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특집 '대학'] 편집위원 수민

1 들어가며


2025년 4월 11일과 12일에 열린 상반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특별기구 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소인위)와 여학생위원회(이하 여위)의 재인준이 부결되었다. 5월 6일과 7일에 진행된 임시 전학대회에서는 소인위와 여위를 합병하는 징계가 결정되었다.


대의원들은 소인위와 여위의 사업이 회칙에 명시된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과 학내 사업이 불충분한 점을 합병의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소인위와 여위는 해당 사업들이 설립 취지에 부합하다는 점, 그리고 학내 인권증진을 위해 이미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라는 점을 충분히 소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인준은 부결되었다. 또한 5월 6일에서 7일 사이 진행된 전학대회에서 추가적인 학내 사업을 계획안에 포함시키고 앞선 부결 이유에 대해 재차 소명했음에도 소인위와 여위를 ‘합병’하는 징계성 처벌이 이루어졌다.


5월 18일과 6월 1일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에서 이루어진 두 차례의 이의제기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는 여성 혐오적 발언부터 시작하여 단체의 외부 연대를 반대하는 발언들이 난무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여위와 소인위를 비롯한 학내 단위들은 민주적 학생사회를 위한 고려대학교 공동대책위원회[1](이하 공대위)를 결성했다.


여학생위원회는 총여학생회의 후신으로 3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려대학교 학생사회를 지켜왔다. 그러나 단 두 차례의 전학대회를 통한 의결과 두 차례의 이의제기 기각으로 여위는 사라졌다. 같은 학생사회 구성원이 단체를 마음대로 폐지시키고 다른 단체와의 통폐합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게, ‘전체학생대표자’라는 이름을 등에 짊어진 자들이 학생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를 없애버린다는 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이 글은 필자가 할 수 있는 저항의 방식 중 하나이다. 여학생위원회와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사라질지언정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제55대 총학생회 [바다]와 전체학생대표자들은 모든 곳에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그들의 행위를 ‘백래시’로 규정한다.




2 백래시


백래시 개념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91년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Backlash: The Undeclared War Against American Women)가 출간되면서부터이다. 수전 팔루디는 백래시라는 개념을 “여성들이 결승선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여성들을 멈춰 세우는 선제공격”이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사상에 대한 명백한 또한 암묵적인 반대”라고 정의한다.[2] 백래시는 여성혐오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Townsend-Bell은 여성혐오와 백래시를 연속선(스펙트럼)상에 놓고 ‘여성혐오-선제적 백래시-교정적 백래시’로 이루어지는 성차별 스펙트럼을 구성했다.[3] 선제적 백래시는 여성 운동의 성과가 가시화되기 전에 미리 제압하려는 시도이며, 교정적 백래시는 여성운동의 성취가 일정 수준 달성된 상황에서 이를 무화(無化)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여성혐오와 백래시는 하나의 스펙트럼에서 양극단에 위치해 있는데, 여성혐오는 ‘자연적인 또는 반사적인’ 위계를 포함하며, 다른 쪽 끝에 있는 백래시는 기존 위계를 강화하는 넘을 수 없는 경계를 포함한다.[4] 여성혐오가 일상적이며 의식 혹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지속되는 구조화된 차별이라면, 선제적 백래시는 권력의 상실을 미리 방지하는 시도이며, 교정적 백래시는 상실했거나 상실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탈환 시도이다.


Jane Mansbridge와 Shauna L. Shames는 한 사회에서 백래시가 전개되는 양상은 절망의 정치의 모습을 띤다고 말했다.[5] 백래시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는데 첫 번째는 어떤 것에 대한 반작용이며, 두 번째는 강압적인 힘을 포함하는 반작용이다. 이런 반작용은 일반적 의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으로서 과거의 힘을 일부 또는 전부 되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과거에는 자신의 것이었지만 현재에 잃어버린 무언가에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능력이나 권력도 포함된다. 상실과 분노를 경험한 자들은 잃어버린 힘을 되찾고자 하며, 이는 때로 제재의 위협이나 힘의 사용과 같은 강제력을 동반하기도 한다. 노골적인 힘의 행사와 위협, 운동의 연대를 분열시키는 것 외에도 조롱, 낙인, 침묵시키기, 부드러운 억압 등 여러 형태의 백래시가 이루어지며 여기에는 매우 부정적인 감정 기제들이 동원되어 절망의 정치를 구성한다.


