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집장 하영
어릴 때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이 이미 두 발로 직립보행을 시작할 때도 여전히 나는 바닥을 열심히 기어다녔다고 한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성장이 느린 줄 알았건만, 알고 보니 태생적으로 심한 평발 때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이 평평한 발바닥 때문에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무릎부터 골반, 척추까지 망가질 수 있고, 그로 인해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릴 수도 있으며, 종국에는 디스크 때문에 평생 아플 가능성이 크다는 암담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게다가 원인은 모르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자주 쓰러지곤 했다. 예컨대 사람이 꽉 찬 출퇴근길 지하철, 휴가철 공항, 콘서트 스탠딩석 등에서 나는 종종 세상이 빙빙 돌고 토할 것 같은 울렁임을 느끼다 주저앉는다. 상태가 이렇다 보니 나는 할머니가 되면 정말 의사 선생님 말대로 디스크와 만성 두통에 시달려 침대에서 꼼짝 못 하는 신세가 되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처음에는 “요즘엔 좋은 요양원 많다는데 괜찮겠지”라고 쉽게 안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비싸고 좋은’ 요양원이더라도 자신의 의지로 일상을 꾸려나갈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일지 깨닫고 요양원 계획은 버렸다. 그다음으로는 “실버타운이 유행이던데… 고령화 시대니까 내가 늙으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라며 ‘노인들만 사는’ 장소면 괜찮겠지 안심했다. 하지만 ‘노인들만 사는’ 실버타운 또한 요양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또 다른 형태의 시설임을 깨달은 지금, 할머니가 된 나는 갈 곳을 잃었다.
그런데 어째서 몸이 약해지면,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해지면 시설에 가야 할까? 필요한 때에 병원에 가고 원하는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는 없을까? ‘약하기 때문에’, ‘일 인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시설에 가야 한다고 규정당하는 존재들— 예컨대 노인, 장애인, 노숙자 등—의 해방을 위해 오랜 시간 맞서 싸운 이들이 외친 것이 바로 ‘탈시설’이다.
1981년 UN이 ‘세계 장애인의 해’를 선포하며 전두환 정권은 기존 ‘재활의 날’[1]을 ‘장애인의 날’로 바꾸고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했다. 이후 1989년 「장애인 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법의 강제성이 상대적으로 강화되었지만, 역시 장애인을 ‘배려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시혜적인 시선에 머물러 있었다. 권리를 바탕으로 한 장애 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 시기였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시설 수용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장애 운동 조직에서 시설 설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곤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박경석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시기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그땐 워낙 열악했으니까, 장애인운동한다는 사람들도 지역사회 내에서 장애인들에게 게토 정도라도 마련을 해달라 이렇게 싸우고 그랬던 거야. 사실은 게토 자체도 엄청 차별적인 건데,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거죠”[2]
시설 수용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며 본격적으로 탈시설 담론이 등장한 계기는 2009년 일명 ‘마로니에 8인’의 노숙 농성이다. 마로니에 8인— 김동림, 고 황정용, 고 김진수, 방상연, 김용남, 주기옥, 홍성호, 하상윤—은 석암재단 산하 베데스다요양원에 거주하던 장애인들이다. 이들은 2008년 시설 거주인들과 노동자들이 폭로한 석암재단 비리에 대응하고 함께 투쟁하기 위해 양천구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결국 이들의 투쟁은 시설 운영진을 교체하는 성과를 냈지만, 운영진 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시설에 거주해야 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김정하는 베데스다요양원에 거주하던 장애인들에게 탈시설을 제안했고, 여덟 명— 마로니에 8인—이 곧바로 수락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들은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시설에 문제가 있다’를 넘어, ‘시설 자체가 문제다’[3]를 외치기 위해서. 62일의 노숙 투쟁 끝에 서울시는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체험홈과 5년간 거주할 수 있는 자립생활주택을 약속했다. 국내에서 탈시설과 관련된 최초의 정책이 마련된 것이다. 이후 2021년 문재인 정부는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실상 시설 소규모화 정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탈시설’ 정책이라 불렸다. 그럼에도 2022년 서울시가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이하 탈시설 조례)를 발표하며 탈시설 운동의 성과가 조금씩 드러나는 참이었다.
