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문생각] 민주
X(이하 엑스)를 사용한 지 벌써 (어쩌면 아직도) 4개월 정도 되었다. 사실 엑스가 트위터이던 때, 잠깐 방문[1]한 적이 있다. EBS[2] 하나만으로 대한민국 모든 여학생의 취향을 구분할 수 있던 시절, 방송사 연말 축제의 마지막 무대에 서는 그룹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던 시절, 나도 여느 학생처럼 ‘ㅇㅇ이’의 고화질 사진을 다운로드 받고 싶어 트위터를 시작했다. 비슷한 연령대의 옆 학교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던 때는 페이스북을 애용했고, 친한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중시했던 고등학교 때는 인스타그램만 사용했다. 아이돌 덕질에서 손을 떼며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던 트위터는 자연스레 삭제다. 관찰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트위터는 한마디로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덕질 혹은 정치질, 둘 중 그 무엇에도 참여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트위터 없이 살아감에 딱히 지장이 없었다. 굳이 불편한 점을 꼽자면, 트위터를 이용하는 친구가 게시물을 공유하면 로그인하지 않아 안 보이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트위터에서 퍼오는 게시글은 부수적이었기에 궁금증이 생기진 않았지만, 처음으로 불편함을 느꼈던 것인 이곳 ‘고대문화’를 들어오고 난 후였다.
편집회의를 하면 주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곤 하는데, 성원끼리 이때 먹은 음식을 공유하는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는 것이다. 항상 회의 당일 저녁 약속이 잡혀있던 나는 메뉴가 궁금해 엑스 계정을 찾아보고 싶었다.[3] 그러면서 자연스레 엑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엑스’라는 앱에 적응하기는 생각보다 쉬웠다. 인스타그램처럼 ‘보이는 나’를 고려해 프로필을 꾸밀 필요도 없고, 스크롤 한 번에 궁금했던, 어쩌면 궁금할 여력조차 없던 사실을 즉각적으로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엑스를 꽤 요긴하게 이용하는 중이다. 내게 트위터는 밈을 학습할 수 있는 최전선으로서 기능하고 가장 최신의 정보를 신속하게 배달해 주는 강제적 열람실[4]이 되기도 한다. 참 이상했다. 엑스의 신규 이용자인 나보다, 어쩌면 더 오래 이 시스템(이른바 트위터)을 사용해온 사람들, 트위터리안들이 엑스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들은 왜 엑스를 트위터라고 부르는 것일까? 엑스를 하며 드는 의문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엑스는 트위터리안의 거주지에 불과했으며, 나는 그들에게 늘 이방인으로 존재한다는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무엇이 트위터리안들을 엑스로부터, 나를 그들로부터 떨어트려 놓은 것일까?
트위터리안 친구에게 트위터와 엑스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더니 재밌는 답장이 왔다:
엑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주가 떨어졌다고 **한 결과물/ 트위터: 마음의 고향, 내 안식처. 내 친구들이 사는 곳.
트위터는 일론 머스크가 인수한 뒤 엑스로 바뀌었다. 이때 많은 기능이 바뀌거나 제한되어 기존 이용자들이 반발했다.[5] 그러나 그가 앗아간 것은 좋은 기능과 트위터라는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기존 ‘음지’로 해석된 트위터는 일방적이고, 날것의, 원초적인 자아들의 집합체였다. 이들은 트위터 바깥의 사람들을 갓반인[6]이라고 칭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자발적으로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를 자조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정상은 정상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어떤 형식으로든 과잉되게 표출된다. 이 과정을 공통된 자아를 형성한 이들과 나누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관이나 세계관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위터는 어떻게 보면 집단적 독백임과 동시에 집단적 반항이다. 이들은 ‘일반인’들이 이룩한 실재하는 세계에 반항한다. 그리고 그 세계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돈으로 환원되는 것만이 전부라는 자본주의 기조가 견고히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항의 주적이었던 자본주의의 대표 격이 되는 일론 머스크가 이들의 공간을 사들이고 말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놓고 보면 내가 열심히 가꾼 정원에서 내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돈 많은 아저씨가 이 땅을 전부 매입해 개조한 셈이다. 이로써 엑스 속에 존재하지만, 엑스를 불매한다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이제야 비로소 트위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이상 엑스 이용자로서 그들과의 결속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나는 엑스 이용자임에도 여전히 트위터리안들이 구축한 완고한 트위터 세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엑스는 트위터를 위한 임시 거처에 불과하다. 트위터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형성해 온 견고한 관계와 소통망, 이익보다 끈질기다는 사랑 혹은 분노로 연결된 하나의 문화는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섰다. 트위터를 사랑한 이들, 그리고 앞으로 트위터를 함께할 이들에게 엑스는 house가 될 순 있어도 home이 될 순 없다.[7]
민주 | mjmjlee05@naver.com
[1] 실제로 이용했다기에는 트위터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방문의 정도가 맞는 것 같다.
[2] 각각 엑소(EXO), 방탄소년단(BTS), 세븐틴(SVT)의 첫 번째 알파벳을 따서 만들어진 용어다.
[3] 참고로 식사 계정의 이름은 꼬문이의 식사계정이다. 고대문화가 인정하는 맛잘알 조합을 알 수 있으니 궁금하다면 @nottorturebutkm으로.
[4] 알아두면 좋은 정보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열람하게끔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5] 인용 트윗 가능 제한, 마음함 기능 제한, 모먼트 기능 삭제, 타임라인 2개로 설정, 타임라인 자동 스크롤, 글자 수 초과 시 유료와 같은 기능들이 생겨났다.
[6] 갓반인이란 일반인이 접두사 ‘갓-’을 붙인 혼성어로 덕질, 혹은 오타쿠와는 무관한 일반인들을 본인과 다른 ‘훌륭한 일반인’이라고 치하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유의어로는 킹반인이 있다.
[7]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대사에서 착안한 것이다. 캠핑카를 타고 미국 전역을 유랑하는 유목민인 그녀는 거주지(house)라고 모두 집(home)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처럼 house는 공간, home은 고향됨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