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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인터뷰: 청년, 나아가 인간다운 삶

[특집 인터뷰] 편집장 하영, 편집위원 유진 

지난 8월 20일 망원동 ‘다다랩’에서 장혜영 정의당 마포구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 인터뷰는 ‘청년들’ 특집을 맞아 ‘청년’이라는 기표를 둘러싼 여러 기대와 좌절을 담아내고자 제21대 국회에서 활발한 의정 활동을 보여준 장혜영 위원장이 생각하는 ‘청년’과 ‘청년정치’에 대해 물었다. 


[그림1] 장혜영 위원장©유진


민상: 총선 이후 최근 근황 먼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총선 끝난 다음 주부터 장혜영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했으니까 대략 11주 정도가 지난 거죠. 일단 이제 주변에 의정 활동 한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못 만났던 사람들 만나면서 그동안의 감사를 전하고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제 동생 돌봄 시간을. 임기 중에는 아무래도 활동 지원이 안 나오는 부분을 사비로 충당하는 방식으로 했다면, 나머지는 온전하게 다시 동생하고의 시간도 많이 가졌어요.


그리고 태국은 요청 받아서 워크샵 비슷한 걸 다녀왔어요. 이름은 아마 바뀔 것 같은데, ‘우먼스 폴리티컬 리더십 펀드’라고 하는 글로벌 펀드가 있는데, 거기서 아시아 여성 정치인들, 민주주의자이면서 페미니스트인 정치인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다 똑같구나’. 심지어 그 모임에 오셨던 분은 최근에 해산된 태국의 전진당 있잖아요. 국왕 모독죄 개정하는 것 때문에 재판소에서 정당해산 심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는데, 이제 그 정당의 전신이 같은 일을 한 번 더 겪어서 그때 정당이 해산되었던 분이 오셨어요. 그 엄청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반드시 다시 일어설 거다라고 너무 큰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얘기하시는 걸 들으면서, ‘우리도 기운 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민상: 일단 우리가 흔히 진보 정치라고 할 때, 지역구에서의 의제가 보수 정치에 의해 좀 선점되어 있고, 뒤따라가는 입장에 있다고 느낄 때가 조금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원님이 지역구 활동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하셨고, 지역구가 당면한 현안들과 진보 의제를 엮는 솜씨가 탁월하다고 느꼈어요. 지역구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어떤 지대를 추구하게 돼 있으니까 이들을 설득하는 일이 진보 정치인들에게 긴장이나 갈등을 낳는 요소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의원님만의 어떤 전략이나 다짐이 있으신가요?


굉장히 정확하게 보신 부분이고, 분명히 경합하는 측면이 있죠. 특히나 대한민국에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부동산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이죠. 표면상의 많은 갈등이 집값이나 사교육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게 많은데, 사실 진보 정치는 그 불평등을 해소하는 걸 미션으로 삼고 있다 보니까 태생적으로 충돌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대중적인 절충점을 찾을 것이냐는 게 진짜 정치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마포의 경우에는 이제 쓰레기 소각장 문제. 그 부분은 얼핏 보면 전형적인 님비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들어가서 기후나 환경 정책으로 다루게 되면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적인 가치와 맞닿는 종류의 캠페인을 할 수 있는 거죠. 그 쓰레기 소각장 캠페인을 하면서 주민들과 소통하다 보니까 한 번 링크가 되면 제가 얘기하지 않아도 훨씬 급진적인 데까지 생각이 미치실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아무리 소비자 단계에서 쓰레기를 줄인다고 노력을 하더라도 생산자 규제가 없으면 답이 없다고 하시는 거예요. 또, 명절에 들어오는 선물 상자 과대포장을 보면서 ‘우리가 쓰레기 소각장 문제 가지고 싸우면 뭐 하나. 이렇게 기업쪽에서 쓰레기를 만드는데’라는 생각이 드셨다는 거죠. 