그러나 지난 2024년 6월 17일, 서울시의회에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안’이 가결되었다. 이번 서울시의 탈시설 조례 폐지안은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 부모회가 주도하여 약 2만 7천여명의 주민 발의로 통과되었다. 이들의 제안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위 조례(탈시설조례안)는 중증장애인과 경증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고 장애인의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는 내용으로서 결과적으로 의사표현 및 지역사회 정착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을 시설로부터 추방함으로써 오히려 중증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폐지를 제안함.[4]
한편 서울시의 탈시설 조례안 폐지에 대해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퇴행적 조치”라며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5] 해당 성명문에는 시설 수용은 어떠한 경우에도 “장애인 보호의 형태” 혹은 “선택”으로 여겨져서는 안 됨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과거 오세훈 시장의 발언[6]을 “시설 유지를 옹호”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서울시는 탈시설을 반대한 적 없고, “기존 탈시설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다른 제도와의 유기적인 연계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개정안을 발표했다며 입장문을 공개했다. 또한 장애인권리위원회가 비판한 오세훈 시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당시 서울시장의 발언은 탈시설을 통한 지역사회 자립생활이 필요하고 그 취지에도 적극 공감하지만, 재정 여건상 당장 완전한 탈시설은 어려우며 여건에 따라 자립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일부 장애인 단체의 무리한 요구와 시민불편을 초래하는 과도한 불법시위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7]
오세훈의 발언과 서울시의 해명은 결국 자립이 ‘가능한’ 장애인과 ‘불가능한’ 장애인을 구분 짓는 것에 불과하다. 탈시설 조례 폐지안을 발의한 이들의 근거 또한 마찬가지다. 탈시설 조례가 ‘지역사회 정착이 불가능한’ 장애인들을 억지로 시설 밖으로 ‘추방’시킨다는 것이다. 즉, 시설 수용은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논리다. 그렇다면 시설은 정말로, 장애인을 보호할까?
현행법에 따르면, 일하지 않는 성인 장애인은 부모와 자녀, 혹은 자녀의 배우자가 한도 이상을 버는 유급 노동을 할 경우엔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8] 또한 부양 의무자는 장애인 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를 거부할 수 있지만, 장애 당사자는 부양받는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 즉 장애인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가족에게 의존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며, 가족 구성원과 신체적⋅경제적 차원의 운명 공동체로 묶인다.[9] 결국 이러한 결합은 ‘치유’ 혹은 치유가 불가능한 존재에 대한 ‘보호’라는 이름 하에 시설화로 이어진다. 실제로 장애인의 시설 입소는 자신의 의사가 아닌 가족(보호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설 혹은 원가족’이라는 갈림길에서 장애인은 스스로 선택할 기회도, 다른 길을 찾을 기회도 박탈당한다.
