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편집위원 유리
ⓒ 금속노조
이 사진이 이번 여름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일 것이다. 유최안 금속노조 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지난 6월 22일 가로 세로 높이 1미터의 철제 상자 속에 자신을 가두었다. 좁은 철장에 스스로 갇힌 이의 ‘이대로 살 수는 없다’라는 외침은 그 자체로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도크(작업장)를 막아선 파업은 51일만인 7월 22일 협상이 타결되며 종료되었다. 유최안 부지회장이 스스로를 가둔지 31일만의 일이었다.
파업 이후를 살아가야 할 우리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외침을 단지 괴로움만으로 읽지는 말아야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투쟁의 처절함 뿐도 아니어야겠다. 괴로움과 처절함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구호가 단지 간절한 외침만을 남기고 잊히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문장을 다시 3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연하지만 파업은 노동자들에게도 괴로운 선택지이다. 게다가 이번 대우조선 하청지회의 파업은 자신을 좁은 철창에 가두는 등 강도 높은 투쟁까지 전개했다. 이 정도의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조선업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가 열악했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들은 고질적인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대형 조선소들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인건비 절감 등을 위해 사내하청을 적극 이용하기 시작했다. 선업 다단계 하도급의 일반적인 구조는 ‘원청 조선소 → 1차 하청업체(사내하청 혹은 사외 협력업체) → 물량팀장 → 물량팀원’으로 돼 있다.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에서도 가장 힘든 중노동을 담당하지만, 이런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는 20-30년 경력을 가진 숙련노동자미자도 최저임금을 받는다. 이번 파업 투쟁에서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했던 첫 번째가 위의 사진이었다면 두번째는 숙련공의 임금이 200만 원 수준이라는 점 이었으리라.
다단계 하청구조의 문제는 조선업 전반의 문제이지만, 대우조선해양은 그런 조선업에서도 유독 열악한 사업장이다.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은 국내 조선 3사(한국조선해양, 조선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중 가장 낮다. 대우조선지회 노동자들은 동종업계 대비 처우가 열악해진 원인으로 산업은행(이하 산은)을 꼽는다. 산은은 대한민국 금융위원회 산하 기타공기관으로 기업금융 지원을 위해 세워진 국책 은행이다. 산은은 20년 넘게 대우조선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그 지분율은 올해 기준 55.7%에 달한다. 대우조선은 사실상 산은의 자회사라 볼 수도 있는데 문제는 대우조선의 산업은행이 매각을 위해 무리한 구조조정을 벌이면서 직원들의 처우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대우조선 하청지회가 말하는 30%의 임금 인상이 과도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조선업 불황시기 노동자들의 양보로 감축했던 임금에 대한 ‘회복’을 요구한 것일 뿐이었다. 조선업의 불황의 원인은 무엇이었나.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해운업 불황, 곡가의 용선료로 인한 1차적 위기가 있었으나 이를 심화시킨 것은 재벌의 경영실패였다. 대우조선은 2008년 이후 만성 적자를 앓고 있었으나 무분별한 사업투자와 확대를 멈추지 않았다. 위기를 자초한 것은 경영진이었지만 피해를 입은 것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거나 임금이 삭감된 노동자였다. 이렇듯 왜곡된 산업의 위기는 노동에게 닥친다.
한편 이번 파업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은 철창에 갇힌 노동자도, 15m 난간에 오른 노동자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파업 기간 중 대우조선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하청지회의 파업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7월 11일 대우조선 노조(정규직 지회)는 성명서를 내고 “하청지회는 대우조선 전 구성원의 공멸을 막기 위한 결단”을 내려달라는 요구를 했다. 선박을 점거하는 식의 투쟁을 멈추라는 것이었다.
