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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되지 않은 사람들

[칼럼] 편집위원 은희

꿈의 섬


7월 초, 15kg짜리 돌덩이 같은 캐리어와 함께 도쿄 여행을 떠났다. 인생 첫 해외 여행이라는 설렘과 절대 친구와의 절교 여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을 껴안고 떠난 여행은 다행히도 몇 없는 인맥의 손실 없이 무사히 끝이 났다. 여행은 즐거웠다. 누구나 일주일에 백만 원을 쓰면서 돌아다니면 즐거울 거라는 점은 일단 외면하더라도. 일주일 정도 도쿄에 머물렀더니 떠날 때 섭섭함은 전혀 없고 이제 2~3년 동안 도쿄는 안 와도 될 것 같다는 만족감만 남았다. 그러나 여행 기간 내내 눈에 밟히던 존재가 있었다. 편의점에 있는 외국인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MIU404(2020) 5화는 일본 내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지만 이들이 일본에 머무르는 진짜 이유는 편의점, 식당 서빙, 공장처럼 저임금 저숙련 노동직에 종사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자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돈이 되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집에 빚까지 내가며 먼 타국인 일본에 찾아오고,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번다. 당연하게도 그들을 보호해 줄 만한 법적 안전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부당한 대우를 받고 버려지더라도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데려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빈자리는 금방 채워진다.


“외국인은 이 나라에 오지 마! 이 나라에 와선 안 돼. 여긴 당신을 인간 취급하지 않아. 한 무더기에 얼마 주고 사서 필요 없어지면 돌아가라고 해. Japanese Dream은 전부 거짓말이야!”


 드라마 속 한 남자의 절규처럼 먼 타국에서 열심히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다짐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저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일본 열도 자체가 바로 ‘꿈의 섬’[1]이었던 것이다.


 여행 내내 편의점에 들어갈 때마다 아르바이트생의 얼굴을 흘긋거렸다. 어느새부터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인지 확인하는 버릇이 들었다. 어느 정도 과장이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그렇게 믿고 싶었던— 드라마는 현실을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별생각 없이 여행 직전 오랜만에 다시 꺼내본 드라마는 도쿄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남의 나라의 어두운 한 면을 본 것 같아서…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내 일상 곳곳에 이주노동자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 그 순간부터, 앞으로는 이들을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장과 사람


집 앞 10분 거리 정류장에서 A 번 버스를 탄다. 시내 중심가를 지난 버스는 도시 외곽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점차 낯설어지는 정류장 이름을 배경음악 삼아 버스는 텅 빈 정류장을 빠르게 지나친다. 그렇게 40분 정도 달리다 시골의 어느 보건소 앞에서 내린다. 그 앞에서 다시 자동차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면 세탁 공장에 도착한다. 대략 1시간 30분의 대장정이다. 지인이 운영하는 세탁 공장은 주로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나오는 큰 수건, 샤워 가운 같은 것들을 세탁하는 일을 맡는다. 가끔 공장에 찾아가면 그곳은 언제나 시끄러운 세탁기 소리와 갓 건조한 수건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공장의 하루는 아침 8시부터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침대 시트나 이불 커버, 베개 피, 타올, 가운, 욕실 발판까지 … 공장의 하루 일정은 크게 다음과 같다.  

1. 세탁물이 한데 모이면 먼저 이들을 종류별로 분류한다.

2. 종류별로 세탁과 건조를 끝낸다. 

3. 건조가 끝난 세탁물 중 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는 로라(롤러)로 다림질하고, 타올은 손으로 개서 일정 수량에 맞게 밴딩[2]을 한다. 

4. 밴딩한 것들을 카(수레)에 놓는다. 

5. 각 호텔에 배송한다.  