이렇게 거주시설에 입소하는 장애인의 경우,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불가능하며 무조건적인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립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이들은 ‘치료’ 당해야만 사회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영영 자립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치유’로서의 접근은 현재의 삶을 유예하고, 그 대신 장애와 질병이 없는 미래를 요구하며 현재를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갈 수 없게 한다.[10] 시설 안에서의 삶도 어떤 이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시설에 산다는 건 이런 거야. 수 명이 한 방에서 개인 공간도 없이 살아야 한다는 거. 화장실도 몇 명이 같이 쓰고. 그러니께네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은 프라이버시라는 거를 하나도 가지지를 못해.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하고, 똑같은 시간에 자야 하지. 먹기 싫어도 매일 똑같은 시간에 밥을 먹어야 되고요, 뭘 먹고 싶건 자기가 뭐 먹을지 선택도 할 수가 없어요. [중략] 사람이 말이야, 살다 보면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서 술도 한잔하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면 연애도 하고 싶고 그렇잖아. 그런데 그런 것도 당연히 마음대로 못해.” [11]
시설에는 크게 네 가지 특성— 집단성, 권력 불평등성, 비선택성, 격리성—이 있다. 대형 시설의 경우, 시설 노동자 한 명당 평균적으로 13~18명의 장애인을 담당할 만큼 많은 인원이 함께 거주한다는 점에서 집단성을 가진다. 또한 시설 노동자(직원)와 시설 수용자 사이의 권력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한 명의 노동자가 여러 명을 돌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돌봄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시설 수용자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시혜자-수혜자 관계 속에서 시설 노동자와 수용자는 불평등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한편, 대부분의 장애인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보호자(가족)에 의해 입소하게 된다는 점에서 비선택성을, 그리고 지역사회로부터 철저히 보이지 않도록, 자발적 의지로 타인과 관계를 형성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격리성을 갖는다. 결국 시설화된 삶의 핵심은 ‘삶의 장소성’을 갖지 못하고 강제된 관계에 머물러야 하며, 다른 삶으로의 이동이 봉쇄된다는 점이다.[12]
따라서 장애인— 그리고 시설에 수용되는 그 어떤 존재든—은 시설에서 ‘보호’받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정상’에 못 미치는 존재, 약한 존재, ‘일 인분’을 못하는 존재로서 시설에 ‘수용’될 뿐이다. 즉, 시설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이상적인 인간의 상이 무엇인지를 호명하는 메커니즘”[13]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그러므로 시설은 삶의 선택지가 될 수 없으며, 진정한 의미의 ‘집’은 더더욱 아니다. 자신의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결국 ‘장소감을 느끼고, 당사자가 통제하며, 집에 대한 적법한 권리를 가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14]
그렇다면 서울시가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다른 제도와의 유기적인 연계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했다며 발표한 자립생활 조례안은 어떨까? 정말 탈시설을 위한 제도일까? 다음 표는 기존 탈시설 조례와 개정된 자립생활 조례를 간략하게 비교한 내용이다.
[그림1] 탈시설 조례와 자립생활 조례 비교
우선 제목과 제2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탈시설’ 용어는 삭제되고 ‘자립생활’ 혹은 ‘거주시설 퇴소’로 대체되었다.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에서 나온다는 물리적 의미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정착하고 권리를 회복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거주시설 퇴소’는 물리적인 시설 퇴소— 원가족 복귀, 사망, 타 시설 전원 등—의 경우만을 포함하기 때문에 지원 대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탈시설’이 더욱 적합한 용어다. 또한 제2조에는 “거주시설 변환” 내용이 삭제되고, “장애인 거주시설”의 정의를 명시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거주시설이 탈시설 장애인의 주거 지원 등을 위한 기관으로 전환하는 내용을 삭제한 후, 거주시설의 정의만을 제시한다면 시설은 본래의 기능을 계속 수행하게 된다.[15] 또한 제4조(기본원칙)가 삭제되며 장애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탈시설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내용이 지워졌다. 게다가 시장의 책무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한 기존 탈시설 조례와 달리, 자립생활 조례는 한 마디로 ‘노력해야 함’을 추상적으로 명시할 뿐이다. 이 외에도 ‘탈시설 기본계획 수립과 재원 확보’, ‘민관협의체’, ‘자립생활주택 지원 근거’, ‘소득보장을 위한 공공일자리 제공’ 등이 삭제되었다.
결국 서울시의 행보는 시설을 마치 삶의 선택지인 것처럼 제시하는, 탈시설과 역행하는 퇴행적 조치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장애인이 시설과 탈시설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라 주장하지만, 시설은 삶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서울시가 발표한 자립절차 개선안에 따르면, 탈시설 절차가 까다로워졌을 뿐 아니라,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의 의사는 오히려 배제되었다.