물론 매 순간 그 상황 속에서 이런 절충점을 찾기 위해 노력이 많이 필요하죠. 근데 때로는 뭐랄까, 비판과 한계를 지적당하더라도 분명하게 가치에 대해 말씀드려야 되는 순간도 있긴 하거든요. 예를 들어 저희 상암동 쪽에는 학원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모님들의 니즈가 있어요. 그래서 선거 시기에 오셔서 어떻게 학원가를 조성할 것인지 답을 달라고 하셨거든요. 캠프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저희의 결론은 교육 인프라는 중요하지만, 무엇이 좋은 교육 인프라인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씀드렸죠.


그리고 원래 롯데마트 들어서는 자리에 조형물이 아니라 그 랜드마크를 세울 건지에 대해 굉장히 길게 방치되어 있는 부지가 있어요. 그래서 예를 들어 저희는 거기에 한예종 디지털 영상원 같은 걸 유치해서 아예 “상암동에 ‘DMC’라고 하는 방송가의 인프라에 한예종이라는 훌륭한 공공 교육 기관을 유치해서 두 가지가 연계되는 종류의 디지털 산업 관련 교육 클러스터를 만들면 좋겠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한다든가. 


민상: 그래서 사실 우리가 봤을 때 당장 거기에서 급진성 같은 걸 끌어낼 수는 없는, 지역 주민들의 니즈가 있는 거잖아요. 근데 방금 말씀하셨던 정치의 영역이라고 할 때, 진보적 의제를 포착하고 수집하는 과정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 뉴스레터에서 지역사무소 공간을 오프라인 커뮤니티로 만들고 싶다고 밝혀주셨는데, 어떤 공간이 되기를 기획하고 계시는지, 구체적으로 행사나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상시적으로 열려 있는 공간 운영은 품이 굉장히 많이 드는 일이니까, 아직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진 않아요. 일단 ‘공간’ 베이스여야 된다는 발상은 사람들이 모여서 관계를 맺기 위해 ‘오프라인’이 필요하다고 많이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 쳐다보는 눈빛 하나, ‘어떤 단어를 쓸지’, ‘어떤 톤으로 말할지’라는. 이 무수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우리가 고려하는 이 모든 것들을 딱 온라인 인터페이스 안에 갇혀 있으니까. ‘좋아요’, ‘싫어요’, 내지는 댓글 이런 것들로. 역설적으로 이 진보 정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일어나기 위해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한 오프라인 베이스 캠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망원동X’라는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고요. 


그래서 일단은 거기서 하고 싶은 걸 말씀 드리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치적 만남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정해 봤어요. 인간다운 삶이라는 건 결국 혼자서 인간다울 수 없다는 것에서 시작하는 단어거든요. 타인의 삶에 책임을 느끼는 게 저는 인간다운 삶이라고 규정하고 싶고, 그래서 결국엔 세상사에 관심을 갖는 거죠.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비인간적으로 살고 있는데, ‘내 인생이 너무 인간적이야’ 이런 건 없으니까. 그런 삶을 꿈꾸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그래서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획을 하려고, 일단은 독서회를 할 예정이고, 여성 정치인 학교라고 하면 딱딱하게 들릴 수 있는데, 아무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준비하고 있고요. 연구 프로젝트 같은 것들도 있고. 그리고 특색 있는 행사로 사무실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오픈 마이크를 열어볼까. 그날은 뭔가 바 같은 느낌으로 해놓고, 스탠딩 코미디 공연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하지만 어떤 정치적인 주제에 대해서 오픈 마이크할 수 있는, 계속 소통할 수 있는 행사를 주기적으로 열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민상: 대학 얘기로 좀 넘어가볼게요. 이번 특집이 ‘청년들’이에요. 총선 이후에 청년정치의 향방이나, 혹은 ‘대문자’ 청년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행위성을 진단하고 어떻게 정치적으로 녹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자 기획했는데요. 그때 계속 돌아가는 시점이 사실 2010년대 초반 ‘안녕들하십니까’ 정국이었어요. 오늘날 흔히 대학 교육의 위기라고 할 때, 이 정국(‘안녕들하십니까’ 정국)이 폭넓게 공유되는 진단 속에서는 학생 당사자가 교육 담론 흐름에 유의미하게 개입했던 거의 마지막 사례로 평가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근데 이제 꼭 그 이후의 단절이나 마지막 사건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마지막 사례라고 한다면 어떤 점에서 마지막이라고 볼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이후에 어떤 유산과 연속성을 갖는지, 발전해 온 측면이 있다면 무엇일지. 그 운동의 중심에 계셨던 분으로서 어떻게 진단하시는지. 


