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청년'] 편집위원 민지
[그림 1] 인스타그램에서 유행 중인 자기계발 릴스 ⓒ인스타그램 @business_hwan(좌) @study._.shelter (우)
인스타그램에서 유행 중인 자기계발 릴스의 유형을 보여주는 그림. 그림의 좌측에는 ‘23살 월 2.5억 찍고 깨달은 인생슬로건 2가지’라는 제목의 릴스, 우측에는 ‘고2때까지 생기부 버린 내가 연세대 합격한 생기부 만든 방법’이라는 제목의 릴스를 배치했다. 그림 설명 끝.
바야흐로 자기계발 콘텐츠 범람의 시대다. 서가에 널린 자기계발서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존재가 되었고, 인스타그램을 넘기다가도 [그림 1]과 같은 릴스를 빈번히 볼 수 있다. ‘2n살에 n억 모은 방법’부터 ‘내가 ○○할 수 있었던 이유’와 같은 자기계발에 관련된 릴스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자기계발 해시태그를 검색해 보면 게시글이 232.7만 건, 동기부여 해시태그를 내건 게시글은 204.7만 건이 나온다.
‘자기계발’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단어가 된 지 오래다. 자기계발 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적 사회 체제 개편 과정에서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구조조정 등의 불안정한 경제상황은 — 이전까지의 구조조정과 달리 — 한국 자본주의를 새롭게 문제화함으로써 그에 속한 주체의 행위 방식 자체를 변화시켰다.[1] 이와 동시에 정부는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시민 주체성을 탄생시켰다. 2000년 초 정부가 내놓은 ‘국가인적자원개발기본계획’은 국민 주체의 모습을 더 이상 국가가 돌보는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장받고 발전시키는 주체가 아니라 “경쟁력 있는 국민”, 다시 말해 자기주도적으로 삶의 능력을 계발하고 실현하는 국민으로 개편하고자 했다.[2] 이 과정에서 탄생한 자기계발 담론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계발, 관리 혹은 경영한다는 담론적 실천을 통해 자아에 관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효과를 발생시킨다.[3] 결국 한국 사회는 자기계발 문화를 통해 우리에게 스스로 유능한 자기경영자가 될 것을, 그리고 그 과정을 마땅히 받아들일 것을 설파하고 있다. 이는 스스로 경영하는 개인을 훌륭한 ‘자원’으로 여기고 그것을 부추김으로써 계발의 책임과 비용을 개인에게로 전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기계발 담론이 어느 정도 고착화된 이후 태어난 현 청년 세대는 ‘스펙’에서뿐만 아니라 시간 관리, 외모 관리, 건강 관리, 인간관계 등 삶의 내밀한 측면 역시 계발의 대상으로 삼는다. 경쟁 사회의 질서를 내면화한 청년 세대가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스스로 져야 한다는 논리에 의해 청년 세대의 자기계발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불안감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우려하며, 단지 ‘평범한’ 삶을 꿈꾼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현 사회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뚜렷한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단지 삶의 목표가 ‘평범한 삶을 일구는 것’이라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한계는 패배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조옥라 외(2018:39)의 연구에서 대학생들은 금수저가 아닌 본인에 대해 스스로 ‘을’로 인식하고 있음이 나타났는데, 이는 노력해도 결코 넘을 수 없는 표상화된 ‘갑’의 이미지 아래에서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고 한계를 느끼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저론으로 대표되는 계층적 분리가 이루어진 현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청년 대부분은 청년 세대가 현실적인 한계 앞에서 ‘포기’하는 세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대학교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을 보면, 대학생이 느끼는 패배감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에브리타임에서 드러나는 패배주의적 태도는 크게 학벌, 취업, 성별, 인간관계, 계층적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고려대학교 에브리타임 속의 패배주의적 글에서 드러나는 글쓴이들이 공통적인 패배감을 느끼는 요소는 본인이 ‘의치한약수 설카포’[4]도 못 갔거나, ‘문과’ 혹은 ‘협문’[5]전공이거나, ‘남성’인 ‘아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러 분야에서 이들만의 첨예한 서열을 만든다. 예를 들어 같은 대학교 안에서도 이과가 문과보다 뛰어나며, 문과 중에서도 일명 ‘협문’은 무가치하다고 본다. 또한, 수시와 정시 등 입학 전형과 관련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들은 이와 같은 잣대로 타인을 공격함과 동시에 그에 못 미치는 요소가 하나라도 있다면 본인 역시 그 논리를 받아들인다. 첨예한 서열적 기제에 본인을 편입시키며 발현되는 것이 에브리타임에서의 패배주의적 성향이라 할 수 있겠다.
