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편집위원 유리
1973년 미국. 미 연방대법원은 그해 1월 22일 임신 중지에 대한 접근을 범죄화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임신 중지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이다. 이 판결을 통해 여성의 ‘낳지 않은 권리’는 미국 연방 차원에서 보장하게 된다. 그러나 2022년 6월 24일 미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 중단을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에 6대 3으로 합헌 판결을 했다. 이 판결로 인해 ‘로 대웨이드’ 판결은 뒤집혔고, 임신 중단에 대한 처벌은 개별 주의 법에 따라 가능해졌다. 이는 미국 여성들의 임신 중단 접근권에 대한 현격한 훼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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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에 미국의 페미니스트들과 여성들뿐 아니라 전 세계의 페미니스트들이 함께 슬퍼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혔다는 것은 분명 위기의 징조이다. 자유주의가 보장해온 여러 권리의 내용이 후퇴하고 있는 2020년대. 이미 쟁취했다고 생각하는 최소한의 권리마저 번복되는 현실은 충분히 좌절스럽다.
그러나 좌절만이 남지는 않기를. 8월 2일, 공화당이 다수당인 캔자스주에서는 대법원의 판결 뒤집기 이후 첫 번째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다. 결과는 반대 60%로 임신 중단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주 헌법을 원래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비록 미연방 차원에서 임신 중단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지 않더라도 개별 주체들이 이를 막아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었다.
© 상민
2022년 한국.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 낙태죄는 더이상 형법상 나를 구속하지 못한다. 앞선 페미니스트들과 동료 페미니스트들의 우직한 투쟁 덕분임을 안다. 임신 중지는 더이상 처벌과 단속의 단어가 될 수 없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21년부터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임신 중지는 처벌의 대상이 아니지만, 정부와 국회의 책임 방기로 인하여 여전히 안전한 임신 중지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는 공백으로 남아있다. 유산 유도제 도입, 건강보험 적용을 책임지고 추진해야 할 보건복지부와 책임부처들이 ‘입법 공백’으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서 추진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기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임신 중지가 더 이상 법적 처벌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한 기준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안고 출발한 <모두를 위한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는 지난 8월 17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했다. 요구안은 총 7가지이다.
하나, 임신 중지 관련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전면 적용하라
둘, 유산 유도제를 하루속히 도입하고 접근성을 확대하라
셋,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하라
넷,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종합 정보 제공 시스템을 마련하라
다섯, 임신 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교육을 실행하라
여섯, 사회적 낙인을 해소하고 포괄적 성교육을 시행하라
일곱,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을 위한 법체계를 마련하라
여성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재생산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명 옹호론자’들이 그토록 애달피 외치는 생명권이 무엇인지조차 우리는 모른다. 그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저 너머의 세계니까.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발 딛고 있는 오늘뿐. 우리는 단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길을 만들 뿐이다.
편집위원 유리 / beisolated62@gmail.com
참고문헌
기사 및 온라인 자료
신창호 (2022.08.05.).‘보수 아성’ 캔자스의 반란… 주민투표로 낙태권 옹호. 국민일보. Retrieved from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4258098
성적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SHARE (2022.08.17.). [성명]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출범 선언문. Retrieved from https://srhr.kr/statements/?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2616424&t=board
플랫폼씨 (2022-08-10) 안전한 임신중지는 전 세계 모두를 위한 소중한 권리이다-<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출범을 환영하며. Retrieved from http://platformc.kr/2022/08/keep-abortion-leg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