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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이야기

[꼬문생각]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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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묶음


나의 슬픔을 알고도 진정 나에게로 가지 못함은 결국 인간은 자발적 구원에 부적합하다는 뜻이다


나는 세기마다 발행되는 슬픈 엽서

따라서

사라진 네가 아니더라도 반송하지 않는다


다 같이 춤을 출 것이다

펄럭이는 치마가 조개 모양이 될 때까지

성큼성큼


깨진 조개 껍데기를 줍고 또 줍다가

죽음 없는 오후는 도래하지 않을 미래


오래된 겉옷에는

동그랗게 뚫린 총탄 자국들

자그마치 천 이십일 개


네가 말한다

자꾸만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고

그런 일을 아느냐고 물었다


빛이 몸을 관통했어

아주 가느다란 빛이었어


너의 얼굴을 가로지르던 풍경

철컥대는 발걸음과 둔탁한 탄내

그 어디쯤에 아주 무거운 걸 걸었다


창문에 앉아 있던 말이 새가 되어 날아갔을 때

너는


조개들이 엉켜 소리를 내었다

분명 조개들은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스트로브잣나무


늘 푸른 바늘잎나무

키는 크고 줄기가 곧으며 가지는 사방 고르게 난다

나무껍질은 어릴 때 녹회색으로 텁텁한 편이지만

오래 살면 깊게 갈라진다

열매는 이듬해 9월 원통 모양의 솔방울로 열린다

여물 때 열매의 틈이 벌어진다


나무에게

이야기는 생명을 베어무는 것으로 대답한다


올곧은 나무는

곧은 등으로 열매를 키우지만


원형의 열매는

박살이 나고 만다는 이야기


나무는 자란다

새 솔방울들이 떨어질 것이다


박살이 나기 위해

그렇게 다시 시작하기 위해


향은

일렁일 때 더 짙어지는 법


나뭇결을 잘게 부수는 빛의 갈기가

땅 속 무덤을

또 다시 태동하는 역사를 빌린다


은녹색 나무는

박살나기 위해 여물고


거짓말같이 하얀 이야기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 믿는다



서연 | waveandwav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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