아침 8시에 시작해 오후 4시쯤이면 공장의 모든 세탁물이 떠나고 하루는 마무리된다. 이때 노동자들은 주로 타올이나 가운을 손으로 개는 일을 맡는데, 허리 위까지 오는 큰 탁자에 건조된 세탁물들이 가득 쌓여 있으면 여기서 각자 맡은 세탁물을 일정 수량에 맞춰서 개는 방식이다. 방금 막 건조기에서 나왔기 때문에 세탁물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오지만 쉴 틈은 없다. 그날까지 무조건 모든 세탁물을 각 호텔에 배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탁 공장에서는 강도 높은 노동이 이루어진다. 하루 종일 서 있는 상태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반복적인 업무를 감당해야만 한다. 한두 번 성수기에 일을 도우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큼 살면서 에어팟이 간절한 적은 처음이었다. 스스로 MZ세대임을 증명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에어팟으로 노래라도 들어야만 반복적인 일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탁 공장을 비롯한 시골 농촌에서 한국인 청년 노동자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당연하게도 육체적으로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자 하는 청년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할 사람이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하던 지인의 목소리는 지금까지도 귓가에 남아있다. 실제로 세탁 공장의 노동자는 50~60대 중장년층이거나 외국에서 온 이주 노동자에 해당했다. 더욱이 시골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 중 대부분이 ‘미등록’ 상태라는 것 역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이 되었다. 농촌 사회가 이주 노동자, 그중에서도 불법체류자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은 통계 자료를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2021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작물재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농가 258개 중,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곳은 무려 91%에 달했다. 축산 농가(총 120개 농가) 역시 작물재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약 44%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다.


[그림1] 최근 5년간 미등록 이주민 변동 추이 ©한국일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5년간 미등록 이주민 변동 추이를 나타낸 그림. 2020-2022년까지는 미등록 이주민의 규모가 약 39만 명이었던 반면, 최근 2년 동안 약 42만 명까지 증가하였다. 그림 설명 끝.


점차 증가하던 불법 체류 외국인의 수는 정부의 단속 강화와 함께 감소 추세로 들어섰다. 법무부는 지난해, “2027년까지 ‘불법 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불법 체류자를 20만 명대로 감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경찰청,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경찰청과 정부 합동 단속을 3차례 실시하여 불법 체류자 3만 8,000여 명을 단속하였으며[3], 올해 4~6월에도 단속을 통해 1만 756명을 적발하였다.[4] 불법 체류자 단속이 정부가 해야 하는 일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는 것에만 집중하며 농촌 사회가 겪는 인력난에 대해서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람 없는 마을


 현재 농촌 사회가 처한 상황은 매우 암담하다. 매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음은 물론, 고령화 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관련 조사가 시작된 1949년 이후 처음으로 농가 숫자가 100만 가구 아래로 떨어지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 농가 인구 역시 200만 명 선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농가 인구의 연령대 역시 농촌 사회의 고령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3년 기준 고령 농가 인구 비율은 52.6%로 전체 인구 중 절반이 고령에 해당하는 상황이다. 전국 고령인구 비율이 18.2%인 것을 고려하면 현재 농촌이 처한 현실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그림 2] 2019-2023 농가 인구 추이 ©연합뉴스

2019년부터 2023년까지의 전국 농가 인구 및 농가 수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 전국 농가 인구와 가구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으며, 65세 이상 비율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림 설명 끝.


정부는 농촌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2017년부터 ‘계절근로자’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단기간에 집중적인 일손이 필요한 농⋅어업 분야에서 합법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6] 하였지만 여전히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수요에 비해 공급되는 노동자의 수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계절근로자로 파견되는 외국인 근로자는 2017년 1,085명에서 2023년 40,647명까지 약 4만 명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농가 인구는 2,422,256명에서 2,088,781명으로 약 35만 명 감소하였다. 해마다 고령 인구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현재의 공급량으로 농촌의 노동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앞서 말한 세탁 공장처럼, 농업이나 어업에 속하지 않는다면 계절근로자를 고용할 수도 없기 때문에 정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문제마저 발생한다. 


