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고려대분회'] 편집위원 상민 엮음
지난 《고대문화》 여름호에서는 시급 440원 인상과 휴게시설 개선, 샤워실 설치를 위해 두 달 넘게 투쟁하고 있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이하 고려대분회)와 가졌던 간담회 내용을 정리한 학내 기사를 실은 바가 있다.[1] 3월 14일부터 시작된 투쟁은 간담회가 있었던 5월 17일로부터도 두 달 넘게 이어져 7월 28일에야 시급 400원 인상이 타결되며 종결되었다. 투쟁 승리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겠으나, 7월 6일부터 이뤄진 본관 점거 농성이 투쟁 승리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점은 참여한 모두가 동감하는 바다. 이 기록을 정리하는 지금은 어느덧 투쟁이 종료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본관 투쟁이 무엇을 남겼을지, 어떻게 의미화해야 할지를 아직은 알 수가 없어서 본관에서 시간을 보낸 이들의 목소리라도 담아보았다. “미화 주차 경비 노동자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철야농성을 진행했다”로 간단히 요약될 수 없는 23일간의 기록을 이번 농성을 함께한 학생과 노동자 13명의 시선을 통해 담았다.
* 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의 일지는 구술 기록을 바탕으로 문어체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립니다.
어제 저녁에 노조에서 오전 10시 반에 본관 총무처를 방문하려고 하니, 올 수 있는 학생들은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은 탓인지 아침에 본관에 모인 학생은 나 포함 세 명이었다. 이런 상황에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친구들에게 아무나 와달라고 급하게 연락을 했다. 분주한 조합원분들 사이로, 우리는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상태로 서 있었다. 조합원 분들은 근래 중 가장 격앙된 모습이었다. 학교에서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본관을 걸어잠갔기 때문이었다. 노조는 99일 동안 매일 집회를 열었다. 그런데도 여기에 대해 어떤 대꾸나 반응도 없길래 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건가 싶었었는데 본관 출입은 또 거부 당한 게 어이없었다. 출입을 거부 당한 이후에야, 학교가 이들의 존재를 인식하고는 있다는 것, 또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합원들은 잠긴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본관 네 군데 출입문 앞에 모두 진을 쳤고 우리(학생들)는 본관 정문 앞에 합류했다(사실 ‘합류’라는 말을 쓸 정도로 조합원들도, 학생들도 인파를 이룬 것은 아니었지만…). 본관 문이 열릴 찰나를 긴밀하게 기다리면서 조직부장 님, 분회장 님, 학생들 순서로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이어나갔다. 이 와중에 학교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 분 한 분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서성거리면서 계속 어딘가와 연락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본관 학생 중 한 분이 “학교에서 지금 본관 앞에 와 있는 학생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고, 또 “총학생회와 연관이 있냐”고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에게 연락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해주셨다. 그걸 알아서 뭘 어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학교에서 학생들의 투쟁 참여에 대해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한참을 본관 앞에서 기다리던 중 갑자기 어딘가에서 큰 소음이 들렸다. 뒷문이 열린 것이었다. 어떤 직원 분이 뒷문으로 잠깐 나가려고 하는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본관 안으로 진입하려는 조합원들과 다시 문을 닫으려는 직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 있었기에 문에 달린 유리창 너머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누가 다치기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했다. 실랑이 끝에, 결국 뒷문이 열렸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지만 우리도 조합원들을 따라 뒷문을 통해 본관 안으로 진입했다.
그렇게 본관 점거가 시작되었다. 12시였다. 중식집회에서는 분회장 님이 앞에 서서 발언하시는 것을 듣느라 다른 조합원 분들의 얼굴을 잘 보지 못했었는데 본관 안에 들어와서 마주앉고 나서야 처음으로 많은 조합원 분들의 얼굴들을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본관에 들어왔다는 사실 때문인지 다들 고양된 표정이었다. 역시 고양된 모습의 분회장 님과 조직부장 님의 발언에 답하는 목소리들도 평소보다 더 우렁찼다. 본관에서 조합원 분들이 시켜주신 짜장면을 먹으며, 본관까지 점거했으니 이제는 투쟁이 금방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숙영)
가슴이 떨렸다. 사실 백일 넘게 투쟁을 하면서도 원청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계속 학생들한테나 회사한테나 원청에는 안 들어간다고 했었다. 애초에 문이 잠겨 있으니까 들어가려고 생각도 안 했다 사실. 근데 열이 받은 거다. 분노를 느끼게 만든 거지 원청이. 한 번도 제대로 대화를 안 했으니까.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총무부 차장이 면담마저도 밖에서 하자고 했을 때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대화를 하라고 해야지만 원청-하청끼리 이야기하고 그거조차도 다른 학교 진행상황이나 물어보고 있고. 용역은 오면 실실 웃기나 하고. 그리고 분명 그 전 금요일에 총무부와 면담했을 때 언제든지 오면 문 열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근데 그 약속을 어긴 거다. 다른 사람들, 손님은 다 열어주는데 여기서 일하는 우리한테는 문을 안 열어줬다. 여기서 자존심이 짓밟힌 거지. 조합원들은 이날 원청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생각은 안 했을 거다. 순간순간의 판단이 있는데 그때 그 순간에는 들어가는 게 맞다고 판단 했던 거다. 학교가 동서남북 문을 막았는데 뒷문이 열리는 순간 들어가게 됐다. 서울지부도 몰랐고, 깜짝 놀랐다. 아침에 원청에 들어가겠다고 연락을 하니까 원래는 덕성에 가기로 되어 있었던 김선영 조직부장이 왔다.