노노갈등은 단순히 언론과 정치권의 공작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분할된 노동시장에서 원하청노동자들이 공통의 이익을 모색하고 연대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된다. 이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이미 당면한 문제이다. 대우조선 정규직 노조는 하청 노조와 함께 속해 있는 금속노조에서 탈퇴하자는 총회까지 열었다. 다행히 1차 투표에서 찬성(674표)보다 반대(689표)가 더 많아 개표가 중단되며 정규직 노조의 탈퇴없이 이번 파업이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번 정규직 노조의 파업 반대가 ‘노동조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 김용락
7월 22일 오후 노사가 합의한 내용은 임금 4.5% 인상과 폐업 하청업체 노동자 고용 승계를 위한 노력이었다. 파업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임금 30% 인상은 철회되었으며 파업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 부분도 추후 협상 과제로 남겨둔 채 통과된 협상이었다. 이번 파업의 시작이 2016년 조선업 불황기에 삭감된 임금 회복을 목표로 하였던 것임을 생각하면 어쩐지 뒷맛이 쓴 것이 사실이다.
협상 타결 소식 이후였지만 예정되어 있던 ‘7.23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희망버스’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아마 모두 고생한 하청지회 조합원들에 대한 응원과, 앞으로 계속될 투쟁에 연대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참여였을 것이다. 당일 진행된 금속노조 결의대회와 문화제에서도 발언자들은 협상 결과에 대한 아쉬움에 대해 ‘두 보 전진을 위한 한 보 후퇴’라는 평을 남겼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현재 조선업의 상황에서 ‘두 보 전진’이 가능해지는 것일까. 파업이 끝났지만 해결된 것보다는 해결되지 못한 것이 더 많아 보인다. 당장의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문제만 해도 누구 하나 뾰족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난제이다. 지금까지 대우조선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투입된 자금만 하더라도 4조 2000억 원이다. 게다가 이 비용은 앞으로도 계속 늘 것으로 예측된다. 산은은 대우조선을 인수할 후보를 찾고 있으나 전망이 밝지 못하다. 글로벌 경기에 따라 업황이 출렁이면서도 설비 유지 등 고정비가 많이 드는 조선업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뛰어들려는 국내 재벌사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독과점 이슈를 피하려 LNG 운반선 등 일부를 분리 매각하는 것도, 도크를 공유하는 조선업 특성상 쉽지는 않다.
여기에는 대우조선해양의 특수성도 존재하지만, 더 나아가 이는 조선업이라는 산업 전반에 대한 질문이 될 수밖에 없다. 조선업은 사양산업인가? 그렇다면 더이상의 공적 투자를 멈추고 최대한 빨리 구조조정을 해야할 것이다. 조선업이 리스크가 크고 중국 등에 밀려 더이상 한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어디에 더 강조점을 두고 어디를 포기할 것인지를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집약적인 조선업의 특성상 산업의 역량이 노동자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열악한 처우로 노동자들을 몰아넣는 선택은 산업의 문제마저 포기하는 선택이다. 교섭이 끝난 뒤, 8월 23일 대우조선해양 이사회는 대우조선 하청지회에 대해 47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즉각 노동3법을 무력화하는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내며 대우조선해양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사측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우회하는 선택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지만 대우조선 하청지회 파업이 남긴 합의서는 역사적이라 평가해야 할 것이다. 2010년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사건 판결에서, 원청회사가 하청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파업을 두고 ‘임금 4.5% 더 받자고 8100억 원대 손실’이라며 폄하하는 보도가 나왔다. 애초의 요구가 ‘임금 30% 인상’이었던 만큼 하청 노조가 지나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비록 하청업체 대표단과의 합의일지언정 ‘금속노조’ 이름을 걸고 합의서를 남긴 것은 한국 제조업의 역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합의서가 말해주는 것보다 말해주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파업은 세상에게 물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그 질문의 주어가 대우조선해양의 하청노동자만은 아니었으리라. 파업 기간 동안 마음 졸이며 기사를 확인했을 시민들은 하청노동자에 대한 연대로 화답했다.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이후의 세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편집위원 유리 / beisolated62@gmail.com
참고문헌
기사 및 온라인 자료
이건혁 외 (2022.07.12.). 대우조선 하청노조 파업에 ‘勞勞갈등’ 격화. 동아일보. Retrieved from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20711/114399984/1
이혜리 (2022.06.22.). 가로·세로·높이 1m…스스로 감옥에 갇힌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m.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206221651001#c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