본인을 ‘패배자’라 칭하는 에브리타임 속 이들은 패배감을 느낀 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자들은 아니다. 오히려, 경쟁의 논리 한가운데에 본인을 놓고 이를 내면화하고 있기에 패배감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자칭 ‘패배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자기계발을 하지만, 이것이 언제나 성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반수’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는 글, 혹은 반수를 포기하며 본인의 목표를 저버린다는 글은 심심치 않게 고려대 에브리타임에 등장하는 소재이다. 또한, 이들은 자기계발을 통해 성취 불가능한 요소 — 이를테면 부모님의 부, 외모(특히 키), 연애에 있어 여성을 ‘쟁취’하는 것 — 에서 좌절의 감정을 느낀다. 결국 ‘노력’을 통해 안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패배감의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회의 모든 요소를 노력과 의지의 요소로 치환하여 바라보고 있으며, 사회로부터 그렇게 생각하도록 주입받았을 것이다.
에브리타임 속의 유저들이 패배감을 느끼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경쟁에 참여해서 느끼는 소진감, 열패감이 패배주의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서열이란, 자신들이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노력한 존재이며, 동시에 스스로 서열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도 공고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들은 경쟁과 서열 자체를 절대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기기에 서열을 형성한 사회 구조 자체에는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에브리타임에서 등장하는 성별 관련 소재를 바라보면 흥미롭다. 에브리타임에서 일명 ‘젠더 갈등’은 HOT 게시판으로 가기 위한 ‘치트키’이다. 에브리타임 속 (남성) 글쓴이들은 여성으로부터 패배감을 느끼며, 동시에 분노한다. ‘페미’들로 인해서 여성의 편의를 봐주기 시작하면서, 과거 가부장제 시대의 남성과 달리 원래부터도 가진 것이 없었던 본인들이 역차별을 당하며, 설 자리가 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 ‘치트키’가 되는 소재들로는 크게 군대, 성범죄, 연애 시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바라보는 여성은 다음과 같다: 군대에 가지 않아 시간적 여유가 있고(또한, 그 시간에 해외여행 혹은 교환학생 등 많은 경험이 가능하고), 한국의 치안은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성범죄가 무섭다고 ‘징징’거리며(남성은 무고죄의 피해자가 되기 십상인데), 연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자들이다.
실제로, 청년 남성들은 군대를 중요한 시기를 가져가는 시간 낭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군대에 가지 않기 때문에 여성을 적대적인 대상으로 여기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청년 남성들은 이 불안을 ‘자기계발’의 방식으로서 해결하고자 한다. 김엘리(2024:150-152)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에서 남성들은 병역 의무에 대해 ‘자발적 예속’의 모습을 보여준다. 군대 내에서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 여기지 않기 위해서, 군인들은 군대에 가는 시기에서 학업과 취업을 고려한다. 또한, 그들은 특정한 군 업무에 배치되기 위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노력을 보이며, 군대에서도 독서, 몸만들기, 외국어 공부, 수능시험 재준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계발을 한다. 군 역시 군사들의 자기계발을 전폭 지지하며, 병영문화개선 정책의 일환으로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에브리타임 속 글쓴이들이 자기계발에 대한 열패감을 ‘패배주의’의 방식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여성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러한 맥락 속으로 편입되어 있다.