농민들은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를 지속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심지어 작년에는 전라남도 해남에서 농촌의 인력 공급 문제를 놓고 싸움을 벌이다 알선업자가 농민을 살해하는 사건마저 발생했다.[7] 시골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농민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달린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부에 들어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인력난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임금이 상승한 곳도 많다. 농민신문에 따르면 경상남도 창녕의 외국인 근로자 인건비는 2023년 기준 지난해보다 10% 이상 상승하였으며, 농민들은 “인건비를 다 주고 나면 오히려 손해가 나는 상황”이라고 한다.[8] 인력난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다. 임동선 여주농협 부추작목반장은 “그나마 일손을 구하더라도 하루 일당이 지난해(2022년)보다 10%가량 올라, 한 명당 12만~16만 원까지 줘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9] 세탁 공장 노동자인 A 씨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코로나가 무서우니까 우리나라에 그때는 그러다 보니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까 인건비가 많이 올라갔어. 거기에다 이번 정부 들어오면서 불법 근절 이런 것 때문에 단속을 엄청 강화하다 보니까 일할 사람은 더더욱 없어지고 그러다 보면 인건비가 더더욱 올라. (...) 둔내 쪽에 농업을 포기한 사람들이 꽤 있대. 사람을 못 구해서. 들리는 말로는 그래.”


“2018년쯤에는 170, 180 이 정도였던 것 같아. 정확지는 않은데. (...) 근데 지금은 230, 40 될 거야. 조금 편차는 있지. 근데 구하기가 힘들어. 어떤 데는 250 이상 달라고, 누가 특히 소개하거나 그러면.”


인력난을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생계를 포기하는 일은 이미 우리 사회의 현실이 되어 있었다.


당신의 ‘목숨값’은 얼마인가요?


농촌 한 켠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이, 정작 일하기 위해 한국에 찾아온 이들은 폭력적인 단속으로 쫓겨나고 있다.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씨는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김포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출입국⋅외국인청의 단속이 공사 현장 식당에 들이닥쳤다. 그는 정부의 단속을 피하려 건물 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러나 공사 현장 밖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7.5m 깊이의 지하로 추락했고, 18일 뒤 딴저테이씨는 먼 타국에서 결국 숨졌다. 2018년 여름의 일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정부의 무리한 단속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딴저테이씨의 아버지가 그해 10월 제기한 민사 소송은 3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결론이 나왔다.

 

법원은 무리한 단속을 벌였다는 점에서 단속반원들이 딴저테이씨의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가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추락을 자초했다며 국가의 책임을 10%로 제한했다. 3년의 기다림 끝에 딴저테이씨와 그의 아버지에게 주어진 위자료는 각각 100만 원과 60만 원. 판사는 미얀마의 국민 소득과 한국의 국민 소득을 고려해 산정한 결과라고 설명했다.[10] 인간 생명의 가치가 국가 소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법원은 답하지 않았다. 한국은 국가 소득에 따라 사람의 ‘목숨값’을 다르게 정하는 나라였다.


 정부의 무리한 단속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지난해 3월에는 법무부가 3살 아동을 수원 출입국보호소에 19일 동안 구금한 뒤 미등록 이주민인 아버지와 함께 강제 출국시킨 것이 밝혀졌으며[11], 6월에는 합법적 체류 자격을 가진 6살 아동이 23일 동안 구금되었음이 드러나기도 하였다.[12] A 씨 역시 미등록 이주민 단속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날 우리가 작년 12월 28일쯤인가 송년회 할 때야. 연말에 일이 일찍 끝나서 점심을 먹었어. 조금 늦은 점심을. 그러니까 공장은 다 비었지. 아무도 없었어. 근데 2명이 몸이 안 좋아서 기숙사에 있었어… 왜 이제 영화나 그런 데 보면 경찰들이 어디에 범인이 있다 그러면 뺑 둘러서 승합차 이런 데서 형사들이 6명 팍 튀어나오는 그런 모습이었어. 차가 4대인가 왔어. (...) 막 뛰어가서 여기저기 다 문 열어보고 우리 공장이 비어 있는데도. 그리고 기숙사로 가서 포위하고 그러고 이제 2명을 죄인 끌고 오듯이 강제로 끌고…”


“좀 화가 났던 것 중 하나가 그 친구들이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이었는데 짐을 아무것도 못 챙겨 갖고 나왔어. 만약 여자가 생리 때라 그러면 그런 거 챙길 준비하는 시간을 줘야 되는 거 아닌가? (...) 또 한 친구는 이제 눈에 뭐가 들어가서 약을 타 왔었는데 그 약은 챙겨갔을까, 이런 의구심이 드는 거야. 근데 이제 단속해서 체포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 정도는… (...) 짐이 없는 걸로 봐서는 그냥 데려간 것 같아.”