저는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통한 메시징은 학교를 공동체로 느끼는 감각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제 저는 그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중앙도서관에 대자보를 붙이는 행위로 학내 구성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내가 학교를 떠나면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마음을 주고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메시지는 던지면 반향이 있어야 하잖아요. 특히나 안녕들하십니까의 경우에는 릴레이가 되면서 사회적인 반향까지 갔는데도 그게 구체적인 무엇으로 돌아왔는가라고 보면, 사실 발산되고 나서 어딘가로 수렴하진 못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토로 같은 느낌이었지,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에너지나 대안으로 나아가지는 못한거죠. 이제 거기에서 당장 지금 고대문화를 읽으시는 분들이든, 혹은 대학을 다니지 않더라도 사회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청년들이든, 말해봐야 뭐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 이상으로, 학교를 공동체라고 여기고 던지는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게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에브리타임의 등장이라고 하는것이, 딱 교내 미디어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지 않았나. 저는 에브리타임 세대는 아니었거든요.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얘기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더 맞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 학내 공론장이 한마디로 익명 게시판이 된거죠. 그 안에서는 어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같은 걸 생략해도 된다는 문화잖아요.


민상: 아까 기성 정치에서도 모든 의견이 좋아요나 이런 것들로 환원된다고 하신 것처럼.


장: 맞아요. 그 인터페이스 안에서 민주적인 학내 의사소통 플랫폼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말하고 싶은 사람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 아닐까. 


민상: 에브리타임이 뭔가 중심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런 종류의 납작한 인터페이스가 전체를 대변하게 되는데,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죠. 예를 들어서 생활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정말 한 줌이고, 그 사람들은 에브리타임에 관여하지 않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럼에도 에브리타임이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진보 의제에 있는 학생들이나 청년들의 공동체가 에브리타임과의 단절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게 유지한다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에서는 멀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게 이 공간(생활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제가 가진 숙제였어요. 그래서 망원정에서는 어떤 대안적인 공간 바깥으로의 개입 같은 것들에 어떤 입장이나 태도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흥미롭네요. 저는 제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와 진보 정치가 마주한 문제, 그리고 생활도서관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린 한 줌이고 세상은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방향의 정반대로 가고 있는데, 이 안에서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아니면 개입할 수 있을까.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인 것 같아요. 제가 이제 반성하는 지점은, 진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랄까요? 사람들한테는 화내고 잔소리하고 꼬집고, 그런데 사실은 위선적이고 약간 이런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런 이미지를 만드는데 나 스스로도 기여하지 않았나’라는 반성을 종종 해요. 사람들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한 총체잖아요. 근데 이제 그 총체로서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다음에 공감하면서 이 방향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우리가 많은 경우에 굉장히 당위의 영역에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우리가 오랫동안 내적으로 만들어온 논리와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는 척하면 척 이해하지만 그런 종류의 친숙함이 대중에게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들의 삶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란다면, 사람들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다양한 언어를 가질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죠. 


