에 팔아 번 돈을 식사보조비에 보태 사용하였다. 폐지를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인당 2~3만 원 가량이었고, 용역업체로부터 지급 받는 식사보조비는 3만 5천 원이었으니 금액을 합산하여도 한 달치 점심 식사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모자랐다. 그러나 폐기물관리업체는 등록금 동결로 용역비가 줄었다는 이유를 대며 용역업체에 “폐지를 마음대로 처분하면 고발 조치하겠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를 안 고려대분회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제42대 총학생회가 크게 반발하며 집회를 이어갔고, 그 결과 “폐지를 개인적으로 처분하지 않는 대신 청소 용역 210명에게 1인당 월 2만 5,000원을 지급한다”라는 내용의 합의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
[7] 2010년 10월, 동국대에서도 학교가 느닷없이 용역업체를 바꾸는 바람에 90여 명 노동자들이 해고통보를 받은 일이 있었으며, 연세대와 고려대 역시 전해 12월 청소노동자들 모르게 용역업체를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입찰설명회를 진행하려다가 노조의 항의로 무산된 바 있었다.
[8] 홍익대학교 노동자를 예를 들어 당시 대학 시설 노동자들이 처했던 처우에 대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계약서 상으로는 주 5일에 40시간을 일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휴식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고, 노동자들은 주말에도 나와 1주일에 50시간 이상을 일했다. 시간외 수당을 계산하면 최저임금을 적용해도 한 달에 112만 5,000원의 임금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 임금은 역시 월 81만 5,000원에 불과했다. 여기에 한 달 식대로는 단 9,000원만을 받았다.
[9]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분회 소속의 조합원들은 투쟁 당시 4,320원이던 최저임금 이상의 4,800원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며 이 금액을 ‘생활임금’이라 칭했다. 이후 한국노총이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만나 생활임금 조례 제정을 제안하고, 참여연대가 ‘생활임금 운동’을 핵심과제 중 하나로 내놓으며 생활임금이라는 용어 자체가 상용화되기도 했다.
[10] 2011년에는 고려대, 고려대 안암병원, 연세대, 이화여대 등 3개 대학 4개 사업장이 집단교섭 적용대상이었으나 2014년에는 그 대상이 14개 대학 16개 사업장으로 확대되었다.
[11] 2017년 6월, 고려대분회 소속 경비노동자들은 원청인 고려대학교와 하청업체에 정년 연장 및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중앙광장에서 선전전을 벌였고, 기존 65세까지였던 정년을 70세까지 연장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12] 2018년 1월, 본교는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 10명의 자리를 충원하지 않고 3시간짜리 단기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겠다고 결정해 노조 및 학생들과 마찰을 빚었다. 당시 본교는 “최저임금이 올라 재정에 부담이 된다”라는 이유를 대며 앞으로도 퇴직하는 노동자 자리에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할 것이라 밝혔다. 이와 같은 발표는 언뜻 보기에는 이미 업체를 통해 고용된 청소노동자들의 손익과는 무관한 듯 보이지만, 아르바이트 형태의 고용이 증가할 경우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노동권 후퇴를 야기하기에 고려대분회 조합원들과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13] 정말로 비용 절감이 시급했다면 청소노동자를 직접고용하면 됐다. 간접고용 형태에서는 1인당 실질 인건비보다 훨씬 높은 용역비를 책정해 용역업체에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교는 사용자로서 져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는 한편 법적 책임을 물지 않기 위해 간접고용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비용 절감을 운운했기에 본교의 결정은 기만에 불과하다.
[14] 경은 (2018). 6-7.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경은 (2018.3.). 학내노동자 특집. 고대문화 봄 131호. 6-7.
세림 (2018.3.). 고려대 : 배 한 쪽에 연대와,. 고대문화 봄 131호. 10-13.
기사 및 온라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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