 정부의 단속으로 인해 적발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강제 퇴거는 아래의 그림과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적발된 외국인 가운데 도주 우려가 있는 사람들은 자국으로 송환하기 전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는데, 현재 한국에는 경기도 화성, 충청북도 청주, 전라남도 여수까지 총 3곳에 외국인보호소가 설치되어 있다. 이후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던 외국인들은 인천공항을 통해 강제출국된다. 


[그림 3] 미등록 이주민 강제 퇴거 절차 ©세계일보

미등록 이주민 강제 퇴거 절차를 나타낸 그림. 순서대로 단속, 보호 명령, 심사 결정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심사 결과는 강제 퇴거 명령과 출국 명령(권고)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 강제 퇴거가 집행되며, 후자는 출국이 이루어진다. 그림 설명 끝.


쫓아내고 들여오고 쫓아내고 들여오고…


한국 정부는 농업과 어업을 비롯해 소위 비전문 3D 업종에 필요한 외국인들을 들여오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E-9 비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E-9 비자의 정확한 명칭은 ‘대한민국 비전문 취업 비자’인데, ‘일정 자격이나 경력 등이 필요한 전문 직종이 아닌 제조업체, 건설공사 업체, 농업, 축산업 등 비전문 직종에 취업하는 외국인을 대상’[13]으로 비자를 발급하여 국내의 인력난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용허가제의 지나치게 경직된 방침으로 인하여 미등록 이주민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E-9 비자는 이주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최초 3년간 3회, 다시 고용된 1년 10개월간 단 2회만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근로자가 부당한 처우를 ‘직접 입증’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14] 언어가 서툰 외국인이 자신의 부당한 처우를 ‘직접 입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사실상 정부가 이주 노동자들에게 그 어떤 열악한 노동 환경이라도 ‘노오력’으로 참고 견디거나 아니면 도망쳐서 미등록 이주민이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살기 위해 도망친 그들에게는 ‘미등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임금체불에 대한 소송을 진행하다가 체류 기간이 끝나서, 회사에서 정해진 기간 내에 체류 활동기간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서 미등록 신분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이들을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칭하며 쫓아내기 위해 단속을 강화할 뿐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 보호 및 인력 활용을 위해 사업장 변경이나 재고용 허가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하며 고용노동부에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E-9) 개선 방안’을 권고하였지만, 정부의 이주 노동자 정책 방향성은 정반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의 고용허가제 외국 인력 도입 규모를 16만 5천 명으로 확정했다. 지난해보다 4만 5천 명이 늘어난 규모다. 비전문 취업 비자 발급 대상 역시 외식업계 등까지 확대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에 고용허가제(E-9)를 통해 외국인 가사 노동자 1,200명을 도입하는 계획을 확정하였으며, 이와 별개로 외국인 유학생, 이주노동자의 배우자 등이 가사 노동자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시범 사업 역시 추진할 예정이다. 저출생 대책의 일환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외국 인력 도입 규모를 늘리면서도 정작 이주 노동자의 정착 및 기본적 인권 보호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정부의 외국인 가사 노동자 정책 역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한다는 점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물론, 정부가 외국인 근로자지원센터의 전체 예산 약 70억 원 전부를 삭감하면서 전국 곳곳의 센터들이 문을 닫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지원센터는 지난 2004년부터 임금체불과 같은 노무 상담, 한국어 교육, 병원 업무, 범죄 피해 상담 등을 진행하며 이주 노동자의 한국 정착을 돕는 역할을 돕는 역할을 해왔다.[15] 전국 249개 시군구 중 외국인 노동자 전담 조직을 갖춘 곳이 전국에서 고작 5곳[16]뿐이라는 것[17] 역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주 노동자의 인권에 무관심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제4차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에서는 첫 번째 주요 과제로 ‘이민을 활용한 경제와 지역발전 촉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에서 이주노동자를 들여오는 것은 곧 국익으로 연결되고는 한다. 내국인보다 인건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때로 국익은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생명보다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우다야 라이 민주노총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18] 위원장은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은 이주민 문제를 언급할 때 항상 ‘국익’이 최우선이라고 얘기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주노동자 목숨보다 한국의 이익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돈’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번에도 (아리셀) 참사 나니까 반짝 여러 얘기가 나오다가 벌써 다 시들해져요. 저는 이렇게 묻고 싶어요. 한국은 정말 국익보다 이주노동자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준비가 됐습니까?”[19]