그러려면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 지치지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정말 거대한 바위를 움직여야 하는데, 우리는 한 줌이고, 해야할 일이 산더미인데. 이제 피로하다 보면 사실 동지에게 사나워지고, 그게 우리 스스로를 더 작게 만들게 하죠. 커뮤니티 활동이든 정치든 정당 활동이든, 일단 좋은 정당이 되는 것이 강한 정당이 되는 것에 우선하는 일이라는 게 제 생각이라서. 망원정은, 이제 정의당을 기준으로 얘기하자면 초유의 원외 정당 사태를 마주하는 시점에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자. 거기서 에너지를 만들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 보자고 생각하는 거죠. 


유진: 여러 진보 의제를 꿈꾸는 단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의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소진에 대한 문제더라고요. 지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어쨌든 그런 순간이 올 수밖에 없잖아요. 소진의 순간에 지치지 않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저는 되게 빨리 지쳐요. 집 밖으로 나오는 순간 지쳐요(웃음). 지침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가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빨리 좌절하고 빨리 일어나는 거. 그게 저는 소진에 대응하는 제 자세인 것 같아요. 지치지 않을 수 없죠. 다만 빨리 잘 일어나는 스타일을 찾는 거. 그런데 혼자 일어날 수는 없어요. 좋은 동료들이 필요하죠. 나의 무너진 모습을 보여줘도 떠나지 않을. 좋은 동지를 다들 꼭 찾으셔야 할 텐데. 


유진: 저희는 우리가 학생 운동의  큰 범주 안에 속해서 이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결국 졸업이라는 건 다가올 수밖에 없는 거고, 졸업하면 활동가로서의 삶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거의 다 평범한 사회인으로 환원이 되는 것 같단 말이에요.


근데 혹자는 이렇게 사회인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이 굉장히 허무하다, 라고 얘기를 한 게 있었는데, 저도 그 말을 100% 동의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는 허무한 감각을 느끼고 있거든요.학생 운동의 끝에는 뭐가 남을까요? 학생 운동의 경험 후 평범한 사회인으로 환원된다는 것에는 뭐가 있고, 뭐가 남는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헝거 게임』 (The Hunger Games) 보셨어요? 저는 너무 좋아해요. 『헝거 게임』에서 캣니스 에버딘이라는 캐릭터가 그 갖은 고생을 다 하고, 마지막에는 그냥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엔딩이잖아요. 저는 약간 그런 느낌으로 생각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있어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전선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평생 하지는 않잖아요. 프리렌 같은 거죠. 거기서도 1화에서 모든 걸 끝내고, 그 뒤에 삶이 이제 훨씬 더 길잖아요. 그래서 저는 내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저희 당에 남아서 활동하는, 제가 좋아하는 선배들하고 얘기를 이제 할 때 느끼는 거지만, 같이 운동했던 사람들 중에서 ‘사’자 들어가는 직업으로 간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환멸 같은 걸 나누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선거 나간다고 할 때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하거든요. 


결국은 활동의 영역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허브가 되는 게 중요한 것 같고, 생활의 영역으로 나아간 사람들도 부르면 올 수 있게 그걸 연결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뭔가 필요할 때 함께 해주는 사람들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생각을 해요.


근데 자꾸 그 연결고리가 되는 사람들이 소진되고 지치고, 고립돼서 비관해버리면, 팬이 안티가 면 더 무섭듯이, 이들을 잘 돌보지 않은 대가를 지금 좀 마주하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을 해요. 그래서 다정한 것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면 유치한 것으로 얘기하는 문화가, 특히나 이제 군사 문화와 접목된 운동 문화에는 존재하잖아요. 저는 이게 페미니스트들이 해야 되는 중요한 변화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죠. 다정한 게 뭐가 나빠, 좋지. 너나 그러고 살아라! 


지치는 거랑 비슷하게,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나서 ‘근데 그것보다 더 괜찮게 지낼 수도 있지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환멸감 느낄 수 있지.하지만 그래도 환멸감 느끼면서 뭐라도 해, ‘그럼 뭐가 달라져? 그거 낸다고 세상이 달라져?’ 라고 물어보면 ‘내가 기분이 좋아져.’ 하는 거예요. 


