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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혐오를 가르며 나아가기

[꼬문생각] 고려대학교 소수자인권위원

한국 사회를 덮친 혐오의 물결은 대학가에까지 닿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고려대학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시에, 혐오의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소수자인권위원회는 학교 내에 인권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고, 학교 밖에서도 다양한 인권 의제에 연대하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의 존재로 혐오가 사회를 대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혐오의 물결을 거스를 수 있길 기대한다.


소인위의 발자취들


하현: 작년 총학생회 중앙비상대책위원회에서 퀴퍼에 간다고 홍보했을 때 매우 기뻤다. 당시 소인위는 ‘박친 대학생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퀴퍼 트럭과 여학생위원회와 함께 퀴퍼 가는 행사를 준비하며 바쁘지만 기대에 찬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퀴퍼 참여에 대한 긴급 임시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고, 결국 총학의 퀴퍼 참여는 취소되었다. 눈물과 술로 그날 밤을 보내긴 했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잘 하자!’는 마음으로 퀴퍼에 다녀왔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 속에 지내던 중 퀴퍼 불참 의결 무효 연서명을 받는 학우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하게 되었다. 중앙운영위원회의 결과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에타 눈치를 보다 퀴퍼 참석을 취소한 사례로 이 사건을 남겨두지 않고 중비대위의 사과를 받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는 계속 남아있다. 낯선 중운위 절차 속에서 참관인인 나는 중압감에 손을 들고 발언 기회를 얻는 것도 쉽지 않았다. ‘퀴어는 반대하지 않지만 중비대위가 ‘문제의 여지가 있는’ 퀴퍼에 참석해서는 안된다’는 에타에서의 혐오가 반복되는 것을 들으며 화나고 상처받은 채 앉아있을 뿐이었다.


 2022년 말 당선된 제53대 총학생회장단의 정책질의서 답변을 받고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나 성의없는 답변을 보내오다니. 답변의 매 문장마다 빨간펜으로 지적하고 싶었다. 학인협 단위들간 논의가 길어져 3달 뒤에야 공개된 의견서가 이렇게나 큰 주목을 받을 줄 몰랐다. 의견서는 에타에 퍼날라졌고 핫게에 올랐다. 에타에 올라온 많은 조롱들, 정후에 붙인 의견서 앞에서 낄낄거리며 사진 찍던 사람들을 마주했던 순간은 잊지 못하지만,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총학생회의 무책임한 답변과 무엇이 문제인지를 지적한 의견서까지 봤을 것이라 생각하니 좋기도 했다.


 에타에서 혐오를 재생산하는 이들과 총학생회에 전하고 싶다. 미워해도 소용없어. 물론 매우 화도 나고 상처도 받지만, 너희의 혐오는 잘못됐지만, 우린 꿋꿋하게 나아갈거야. 200여명의 연서명 덕에 중비대위 퀴퍼 불참 의결의 잘못에 대해 다루는 중운위를 열 수 있었다. 올해 프라이드먼스를 맞아 ‘사람과사람’과 함께 진행한 행사는 많은 분들의 참여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것 봐! 많은 이들의 지지로 우리는 너희의 혐오를 이겨냈고, 함께라서 즐거워. 얼마 전 여학생위원회, 문과대학 성평등위원회와 함께 가는 퀴퍼를 준비하며 총학생회에 참여해달라고 연락했다. 답변은 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고려대학교에 우리가 존재한다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총학생회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다리: 작년 여름 고려대 본관 앞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결의대회에 참여했었다. 퀴퍼 행사를 준비하려 학교에 나와있다가 함께 따라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날씨에도 자리를 지키는 노동자를 보며 울컥했다. 교내에서 봄부터 있어왔던 투쟁에 대해 너무 몰랐던 내가 부끄러웠다.