사실 더 이상은 원청에 안 들어가면 투쟁하기가 쉽지 않았다. 투쟁이 길어지고 덥다 보니까 내부적으로도 분란이 일어날 법한 상황이었다. 신참들이야 그냥 하지만 [이렇게 길게 투쟁하지 않고서도 승리를 경험해봤던] 고참들은 불평불만이 많이 있었다. 털어놓고 이야기 안 했을 뿐이지. 분회장으로서 그런 심정을 읽은 거다. 사실 부분회장, 사무장님하고 의논도 안 하고 순간에 이뤄졌는데, 다행히도 들어가자 하니까 간부 분들이 별다른 이유를 묻지 않으셨다. 다 분노 상태니까. 고대분회가 무너지는가 싶다가도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그러고 나서 그날 들어갔을 때 환호성을 불렀다. 다들 시원해서 너무 좋다고. 이제는 밖에서 하지 말자 이렇게 된 거다. (서재순 분회장)
진짜 더운 날이었다. 노조에서 오라고 해서 그냥 아무 준비도 없이 갔는데 본관 출입문 네 개를 다 지켜야 된다고 하는 거다. 너무 목이 마른데 물 하나도 없었고. 그래서 방 안에 있는 찬물 다 갖고 오라고 해서 두 시간쯤 뒷문 앞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여직원 하나가 문을 살짝 여는 거다.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달려들었다. 사실 문을 열려면 카드로 찍어야 하는 시스템이라 그냥 내가 들어가고 그 직원이 바로 문을 닫았으면 더 못 들어왔을텐데, 그 아가씨도 당황해서 나를 쫒아왔고 우리 조합원들이 줄줄이 들어온 거다. 그 직원이 나한테 막 이러면 어떡하냐고 하는데 이미 늦었지 뭐. 생각해보면 그 사람도 위에서 혼나지 않았을까 싶어서 미안하긴 한데…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근데 웃기는 건 학교가 회사한테 공문을 보냈다더라. 우리가 4시까지 안 나가면 법적 조치 취할 거라고. 나도 관 대표라 분회장님 따라 회의에 한 번 들어가봤는데 그때 정말 충격적이었다. 회의에 들어온 분들이 너무 형식적이고, 성의없고 서로 떠넘기고. 우리는 100일 가까이 바깥에서 죽어라 떠들고 있었는데 우리한테 관심도 없었던 거지. 그러다가 참다참다 못해서 들어갔는데 고소한다고 하니…. 근데 진짜 무서웠던 게 학교가 진짜 더 심하게 나오면 우리도 물러날 곳이 없으니까 맞불을 놓을테고, 그러면 TV에 ‘청소아줌마 폭도 등장’ 이런 식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다행히 학생들이 있고, 노조가 있어서 강제로 끌려나오고 하는 일은 없었던 거 같다. 사실 나 혼자 본관에 들어가면 달랑 들어내면 끝인 거니까. 힘이 없을수록 뭉쳐야 한다는 게 이번만큼 절실했던 때가 없었던 거 같다. (임은희, 교육관 미화)
예상은 했었고 본관에 처음 들어간 건 아니어서 크게 동요는 안했다. 여름에도 투쟁을 하는구나, 사계절을 다 들어가는구나 싶었다. 본관에 들어가는 순간 못 나가는 거니까. 복도에 분회 사무실에 깔개 있던 거랑 분회장님 차에 있던 돗자리를 깔았다. 집에 들러서 씻고 이불도 챙겨왔다. 분회장님은 집에 있던 침낭 세 개를 가져왔더라. 이후에 학생들이 대동제 때 쓰고 그냥 보관해두던 돗자리나 깔개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돗자리가 참 많아졌다. 이제 시작이다…. (안선영 사무장)
학교에 가지 못한 날이었다. 밤부터 비가 많이 온다고 했다. 본관 점거를 하게 됐다고 한다. 무서웠다. 적법한 점거라도 불법이라며 끌어낼까봐. 나중에 그게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받으면 뭐하나. 일단 당장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는 걸.. 학교가 다른 집회 현장보다 안전하다는 감각이 없다. 어쨌든 그런 일이 생길까 무섭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건 그 자리에 같이 있는 것일 테니 할 일을 다 끝내고 밤 9시즈음 본관에 갔다. 본관에서는 다들 각자 할 일을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당장은 평안해 보였고, 본관에서 자고 가는 학생도 있는 것 같아 나는 집에 돌아갔다. 아무 일 없이 오늘 밤이 잘 지나가기를, 점거가 길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혜영)
본관에 결국 들어갔다. 이제 성공의 길이 좀 보인다 싶어서 좋았고, 안이 바깥보다 시원하니 일단 그것이 좋았다. 근데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잔다고 하니 걱정이었다. 당장 다음날 먹을 밥은 어떻고. 밥 해먹을 도구도 없는데…. 걱정이 돼서 분회장한테 연락을 해서 찰밥을 해줄까 하니까 그래 달라고 했다. 찰밥은 반찬이 없어도 괜찮을 거 같아서. 한 3시쯤 일어나서 했는데, 시간이 있었으면 찔 수 있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꼬들밥이 됐다. 그래서 남겨둔 걸 먹은 애들아빠는 뭐 이런 걸 가져갔냐고 하더라. 그래도 잘 먹었는지 간부들한테 다음번에 또 해다 줄까 하니까 좋다고 해서 뿌듯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이제 관별로 돌아가면서 반찬을 해다 주고, 밥은 본관에서 지어 먹었다. 조합원들이 쌀도 많이 기부하고 해서 결국 다 못 먹었다고 한다. (윤금순 동원글로벌리더십홀 미화조합원)
6월 말 다리 인대가 파열되어 수술을 받았고, 7월 6일은 수술한 지 딱 2주가 되던 날이었다. 오전에 실밥을 풀고 집에 오는 길에 고려대분회가 본관에 들어가기 위해 대치 중이라는 소식을 확인했다. 심장이 철렁했다. 물리적 대치의 순간은 언제나 긴장된다. 누군가 다치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고, 특히 학교에서 벌어지는 대치라면 학생의 유무가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본관을 점거한다는 것의 의미는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는 나오지 않겠다는 선언이니만큼 지치지 않게 몸으로 가서 하는 연대가 필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집에 도착하는 대로 다시 학교로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오전에 에너지를 다 써버려 도저히 학교로 갈 힘이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쯤 고려대분회가 본관으로 진입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왜인지 모를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내일은 가야지.
그 내일이 7월 7일이었다. 실밥은 풀었지만 아직 이동에는 목발을 사용해야 했다. 정문에서 본관이 이렇게 멀었다니! 10시경 도착하여 본관에 있던 학우와 조합원분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아침 집회가 마무리된 본관은 어딘가 텅 비어 보일 정도로 조용했다. 다친 다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 나누기 좋은 이야기 소재이기도 했다. 12시가 되자 언제나처럼 중식집회가 진행됐다. 민주광장과 중앙광장을 거쳐 결국 본관에 들어왔다. 요구안은 여전히 같았고 머리 위 하늘이 막혔다는 사실만 변화했다. 덕분에 덥지 않다. 좋았다.
그날 밤 학대위 회의를 긴급 진행하였다. 크게 두 가지를 정했는데, 학생이 비지 않게 본관 당직 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것과 학교를 압박할 수 있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자는 내용이었다. 첫 제안일은 2주 뒤였으나 최종적으로 최대한 빠르게 기자회견을 준비하여 1주 뒤인 13일 오전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본관 점거가 2주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점도 있었고, 청소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진 지금의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판단에 그렇게 결정했다. (기영)
3일째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었다. 아무리 맛있어도 3일 연속으로 먹으니까 물리더라. 아침저녁은 (청산)MK에서 해준 밥, 반찬, 김치, 라면 이런 걸 먹었는데 그마저도 한계였다. 그리고 학교 태도를 보아하니 생각보다 점거가 오래갈 것 같았다. 그래서 조합원들한테 여기 며칠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반찬 해줄 수 있는 사람들 반찬 한가지씩만 해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관별로, 아니면 개별로 밥과 반찬을 해다 줘가지고 매일 매일 밥을 꼬박해 먹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이 밥을 해주는 걸 넘어서 쌀이랑 후원금도 주고. 밥솥은 포스코(LG포스코경영관)에서 빌렸다. 조합원들이 찌개도 끓이고 고기도 사다 주고. 저녁에 학생들 오면 조합원들이 후원금 준 걸로 치킨이랑 떡볶이도 시켜주고. 돈이 정말 많이 모였는데 날짜가 길어서 거의 결국 거의 다 썼다. 대신 조합원들이 준 것만 쓰고 외부에서 들어온 거는 안 쓰고 투쟁기금으로 넣어놨다. 투쟁기금은 투쟁할 때밖에 못 쓰고 이게 있어야 우리가 오래 가니까. 이걸 다시 또 조합원들한테 돌려주느라고 매번 집회 때마다 박카스나 수박 사드리고. 짜장면 한 번씩 시켜주고 그랬다. (서재순 분회장)
진입을 하고 나서부터 3일을 계속 본관서 잤는데, 아침 점심으로 사회도 계속 보니까 목이 갔고 기침도 계속 나왔다. 이게 혹시 코로나가 아닐까 염려가 되더라. 그래서 분회장님한테만 가서 조용히 말하고 집에 왔다. 사무장님이나 다른 조합원들이 물으면 그저 집에 빨래가 많아서 빨래하러 간다고만 했다. 아직 코로나인지 아닌지 확실치도 않은 상황에서 내가 몸이 안 좋다고 하면 조합원들도 동요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정확한 판단을 하고 이야기하는 게 낫다 싶었다. 몸살기가 있어 집에서는 계속 잠만 잤다. 모기가 없으니 좋더라.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라서 월요일부터 현장에 복귀했다. (김선영 서울지부 조직부장)
기자들이 종종 찾아온다. 이날도 뉴스1에서 젊은 기자 한 명이 왔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440원 인상이 원래 주장이었던 것 같은데 왜 400원으로 바뀌었냐고 묻더라. 사실 조합원들이나 학생들도 많이 물어봤고, 내 자존심이 무진장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 6월 7일 화요일에 각 학교 분회장들끼리 하는 지부회의가 있었는데 나는 못 가고 우리 부분회장 두 분만 갔다. 문제는 여기서 서울지부의 요구가 400원 인상으로 변경된 거다. 아마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장을 찍으려고 그런 거였겠지. 각 분회에서 조합원들 불평불만도 많았을 거고. 근데 생각을 해보면 투쟁 시작하기 전도 아니고, 440원으로 3개월을 했는데 이렇게 중간에 바꾸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지부랑도 트러블이 좀 있었다. 그래서 이때 좀 노조를 그만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3개월을 440원 달라고 떠들었는데 갑자기 400원으로 바뀌니 분회장으로서 자괴감이 들고.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좋지가 않다. (서재순 분회장)
기자회견을 빠르게 준비해야 하는 만큼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TF를 별도 운영하기로 했다. 5명이 지원했고 나도 그중 한 명으로 기자회견 준비에 참여했다. 일요일 오전 회의가 진행된 장소도 본관이었다. 메가커피에서 커피를 들고 본관에 도착하니 이미 다른 분들이 계셨다. 논의할 안건은 크게 3가지였다. 기자회견 구성 논의, 퍼포먼스 구성, 그리고 앞서 논의한 바에 따른 실무 분배. 기자회견 제목을 정하는 것이 가장 골치가 아팠지만 무난한 것이 좋다고 ‘백일째 묵묵부답 고려대에 학내 노동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학생 기자회견’으로 결정됐다.