민상: 이제 청년 얘기로 시작해서, 청년 정치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하는데요. 21년 전후로 이준석과 같은 정치인들이 주목 받아왔어요. 오늘날까지 여기저기서 서로 청년이라는 라벨을 붙이고 활동하는 정치인이 많은 데 비해 의원님이 그들보다 청년의 인구학적 범주에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직접 청년 정치인으로 호명되는 일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혹시 개인적으로 짐작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혹은 청년 정치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시는지.


저는 청년정치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만들어진 기표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정치 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를 담아내는 그릇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저 공고한 586과 그 이전 세대의 정치를 누가 바꿀 수 있을까라고 한다면 새로운 세력이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새로운 세대를 떠올리는 건 너무 자연스럽잖아요. 그래서 시민들이 청년을 호명하기 시작하고, 그걸 정당들도 발 빠르게 캐치하고. 사실 다른 정당에서는 청년을 마스코트로 쓰고 버리고, 그러니까 영입은 하지만 험지에 공천해서 결코 당선되지 못하는 곳에서 이미지만 쓰고 그 청년 정치인은 나 몰라라 하는 패턴이 반복되었어요. 그래서 정의당에서 우리는 아예 파격적으로 비례대표 1, 2번에 명확하게 권력을 주자는 방식이 제도적 실천이었던 거죠. 물론 그 제도의 취지와 관계 없이 다른 방식으로 왜곡된 상태로 굉장히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그런 노력은 전 인정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죠. 저도 그걸 통해서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렸으니까. 


근데 그 청년정치라는 기표에 모여 있던 어떤 상징을 홀라당 가져가버린 건 역시 이준석 의원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국민의힘 안에서 당대표 선거를 치르는 과정이, 어쨌든 굉장히 인상적인 과정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문제적이고 인상적이었는데, 이제 청년 이준석의 청년정치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왜곡된 공정 담론과 결부돼서 약자에 대한 차별 시정을 역차별이라 공격하는 정서를 타고 그것이 마치 청년 정치인 것처럼 부상해버린 건 되게 사회적 손실이죠. 


그건 제가 반성해야 할 지점이기도 해요. 나의 역량 부족이다. 좀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청년정치의 내용적인 측면에 있어서 이준석 대표가 한 거는 이제 집게 손가락을 만들어낸 것이지, 정책적으로 유의미한 건 글쎄요. 여성가족부 폐지 담론이나 집게손가락을 페미니스트의 지표로 만들거나 이런 것이 사실 이준석으로 표상되는 청년정치의 구체적인 명제일 텐데, 사실 그 안에서 우리가 훨씬 더 긍정적이고 유효한 의제들을 다룰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여성 문제에 있어서의 대응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성차별을 없애는 문제이거나 디지털 성폭력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거라든가, 굉장히 구체적인 걸 할 수도 있었는데 이런 다원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지금까지 586 정치, 산업화 민주화가 해내지 못한 많은 의제를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것과 거리가 멀게 됐죠. 


청년 정치라고 라는 이름에 예치되어 있던 국민적 기대, 이게 결국 정치적 에너지니까, 이 에너지를 타고 이준석이라는 사람은 주가가 올랐지만, 사회적 의제를 추진할 수 있는, 청년정치로서의 동력은 소진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저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민상: 그래서 이준석을 바라볼 때, 청년들이 투사하고 있는 감정도 사실 전보 정치가 대응해야 하는 숙제잖아요. 활용할 수 있는 재료일 거라고 생각해요. 이준석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를 활용해서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수사를 가져오고 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왜 보상이 돌아가지 않고, 이들(전장연)에게 돌아가야 하냐라는 식으로 수사를 활용하는 게, 그럼 성공한 사람들에게 이런 혐오나 결집이 도움이 되냐고 했을 때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어떤 이 역차별 시정이라는 주장이 평범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는 삶의 기회를 뺏어가는 거죠. 그럼 다음 카테고리로 넘어도록 하겠습니다.