[그림2] 서울시가 발표한 자립지원 절차 개선안 ⓒ서울시
출처: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072
퇴소 및 자립지원 절차 시스템을 정리한 표. 현행은 탈시설 희망, 퇴소위원회 결정, 지원주택 입주 절차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개선안은 탈시설 희망, 의료진 참여 자립역량 조사, 자립위원회 결정, 자립체험 및 지원주택 입주, 부적응 시 재입소 과정으로 구성된다.
해당 개선안에서는 의료인이 장애인의 ‘자립역량’을 조사하며,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자립지원위원회가 퇴소를 검토하고, 퇴소 후 정기적인 모니터링 과정까지 기존 탈시설 절차에서 추가되었다.[16] 이는 탈시설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견을 배제하고, 의료진과 같은 소위 ‘전문가’의 판정 체계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퇴소 후에도 ‘전문가’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다시 시설로 재입소할 수도 있다.
자립생활은 어떠한 조건이나 자격을 충족시켜야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컨대 비장애인이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할 때, 국가나 전문가가 나서서 “당신은 아직 자립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거주권조차 국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은 매우 차별적인 조치이다.
거주시설 장애인에게 탈시설 의사를 물을 경우, 시설 바깥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평생을 시설 안에서 살았던 이들에게 지역사회에서 홀로 자립하는 것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만약 탈시설하고자 하는 욕구를 탈시설 보장의 근거로 삼는다면, 역설적으로 욕구를 확인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배제하게 된다.[17] 결국 서울시의 행보는 절차를 까다롭게 세분화하여 탈시설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당사자의 의사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시설 수용을 공고히 하는 것에 불과하다. 약자와 동행한다는, ‘동행매력특별시 서울’은 장애인과는 동행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시설 밖에서 자립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이 질문에 답하는 건 쉽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집, 소득, 그리고 돌봄이다. 즉,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거주할 수 있는 집, 노동할 수 있는 일자리,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이다. 현재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에서는 탈시설 이후 장애인을 위한 지원주택 제도와 활동지원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18] 지역사회에서 거주하기 위해— 예컨대 필요한 물건을 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옷을 사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노동할 수 있는 일자리이다.
과거 장애인을 위한 복지 일자리는 “한 명의 시민인 중증장애인에게 삶의 기회를 준다”는 취지라는 점에서 공급자 중심의 시혜적 정책에 불과했다. 이에 장애계의 오랜 투쟁 끝에 2020년 서울시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이하 권리중심 일자리)’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12월, 장애인 노동자 400명과 전담인력 50명이 한순간에 해고되었다. 오세훈 시장은 권리중심 일자리 사업을 폐지하며 ‘장애유형별 맞춤형 특화일자리 사업(이하 특화일자리)’을 도입했으나, 예산이 약 31% 삭감되며 고용 인원 또한 400명에서 250명으로 감소했다. 게다가 기존 권리중심 일자리에 참여하던 최중증장애인의 대다수가 특화일자리에 흡수되지 못했다. 서울시는 특화일자리의 예시로 원예관리사, 택배원, 세차원 등을 제시했으나, 최중증장애인이 수행 불가능한 일자리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권리중심 일자리에서 특화일자리로 진입한 노동자는 단 6명에 불과했다.[19] 현재 서울시를 제외한 12개의 지자체가 운영 중인 권리중심 일자리의 목표는 생산성이 아닌,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권의 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20] 이러한 권리중심 일자리의 확대 및 보장은 장애인도 자신의 소득을 갖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돌봄과 의존은 필연적으로 관계를 수반한다. 타인을 돌보는 행위, 그리고 타인에게 기대는 행위 모두 그 사람을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사회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필연적으로 집과 돈을 비롯한 돌봄 너머의 ‘관계’를 요구한다.