내용에 대한 논의는 집요해야겠지만 실무회의는 빠른 것이 미덕이라 생각한다. 빠르게 오전에 회의 진행을 마치고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회의를 빨리 마친 것은 아니었다.^^ (기영)
본관 점거 6일째. 점거를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 될 줄이야. 저녁에 갔더니 학생 아무도 안 자고 간다길래 이날은 내가 잤다. 집에 고양이(이름은 감자!)가 혼자 있는 게 안쓰러웠다. 감자야 미안… 누나가 집에 가면 간식 줄게….
침낭을 주섬주섬 펼쳐 본관 바닥에 누워 잤다. 살다 살다 본관에서 자는 날도 있고, 〈박물관은 살아있다〉 찍는 기분이었다. 인촌 김성수 동상이 움직여서 본관 안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아니면 본관 안에 귀신이 산다든가. 그런 상상을 하며 잠들었는데 내가 그런 상상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자던 중에 발가락이 따가워서 잠깐 깼는데 아무래도 학교 근처 산모기들이 물었나보다. 바늘로 살짝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다. (혜영)
오늘도 9시와 12시에 본관에서 집회를 했다. 서울지부 다른 조직부장들이 돌아가면서 방문해 마이크를 잡는데, 이번에 온 부장이 발언 도중 자신이 10년 전에 고려대에 왔을 때 총무처장이라는 분이 우리가 농성하고 와서 시위하고 그러면 ‘왜 우리 직원도 아닌데 여기 와서 그러냐’ 이런 얘기를 했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지금 총무처장이 문을 벌컥 열고 나오더니 자기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마이크를 잡고 거짓말을 하느냐 이런 식으로 따지고 연대온 학생들한테도 가서 저거 다 거짓말이라고 저런 거짓말 절대 믿지 말라고 그러는 거다. 그래서 내가 보다 못하고 가서 우리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그러시냐고 처장님 10년 전에도 여기 계셨냐고 하니까 당황하시더라. 10년 전 총무처장이 그랬다는 얘기인데 안에서 ‘총무처장’이라는 말만 듣고 불쑥 나온 거지…. 우리가 본관 들어오고 난 다음에 총무처장님이나 학교 측 누구도 우리한테 공식적으로 와서 힘든 건 없는지 묻는다거나 어떻게 잘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를 보여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자기한테 안 좋은 소리 하는 거 같으니까 그제야 처음 나온 거다. 처장님은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걸 알고는 머쓱하게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김선영 조직부장)
점심에 집회를 하다가 도중에 총무처장님이 갑자기 나오셨는데 정말 좀 무섭고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예전 얘기를 한 거였는데 지금 당신한테 하는 이야기인 줄 알고… 되게 좀 안 좋게 반응하셔서 걱정이 됐다. 근데 간부들이 상황을 잘 통제를 하고 설명을 잘해서 다시 들어가시는 걸 보면서 안심을 했다. 그렇게 노조가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보게 되니까. 확실히 분회장이 주는, 노조가 주는 든든함이 있더라. (정정매 법학관신관 미화조합원)
아침에 병원을 들렸다 학교를 가느라 기자회견 시간에 거진 딱 맞추어 도착을 했다. 구글독스로 수합 받아 예상했던 인원보다 많은 인원이 본관에 모여있었다. 기자회견 당일날 비가 많이 왔지만 아무래도 인원도 많고 플랑을 펼칠 것을 생각했을 때 외부가 낫다고 생각되어 예정대로 진행했다. 기자회견 내용은 단순했다. 복잡한 쟁점이 있는 사안이 아닌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고대분회의 두 가지 요구안인 임금 인상과 샤워실 및 휴게실 보완에 덧붙여 고려대 학생들도 이러한 고대분회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지난 몇 달간 매일 말해진 것들이었다. 사실 학생들이 지지하는지 여부가 시설 노동자의 권리 보장 여부를 결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여전히 대학생의 어떤 발언은 분명 학교에 압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압박을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회견이 마무리되고 생각보다 많은 기사가 나왔다.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기사의 요점은 연세대와 고려대 학생의 어떤 인성이나 교양을 비교하는 구도였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애초에 매년 있었던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언론의 관심이 모일 수 있던 까닭은 연세대 학생의 고소라는 외적 자극이 큰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물론 내부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외부의 자극이 있더라도 운동적 차원으로 수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내용을 보다 잘 구성했으면, 혹은 다른 방식으로 기자들과 만났다면 다른 내용이 기사가 실릴 수 있었을까. 연대생과 고대생을 비교하는 것은, 그것이 설사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방향의 내용이더라도 정말 청소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일까. 기자회견 이어진 학대위 회의에서도 이런 아쉬움이 많이 표현되었다. 아쉬웠지만 아쉬움을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 의미라고 생각한다. (기영)
고대에서 열리는 두 번째 집중집회였다. 도서관 근로장학이 3시까지인지라 2시 반에 시작된 집회 중간부터 참석을 했다. 늘 그렇듯 이번 집회도 라이브 중계를 했는데, 본관 앞에 사람이 가득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확실히 본관 점거 이후 이슈가 많이 돼서인지 정당 깃발도 보이고, 민주노총에서도 다양한 지부에서 온 것이 눈에 띄었다. 동시에 저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때 본관에서 근로장학을 하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상민아 시위하고 있니 난 건물 안에 갇혀서 구경 중”이라고. 그리고 근로장학생들에게 집회 참여한 학생들 중에 아는 얼굴 있는지 한 번 보고 오라는 지시가 떨어졌지만 자신은 그냥 다 모른다고 대답했다고도 전했다. 보통은 라이브 중계를 해야한다는 핑계로 연대 발언 순서에 빠지곤 했었는데, 그렇게 학교에서 보고 있다는 생각에 오기가 생겨 앞으로 나섰다. 물론 본관 점거를 하며 혼자 설 수 있는 튼튼한 삼각대를 새로 사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무튼… 막상 앞에 나서니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의 이목이 모두 나에게 쏠렸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래서 어버버하다가 어제는 비가 엄청 오더니 집회하니까 날이 좋아졌다는 둥 실없는 소리만 하고 마이크를 넘겨야 했다. 다른 학생들의 발언을 들으며 ‘아 나도 얘기할 게 더 있었는데’ 싶었는데 지금은 또 기억이 안 난다. (상민)
여섯 시에 시작한 편집회의는 열 시가 조금 넘어 끝이 났다. 아직 막차까지 한참의 시간이 남아 있었고, 마침 숙영이 본관에 갈 거라고 하기에 나도 쭈뼛대며 따라갔다. 입학 후 두 번째로 들어와 보는 본관이었다. ―본관에 처음 들어왔었던 건 2019년 본관 대행진 때였다― ‘농성장’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를 위압감을 풍긴다. 그러나 그날의 본관에서 풍겼던 건 다름 아닌 갓 지은 쌀밥 내음새였다. 분회장님은 내 소속 같은 것 대신 저녁은 먹었는지를 물으셨고, 먹지 않았다고 답하자 학생은 밥을 잘 먹고 다녀야 한다며 밤 열 시에 때아닌 진수성찬을 내어주셨다. 열 가지가 넘는 반찬들은 조합원들께서 직접 해오신 거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반찬들의 출신 지역도 가지각색이었다. 평소 양이 많지 않은 편인데도 주신 그릇을 싹 비웠다. 살짝 많이 먹은 감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다만 후식으로 먹으라고 주신 자두는 도저히 못 먹겠어서 그건 한사코 거절했다.