백래시는 민주주의의 확대에 대한 반발의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민권법 통과에 반발하던 백인 정치인들을 보고 한 언론이 이를 ‘백래시’라고 칭한 것이 시작이 되었다. 이후 백래시는 미국 정치의 중심이 된 모든 유형의 사회운동과 문화적 전환에 대한 반작용의 의미로 통용되면서 주류 집단의 보수적 행동과 동의어로 자리 잡았다.[6] 현재 학생사회는 다양한 백래시의 교차로와도 같다. 소수자에 대한 백래시, 페미니즘 백래시, 사회운동에 대한 백래시 등 거대한 물결들에 저항함을 넘어서 물결들을 댐을 통해 막고 거슬러 오르려는 움직임이 가득하다.




3 총여폐지론


학생사회에서는 Townsend-Bell의 성차별 스펙트럼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총여폐지론이다. 가끔은 총여무용(無用)론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여성혐오의 감정에 기반하여 백래시의 형태를 띤다. 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한 시도를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선제적 백래시로 볼 수도 있으며, 총여학생회가 여성운동의 일환으로 일구어놓은 것들을 무화하려는 교정적 백래시이기도 하다.


총여학생회(이하 총여)는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에 처음 생긴 이래 1990년대까지 다수의 대학에 만들어졌다. 총여는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낮고 대학 문화를 남학생들이 주도하던 시절 여학생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학내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역할도 맡았다.[7] 하지만 총여에 대한 반대 여론과 무관심 속에서 총여는 점차 위기를 맞았다. 많은 대학에서 대표자 선거의 입후보 희망자가 없거나 투표율이 낮아 총여가 구성되지 못하기도 했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대학에서 총여가 점차 폐지되기 시작했다. 총여가 유지되고 있던 학교들에서도,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여학생 복지에 주력할 것을 요구받았다.[8] 한겨레에 따르면 건국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는 2013년, 홍익대학교는 2015년 총여를 폐지했고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는 2014년 독립기구였던 총여를 총학생회 산하 기구로 편입했다. 숭실대는 2016년 전체 학생 대표자 회의에서 총여 폐지를 결정했다. 성균관대도 2018년 10월 학생 총투표를 진행한 끝에 83.04%의 찬성률로 총여가 폐지되었으며 동국대는 11월 학생 총투표를 진행하고 찬성률 75.94%로 총여 폐지 안을 가결했다.[9]


총여폐지론의 핵심 주장은 총여가 막 설치되던 1980년대와 달리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학내 성차별이 사라졌기 때문에 총여가 존재이유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 사실이 성평등을 뜻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시 말해 수적 평등이나 제도적 평등이 실질적인 성평등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교육부의 2024년 대학 내 성희롱 성폭력 전담기구 업무량_피해예방 및 대응 관련 전체 업무에 따르면 4점=많은 편, 3점=보통의 기준에서 상담의 평균은 3.61점, 사건처리의 평균은 2.64점이다.[10] 여성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 내에도 여성을 향한 성희롱과 성폭력은 여전히 존재한다. 당장 6년 전인 2019년만 해도 고려대학교의 남학생들이 1년 넘게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여학생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언어성폭력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11]


대학의 물리적 환경은 남성중심적이다. 남성중심적인 환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화장실이다. 여자 화장실의 대변기 개수가 남자 화장실의 대·소변기의 개수보다 1.5배 많아야 한다는 법률은 건축물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지켜지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이를 차치하고도 특정 성별의 비중이 높은 건물의 경우 화장실 개수에서 비대칭성이 드러났는데, 예를 들어 남학생의 비중이 훨씬 높은 단과대학 건물의 경우 1층에는 남녀 화장실 각 1개씩 있지만, 2층에는 여자 화장실은 없고 남자 화장실만 2개가 있다든지, 남자 화장실이 각 층마다 1개씩 있는 데 반해 여자 화장실은 각 층마다 하나씩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12]


인적 환경의 불평등 또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쉽게 느낄 수 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캠퍼스 내의 여성 교원 비중은 대부분 50%를 넘지 못한다. 한국 대학 특징 중 하나는 대학의 여성 교원 비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여성 총(학)장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유네스코에 의하면 THE 세계대학 평가 상위 200위 대학의 여성 총장 비율은 21%이다. 한국 대학의 경우 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에 의하면 171개 대학 중 여성 총장은 11명뿐으로 10%가 채 되지 않는 비율이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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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대학공시자료 중 ‘대학교’에 속하는 학교만 대상으로 함.