예컨대 1990년대 지역사회돌봄법과 직접지불법 등을 통해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체계를 갖춘 영국은 주로 지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KeyRing 네트워크형 지원생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네트워크는 지원해야 하는 장애인이 거주하는 9가구와, 이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지역사회 생활 자원봉사자 1가구로 구성된 10가구를 기본 단위로 한다. 자원봉사자는 활동지원사와 같은 돌봄을 제공하기보다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 기관들과의 연계망을 구축한다. 또한 네트워크 내에서 서로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 지역 행사에 참여하는 등 지역 사회 구성원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다.
시설은 ‘삶의 장소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집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삶의 장소성이란 어떻게 획득되는가? 김순남(2018)은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관계 맺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며, 그 공간이 타자에게 개방되고 열릴 때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관계적 삶의 장소성이 획득된다”고 말한다.[21] 따라서 우리가 ‘자립 생활’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온전히 홀로 독립되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애초에 온전히 홀로 살아가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립이라는 게 단순히 말 그대로 혼자서 삶의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게 아니라, 함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관계를 새로 맺어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거라는 걸 보여주는 거. 이걸 요새 어려운 말로는 ‘연립’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요. 그러니께네 자립이라는 건 곧 연립의 기술을 배워가는 거야.”
결국 진정한 탈시설— 시설 바깥에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물론 탈시설 이후 “불행 끝. 행복 시작”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그러길 바라지만) 사회는 그리 다정하고 포용적이지 않다.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위해, 비장애인과 함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여전히 끝없는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시설 밖에서 장애인들은 (모두가 그러하듯) 때때로 슬프고, 화나고,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아픔과 실패는— 비장애인이든 ‘자립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장애인이든— 누구에게나 삶의 동반자다. 다만 그 모든 아픔들을 마주하고 헤쳐나가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일 뿐이다.
탈시설은 분명 불화(不和)를 일으킨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몸과 불화한다. ‘우리’가 매일 같이 타는 버스와 지하철에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올라서는 문턱에 균열을 일으킨다. 어떤 존재가 약하기 때문에 혹은 무능력하기 때문에 시설에 수용해야 마땅하다고 규정하는 권력 구조에, ‘우리’에게 틈새를 만든다. 그러니 틈새로 모두 함께 떨어지자. 틈새의 틈새까지, 바닥의 바닥까지. 그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의 평평한 발바닥도, 당신의 몸도, 당신의 마음도, 나와 당신의 우리가 함께 치열하게 연루되는 곳. ‘우리’가 비로소 우리가 되는 그 세계를 향해.
편집장 하영 | choibook04@naver.com
[1] 1972년부터 민간 단체에서 개최해왔다.
[2] 박경석, 정창조 (2024). 114.
[3] 같은 책. 119.
[4]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
[5] [전문] 서울시 탈시설조례 폐지에 대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성명 (2024.06.28.). 비마이너.
[6] “옛날의 인권침해는 일부 인정하지만 마치 (탈시설이) 전 세계 추세인 것처럼 주장을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인권선진국에도 지금 다 시설이 있고, 잘 운영하고 있다. 절반 이상이 시설을 원하고 있다. 특히 가족이 그렇다. 누가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시고 싶겠는가. 그러나 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거다. 그게 현실. 장애인은 다 탈시설 해서 지역사회에서 자립 생활 해야 한다는 게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걸 할 수 있는 장애인도, 못하는 장애인도 있다”
출처: 오세훈 “박원순 한강에 단 1원도 투자안해…전장연은 억지”[인터뷰③] (2023.07.30.). 국민일보.
[7] 김동은 (2024.07.23.). 서울시, UN장애인권리위원회 성명서에 대한 입장 전달 [보도자료]
[8] 일하는 성인 장애인은 월소득이 약 120만원 이상일 경우에 수급자 대상에서 탈락한다.
[9] 김은정(2022). 158.
[10] 같은 책. 28.