하영: 최근에 서울시에서 탈시설 지원조례를 폐지하고, 그에 대응하여 전장연을 비롯한 장애인 단체에서 침묵 선전전도 꾸준히 하고 있음에도 굉장히 폭력적으로 대응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퇴행적인 움직임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전장연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특정한 전선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설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옳습니까”라는 질문을 적어도 그 시위에 동의하든 안 하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 질문이 존재한다는 걸 집어넣은 거죠. 그건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거든요. 그게 저는 운동으로서 굉장히 멋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러면 이제 남겨진 건 그거죠. 전장연 시위에 동의하냐 안 하냐는 사실 가짜 질문이고, 그럼 이 세상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라는 게 우리가 회피하고 싶지만 우리 앞에 있는 질문이죠. 이 세상을 계속 내버려 둘 건가. 거기에 우리는 답을 해야겠죠, 


그래서 다양한 실천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장애인이 어쨌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게 좋은 거잖아요. 그럼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학교에 있다면 학교 공동체 안에서의 차별을 시정하는 것일 수 있고, 만약 적극적으로 한다면 활동지원사 교육을 받아볼 수도 있는 거고. 박경석 대표라면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야학 교사 하실래요?” 물어보겠죠. 할 수 있는 건 굉장히 많죠. 


그러니까 우리가 자꾸 정치를 볼 때 시민들을 구경꾼으로 만드는 상황을 많이 접한 것 같아요.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거고 종종 박경석 같은 문제적 인물이 있는 거고, 우리는 판정하는 사람들처럼 객석에 앉아서 팝콘 먹으면서 보는 것 같이 있는데. 미안하지만 우리는 같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전장연이 부당한 일을 겪는 거에 대해 지치지 않고 같이 목소리 내는 건 그냥 하는 거고, 실제로 마음이 움직였다면, 그 문제의식이 내 마음 속에 상처를 냈다면, 이제 그 상처를 들여다 보면서 내 자리에서 뭘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이 상황에 가장 잘 대처하는 정치적 태도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영: 영화 〈어른이 되면〉 (2018)을 정말 인상 깊게 감상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이후의 시간을 다시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신가요?


〈보이후드〉 (Boyhood, 2014)라는 영화가 있잖아요. 굉장히 오랫동안 찍었던 것처럼 저도 저도 한 10년에 한 번씩, 〈어른이 되면〉을 업데이트할까 해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2018)라고 하는 노래에 담겨 있는 것처럼, 저도 결국에는 장혜정-장혜영 자매의 이야기가 정말로 ‘무사히 평범하고 행복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로 끝나기를 바라거든요.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 다음 이야기는, 바라건대 무사히 할머니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 사회가 괜찮아져야 되는 거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가 할머니가 될 수 있는 세계관이라서, 이 앞이 잘 돼야 합니다.


민상: 저희는 대학에서 일종의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고대문화》 편집실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안락하게 있으면서 사실 말만 하는 거잖아요. 제도권 교육을 통과해 이곳에 앉아 있다는 게 일종의 특권이기도 하고, 이런 입장에서 소수자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앞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당위나 도덕이 먼저 앞서게 되는 함정에 빠지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가 기본 정치나 제도권에서 퀴어를 소화하려고 할 때, 어쩌면 당위나 도덕이 앞선 상태에서 이걸 인정하고, 성원권으로서 ‘너희도 같은 사람이지, 딱하다.’ 이런 수준에서 멈추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어요. 정의당이나 의원님께서 열정적으로 지금까지 퀴어들과 연대를 해오셨는데, 퀴어라는 존재들이 동료 시민으로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당위를 앞세워서 인정을 시켜야 하는 부분들, 그리고 이때 가려지는 삶 같은 것들 사이에 간극이 있을 것 같아요. 이 긴장을 어떻게 다루고 계시고, 정치적으로 해결하려 하시나요?