[그림 2] ‘10분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는 문구를 표지에 넣은 한 노트 ⓒ반8
한 노트에 ‘10분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는 문구와 그 아래 턱시도를 입은 남자와 여성의 실루엣이 배치되어 있다. 그림 설명 끝.
에브리타임의 글쓴이들이 보이는 여성에 대한 태도는 양가적이다. 이들은 ‘페미니스트’의 존재를 거대한 사회악으로 여긴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여성과의 연애에 목말라 있다. 이들에게 연애는 낭만화된 표상인 한편, 정상성을 위해 달성해야 할 과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기존 가부장제의 질서에서 ‘나를 위해 따뜻한 저녁을 준비해 주며 환대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의 존재는 남성에게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부모님 세대에서는 당연시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학창 시절에는 ‘지금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와 같은 표어를 흔히 볼 수 있었고, 공부를 통해 외모가 뛰어난 여성을 쟁취하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목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들에게 연애가 자기 발전의 단계에서 성취해야 할 과업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림 3] 에브리타임 속 연애 담론을 보여주는 사진 ⓒ에브리타임
출처 : https://everytime.kr/257708/v/326298045
에브리타임 속 게시글을 캡쳐한 그림. 23년도 12월 28일에 올린 게시글로, 게시글의 제목은 ‘좀 못생긴 놈도 이쁜 여자사귈 유일한 방법=의대 입학 맞냐?’이고 게시글의 내용은 ‘의대 입학만 하면 사실상 더 안좋은 의대에서 과좋은 경우 빼면 수능성적 더 낮은 애들한테 역전당할 일 없으니까 가능?’이다. 그림 설명 끝.
[그림 3]은 연애에서의 외모 문제가 ‘노력’과 어떻게 치환되는지 보여주는 게시글이다. 글쓴이는 의대라는, 이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에서 학업에 있어 가장 뛰어난 성취를 했음을 가정하고, 이것이 외모가 못생긴 사람이 외모가 뛰어난 여성을 쟁취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묻는다. 여성과의 연애를 그저 전리품으로 보았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연애가 이들에게 자기계발의 목표 중 하나이자 연애 자체가 자기계발 중 일부분으로 편입되었다는 점을 지적해볼 만하다. 박소정은 『연애 정경』에서 연애가 하나의 스펙처럼 여겨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연인이 없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태이며, 연애 경험은 스펙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거나 잘할수록 좋다. 개인에게 연애는 ‘잘’해야 하고 ‘많이’ 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6] 이렇게 연애하지 않는 사람은 패배자로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연애를 위한 완벽한 상대를 만나 연애까지 ‘쟁취’하겠다는 논리는 신자유주의적인 구조를 그대로 따라간다. 이는 탈낭만화된 사랑 속에서 연애 역시 연애 ‘시장’에서 수행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애는 자신의 사적인 시간을 어떻게 유능하게 관리하는지 보여주는 지표이자 누구와 연애하는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다른 요소와 연애에 차이가 있다면, 연애가 — 연애가 더 이상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 상대와의 관계 위에서 수립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애가 자기계발의 일부분으로 편입되어 있다고 해도, 연애는 일방적 노력으로는 성립될 수 없다. 이것이 연애 담론에 관해서 에브리타임 속 자기계발하는 이들이 좌절감을 느끼는 부분이다.
결국 모든 것을 경쟁 논리로 이해하며, 연애나 여타 인간관계와 같은 사적인 부분 역시 자기계발의 일부분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국 — 그 경쟁의 승리 여부와는 관계없이 — 경쟁이 끝난 뒤의 소진감만을 남기게 하는 방식이다. 자신을 둘러싼 경쟁을 촉진하는 사회 구조적 측면에 대해서는 숙고하지 않고, 경쟁자인 동시에 경쟁을 통해 쟁취해 내야 하는 대상인 여성에게 굴절된 혐오를 투사하는 방식으로는 더욱이 말이다.
