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문생각] 은희
Q. 뭐가 제일 무섭나요?
폴: 늑대인간이요!
니나: 상어가 무서워요.
딜런: 우리들을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서서히 인도하는, 우리 힘으로는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저는 무섭습니다.
나는… 딜런 같은 아이였다. 구체적인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때부터 나는 죽음이 무서웠다. 밤이 되면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나는 죽은 뒤에 어디로 가게 될까. 사후세계는 정말 있을까(아마도 없겠지). 죽은 뒤에는 ‘생각하는 것’ 자체도 못 하게 될까. 그건 좀 무섭다(사실 많이). 내가 죽은 뒤 시간이 많이 흐르면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날도 오겠지. 그러면 진짜 사라지는 거구나. 원피스미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은 이어졌고 두려움도 같이 커져만 갔다.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를 집어삼킬 만큼 커지면 ‘그만 생각하자’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잠에 들었다. 생각하는 것 자체를 그만두고 나서야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영생을 추구하다가 결국 파멸에 이르는 캐릭터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만 같았다. 물론 나는 내 영혼을 조각내 물건에 보관하거나, 영생을 추구하다 뱀 수인(;;)과 같은 꼴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가끔은 나무나 거북이가 부러워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인간보다 오래 살 수 있으니까.
새해 첫날. 내 뒤를 졸졸 쫓아오던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유령들의 이야기를 보기로 정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라고 말해봤자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으니, 유령의 도움이라도 받아보자는 이유에서다. 이미 죽은 후니까 유령은 죽음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거고,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 나도 조금은 이 지긋지긋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2025년 1월 1일, 〈나는 죽어 버렸다!〉(オレは死んじまったゼ!, 2023)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데 실패했다. 유령들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 버렸다!〉에서는 자정에만 열리는, 내세로 가는 개찰구가 등장한다. 모든 유령이 그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승에서 미련을 다 해결한 이들만이 Rin-ne(내세)가 적힌 교통카드를 찍고 내세로 향하는 열차를 탈 수 있다. 등장인물들은 유령이 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트라우마를 제대로 마주하고 치유한다. 거짓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던 테츠로는 유령이 되어 자신이 숨겨왔던 진실을 고백하고, 원망과 외로움에 휩싸여 학교 괴담의 주인공이 되었던 린은 파라파라 댄스[1]를 춘 뒤 내세로 향한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내세로 향하는 유령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세에 무엇으로 태어날 지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리 쉽게 내세로 떠날 수 있는 건지.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는데. 어차피 주변에 다른 유령도 있고, 핸드폰도 쓸 수 있고(유령들끼리지만), 메밀 소바도 먹을 수 있으면서. 그냥 이승에서 유령인 채로 살면 안 되나.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내 질문에 답해줄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죽어 버렸다!〉를 끝까지 보고난 뒤 나는 내가 영원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두려움을 껴안고 살아가게 되겠구나. 죽고 나서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겠구나. 그러다 문득, 오래 전 TV에서 본 제정원 신부의 말을 떠올렸다.
“두려움을 없애겠다는 건 신이 되겠다는 말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없앨 수 없다. 두려움을 없앨 수 없으니 그냥 참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것을 포기했다. 있는 힘껏 죽음을 두려워하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만큼 삶에 미련을 가득 남겨야지. 하루라도 더 삶을 이어가기 위해 발버둥칠 거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늘 그래왔듯 발버둥치게 될 거다.) 그런 내 욕망은 추악하고 질척거리는 검은 덩어리 같아서 자주 꺼내보지는 못하겠지만, 영원히 발자국처럼 내 뒤를 따라다닐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래도… 오늘 밤에는 내가 죽음을 떠올리며 생각의 순환고리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만 생각하고
자자.
은희ㅣa0520choi@naver.com
[1] 신시사이저가 내뿜는 강한 비트에 맞춰 가볍게 몸을 흔들면서 손과 팔만을 이용해 추는 춤. 간단한 안무를 여럿이서 무표정으로 추는 것이 특징이다(최민영, 2001). 25년 전에 사망한 갸루걸 린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파라파라를 추는 것이 유일한 인생의 낙이었다. 자신의 무표정한 표정이 파라파라를 출 때만큼은 가장 ‘쿨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린은 이후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져 이지메를 당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자살한다. 그리고 25년 동안 유령인 채로 이승을 떠돈다. 린은 동료 유령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고, 그와 함께 불 꺼진 체육관에서 파라파라를 추다 문득 깨닫는다. 자신의 유일한 소원이 그저 ‘다같이 계속 파라파라를 추는 것’이었음을.
참고문헌
온라인 기사
안소정 (2024.08.11.). [Opinion] 귀신도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 나는 죽어 버렸다! [드라마]. 아트인사이트. Retrieved from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1338
최민영 (2001.07.02.). ‘DDR열풍’ 잇는 ‘파라파라 댄스’ 열풍. 경향신문. Retrieved from https://www.khan.co.kr/article/200107021729201
편지수 (2019.04.21.). 유시민, 제정구 신부가 교회 나오지 말라고 한 까닭? “제정원 신부, 두려움 없어 보였다”. 경인일보. Retrieved from https://www.kyeongin.com/article/1392300
영상자료
オレは死んじまったゼ!(나는 죽어 버렸다!) (2023). WOW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