저는 사변적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체적인 현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실용적이고 재밌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이제 그 현장이 없어지면 이론을 가지고 싸우게 되죠. 예를 들어 퀴어 문제를 다룬다 했을 때, 사실 퀴어 문제 안에 얼마나 많은 게 있습니까? 


예를 들면, 이제 저는 가족 구성권 문제를 가지고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는데, 퀴어 문제를 가지고 싸울 수는 있지만 이동환 목사님이 축제에서 축복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목사직을 박탈당했다는 사건에는 다들 분노하잖아요. 그게 현장이죠. 그럼 거기 연대 가는 거에 대해서 이견이 생기긴 사실 어렵죠. 그리고 이번에 결국에는 대법원에서 좋은 판결이 나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동성 커플도 사실혼 관계로 받을 수 있게 됐잖아요.


이제 그런 것들이 저는 굉장히 구체적이고 좋은, 연대하는 현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현장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론적인 논쟁을 하는 것과, 현장 없이 이론적인 논쟁만 하는 거 사이엔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제 다른 하나는 매력의 문제, 재미의 문제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어떻게 혐오자들과 맞설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유머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저는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문득 한 생각인데, 누가 자기네 집 앞 아파트에 교회가 있는데 “자꾸 ‘남자 며느리 어쩌고’ 이런 현수막을 걸어놔서 너무 짜증 난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문득 남자 며느리라는 이름의 웹툰이 있으면 재밌겠다는 거죠. 시어머니가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지만, 나중에는 인정하게 되고 집 앞에 붙어 있는 현수막을 보고 며느리가 상처받으니까 찾아가서 같이 화내주고… 이런 장면이 있다면 어떨까. 이런 에너지가 저는 지금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운동의 영역에 있어서 어떻게 매력을 잃지 않고 사람들에게 귀염받을 것인가, 그러니까 우리가 논파하고 설득하고 이런 건 많이 해봤지만 사실 잘 되지 않았잖아요. 사람들은 남에게 논파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나도 싫어! 하지만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은 좋죠. 어떻게 그 기세와 매력을 우리 안에서도, 외부를 향할 때도 유지할 것인가, 거기에 좀 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민상: 의원님께서 〈장송의 프리렌〉 (葬送のフリーレン, 2023)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너무 좋아요! 핸드폰 배경화면도 프리렌이에요. 


민상: 최근에 대만에서 난동을 제압한 한 오타쿠가, ‘용사 힘멜이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라고 해석한 게 굉장히 인상깊었는데요. 그게 우리가 동료 시민과 연대할 수 있는 기회나 재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지금 2024년 한국에서, 용사 힘멜이라면 어떤 정치를 했을까요?


아주 재미있는 질문이에요. 《고대문화》 청년 특집 굉장히 재밌을 것 같아요! 용사 힘멜이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 있다면, 저는 필리핀 가사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결국 힘을 보여주는 리더십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구체적인 어려움에 호응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어려움 중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굉장히 중요한, 우리가 손을 보태야 될 일 중에 하나인 ‘다양한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인간답게 우리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까요? 


힘멜이라면 온갖 오지랖을 부려서, 맨날 집회 가고.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이 시위, 저 시위… 그러지 않을까. 전문 시위꾼!


하영: 제도권 정치에서 활동을 하셨고, 저도 법과 제도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계속해서 법을 바꾸더라도 그 법이나 제도에 포섭되지 않는 영역이 계속해서 생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그 바깥의 사각지대까지 어떻게 포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좀 질문을 확장시켜서 사람과 사람 간의 연대가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의원님의 생각을 여쭤보고 싶어요.


네, 거의 제게 맞춤형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하네요. 망원정 얘기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데, 결국은 제가 정치를 통해서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이거든요.