한편, 이러한 경쟁 질서의 모든 부분에서 스스로를 패자라고 낙인찍으며 모든 것을 포기한 이들도 존재하는데,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중 하나인 ‘도태 마이너 갤러리’의 유저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을 ‘도태’되었다고 칭하며, 삶의 모든 부분을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도태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럿 중에서 불필요하거나 부적당한 것을 줄여 없앰.’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7] ‘도태’라는 단어 자체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스스로를 불필요한 존재로 생각하며, 사회에서 없어져 마땅하다고 여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사회 속 자기계발로 인해 소진됨을 느끼는 에브리타임 속 사람들보다 골이 깊은 패배주의의 양상을 보인다. 삶의 모든 측면에서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점에서 경쟁 질서에서 비롯된 낙담과 좌절의 감정을 더욱 강하게 수용하는 자들이다.
[그림 4] 디시인사이드 도태 갤러리 게시글 ⓒ디시인사이드
출처: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5428459
디시인사이드의 도태 갤러리 게시글 중 하나의 캡쳐본. 제목은 ‘[일반] 도태갤러리 일동과 도태한남당은 무관함을 밝힙니다’이고, 내용은 ‘자칭 도태한남당은 도태갤러리와 관계가 없는 인물이며 우리는 여자도 필요없고 그저 안락사를 원합니다’라는 본인들에 대한 자조적 성격을 띄고 있는 게시글이다. 그림 설명 끝.
[그림 4]는 지난 3월 디시인사이드 ‘도태 갤러리’에 올라온 게시글의 캡처본이다. 유튜브 주둥이 방송 채널에서 ‘연애 추첨제’를 주장하였던 시청자의 발언[8]이 큰 파문을 불러오고 이 시청자가 도태 갤러리 소속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그림 4] 속 글쓴이는 해당 시청자와 본인이 속한 ‘도태 갤러리’는 무관하다는 취지의 게시글을 작성하였다. 해당 게시글은 도태 갤러리의 공지로 등록되었으며, 여러 곳에 짤로 ‘수출’될 만큼 관심을 끌었다. 글쓴이는 ‘여자도 필요 없고 그저 안락사를 원한다’며 모든 욕망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 태도의 진위와는 관계없이) 삶에서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욕망하는 것들 — 이를테면 학벌, 돈, 인간관계, 여자 — 을 본인과 같은 ‘도태남’은 누릴 자격도, 능력도 없으며 자신들의 끝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게시글 이외에도 도태 갤러리에서는 ‘우리는 낙태당했어야 했다’, ‘베타메일[9]의 삶은 언제나 슬프다’ 등의 제목을 한 게시글이 개념글에 올랐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패배주의는 이 갤러리의 존재 이유 자체이다. 그들이 가지는 골이 깊은 패배주의는 삶의 일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키고 싶어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들의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은 삶의 정서 전체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에브리타임 속 패배주의와 차이가 있다.
도태 갤러리의 가장 중요한 규칙으로는 ‘기만’ 금지 규칙이 있다. 이곳의 유저들은 얼굴, 키, 돈 & 수저, 학력, 연애 & 썸, 여사친, 비율, 섹스와 관련하여 ‘기만’ 규칙을 만들어 놓고 있다. 이러한 영역에서 관리자의 주관과 여론에 따라 기만의 여부가 결정되고, 갤러리 활동에 대한 제지를 받게 된다. 이들은 외모, 연애, 학력, 부모님의 재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서열화하고, 본인들을 그 서열의 최하층에 있다고 바라본다. 결론적으로, 이 메커니즘 하에서 스스로를 패배자로 낙인찍은 이들은 인생의 답이 죽음밖에 없다고 자학한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이 이러한 영역에서 빠짐없이 도태되었음을 끊임없이 증명한다. 실제로 도태 갤러리에는 본인의 기본 정보를 나열하고 본인이 ‘ㅁㅌㅊ’[10]임을 묻는 도태대회 카테고리도 존재한다. 결국, 이들은 기만자가 아닌 진정한 도태남만이 갤러리에서 글을 쓸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체적인 필터링을 거쳐 탄생한 ‘진정한 도태남’들은 자신들이 펼치는 혐오를 정당화한다. 자신들은 사회 최하층이기에 여성, 기득권 중년 남성, 존잘남 등에 대해 혐오를 펼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가혹한 자기 연민은 굴절되어 타인을 향한 혐오를 정당화함으로써 혐오에 무적의 논리를 부여한다.