로비 중앙에 있는 탁자에서 할 일을 좀 하다가 막차 시간에 맞춰 본관을 나섰다. 앉아계시던 부장님, 양치를 마치신 분회장님, 사무장님께서 모두 나와 배웅해주셨다. 진작에 못 와서 죄송하다는 말씀은 삼키고 대신 자주 오겠다는 인사를 드렸다. 밥을 먹은 지 꽤 된 것 같은데 여전히 배가 불렀고, 부른 배보다 더 불러오는 마음이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날씨를 검색해보니 오늘 밤엔 그럭저럭 덥지 않게 지내실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열음)
본관을 점거한 지 열흘 차가 되었다. 정오마다 열리는 중식집회에는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과 기자들이 방문하고 있었지만 날이 지날 때마다 그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았다. 특히 수요일에 있었던 학생 기자회견 이후로는 본관에 오는 학생 수가 확 줄었다. 본관 당직 표 엑셀의 공란이 거의 채워지지 않는 것을 보고 실감했다. 본관 진입에 성공했을 당시 사람들 얼굴에서 비쳤던 열기나 기대감 같은 것들이 점점 아득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애초에 연세대 고소 사건 때문에 투쟁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것이었고, 또 학대위의 경우에도 일단은 이 관심이 식기 전에 서둘러 기자회견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 외에는 지속적인 활동을 계획할 동력 같은 것이 없었기에 지금과 같은 본관의 분위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정이 끝나고 저녁이 되어서 본관에 왔는데 어쩐지 학생이 나밖에 없었다. 혼자 있으려니 머쓱하기도 했고 학생은 많을수록 좋으니 어제도 본관에서 자고 갔던 친구들한테 연락해서 본관에 올 수 있으면 와달라고 했다. 친구들이 온 다음에는 다 같이 분회장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투쟁 기간 동안 분회장님의 어떤 면면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자신이 속한 노조에 대해 갖는 애정이나 책임감이 너무 커서 놀랄 때가 있었다. 이날처럼 노조의 역사를 모두 꿰고 있는 모습이나, 땡볕에 서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시간 동안 집회를 진행한다거나, 전반적으로 조합원들의 연령대가 높은 것을 배려해서 본관 농성에는 비교적 젊은 편인 분회장님과 사무장님 두 분만 참여하기로 한다거나, 자신의 고생에 대해서 조합원들 앞에서는 크게 내색하지 않는 모습 같은 것들이 그랬다. 그동안 어떤 궤적을 거쳐 그런 책임감과 애정이 자리 잡게 된 것인지 내밀한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점거 농성이 진행되던 기간 동안 본관에 자주 갔던 건 이런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분회장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또 우리끼리 떠들기도 하다가 다음날 퀴퍼가 있어서 아침 일찍부터 나서야 했기에 다른 친구들은 집에 갔다. 나 역시 퀴퍼에 가야했지만 본관에 학생이 한 명도 자고 가지 않게 되는 것은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고 주말에는 고대문화 체제개편을 2박 3일 동안 하느라 본관에 오지 못할 것이었으므로 본관에 남았다. 그래도 퀴퍼에 가려면 아침쯤에는 공작새 꾸미듯 치장을 해야했기에(...) 새벽 세 시쯤 주무시고 계시는 간부분들을 뒤로 하고 본관에서 나서서 집으로 향했다. (숙영)
오늘은 학생들이 통 안 왔다. 하루쯤은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래도 월요일에 조합원들이 해다 준 반찬을 다 먹느라 하루 세끼를 다 배터지게 먹었다. 생각해보면 코로나 이후로는 투쟁에서 밥을 해 먹고 그런 게 많이 없었다. 원래 우리 서울지부 같은 경우에는 농성 들어가면 밥을 많이 해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농성장 앞에서 청국장 끓기고 하는 게 일종의 시위니까― 2020년부터는 그런 게 별로 없었던 거다. LG트윈타워 때도 도시락을 시켜 먹거나 했었고…. 사실 고대 점거도 전 조합원들이 하는 게 아니니까 밥을 해 먹기 어려운 상황인 건데, 이분들이 집에서 반찬을 해다 주시니까. 학생들이랑 같이 동그랗게 모여앉아 그 많은 반찬 두고 앉아서 밥 먹는 거만 봐도 배가 불렀고 그거 사진 찍는 게 제일 행복이다. 물론 그렇다고 보기만 하고 먹지 않은 건 아니라 여기 열흘 있으면서 벌써 살이 2kg는 찐 것 같다.