이주노동자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결국 그들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언제든 바꿔 끼울 수 있는 ‘부품’으로 여기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부품처럼 여기기 때문에 국내에 머무는 이주 노동자들을 너무나도 쉽게 ‘미등록’ 상태로 바꿔버리고, 폭력적으로 쫓아내고,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으로 새로운 인력을 들여오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하는 로봇


베트남 출신 여성 마이는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들어왔다. 일본에서 유학생에게 법적으로 허용된 아르바이트 시간은 주 28시간. 그러나 마이의 일상은 편의점, 식당, 운송 회사 아르바이트로 새벽까지 가득 차 있었다. 일명 ‘알바 겹치기’였다. 법적 허용 시간을 초과한 지는 오래였다. 일본에 오기 위해 진 빚 100만 엔을 갚는 데 주 28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마이는 이후 평소 일하던 편의점에서 당일 해고 통지를 받는다. 최근 발생하던 편의점 강도 사건들 때문에 불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억울함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이 일하던 이주노동자 동료들도 자신마저 피해를 볼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해고 통보를 받은 그날 밤, 마이는 눈물과 함께 쌓여왔던 자신의 감정을 모두 토해낸다.


[그림 4] MIU404 5화의 한 장면. ©MIU404

MIU404 5화의 한 장면. 마이는 이부키에게 울면서 “일본은 우리가 필요 없어”라고 말한다. 그림 설명 끝.


“다들 일본에 가고 싶어 해, Dream. 하지만 일본은 우리가 필요 없어. 원하는 건 불평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돈이 안 드는 일하는 로봇. 일본 싫어.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어.”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의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 사고로 노동자 23명이 숨졌다.[20] 23명 중 18명이 중국, 라오스 국적의 이주노동자였다. 공장이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대가는 이주노동자의 목숨으로 치러졌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선 ‘위험의 이주화’라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아리셀 공장은 여전히 무책임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와 사측 간 교섭은 7월 5일 30분 동안 진행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유족들은 사고 원인과 관련된 자료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교섭 이후 가족협의회와의 연락은 끊고 유족 개개인에게 ‘보상 합의안’을 문자로 제시했다.[21] 한편, 아리셀은 사고가 일어난 직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선임했다.[22]


드라마 <MIU404>(2020) 속 일본의 모습은 지금의 한국 사회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이주 노동자의 인력을 그 누구보다 필요로 하면서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려 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은 마이의 말처럼 ‘불평하고 말하지 않고 돈이 안 드는 일하는 로봇’을 원하고 있다. 마이의 절규를 들은 이부키는 동료 시마의 앞에서 ‘다들 어째서 태연한 거냐’고 질문을 던지고, 시마는 그런 이부키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뭐라고 해야 될지 몰랐어. 나라의 죄는 우리의 죄일까? 내가 미안하다고 해도 몇십만이나 로봇 취급당한 사람들은 구할 수 없어. 다들 어째서 태연한 걸까?”

“안 보이니까 그런 거 아냐? 안 보는 게 편한 거야. 봐 버리면 세계가 살짝 어긋나. 그 어긋남을 눈치채고 도망칠 것인지 또 눈을 감을 것인지.”


시마의 말처럼 이주 노동자 문제는 그 어떤 문제들보다도 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선사한다. 누군가가 나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로봇’이 되어있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이전의 평온함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도쿄 여행 내내 편의점에 들어갈 때마다 아르바이트생이 신경 쓰였던 것처럼. 한 번 어긋난 세계는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눈앞의 현실을 외면한 채 눈을 감아버릴 수는 없다. 농촌에 닥친 인력난도, 이를 메꾸는 미등록 이주민들도, 그들을 둘러싼 각박한 정책과 폭력적인 정부 단속도 모두 내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이 현실을 분명하게 직시하고 세계를 깨뜨리자. 그것만이 우리가 지성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더 큰 변화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므로.