도태 갤러리 속 이들 역시 모든 부분에서 도태되었음을 주장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도태됨’의 많은 원인을 외모에서 찾는다. 외모가 이들에게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삶에서 꼭 누려야 할 것(섹스)이 ‘존잘남’과 ‘알파메일’에게는 쉽게 허락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혐오가 가장 크게 향하는 대상은 여성이다. 여성은 ‘알파메일’이나 ‘존잘남’과만 연애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도태남’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연애와 섹스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외모로 귀결되는 이들의 논리 배후에는 인생을 섹스와 연애의 성취로 판단하려는 평면적 시각이 담겨있다. 또한, 이것을 성취하는 데에 있어 본인들은 선천적 영역의 외모가 부족하므로 근본적으로 달성이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 역시 경쟁 논리 이면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경쟁 논리에서 세워둔 서열을 수용하고 이에 낙담한다.
주둥이 방송 속 연애 추첨제를 주장했던 시청자의 발언이 큰 화제가 되며 [그림 4]의 게시글 역시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X(구 트위터)에 널리 퍼졌다. ‘그저 안락사를 원합니다’라는 문장은 X(구 트위터)에서도 널리 쓰이는 하나의 밈이 되었다. 해당 밈이 다른 죽음도 아니고 편안한 죽음인 안락사를 원한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대를 산 듯하다. 주둥이 방송 속 스스로를 ‘도태남’이라고 칭했던 시청자처럼 [그림 5]에서 스스로를 ‘도태찐따녀’라고 칭하는 트윗이 1만 4천여 회의 리트윗[11]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림 5] 스스로를 도태찐따녀, 인셀녀라고 칭하는 트윗의 캡처본. 해당 트윗을 캡처한 트윗이 리트윗 1.4 만회를 기록했다. ⓒX @a11ergic2bs
여성 유저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트윗의 캡처본으로, ‘도태찐따녀 복지도 해주라 우리도 창당하자 탐라(타임라인)의 인셀녀들이여일어나라’라는 트윗과 하단에 ‘저흰 남자도 필요없고 그저 안락사를원합니다’라는 답글이 달렸다. 그림 설명 끝.
결국 사회에서 드러나는 패배주의는 — 익명 인터넷 공간 특성상 더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 비단 남초 커뮤니티만의 현상은 아니다. 경쟁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점차 소진감과 패배감을 느끼고 있다는 징표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에토스 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패자’들의 이야기다. 경쟁과 서열을 부추기는 지금과 같은 문화는 결국 스스로를 ‘도태된 이’, ‘패배자’로 낙인찍는 사람을 증가시킬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래디컬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극우 커뮤니티 ‘워마드’ 역시 자기계발을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2017년 4월에서 2018년 12월이 될수록 워마드 내의 게시물과 댓글 중 자기계발, 어학·이민 관련 글이 증가했다. ‘여성이 자기계발을 통해 남성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이 페미니즘적인 성취’라는 워마드의 관점[12]은 — 개인의 노력과 경쟁을 통한 승리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 극우 커뮤니티에서의 자기계발 담론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문제를 옳게 인식할 수도,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도 없다.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적 문제 해결 방식은 지금과 같은 패자를 양성할 것이다. 스스로를 ‘도태남’, ‘도태녀’ 등으로 칭하는 것은 호칭만 다를 뿐 이전부터 지속되었던 방식이다. 2000년대 후반 ‘루저’라는 단어가 부상하여 스스로를 루저라고 칭하는 이들이 늘어났듯 말이다.[13]
자기계발이라는 단어가 1980~1990년대부터 대두된 것처럼,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을 일컫는 말 역시 단어만 바꾸어 우리에게 들어오고 있다. 경쟁이 점차 심화하는 사회 속에서 패배감을 느끼는 청년들 역시 증가할 것이다. 과거에는 루저, 현재는 도태 남녀, 미래에는 어떠한 단어로 우리 곁에 오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경쟁과 신자유주의가 우리 곁에 있는 한, ‘패배자’들은 점차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증가하는, 앞으로도 증가할 ‘패배자’들을 그저 한심한 것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옳을까? 이들을 그저 신자유주의가 낳은 이상아로 취급할 것인가?