사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학교는 묵묵부답이다. 이렇게 되면 지도부뿐만이 아니라 조합원 전체가 나서서, 그러니까 잠도 돌아가면서 자고 집회 시간(9시, 12시) 말고도 시간대를 나눠서 좀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분회장님께 말을 했다. 지도부만의 농성이 아니라 조합원 전체의 농성이 될 수 있게. 아마 마지막 전술은 파업일 텐데, 파업을 하면 굉장히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무노동 무임금이니까. 원래 투쟁이란 게 조합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투쟁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인데 무임금까지 감수하면서 효과를 보려면 (물론 학생들한테는 좀 그렇지만) 방학 이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니 아직까지 고려할 선택지는 아니었다. 일단 조만간 조합원들도 돌아가며 자는 것이 먼저일텐데 분회장님은 아직 조합원들을 재우기 싫어하는 눈치다. 그래도 시간 문제가 아닐까…. (김선영 조직부장)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어제 퀴퍼에 가지 못했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더니 괜찮아졌고 늦은 시간에 본관에 갔다. 본관에 올 법한 사람들은 다 퀴퍼에 갔다가 오늘은 집에서 쉬고 있지 않을까, 그럼 본관에 아무도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공대위 오픈채팅방에 올라온 당직 리스트에서도 아무 이름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혼자 가기는 아쉬워서 동아리 선배랑 같이 갔다. 선배는 본인이 18년 초에 코비 단기알바 채용으로 인한 투쟁에 참여했던 일을 얘기했다. 학교는 언제쯤 태도를 고쳐먹을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거야? 이렇게 답을 알 수 없는 얘기들을 하다 보면 소속도 없고 대의도 없으면서 집회에 계속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자정이 되어서야 선배는 집에 갔고 나는 남아서 잤다. (혜영)
7월 16일에는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있었다. 아직 걷는 것이 힘들어서 행진까지는 못 했고 부스들만 간단히 구경했다. 웬만한 굿즈에는 마음이 잘 흔들리지 않는 나지만 민주노총에서 만든 핸드폰 가방은 너무 깜찍하고 실용성이 좋아보여 구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퀴퍼가 끝나자마자 2박 3일간의 고대문화 체제개편 회의가 있어 하는 수 없이 홍대 숙소에 박혀있어야 했는데 본관이 걱정이었다. 생각보다 점거 기간이 길어지며 확실히 초반보다는 방문하는 학생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직 표 상 해당 주 주말에 본관에 있을 수 있는 학생이 없어 보여 체제개편 회의를 본관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왔다(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고). 물론 본관에 당장 학생 몇 없다고 큰일 나는 것이 아님을 안다고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신나게 놀고 회의했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집이 아니라 본관으로 향했다. 어차피 오후에 알바가 있어 나와야 하니 마음이라도 편하게 본관에 가자 싶었던 거 같다. 당연히 본관에는 퀴퍼 때 샀던 가방과 함께였다. 그걸 본 조합원분께서는 자연스럽게 퀴퍼 이야기를 하셨다. 젊은 사람들이 인내심이 있다고. 퀴퍼를 방해하고 반대하는 혐오 세력들을 보면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화가 솟는데 그것을 꾹 참고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계에 산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즉 2022년 한국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다른 생의 경험을 하였고 각자가 보는 세계에 접점을 찾을 수는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곤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장년층의 경우 청년층의 비해 퀴어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그것이 개인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이해해보는 시도는 언제나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활동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중년의 남성 조합원은 퀴어의 삶에 대해 평생 생각해보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노동조합 활동이 사회운동이 될 가능성은 이런 각각의 변화 때문은 아닐까. 공동의 공존을 사고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경험은 정말 귀하다. (기영)
한국노총 분회에서 투쟁기금으로 120만 원을 보내줬다. 흔히 어용노조라고 하는 한국노총이 우리 학교에 생긴 건 2013-14년쯤인데, 이후에도 매년 투쟁을 해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사실 그쪽 조합원들이야 평소에도 좀 응원해주고 보태주는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분회 차원에서 보내준 거는 진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감동인 것도 감동이지만 사실 마음이 복잡했다. 어차피 임금은 동일하게 오르니까 원래는 같이 해야 하는 투쟁인건데, 교섭을 우리가 한다고 해서 투쟁도 같이하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투쟁하기 싫다고 어용노조 만들어서 나간 거니까. 그리고 몇몇 조합원들이 같이하고 싶어 해도 위에서 막고 있다고 하고. 좋은 감정보다는 무거운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을 해줬다는 게 고마웠다. (서재순 분회장)
지긋지긋한 여름호가 드디어 나왔다. 5월 17일에 고려대분회 간부분들을 비롯해 김선영 조직부장님을 모시고 진행한 간담회의 내용을 정리한 기사가 학내 꼭지에 맨 첫 순서로 들어가 있다. 이 간담회를 처음 기획한 것은 4월 초였는데 그 당시에는 5월에 이미 투쟁이 끝나 있으면 어쩌지 걱정을 했었고, 간담회 진행 후에 내용 정리를 할 때는 책이 나왔을 때 이미 투쟁이 끝난 후면 어쩌지 고민을 했었는데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아마) 고대문화 역사상 최초로 본관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책을 배포할 수 있었다. 연대하러 온 학생분들이 좀 보시고 편집위원으로 지원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상민)
사람이 궁하면 뭔가가 생긴다고. 본관 점거 후에는 집회 사회를 매일 보는데 항상 고민이 되는 게 그 시간 동안 해야 할지 모르겠는거다. 그래서 이날은 우리 조합원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 투쟁에서 가장 필요한 게 생각을 해서 조합원들이 학생들한테 편지를 써보자는 얘기를 꺼냈다. 사실 조합원들이 성격상 뭐 하라고 해도 쉽게 나서지 않고 피하려 하고 그런 사람들인데 편지를 쓰자고 하니까 조합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다 쓰겠다고 나서는 거다. 정말 두 장 세 장 쓰신 분들도 계시고.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 채우기에도 좋았고, 나중에 학생 동지들도 와서 보고 정말 기뻐해 주셨고 답장을 적어서 또 붙이고 한 게 정말… 점거 이후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다. (김선영 조직부장)
오늘 집중집회는 카이스트에서 있었다. 카이스트는 대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학교 근처에도 있었다. 우리 선배들 말을 들어보면 예전에는 그냥 힘들게 투쟁만 했는데 올해부터 몸짓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서 집중집회를 할 때면 우리가 몸짓패로 초청을 받아서 갔다. 사실 초반에는 그 좁은 휴게실에서 유튜브 영상 보면서 외워야 해서 힘들었는데, 백일 넘게 하다 보니 이제는 연습을 안 해도 자동으로 몸이 움직인다. 사실 처음에 한다고 했을 때는 조금 쑥스럽고 창피하고 그랬는데, 다 같이 우리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그런 생각 자체를 안하고 열심히 하게 됐다. 우리가 그렇게 나와서 하니까 연세대에서도 뒤늦게 시작했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가 실력이 더 낫지 싶다. (여러 조합원 말씀 합친 건데 신입이라 하신 분 중 한 분 이름 넣을게요…)
농성 첫날부터 가끔 본관에서 잤다. 자지는 않지만 밤에 돗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거나 할 일을 하다가 집에 오는 경우도 있었다. 큼직한 타임라인보다는 자두를 들고 가서 나눠 먹거나 떡볶이가 너무 매웠던 일이나 새벽 다섯 시에 청소하러 들어오신 노동자분을 보고 집에 갔던 것과 같이 자잘한 일들이 기억에 더 많아서 이날도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화장실에 다녀오니까 문 앞에서 어느 키 큰 남성분이 분회장님께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분회장님 뒤에는 숙영이 서 있었다. 총무처장님이라는 그 남성분은 왜 여기서 이렇게 불편하게 주무시냐, 저희가 몇 번이고 집 가서 편하게 주무시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일 아침에 오시면 (본관) 문 열어드리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총무처장님의 목소리가 커지는 동안, 그 목소리에 짜증과 불만이 더해지는 동안 분회장님은 침착하게 그런 말(집에 가서 편하게 주무시라는 말)은 오늘 처음 들었고, 투쟁에 승리해야 집에 가서 편히 잘 수 있다고 대답하셨다. 나와 숙영은 그 뒤에 서 있었지만 총무처장님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총무처장님이 붙잡고 있는 문 사이로 모기가 들어오면 어쩌지, 밤새 사람들 자는 동안 모기 물릴 텐데… 하는 걱정도 중간중간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다른 조직부장님이 ‘우리가 집회하고 싶어서 이 본관에 있는 게 아니라 임금 올리자고 있는 것’이라고 맞받아치셨고, 우리가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총무처장님은 분에 못 이겨 화를 내시다가 결국 지쳐 “알아서 하세요 그럼”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가셨다. 분위기를 수습하는 건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수민)
