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교에 온 이유는..

[특집 '대학' 여는 글] 편집위원 민주

내가 대학교에 온 이유는 예쁜 교정이 아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교지 때문이었다. 유니스토어 앞 가판대에서 뽑아온 ‘빈곤’ 호와 꼬문생각은 처음으로 대학교가 아닌 대학생을 꿈꾸게 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공간에서 관심 있는 의제에 대해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곳, 그리고 그걸 서로 지지해 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이런 사람들이 재학 중이라면,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면 이 학교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1학년 2학기에 고대문화에 들어왔다. 그러나 나는 사람 때문에 좋아진 이 학교가 다시 사람 때문에 미워졌다.


많은 동기와 선배들이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 새벽에 열린 학생총회에 참가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그 무엇도 ‘함께’ 해내지 못했다. 정치적 공간에서 정치하지 말자는 말에 끄덕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이들의 집단의식에서 비롯된 자부심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를 느꼈다. 함께하기에 기능하는 것이 아닌, 기능하기에 함께하기를 선택한 사람들.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있어서 모인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대학은 모였기에 의의가 있다는 말로 그칠 수 없다. 그러나 모인 채 끝나버린 논의는 정의를 향해 나아가지 못했고, 그렇게 나아간다던 정의[1]는 공허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학외 문제에 또렷한 목소리를 내지 않은 이들은 학내 문제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소수자인권위원회와 여학생위원회의 합병이 결정되고, 정경대 후문에 여러 대자보가 붙었다.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그걸 들여다보러 갔다. 친구는 ‘또 학교가 시끄러운가 보네…’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아는 한 최대한 자세히 그러나 간략하게 설명해 주려 했다. 친구는 허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것을 경청이 아닌 무관심의 태도라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분명히 냉소였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는 듣지 않고 말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라고 믿는다면, 그건 자유라고 호명될 기회조차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소거하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침묵은 ‘사라짐’이 아니라 ‘사라지기를 선택함’이다. 그리고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이 누군가에게 뜻하지 않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신의 존재성을 지워버리는 것일지라도. 모두의 입장을 인정한다는 말은, 결국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겠다는 선언이 되어, 가장 목소리가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대학교에서 누구에게도 소외나 혐오라는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배우고, 또 이를 발화한다. 그러나 이 과정 자체를 포기해 버리고 돌아선다면 결국 모두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불러온다. 고정된 진리는 진부하고, 해체하려는 시도가 너무 급진적이라면, 그대들은 어디에서 뛰놀고 배우는가? 어떤 언어 위에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가?


그러니까 내가 대학교에 온 이유는… 결국은 이 모든 이야기를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닫힌 존재에 관한 여는 글을 쓰다니 묘하다. 그래도 열어야 하니, 열자.


편집위원 민주 | mjmjlee05@naver.com




[1] 고려대학교 응원가 「민족의 아리아」에서 ‘나아가는 정의’라는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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