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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대출반납기’에 대하여

[꼬문생각] 상민

나는 2021년 12월 말부터 중앙도서관(중도) 1층 인포메이션에서 근로장학생(근장)으로 일하고 있다. 각자 세부적인 역할이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크게 ①예약, 간편도서 관리, ②문과캠퍼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자동반납기 책 수거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스마트대출반납기(스대기)’가 있다.

우선 예약, 간편도서는 기본적으로 스대기에 탑재된다. 여기서 둘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예약대출은 지금 누군가가 대출중인 도서가 반납될 경우 바로 내가 빌려갈 수 있도록 ‘찜’해두는 것이고, 간편대출의 경우는 서가에 꽂혀있는, 그러니까 현재 대출중이 아닌 도서를 원하는 곳에서 수령할 수 있도록 신청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약도서는 별도로 수령처를 선택할 수 없이 무조건 책의 소장처에 있는 스대기로 설정이 된다. 대부분의 도서관 소장 도서 뒤편에는 RFID 태그가 붙어있고, 우리는 그 태그를 인식시킨 후 스대기에 예약/간편도서를 넣는다. 그리고 이용자가 와서 자신의 학생/교원증 등을 태그하면 선반이 돌아가고, 쇠로 된 팔이 밀어서 책을 떨어뜨리면 책이 나온다. 

하지만 스대기에 모든 책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너무 얇거나, 두껍거나, 작거나, 크거나, 낡았거나, 흐물거리는 책을 넣게 되면 책이 제대로 밀려 나오지 않게 되고, 운이 좋으면  제자리에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기계 아래의 문을 열고  들어가 책의 행방을 찾아야한다. 따라서 이런 책들은 우리가 일하는 곳에 있는 서가에 두고 간편대출의 경우는 수령처를 ‘인포메이션센터’로 변경한다. 예약은? 수령처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별도로 문자를 보낸다. (맞다. 그거 다 사람이 하는 거다.) 정말 ‘스마트’하다! 한편 스대기에는 반납 기능 역시 존재한다. 책을 넣으면 파란색 반납함에 떨어지고, 일정 무게 이상 차면 레일이 돌아가 다음 반납함에 책이 떨어진다(총 14개의 통이 들어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마다 그 반납함을 비우고, ‘대출가능’ 상태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문과캠퍼스 각지에 흩어져있는 자동반납기들 역시 마찬가지로 매일 반납함 상태를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방문해 비워준다. 

어느 날 누군가가 인포로 오더니 ‘여기가 스마트대출반납기인가요?’라고 물은 것을 기억한다. 혹은 카드를 띡 찍고 자기가 원하는 책이 바로 여기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존재한다. 백주년기념관(백기)에서 책을 반납해도 연체가 되지 않고, 다른 도서관에 직접 가지 않아도 하루만 기다리면 책이 중도 스대기 안에 들어있다고 연락이 오고, 카드만 찍으면 책이 바로바로 나오는 경험을 통해 이용자들은 우리 도서관을 “완전히 자동화되고 화려한” 도서관처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근장들이 매일 아침 9시에 10칸도 넘게 차 있는 백기 스대기 반납함에 있는 책들을 일일이 꺼내 대출가능 상태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매일 11시와 3시, 캠퍼스를 도는 트럭에 책을 담은 가방을 실어 보내는 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가방에 비닐을 씌워서 보내는데, 비닐에 구멍이라도 나면 책이 다 흠뻑 젖기 마련이다. 또한 탑재할 때는 여러 책들을 제외하지만, 반납 시에는 이용자들이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온갖 책들이 반납함에 들어있으며 절대다수의 도서 파손은 ‘스마트’대출반납기로 인해 발생한다. 이 도서를 수리하는 것 역시 사서 선생님들의 일이다. 그럼에도 ‘스마트’라는 이름 아래 구체적인 노동은 사라진다. 스대기에서 누군가가 책을 꺼내거나 넣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해 반납함을 비우고 있는 우리를 보며 흠칫 놀라는 이용자들을 보며 이를 여실히 느낀다. 

근래에 김동원 총장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라는 대기업 오너들과의 인터뷰집을 전교에 ‘뿌렸다’. 책은 도서관 출입구 앞에 잔뜩 쌓였고, 중도 근장들에게는 한 권씩 의무적으로 주어졌다. 책 앞에 붙어져 있는 총장의 편지에는 “우리 삶에 튼튼한 기초를 놓은” 이들의 “기업가 정신은 21세기 새로운 세계를 살아갈 고대생 여러분께도 큰 일깨움을 줄 것”이라 쓰여있었다. 아마 천 권은 족히 넘을 그 책 앞에 총장의 편지를 일일이 붙인 것도 어느 근로장학생일 것이다. 구체적인 노동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서도 노동을 비가시화하는 ‘기업가 정신’(과 그것을 그렇게 부르는 총장님의 말씀)은 ‘스마트’대출반납기를 앞세운 도서관 행정과 퍽 비슷하다. 그래서 앞서 웃긴 일화로 소개한 ‘여기가 스마트대출반납기인가요?’라 물은 이용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네 저희가 스마트대출반납기입니다.’



상민 | poursoi09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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