거짓말이잖아. 우리더러 문 열어준다고 했다가 안 열어줬잖아. 몇 년 전에 본관 점거했을 때도 그렇게 말했었고, 그걸 믿고 집에 갔을 때 결국 거짓말인 걸 겪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를 무시했던 거고. 자기 혼자 동화 속에 살고 있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집회하고 싶어서 있는 게 아니잖아. (임금 인상) 도장 찍어달라고 있는 거지. (안선영 사무장)
서산에 딸래미가 사는데 강아지를 네 마리나 키운다. 근데 그중에 한 녀석이 췌장염이 걸려서 6월달부터 우리 집에 올라와 있었다. 거기 병원에서는 치료가 안 돼서. 이게 췌장염이 췌장만 아픈 게 아니라 간에 있는 담즙까지 망가뜨리는 거더라. 아무튼 병원까지 갈 때 항상 내가 데려다줘야 했는데, 여기 원청에 들어오면서부터 쉽지가 않아졌다. 그래도 잠깐잠깐씩 시간을 내서 다녀왔다. 사실 이렇게 길게 갈지 모르고 그냥 금방 끝날 거다 이렇게 항상 이야기를 했는데 너무 오래 가니까…. 맨날 강아지 얘기하면서 언제 집에 들어오냐고 물어왔다. 계속 내일은 들어와? 오늘은 들어와? 하고. 같이 살지를 않으니까 아무래도 상황을 잘 모르기도 하고. 근데 이번 주도 결국 결판을 못 봤다. (서재순 분회장)
대우조선 희망버스가 이날 있었는데 결국 이번 주말에도 고대에 있느라 가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업종이나 지역만 놓고 보면 정말 달라 보이지만 똑같은 하청노동자이고, 역시 임금 투쟁이라는 점에서 대우조선과 고대분회 투쟁은 분명 접점이 있었다.[2] 사실 최근 한국에서 임금 투쟁이 한두 줄이라도 기사가 나온 적이 많지 않은데, 대우조선이나 대학 청소노동자 문제 모두 꽤 화제가 됐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거제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공통점을 짚고 우리도 연대하고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영상을 찍어서라도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여력이 없어서 진행을 못 시킨 게 당일이 되니까 아쉬웠다. (김선영 조직부장)
이날은 SK미래관에서 서울시가 주최하는 ‘캠퍼스타운 정책협의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36개 대학의 총장/부총장이 참석할 예정이라 중식집회 대신 이곳에서 선전전이 이뤄진다고 했다. 3시경에 맞춰 숙영과 미래관에 도착했을 때 도시가스분회 조합원들은 이미 피켓을 들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서울시가 용역을 준 하청업체가 제대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인당 월 7만 원가량의 월급을 착복하고 있는 상황을 정상화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행사 시작이 가까워져 오자 대학 총장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고, 두 분회의 조합원들은 목소리 높여 ‘진짜 사장 총장님이 생활임금 책임져라’하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정작 뒤늦게 나타난 오세훈 시장은 정문이 아닌 지하를 통해 올라왔고, 행사가 끝나면 만나주겠다는 약속만을 남기고 들어갔다. 오래 기다린 끝에 다시 나온 시장은 미래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도시가스분회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하청구조 탓에 시가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애초에 정말 임금 착복이 맞는지를 회계사가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청업체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 학교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의 홍보 유튜브 채널에는 “갑자기 등장한 기습시위대! 과연 오세훈의 대처는?!”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고 썸네일에는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라 적혀있었다. (상민)
미래관 선전전을 기획하며 솔직히 말해서 힘들긴 했다. 일단 모든 총장 얼굴 기억을 못 하니까. 계속 핸드폰으로 총장들 얼굴 검색하고, 진행요원들이 누구 온다 누구 온다 하는 걸 모른 척하면서 계속 듣고 있었다. 오세훈 시장이 뒤로 온다는 것도 몰래 듣고 사람들에게 전달했고. 그래도 내 생각에는 이날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도시가스 노동자들과 대학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만나서 같이 진짜 사장이 우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외친 거니까. 어떻게 보면 업종도 다르고 일하는 것도 다르고 급여체계고 노동조건이고 다 다르지만 공통점 하나, 권한도 능력도 없는 바지사장들이 법적 사용자로 있다는 것 때문에 함께할 수 있었던 거다. 이중적인 고용구조로 인해 제대로 임금을 못 받는 사람들이 진짜 사장을 만나러 온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세훈 시장한테는 도시가스 노동자들이 시에서 산정한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문제를 얘기했고, 우리는 대학 총장들에게 실질적 사용자인 대학이 우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또 고대에서 그렇게 큰 행사를 하는데 그렇게 방해를 하는 게 학교에 압박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많이 미숙하긴 했지만 많은 총장들과 시장을 대상으로 선전전을 펼친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컸다고 생각한다. (김선영 조직부장)
솔직히 말하자면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필 행사를 고대에서 했다. 조직부장 하나가 밤 새우러 왔다가 인터넷에서 그거 보고 도시가스랑 같이하자고 해서 했는데…. 처음에는 우리 투쟁도 힘든데 도시가스까지 와서 하면 힘들고, 또 다들 원래 네 시면 퇴근하는데 퇴근하고도 있어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고민했는데 직종만 다르지 서울지부면 같이 해야 하니까 연대하는 차원에서 같이 나가서 했는데 결과적으로 하기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 학교 총장들이랑 시장이 다 왔고, 그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행동을 했고, 요구사항을 대학마다 주려고 했는데 똑같이 아무도 안 받아 갔다는 게 참. 그리고 결국 우리 총장님 얼굴도 못 봤다. (서재순 분회장)
숙영이 단톡방에 맛있는 걸 만들거나 사가서 조합원분들이랑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동안 얻어먹은 게 워낙 많다. 본가에서 안암으로 오자마자 건표고를 불리고 두부를 으깼다. 반찬으로 하기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마침 집에 남은 부추가 한 무더기 있어서 덮밥재료처럼 볶아가면 좋을 것 같았다. 양이 부족하면 어쩌지, 맛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는데 막상 가니까 그런 걱정은 전부 무색하게 상이 모자랄 정도로 조합원분들이 가져다주신 온갖 반찬이 가득했다. (수민)
IBS 측으로부터 협상 타결이 곧 될 거 같다는 소식이 왔다는 말을 듣고 편집회의 전 본관을 찾았다. 사실 본관 점거하고 일주일 내로 상황이 종료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 투쟁에 끝이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이번 소식에도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분회장님이나 조직부장님 모두 표정이 꽤 좋은 걸 보니 ‘아 진짜 되나 보다’ 싶었다. 뭔가 투쟁이 끝나면 시원섭섭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투쟁이 종료되면 가을호에서는 이제 그 과정과 의미를 잘 정리해서 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상민)
웬 청년 한 명이 혼자 들어왔는데 학생 같지는 않아서 물어보니 대학원생이라고 했다. 보니까 종이컵에다가 접시랑 젓가락 이런 걸 편의점에서 한 보따리 사가지고 오셨더라. 그러면서 예전 학부생 때 투쟁에 왔었던 얘기 같은 걸 하다가 알고 보니 며칠 전에 왔다 갔던 어떤 석사과정 학생이 이 학생의 선배였다. 그 학생은 음료수랑 돈 5만 원 주고 가면서 이름도 안 밝히고 갔었는데, 다행히 사진을 찍어둔 게 있어 보여주니 놀라면서 자기 선배가 맞다고 하더라. 내일 협상 타결이 될 것 같다하니 ‘제가 너무 늦게 왔나 봐요’라고 하길래 마음만이라도 고맙다 했다. 옆에서 사무장이 모기향이 다 떨어졌다고 사오겠다고 하길래 말렸다. 약간 호언장담하듯 한 건데 그게 들어맞았다 결국엔. (서재순 분회장)
협상이 타결됐고, 오후에 마무리 집회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근장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1시간만 외출했다. 마지막의 얼굴들을 보고 싶었다. 사실 어젯밤에 본관에 갔다가 들어가지 않고 돌아 나왔는데, 문을 열려고 보니 분회장님과 조직부장님이 둘이서 불을 꺼놓고 영상을 보고 계셨다.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지 가늠할 수 없었는데도 그랬다.