편집위원 민지 | ymj020110aa@korea.ac.kr
[1]서동진 (2009). 61.
[2] 같은 책. 117.
[3] 같은 책. 291.
[4]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의 앞 글자를 딴 줄임말로, ‘메디컬’ 대학과 이공계 최상위 대학을 이르러 부르는 말이다.
[5] 협문은 ‘협의의 문과’를 줄인 말로, 인문계열 학과와 비상경계열 학과를 통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6] 박소정 (2017). 86.
[7] 표준국어대사전. 도태의 사전적 의미.
[8]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남성이 외모가 뛰어난 여성과 연애할 수 없는 ‘불공평’, ‘불평등’한 상황에 대해 연애 추첨제를 도입하여 연애 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9] 외모와 능력 등이 뛰어나고 우두머리 수컷을 뜻하는 ‘알파메일’ 논의 하에서 알파메일을 제외한 남성들을 베타메일이라 부른다. 온라인 공간에서 흔히 알파메일보다 떨어지는 보통의 남성을 의미한다.
[10] 좋거나 뛰어난 것을 ‘상타치(ㅅㅌㅊ)’, 평균이나 보통인 것을 ‘평타치(ㅍㅌㅊ)’, 나쁜 것을 ‘하타치(ㅎㅌㅊ)’라고 하는 인터넷 용어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평가를 바라는 질문을 할 때 ‘몇타치’라고 물어보는데, 이를 초성으로 나타내었다.
[11] X(구 트위터)에서 어떤 사람의 게시글을 다시 올려서 공유하는 개념. 공감의 의미를 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2] 워마드의 관심사는 ‘자기계발’ [혐오의 민낯] (2022.10.06.). 한겨레21.
[13] 윤영도(2015). 7-8.
참고문헌
단행본
박소정 (2017). 연애 정경. 스리체어스.
서동진 (2009).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돌베개.
논문 및 저널
김엘리 (2024). 병역의무 동원과 자발적 예속 : 신자유주의적 자기통치의 병역 경험 분석. 21세기정치학회보, 34(1), 137-160.
박인성 (2022). 밈과 신조어로 읽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부족주의—남초 커뮤니티의 정서적 평등주의와 위임된 성장서사. 대중서사연구, 28(2), 59-93.
변혜정 (2010). 이성애 관계에서의 자기 계발 연애와 성적 주체성의 변화. 생명연구, 17, 53-92.
윤민재 (2020). 한국사회의 경쟁과 자기계발, 그리고 자아테크놀로지: 청년세대 문제에 대한 연구. 인문사회 21, 11(2), 1257-1269.
윤영도 (2015). 뉴미디어시대 루저문화 시탐 – 한국의 ‘루저’와 중국의 ‘따아오스’ 현상을 중심으로. 중국어문논역총간, 37, 217-246
조옥라 외 (2018). 대학생은 어떻게 ‘을’의식을 갖게 되었는가?. 문화와 사회, 26(1), 245-295.
기사 및 온라인 자료
도우리(2024.06.19.). ‘존잘남’이라는 신흥계급의 부상. 한겨레21. Retrieved from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6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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