정치를 왜 하느냐고 하면 ‘사람들이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답하는 게 가장 정확한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정치를 제도로 환원할 수는 없고, 결국에 정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우리가 왕정도 했었고, 제국주의, 식민지배… 온갖 것들을 해봤지만, 아무튼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 공동의 결정을 내려야 되는 순간들이 있고, 그걸 민주주의로 하기로 해 온 거잖아요. 


하지만 그런 결정 방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곧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지는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 해야 되는 건, 끊임없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인 이야기를 가지고서 무엇이 좋은 삶이고 무엇이 나쁜 삶인지에 대해서 사람들한테 얘기를 들려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건 하면 안 되고, 저건 해야 됩니다’라고 하는 세계관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근데 지금의 정치가 가장 실패하는 게 바로 그 지점이죠.


무조건 상대를 악마화하는 거 말고는, 그러니까 누가 나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무엇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제 이야기가 빈곤하기 때문에, 탈시설 조례 같은 게 갑자기 뒤집어지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납득하면 웬만하면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 굉장히 힘들어요. 예를 들면 노예 제도 같은 건 사실 돌아가기가 힘들잖아요. 물론 이렇게 최저임금 적용 제외하겠다고 하고, 자꾸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존엄하다’라고 하는 생각에 예외를 만들려는 시도들이야 있지만, 사람들이 아주 크게 깊이 공유하는 얘기들이 있으면 아무리 몇몇 위정자들이 난리를 친다고 하더라도 세계가 자꾸 뒤로 쉽게 돌아가지는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의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캠페인을 하느냐를 떠나서, 좋은 삶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사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 동화책 같은 걸 읽으면서 삶의 원형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잖아요.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건 나쁘고, 도와주는 건 좋아.’ 이렇게 알게 되는 것처럼요. 


저는 결국에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안식을 얻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경제적으로도 존재론적으로도 그렇죠. 그래서 결국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인의 얼굴을 책임지는 능력을 회복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죠. 주의 깊게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듣는 거, 그러기 위해서 좀 덜 바빠질 필요가 있는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서 추천할 만한 책이 있는데, 제니 오델이라는 작가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How to Do Nothing)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이 제가 지금 얘기한 것과 굉장히 주제가 닿아 있는 것 같아요. 


유진: 이제 마무리하는 질문으로, 《고대문화》의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일단 저는 이런 학내지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 반가웠어요. 아주 큰 담론을 가지고 세상이 바뀌는 시대는 이제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제 굉장히 작지만, 정말 구체적인 얘기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마음이 변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은 만드는 사람들에게 저의 응원과 찬사를 꼭 전하고 싶었고요. 이걸 읽는 사람들 때문에 사실은 만드는 사람들이 지속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독자분들께도 정말 너무 고맙다, 계속 열심히 읽어달라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제 저는 어쨌든 4년의 임기를 마무리하고, 원외 정치인으로서 정치 활동을 조금씩 이어나가고 있는데, 당부하고 싶은 부분은 그거죠. 정의당이 원외 정당이 된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쉽게 말해서 고소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의당이 국회에 없기 때문에 함께 사라진 것들은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조롱하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난 이제 임기 시작하자마자 한 달 만에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고 4년 내내 캠페인을 열심히 했는데, 지금까지 그 어떤 의원도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이제 인권위원장을 가장 대척점에 있는 사람을 앉혀놓는다고 온갖 망언을 하면서 차별금지법을 폄훼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야당들에서 제대로 된 반론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 정의당의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의 차원에서 얼마나 큰 문제인가, 이런 것들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지난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서는 저는 많이 성찰 하고 쇄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런 상황 자체에 대한 안타까움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정의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를 위해서요. 그리고 사실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요. 


[그림2] 장혜영 위원장의 문장, “답답한 대한민국 정치에 한사발 시원하고 소나기같은 무언가가 필요해요!” ©유진


편집장 하영  | choibook04@naver.com

편집위원 유진  | gamjabat_@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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