마지막은 시원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몸자보를 입지 않은 노동자분들은 오랜만이었다. 장마와 태풍과 폭염의 8월이 되기 전에 본관 점거를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발언을 하고 수박을 먹으면서 이렇게 여름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남고 노동자분들은 본관을 나가며 모두가 들떠 있는 틈에 나는 본관 정문 앞에 있었다. 정문으로 나가시는 노동자분들과 남은 여름의 안녕을 바라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 경험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잘 모르겠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느덧 1시간이 다 지나 뒤풀이에 참석은 하지 못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400원 인상된 학교로 복귀했다. (혜영)
전날 본관을 들렸을 때 협상이 내일 중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확정된 것이 아닌 만큼 공개적으로 발언하지는 않았던 내용이었다. 내일 된다고 하다가 안 되었을 때 감당해야 할 것은 된다고 말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28일 오후 타결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 올해 투쟁은 유난히 길었다. 투쟁이 길어지는 것은 무엇보다 조합원들을 지치게 하는 일이다. 더 길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 갈 일이 없던 날이었지만 고대분회에서 학생들을 위해 뒤풀이를 준비해주신다고 하여 방문했다. 돗자리에 둘러앉아 이것저것 배달 음식들을 잔뜩 얻어먹었다.
임금이 400원 올랐다. 하지만 남은 것이 오른 임금만은 아닐 것임을, 또 아니어야 함을 생각한다. 연대한 학생들에게 이번 여름의 경험은 어떻게 남았을까. 또 남아야 할까.그런 생각을 하면 승리의 기쁨보다 어떤 아득함에 압도됨을 느낀다. 그래도 아득함에 압도되어 작은 가능성을 놓치는 말아야지. (세민)
이날은 실감이 잘 안 났다 사실. 투쟁 끝나니까 마음이 편하고 쉬는 시간에 집회 안 나가고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어서 좋았다. 항상 청소를 빨리 마치고 나가야 했으니까. 점심도 허겁지겁 먹고. 근데 또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가지고 끝나고 나니까 좀 허전하더라. 항상 나가던 시간에 쉬려니까. 집회 가면 전혀 모르던 언니들한테도 인사하면 다정하게 받아주시고들 그랬는데. 어쨌든 가족들도 참 좋아했다. 내가 우리 집회하는 사진 계속 찍어서 가족 톡방에 보내고, 남편이 문구도 써주고 그랬는데. 딸들은 인제 곧 대학 졸업하는데 저번에 학교 가서 청소하는 엄마들 보면 인사 잘해드리라고 하니까 ‘당연히 기본으로 하지 엄마’ 그러는데 뭉클하더라. 사실 학생들 나와서 발언하고 그러는 거 보면 내 자식이랑 연배도 똑같은데, 학교에서 어떻게 안 좋게 대하면 어쩌나 걱정도 됐고. 다행히 그런 일 없이 잘 넘어간 거 같다. 학생들은 젊은 사람들이 할 것도 많은데 우리한테 신경 써주고 그런 게 너무 감사했다.
들어오기 전에는 이렇게 조끼 입고 투쟁하는 건 TV에서만 봤고 솔직히 나쁜 평가도 많이 들었는데 우리가 직접 하는 것 보니까 배울 점이 많다는 걸 느꼈다.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투쟁을 할까 싶었는데 여기 와서 듣고 보니까 충분히 느껴지는 거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안 된다는 걸. 우리 선배들이 해온 게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권리를 주장할 수라도 있다는 걸. 어차피 올려줄 400원 때문에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는 걸 보고 정말 질려버렸다. 그래도 지난 백 며칠 동안 매일같이 보면서 단결하고 화합하며 함께 투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정정매, 법학관 신관 미화)
서재순 분회장은 2주 가까이를 누워서 보내야 했을 정도로 몸이 아팠고, 김선영 조직부장은 고려대 투쟁이 끝난 다음 날에도 다른 학교에 가서 마이크를 잡았고, 여전히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다. 지난 8월 17일에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대학 미화·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임금 문제를 대통령이 해결하라는 결의대회가 열렸고, 8월 24일에는 18일 발효된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에 따른 기자회견이 열렸다. 공동교섭을 하던 13개 학교 중 여전히 4개 학교(덕성여대, 서강대, 성신여대, 숙명여대)는 임금협상이 완료되지 않았다(9월 15일 기준). 그렇게 청소·주차·경비 노동자들의 2022년 임금을 놓고 싸우는 투쟁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채 대학들은 2학기 개강을 맞이했다. 그리고 11월에는 다시 용역업체 입찰이 예정되어 있다.
앞선 기록들을 편집하며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본관에 모여앉아 같이 밥을 먹은 이야기였다. 원래도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데 그것보다도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 반찬을 하는 마음, 학생들이 먹는다니 조금이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 이 반찬도 저 반찬도 맛있어서 다 먹어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 맨날 얻어먹기만 하는 것이 죄송하다며 과일과 빈대떡과 음료수를 사 오는 마음, 식사를 마치고 치울 때 서로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물가 상승이 극심한 시기에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만 시급을 인상해달라는 요구에도 137일간 아무 응답이 없었던 학교와의 투쟁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음 덕분이었으리라고 지레짐작해 본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투쟁, 대학교 시설노동자 투쟁에 있어 2022년은 분명 기록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 의미를 아직은 명확히 규정할 수 없지만, 우선 그 마음들을 잊지 않기로 한다.
편집위원 상민 엮음 / poursoi0911@gmail.com
2022년 고려대분회 투쟁 타임라인
2020년
11월 4-16일 고려대, 미화 담당 업체 공개입찰 → (주)IBS인더스트리(이하 IBS)와 계약.
2021년
3월 23일 고려대분회, 시급 130원(2021년 최저임금 인상분) 인상 요구하며 투쟁 시작.
4월 21일 130원 인상 타결로 투쟁 승리.
11월 고려대, IBS와 계약 1년 연장.
11월 2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하청업체 1차 임금 교섭(고려대 등 13개 사업장, IBS 등 16개 업체).
서울지부는 서울시 생활임금(10,800원) 요구, 사측은 아무런 안을 내놓지 않음.
11월 23일 고려대분회-총무부 1차 면담. 2022년 서울지부 집단교섭 요구안 전달.
2022년
2월 15일 서울지부-하청업체 10번째 교섭 → 이때까지도 16개 업체는 모두 어떠한 안도 내놓지 않음. 결국 결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노동쟁의 조정 신청.
2월 16일 고려대분회-총무부 2차 면담. 서울지부 집단교섭 결렬 상황 설명. 학내 휴게실 및 주차, 보안, 미화노동자 노동환경 관련 논의.
