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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돌고 돈다던데: 인뗄리겐찌야는 노동해방의 꿈을

[꼬문생각] 정훈

90년대, 또는 보다 이전의 자아로 현재를 살아가는 대학생이 아직 있다면 믿어지는가? 그것도 24학번 새내기(였던 것)가 말이다. 입실렌티 초청 연예인 명단이나 로스쿨, 대학원 진학 같은 것들이 최고의 관심사인 오늘날의 고대에서 여전히 누군가는 반식민-반자본이니 신식국독자론이니 하며 흔히들 ‘운동권’이라 부르는 집단의 정서 속에 허우적대고 있다. 이미 대부분이 관심을 끈 지 오래된 것이지만, 그럴수록 누군가에게는 더 소중해지는 법 아니겠는가? 마치 골동품이나 우표, 코카콜라 병뚜껑 등을 수집하는 이들에게 그렇듯이 말이다. 대개는 이들에게 ‘괴짜’라거나, ‘너드’ 따위의 표현을 갖다 붙이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이 바로 그런 부류다. 그것도 아주 흠뻑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운동권’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아마 ‘586’, ‘민주화’, ‘좌파’ 등의 키워드들이 머릿속을 배회할 것이다. 어쩌면 맑스나 레닌 등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면, 까마득히 먼 선배들의 이야기일 뿐, 아예 본인과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 사실이다. NL과 PD 선본이 싸우는 와중에 21C가 등장한지도 이미 강산이 두 번은 더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흔적은 ‘민족고대’로 시작하는 FM이 전부다. 그나마도 고대가 가장 ‘운동권’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학교들 중 하나라는 것은 나에게 그저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대개 사람들에게 내 소개를 할 때면 대체 왜 그런 걸 하고 다니느냐 묻는다. 스스로에게도 종종 질문을 하곤 한다. 나는 왜 2025년의 대학에서, 넉넉히 잡아 10년도 더 전에 ‘유행’이 지난 행동을 하며 스스로의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그닥 유행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지만서도, 떡볶이 코트(더플 코트)가 유행하던 시절, 그러니까 내가 태어날 적에 이미 져버린 유행에 이제야 올라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지점은, ‘과연 정치는 ‘유행’에 얼마나 좌우되는가?’ 이다.

우리 솔직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중대사를 ‘유행’에 맡겨본 적이 있을 것이다. 유행이란 탕후루나 크로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지 않나. 나도 고등학교 때 이과가 유행이라 이과를 선택했고, 너도나도 재수를 하기에 나도 수능을 한 번 더 보았고, 내가 가장 관심 있던 분야를 골라온 곳이 정치외교학과다. 여기서도 여전히, 너도나도 로스쿨을 지망한다고 이야기하고, 학점 따기 쉽다는 소위 ‘꿀강’은 수강신청 때마다 전쟁터가 된다. 정치라고 뭐 다른가, ‘하야하라 박근혜’를 외치고, 유병재, 손석희, 김제동 등이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2016-2017년은 간데없고 부정선거 음모론자가 ‘여성가족부 폐지’ 단 7글자로 대통령이 되었다가 내란을 일으켰다. 참으로 하 수상한 시절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백래시’가 유행인 것 같다. PC(정치적 올바름)는 사탄의 자식 취급을 받고 있다. 페미니즘은 ‘사상 검증’의 대상이 되었고, 트랜스젠더와 장애인은 ‘안 볼 권리’ 운운하는 이들에게 살아갈 권리를 침략당하고 있다. ‘안 볼 권리’라고 하는 것이 결국 내 눈에 띄지 말라는 뜻 아닌가. 백래시로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세상이니, 이 유행이라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가. 이 와중에 탈정치 담론은 참 진리마냥 여겨지고 있다. 어떠한 행동을 하기 이전에 이것이 정치적인지 아닌지를 자기 검열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너도나도 4월 16일이 되면 저마다 SNS에 노란 리본이나 “REMEMBER 0416” 같은 추모 문구를 올리던 불과 몇 년 전과 다르게 이제 4·16을 챙기면 현충일은 왜 안챙기냐는 해괴한 질문을 받곤한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쯤에서, ‘대체 그럼 운동을 왜 하는건데?’ 같은 질문에 답을 해보고자 한다. 말을 붙이자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함도 맞고,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서고자 함도 맞다. 때로는 ‘정의로운 나’에 취했던 적도 있고, 그저 이론이 너무 재밌던 적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역사의 변화발전의 당당한 주체로서 사회 변혁을 바라고 있다고 스스로를 금칠하기엔 여전히 낯부끄럽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 관점과 인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스스로를 좌파 활동가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2024년의 고려대를 ‘운동권 새내기’로서 살았다. 똑같은 대학생이었다. 합동응원전에서 독감에 걸리고, 주량의 한계를 하루하루 시험하는 나날이었으며, 미팅도 해봤고 연애도 했다. 중지에서 밤도 샜고 친구들과 여행도 갔다. 과방에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학회도 열심히 했다. 남들과 다른 거라곤 딱 하나, ‘운동’을 했다. 집회를 종종 나갔고, 각자의 생각을 나눌 때 나는 내 관점을 나눴다. 밥약했던 선배들이 우리 과에선 어떤 이야기든 상관없다고 했기에, 믿었다. 나는 내가 내 주위를 살아가는 이들과 하나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다.[1]

얼마 전에는 큰일이 있었다. 윤석열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국제적으로 극우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의 위기가 찾아오면 모종의 무리수를 던질지도 모르겠다는 예측을 했었다. 그럼에도 처음 뉴스가 나오고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짜뉴스인가 싶었고,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집에 행여나 문제가 될 만한 물건이 있나 살피고 곧장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서슬 퍼런 계엄군 앞에서 겁도 없이 마이크를 쥐고 연설을 했다.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아무 것도 안하고 쉬었던 날이 없는 거 같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리플렛을 돌리고, 행진을 이끌고, 총회에도 참여하고, 정말 정신없었다. 학교 밖에서도, 국힘 당사 앞에서,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말 그대로 곳곳에서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몇 가지 얻은 점도 있다. 발언 스킬이 늘었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 생겼고, 몇 가지 이론적 성장을 얻었다. 체포 당일 11시부터 한강진에서 밤을 샐 체력도 얻었다. 그날 다 써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의 짧은 활동에 있어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대학생 활동가임과 동시에 높은 확률로 미래에 노동자가 될 나는, 맑스 같은 불세출의 천재가 아님은 예저녁에 깨달았기에, 앞으로도 계속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을 지는 모르겠다. 1년을 가지고 미래의 수십 년을 속단할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한 철 지나간 ‘맑시즘’ 유행이 레트로 열풍을 타고 다시 돌아올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특히나 지금처럼 극우와 백래시의 광풍이 거셀 때는 더더욱 예측할 수 없다. 광장에서 나오는 여러 목소리들이 한 줄기 희망이 되어주지만 말이다. 우리는 언젠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기로에 서겠지만, 크리스트교도 마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을’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나마도 과거의 혁명적 상황이라는 역사적 증거가 위안과 동시에 훌륭한 교과서가 되어주지만 어떤 이들의 눈과 귀에는 이런 것도 안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미래에도 여전히 달리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어디가 되었건, 무엇을 위해서가 되었건 간에 외롭고 어려운 길을 달려나가는 지금처럼 달려나갈 것이다. 이제 막 2년 차 ‘유행’에 둔감한 초짜 ‘혁명가’의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정훈 | park450522@gmail.com


[1] 고려대학교 중앙광장 지하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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