2) 전임교원이란 교수, 부교수, 조교수로 임용되어 당해 대학에서 전일제로 근무하는 자를 말함.

3) 비전임교원이란 원소속(본직) 기관이 있음과 동시에 대학에 교원으로도 계약되어있는 겸임교원 등 해당 대학의 전일제 소속이 아닌 교원을 말함.

[표 1] 전공계열에 따른 여성 교원 비중(2017년 기준) 출처: 고은비 외 2인 (2020).


또 총여폐지론자들은 여학생’만’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총여학생회는 여학생만의 권리를 위하는 곳이 아니다.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는 ‘여성제’라는 총여학생회 주최 행사를 통해 학내 여성운동을 이끌어갈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학내 소수자와 연대해 왔다.[14] 성균관대 총여학생회 또한 장애인, 성소수자,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함께 연대하고 대동제 배리어프리존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실행했다.[15] 총여학생회는 단 한 번도 여학생의 권리만을 증진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총여학생회의 이름을 학내 소수자인권위원회 등으로 바꾸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대학 내 성차별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특수적이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성폭력, 성희롱, 성차별적 발언, 유리천장, 여성 교직원에 대한 차별 등의 문제들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기반한 차별이지 단순히 ‘소수자’라는 포괄적 단어로 묶기엔 불충분하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대학 내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싸워온 단체의 이름을 바꿔버리는 것은 역사와 상징성을 지워버리는 일이다.




4 그래서, 당신의 고려대학교는 안녕하십니까


앞서 총여폐지론을 소개했지만 총여의 후신이기도 한 고려대학교 여학생위원회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많은 대학에서 총여폐지론이 등장한 이유는 대표자 입후보 희망자가 없거나 투표율이 낮아서이다. 하지만 여위는 여위 회원이 부족하다거나 학내 사업이 미비했던 것이 아니다. 2025년 2회기 전학대회 정기회의 자료집에 제시된 2024년 활동보고에 따르면 여위는 세미나, 간담회, 정혈용품 비치 사업, 여학생 휴게실 관리, 학내 성폭력 사건 대응, 인권주간 참여 등의 정기 사업을 진행하고 다양한 비정기사업을 통해 여성과 소수자와 함께 연대했다. 그럼에도 전학대회에서 대의원들은 ‘여성주의가 대체 무엇’이며 여성성과 남성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질의했다. 기후 die-in 퍼포먼스나 세계 노동절 청년 전야제가 여성주의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한국의 극우화 현상 해결이 여위의 활동 목적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전자의 질문에 여위 참관인은 남성보다 여성이 기후위기에 더 취약하며 여성 노동자이기에 받는 억압과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음에도 대의원들은 이 과정에 정당성이나 합목적성이 없다며 연대 참여를 문제 삼았다. 여성주의는 ‘여성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이 교차하는 지점 안에서 여성들이 겪는 특수한 취약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잘 사는 나라보다는 가난한 나라가, 남성보다는 여성이, 어른보다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기후위기의 변화에 더 취약하다.[16] 또 그린피스는 연구를 통해 2050년까지 기후위기로 집을 잃은 피해자의 수는 1억 5천만 명까지 달할 수 있으며, 이 피해자의 80%는 여성과 어린이가 될 것이라 밝혔다.[17] 기존에 여성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기후위기가 닥쳤을 때 여성은 더 큰 취약성을 가진다. 더 큰 돌봄 노동의 부담, 유리천장과 같은 경제적 불평등 등 기존의 성차별적 구조는 생계가 무너졌을 때의 낮은 회복 탄력성을 안겨다 준다. 또 여성 노동자들은 성별 임금 격차, 경력 단절, 성희롱 등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차별을 겪는다. 노동절 전야제에서 여성 노동자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응당 여학생위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후자의 질문에는 여위 참관인이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예로 들며 남성들이 왜 이런 폭력적인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여성주의에서 출발하여 살펴보아야 함을 설명하였는데, 한 대의원은 해당 발언이 ‘성차별적’이라고 지적했다. 여위 참관인은 생물학적 남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에서 만들어진 남성성이 존재하며 남성성에 부합하기 위해 행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음을 다시 한번 설명하였지만 이해하기 힘들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대의원들은 끝까지 여성주의를 ‘여성만의 문제’로 한정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대해 설명했음에도 계속해서 설명이 부족함을 반복적으로 말한다면 이것은 명백히 여성주의의 교차성적 시각을 부정하려는 시도이다. 또 여성주의 단체의 활동이 정당성이나 합목적성이 없다고 지적하는 것은 이들의 활동을 의도적으로 비합리화하고 무력화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료집에 게재된 여위의 단체 소개에는 ‘여학생위원회는 고려대학교의 각급 단위들이 평등한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는 문구가 존재한다. 명확한 논리적 설명을 듣고도 이것이 단위들의 평등을 위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는 논리적 반박이 아닌 여성주의 활동 자체를 비난하고 위축시키려는 백래시적 태도일 뿐이다.