편집위원 은희 | a0520choi@naver.com


[1]MIU404 5화의 제목.

[2] 세탁물을 끈으로 묶는 행위

[3] 불법체류자 역대 최대… “생산효과 고려 합법적 기회 늘려야” [연중기획-소멸위기 대한민국, 미래전략 세우자] (2024.05.14.). 세계일보.

[4] 올 상반기 불법 체류자 최다 2만3724명 적발, 2만명 출국조치 (2024.07.12.). 중앙일보.

[5] 농가 수, 사상 처음 ‘100만 가구’ 밑돈다… 65살 이상 절반 넘어서 (2024.04.18.). 한겨레.

[6] 법무부 홈페이지.

[7] 농촌 인력공급 놓고 다투다 농민 살해한 50대 알선업자 구속 (2023.05.22.). 한겨레.

[8] 전화 돌려도 “사람 없어요” … 치솟은 품삯에 다툼 잦아 (2023.05.31.). 농민신문.

[9] 같은 글.

[10] 딴저테이씨의 아버지가 약 2억 5천만 원의 합의금과 재해보험금을 받은 것 역시 고려되었다.

[11] [단독] 아픈 3살 애를 창문 없는 지하에… 법무부가 가뒀다 (2023.06.13.). 한겨레.

[12] [단독] 합법체류 6살도 20여일 갇혔다… 밥 못 먹어도 안 풀어줘 (2023.06.16.). 한겨레.

[13] 네이버 지식백과.

[14] 여기선 쫓아내고, 저기선 들여오고… ‘외국인 정책’ 이 모순 어쩔 건가 (2024.06.27.). 한국일보.

[15] “사장님 나빠요” 여전한데… 외국인 노동자 기댈 곳, 국가가 돈 끊었다 (2024.06.27.). 한국일보.

[16] 경기도 수원⋅안산⋅시흥, 광주 광산구, 울산 동구

[17] 윤 대통령 왜 이러나… 한국인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 (2024.07.12.). 오마이뉴스.

[18]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한국에서 유일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다.

[19] “한국, 이주노동자 사람으로 대하는 걸 손해라고 생각” (2024.07.10.). 오마이뉴스.

[20] 아리셀 화재, ‘보통의’ 이주노동자 산재와 다르다 (2024.07.25.). 시사IN.

[21] “진실 알고 싶은데… 보상 합의만 재촉하는 아리셀에 참담” (2024.08.12.). 주간경향.

[22]  ‘목숨 값’에서도 차별 받는 화성 화재사고 이주노동자 (2024.06.27.). 경향신문.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엄진영 (2021). 농업부문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태와 과제. 농촌경제, 44(2).

기사

김다은 (2024.07.25.). 아리셀 화재, ‘보통의’ 이주노동자 산재와 다르다. 시사IN. Retrieved from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526

김성욱 (2024.07.10.). “한국, 이주노동자 사람으로 대하는 걸 손해라고 생각”. 오마이뉴스. Retrieved from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39524?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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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2024.06.27.). 여기선 쫓아내고 저기선 들여오고… ‘외국인 정책’ 이 모순 어쩔 건가. 한국일보. Retrieved from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809007?si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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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경 (2024.08.12.). “진실 알고 싶은데… 보상 합의만 재촉하는 아리셀에 참담”. 주간경향. Retrieved from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24080506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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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2024.06.27.). “사장님 나빠요” 여전한데… 외국인 노동자 기댈 곳, 국가가 돈 끊었다. 한국일보. Retrieved from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40626110200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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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준 (2024.07.12.). 윤 대통령 왜 이러나… 한국인도 똑같이 당할 수 있다. 오마이뉴스. Retrieved from https://www.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3044777

기타 온라인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 접속일 2024.08.06.

법무부 홈페이지, https://www.moj.go.kr/moj/index.do. 접속일 2024.08.06.

영상자료

MIU404 (2020). TBS. E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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