2월 28일 지노위 1차 조정.
3월 3일 2차 조정 → 지노위에서 400원 인상으로 권고안 제시.
3월 11일 하청업체들이 거부하며 3차 조정 결렬.
3월 14일 고려대분회 전 조합원(고려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미화, 보안, 주차 관리 노동자) 투쟁조끼(몸자보) 착용하고 근무 시작.
3월 30일 고려대분회 전 조합원 점심시간(12시∼1시) 이용하여 중식집회 돌입. 매 근무일 민주광장에서 중식집회 진행. 매번 본관으로 행진하는 것으로 마무리.
4월 1일 고려대분회-총무부 3차 면담. 서울지노위 조정 결과 설명(권고안 및 조정 결렬).
4월 6일부터 매주 수요일 13개 사업장 돌아가면서 결의대회(집중집회) 진행.
4월 14일 고대문화 편집위원회,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중식집회 중계 시작.
4월 20일 중간고사 기간 시작됨에 따라 소음으로 인한 학생 피해 최소화를 위해 중앙광장으로 이동해서 중식집회 진행.
4월 28일 고려대분회-총무부 4차 면담. 임금 및 요구안 관련 시급한 해결 촉구.
5월 16일 연세대 재학생 3명, 집회 소음으로 수업권이 침해됐다며 연세대분회를 업무방해 및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
5월 17일 고려대분회-총무부 5차 면담. 용역업체와 논의를 진행 중이니 잘 해결될 것이라는 말만 반복.
5월 17일 18:00 고대문화 편집위원회 X 민주학생기념사업회, “고려대학교 미화·주차·경비노동자와의 연대 모색하기” 간담회 개최.
5월 18일 교직원 및 학생들 대상으로 정문 앞에서 오전 피케팅(출근 선전전) 진행 시작. 매 근무일 8시부터 9시에 진행.
5월 21일 고려대학교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이하 학대위) 결성. 참여단체 - 고대문화 편집위원회,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 민주학생기념사업회, 서울지역대학인권연합동아리 고려대지부, 생활도서관, 스튜디오R, 여학생위원회, 정의당 고려대 학생위원회, 정치경제학 연구회 수레바퀴.
6월 9일 고려대분회-총무부 6차 면담. 타 사업장 상황 공유.
6월 10일 홍익대 잠정 합의.
6월 15일 동덕여대 잠정 합의.
6월 20일 이화여대 보안직 잠정 합의.
6월 20일 날이 무더워짐에 따라 그늘이 있는 본관 앞에서 중식집회 시작.
6월 22일 14:30 고려대 중앙광장, 본관 앞에서 서울지부 결의대회(집중집회) 진행.
6월 29일 앞서 연세대분회를 형사고소했던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연세대분회 분회장과 부분회장을 상대로 민사고소(“노조의 교내 시위로 1~2개월간 학습권을 침해받았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정신과 진료비 등으로 638만 6,000여 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며 큰 사회적 이슈로 번짐.
6월 30일 각 관 대표들 총무부 항의 방문(7차 면담). 7월 4일 총무부장 면담과 7월 5일 IBS와 협의 약속. 면담 요청 시 언제라도 응하겠다는 것도 약속.
7월 4일 총무부장 코로나 확진으로 면담 불발.
7월 5일 IBS-총무부 면담 진행했으나. 양측 모두 어떠한 안도 내지 않고 서로 책임을 전가함.
7월 6일 연세대비정규공대위, 연세대분회 투쟁 지지 기자회견 개최.
7월 6일 10:30 총무처에 면담 요청. 학교는 본관 모든 문을 막고 조합원들이 본관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밖에서 면담 진행하자고 함.
10:40 연대온 학생들과 함께 조합원들 각 출입문 앞에서 본관 출입 요구하며 연좌 농성.
11:30경 본관 진입하여 본관 1층 로비에서 연좌 농성 시작.
오후 학교에서 IBS에 “미화노조의 행정업무 방해 행위 중단 요청” 공문 발송. IBS 직원들이 본관으로 찾아와 해당 사실 전달하며 오후 4시까지 본관에서 퇴거할 것을 요구했으며, 퇴거하지 않을 시 업체와 농성자들을 업무방해로 고소할 것이라 했음을 농성자들에게 전달.
학교 측 입장은 현재 책임자가 없으니 농성을 해제하고 기다리라는 것, 분회 측 입장은 책임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농성하겠다는 것. 농성을 해제해야 대화하겠다는 쪽과 대화를 해야 농성을 풀겠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섬. 결국 고려대분회 조합원을 비롯해 학생들과 10여 명이 함께 투쟁 99일 차 만에 본관 철야 농성 돌입.
7월 7일부터 매 근무일 9시, 12시에 집회 진행. 연세대 이슈와 함께 묶어서 고려대분회 투쟁을 다루는 기사들 나오기 시작.
7월 13일 11:00 학대위 및 지지학생들 “100일 째 묵묵부답 고려대에 학내 노동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학생 기자회견” 개최.
7월 14일 고려대 본관 앞에서 두 번째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결의대회 개최.
7월 17일 한겨레 기사 ⸢고려대 청소노동자는, 씻고 싶을 때 ‘대걸레 빠는 곳’ 갑니다⸥ 발행됨. 고려대 서울캠 에브리타임에 해당 기사를 소개하는 게시글이 HOT 게시판에 갔으나 이후 추가적인 반향은 없었음.
7월 20일 이화여대 미화도 잠정 합의.
7월 20일 고려대학교 민주동우회, 고려대학교 민주단체협의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고대의료원지부에서 투쟁 지지 플랑 부착.
밤 총무처장 와서 집에 가서 주무시고 내일 오시면 문 열어주겠다고 함.
7월 21일 IBS 상무와 부장, 본관 찾아와서 다른 학교 잠정 합의한 것이 사실인지 보여달라고 함. 400원 인상분 중 학교에서 200원을 부담하는 안을 제안했으나 IBS에서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휴게시설 문제는 학교와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밝힘.
7월 25일 SK미래관에서 열린 ‘캠퍼스타운 정책협의회’에 정진택 포함 36개 대학 총장, 오세훈 서울시장 참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도시가스분회와 고려대분회가 공동으로 행사 전 선전전 진행.
7월 27일 IBS 측에서 곧 학교와 협의가 될 것 같다고 고려대분회 측에 전달.
7월 28일 시급 400원 인상으로 잠정 합의, 본관 퇴거. 투쟁 137일, 본관 점거 23일 만의 투쟁 승리.
[1] 상민 (2022.07.). 간담회: 고려대 미화·주차·경비 노동자와의 연대 모색하기.
[2] 대우조선 파업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화보3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를 참조하라.
참고문헌
김민호 (2022.03.02.). 공공운수노조 서울도시가스분회, "서울시가 산정한 적정 임금 지급하라". 참여와혁신. Retrieved from http://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631
양한주 (2022.05.18.). [단독] “시끄러워” 연세대 학생, 청소노동자 집회 고소, 국민일보. Retrieved from https://m.kmib.co.kr/view.asp?arcid=0017091763
양한주 (2022.06.29.). [단독] “집회로 학습권 침해” 고소 연세대생, 민사소송 제기. 국민일보. Retrieved from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4252626
이혜정 (2022.08.25.). 오세훈 시장, '임금 삭감' 항의하니 "선 넘지 마세요". 프레시안. Retrieved from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82505071905777
조은진 (2021.05.02.). 본교 미화노동자 시급 130원 인상하기로. 고대신문. Retrieved from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32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