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고려대분회' 여는 글] 편집위원 수민
작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3월 말에 갔던 LG트윈타워 농성이다. 문화제가 끝나고 빌딩 앞에 세워놓은 텐트에서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예상치 못한 경찰과의 대치가 벌어졌다. 노동자와 연대학생, 시민 약 삼십 명 가량을 막기 위해 대열을 맞춰 선 백 명이 넘는 경찰과 용역은 그 자체로도 충격이었다. 뉴스에서 보는 것과 실제 현장에 있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눈앞에서 용역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이 쓰러지고, 여기저기서 고함과 비명이 들리는 현장에 있었던 그 삼사십분은 작년의 모든 일 중 단연 가장 잊혀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 일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아마 처음으로 직접 마주한 폭력성 때문일 것이다. 만약 더 많은 사람이 다치고 더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그 일을 제일 먼저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을 것이다. 2019년 7월의 비질이 여전히 생생히 기억에 남는 것처럼, 2021년 3월의 LG트윈타워 농성이 나에게 그랬다.
그 경험은 한동안 나를 압도했다. 압도당한 사람은 매몰되기 쉽고, 하나에 매몰되면 관성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날 안암에 돌아와서 그동안은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몰랐던 청소노동자 집회를 알아챈 것도, 왜 가야 하는지 가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줄지어 앉은 노동자분들 뒤에 앉았던 것도, 그 이후에 다른 집회들을 되도록 다 가려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의 다소 시끄럽고 충격적이었던 경험과 다르게 집회는 몇몇 노동자분들과 연대학생들의 발언을 듣고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끝났다. 시설관리노동자 집회가 왜 벌어지는지,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알아보지도 않은 채로, 단지 ‘나도 참여했다’는 느낌만 남기고 작년은 끝이 났다.
올봄부터 다시 시작된 집회는 유독 길게 이어졌다. 고대문화가 중식집회를 중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종종 점심시간에 찾아가 몸짓도 따라하고 발언도 듣고, 집회가 끝나고 분회장님과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조합원분들은 매일 집회를 생중계하는 고대문화 성원들과 연대발언하는 몇몇 학생들을 기억하기 시작하셨다. 매일 찾아가지도 않고, 발언도 한 적 없는 나는 어떤 때는 ‘저번에도 왔던 학생’, 어떤 때는 ‘그냥 지나쳐가는 학생’이었다. 본관에 진입하던 날을 비롯해 밤에 찾아가 이야기하고, 반찬을 해가고, 본관에서 자다가 새벽 일찍 나오는 날이 몇 번 더 이어졌을 때쯤에는 나도 분회장님과 사무장님이 반겨주시는 아는 얼굴이 됐던 것 같다. 여전히 아침과 점심에 열리는 집회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고, 이게 어떤 투쟁인지, 왜 매년 반복되는지 등은 알지 못했다. 그런 것들을 알아보고 집회에 가는 것보다 시간이 남을 때마다 먹을 걸 들고 본관애 찾아가는 게 훨씬 쉬웠다. 본관에서 하루 자고 오면 그 후 이삼일 정도는 마음이 편했고, 투쟁이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는데도 내가 매일 더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는다는 걸 상기할 때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올해 봄에도, 그 전과 후에도,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고 학회에서 공부하려고 했던 이유나 동력은 죄책감이나 관성 말고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질문하면서 이 질문도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마음으로는 무언가를 오래 지속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나? 그런데 내가 어떤 마음으로 임하는지가 정말 중요한가? 명확한 생각정리와 판단 없이 의심에서만 비롯되는 질문들이라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그저 반복하고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않는다.
작년 아시아나케이오 문화제 연대발언을 쓸 때, ‘노동자의 문제는 결국 타인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쓴 적이 있었다. 왜 연대하는지, 문화제를 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투쟁 현장에 매일 가지 못하면서, 종종 잊고 살면서도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은 너무 어려워서 고민조차 하지 않고 그냥 덮어둔 채 무엇이 연대고 왜 연대해야 하는지 썼다. 친구가 발언문을 읽으며 피드백했던 부분은 정확히 그런 지점이었다. 공항 하청 노동자와 대학생의 노동환경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는 점, 동일성에 기반한 연대가 아닌 바라는 세상에 접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매일 투쟁하는 현장에 함께할 수 없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하는 투쟁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 무작정 투쟁현장을 찾아다니고 세미나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 그걸로 되면 좋겠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던 시간은 그때 부끄럽게 끝이 났다. 사실 여전히 잘 고민하지 않아서 친구들의 의견 없이는 똑같은 고민들을 진부하게 반복한다. 당장 올봄 집회가 나와 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조합원분들에게, 사용자와 학교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고 남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 내년에도 고려대분회 집회와 다른 철거현장에, 문화제에, 시위에 갈 것이다. 단지 투쟁현장에 가는 것 말고 무엇이 또 중요한지 계속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활동이 어떤 다양한 방식으로 삶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는지, 단지 ‘개인의 실천’의 만족감에서 끝나지 않는 활동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오래 지속될 이 과정의 시작 중 하나가 나에게는 이 글을 쓰는 것이었고, 이 글을 읽는 몇몇 사람에게도 그런 의미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편집위원 수민 / ssgi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