[11] 박경석, 정창조 (2024). 107.
[12] 나영정 외 (2020). 40.
[13] 같은 책. 35.
[14] 김미옥 외 (2023). 29.
[15] 서울시의회, 결국 탈시설조례 폐지… 자립생활조례 개악안도 통과. (2024.06.17.). 비마이너.
[16] 시행 들어간 ‘서울시 장애인 자립절차 지원 개선안’ 후폭풍 (2024.02.29.). 에이블뉴스.
[17] 나영정 외 (2020). 133.
[18] 지난 6월, 보건복지부가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24시간 활동지원 제도를 실시하는 등 여러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만65세 미만으로 나이 제한이 있는 등의 한계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본 지면의 한계로, 지원주택과 활동지원 사업까지 모두 세밀하게 다루지 못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19] 제3회 장애인 노동절 “오세훈,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복원하라!” (2024.05.01.). 비마이너.
[20]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와 민주주의의 재생 (2024.05.13.). 비마이너.
[21] 장애여성공감 (2018.10.26.). 2018년 IL과 젠더 포럼 자료집 [자료집]. 59.
참고문헌
단행본
김미옥 외 (2023). 자립을 위한 집. 마음대로.
김은정 (2022).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강진경, 강진 (번역). 후마니타스.
나영정 외 (2020). 시설사회. 와온.
박경석, 정창조 (2024). 출근길 지하철. 위즈덤하우스
장혜영 (2022). 어른이 되면. 시월.
논문 및 저널
이정하 (2024). 발달장애인의 시민권 강화를 위한 탈시설 정책의 과제-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중심으로. 도시와 빈곤 / Urbanity & Poverty, 126, 1.
전근배 (2024). 탈시설 장애인의 신체 기능, 시설화 경험, 지원제도 체감도, 사회자본 및 고립감 간의 구조적 관계 (석사, 대구대학교 대학원). https://search-ebscohost-com-ssl.oca.korea.ac.kr/login.aspx?direct=true&db=edsker&AN=edsker.000005154424&lang=ko&site=eds-live&scope=site. Acesso em: 6 ago. 2024.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강준구 (2023.07.30.). 오세훈 “박원순 한강에 단 1원도 투자안해…전장연은 억지”[인터뷰③]. 국민일보. Retrived from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8515916
김소영 (2024.06.17.). 서울시의회, 결국 탈시설조례 폐지… 자립생활조례 개악안도 통과. 비마이너. Retrived from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6544
김소영 (2024.05.01.). 제3회 장애인 노동절 “오세훈,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복원하라!”. 비마이너. Retrived from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6369
백민 (2024.02.29.). 시행 들어간 ‘서울시 장애인 자립절차 지원 개선안’ 후폭풍. 에이블뉴스. Retrived from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072
[전문] 서울시 탈시설조례 폐지에 대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성명 (2024. 06. 28.). 비마이너. Retrived from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6608
정재원 (2022.06.02.). 장애인복지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대응방안. 에이블뉴스. Retrived from https://www.abl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710
최태현 (2024.05.13.).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와 민주주의의 재생. 비마이너. Retrived from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6388
하민지 (2024. 06. 16.). 서울시의회, 탈시설조례 폐지 전제로 자립생활조례 개악 시도. 비마이너. Retrived from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6537
김동은 (2024.07.23.). 서울시, UN장애인권리위원회 성명서에 대한 입장 전달 [보도자료]. 접속일 2024.08.12.. Retrieved from https://www.seoul.go.kr/news/news_report.do#view/416300?tr_code=snews
장애여성공감 (2018.10.26.). 2018년 IL과 젠더 포럼 자료집 [자료집]. 접속일 2024.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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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 및 보고서
서울특별시 장애인 자립생활 및 지역사회 정착 지원에 관한 조례 [시행 2024. 07. 15.]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 [시행 2022. 07. 11]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 [시행 2024. 0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