 올해에는 바뀐 용역업체가 기존합의서 체결을 거부해 다시금 투쟁이 있었는데, 힘겹게 임금 400원 인상이 이루어진지 얼마나 되었다고 코로나 격리 기간을 무급휴가로 바꾸거나, 경조휴가를 축소하려는 용역업체와 여전히 무책임한 학교의 태도에 신물이 났다. 작년보다 더 적극적으로 투쟁에 동참하고 싶어 용역업체 본사 방문에 함께 하고 피켓 선전전에도 참여했다. 5월 초 회사는 기존 노동조건을 승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의 노동조건 후퇴는 막았지만, 간접고용에서 비롯된 고질적인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소인위와 함께하며


 다리: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우연히 집중모집 홍보글을 보고 들어온 소인위에서 2년 반 동안이나 활동하게 될 줄 몰랐다. 닷페이스와 같은 미디어를 접하면서 인권 문제에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지켜만 보는 것이 답답했던 터에 소인위를 알게 되었다. 코로나로 학교 활동이 많지 않던 때 온라인상에서라도 머리 맞대고 다양한 사업을 고민하는 시간들이 소중했다. 퀴어를 퀴어라 말하지 못하고 페미니즘을 페미니즘이라 부르지 못하는 일상을 살다가 소인위에 들어오고 나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집회에 참여하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음에 용기가 나면서도, 목청껏 구호를 외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말 오늘 한 일이 변화를 불러올까?’ 하는 걱정과 공허함이 들 때가 있다. 학내 사업을 진행할 때도  차별·혐오적인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만큼 충분할까 하는 걱정에 불안할 때도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으려면, 움츠러 들지 않고 공론장에서 소수자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아무래도 계속 활동하면서 알아나가는 수밖에 없겠다!


우연: 가입 당시 인터뷰지를 작성할 때 “소인위와 함께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소수자 문제들에 관심 갖는 것을 넘어서서 직접적인 활동을 하며 평등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답했었다. 처음에 한 다짐과는 달리 학교 수업 시간과 겹쳐서, 시험 기간이라서, 다른 약속이 있어서, 쉬고 싶어서 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길에서 소인위 깃발 한번 못 흔들어봤다. 그렇지만 아쉬운 기억만 있는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아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인위에서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 (이런 고민들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소인위에서 의미있는 연대를 하고 있음에도 우울한 뉴스 소식을 접할 때면 무기력해진다.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환경임에도 소인위가 있어서 살 만한 기분이 든다. 불의를 못 지나치는 기질은 여러 소수자성을 지닌 당사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인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건강한 의무감과 함께 상기된다. 이것은 소인위 활동을 지속하는 원동력이 되며,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도 여유가 될 때까지 소인위에 있으려고 한다.


 하지만 소인위에 온전히 소속되었다는 감각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특별기구임에도 소인위는 자치공간이 없는 점이다. 코로나19로 학교에 자주 오지 않던 시기엔 괜찮았지만, 대면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공간에 대한 아쉬움이 커졌다. 하루 빨리 소인위원들과 부대끼며 지낼 수 있고 몇십 년 후에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소인위만의 공간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하현: 코로나로 대부분의 단위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지만 오히려 소인위는 부흥기를 맞은 것도 같다. 코로나 시기, 인력난을 겪고 있던 소인위에 본인을 포함한 많은 신입위원이 들어왔고, 온라인 회의가 활성화되어 공간이 없다는 단점은 희미해졌다. 그리고 2022년 오프라인 강의가 다시 시작되자 대면으로 만나며 위원들끼리 친해지게 되었고, 오프라인 행사도 진행하고, 오랜만에 열린 집회엔 소인위 깃발이 휘날렸으며, 연대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면서 학내외 단체들과 친분을 쌓고 소인위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운좋게도 그곳에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혐오에 혹은 많은 업무에 힘든 날도 있고, 다루는 의제가 다양하다보니 놓치는 것도 많고 공부가 부족해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알차고 즐거웠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소인위가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후퇴하는 것을 막아내고 있고, 느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인위와 함께 할 수 있음이 행복하다.



고려대학교 소수자인권위원회 | haksoweek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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