남성성 분석에 대해 ‘성차별’이라 지적하는 것은 ‘역차별’ 주장의 전형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남성성의 영향에 대한 여성주의의 분석 시도를 생물학적 남성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성차별로 몰아가는 것은 여성주의적 비판을 회피하고 본질을 왜곡시키는 백래시적 전략에 가깝다. 또 ‘이해할 수 없다’라고 덧붙이는 것은 여성주의가 남성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외면하고 여성주의에 대한 편견을 계속 유지하려는 마음가짐이다.


5월 18일 진행된 중운위에서 한 중운위원은 여위의 성희롱·성폭력 대응 창구에 대해 “그 창구를 이용하는 이용자가 거의 없다면 당연히 실효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예를 들어 안암동에 파출소가 200개인데 범죄가 0건이라면 안암동에 있는 파출소의 실효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능을 다른 단체나 창구가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먼저 성희롱·성폭력 대응 창구를 파출소에 대응시키는 발언 자체가 얼토당토 않다. 해당 발언은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일반적인 범죄와 동일한 방식으로 발생하고 처리된다는 무지한 생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일반적인 범죄와 달리 피해자가 쉽게 신고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피해자들은 2차 가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공식적인 대응 창구를 이용하기를 꺼리기도 한다. 이는 성희롱·성폭력 대응 창구의 역할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다. 대응 창구는 피해 상담, 심리 지원, 예방 교육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창구의 존재 자체가 예방의 역할이나 인식 개선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다채로운 무지를 차치하고도 파출소의 신고 건수가 0건이라 함은 파출소가 있기에 범죄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일 텐데, 이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성희롱·성폭력 대응 창구는 여성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인프라다. 이를 파출소의 범죄율처럼 단순 비교하여 존재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여성 인권에 대한 무지이자 혐오적 시각이다. 이런 여성혐오적 시각을 아무렇지 않게 공적인 자리에서 발화할 수 있는 것 또한 권력이다. 이 발언이 단순히 여성혐오를 넘어서 백래시로도 해석되는 이유는 이 발언을 함으로써 그들이 여위를 무용한 것으로 만들고 단체를 해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며 여위가 마치 ‘신고 건수가 0건이라 할 일도 없는 안암 파출소’로 보이도록 조롱하였다. 해당 회의는 이 발언을 제지하지도 않았다. 여성 학우들을 위해 힘쓰는 학내 단체가 왜 이렇게까지 모욕적인 발언을 들어야 하는가. 학내 여성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낮잡는 발언조차도 저지하지 않는 중운위는 자정 작용이 없는 회의체이다. 여성혐오와 백래시로 물들어버린 회의체에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5 민주주의: 전학대회 투표에 부쳐


‘여위와 소인위는 따로 존재해야 하며 두 단체를 마음대로 통폐합시킬 수 없다’라는 주장에도 한결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투표로 결정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회칙에 의거하여 회의를 개최하고 진행하여 공정하고 정당하게 투표했으니 이 의결은 무를 수 없다. 당신들이 이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전체학생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에 대한 모욕이며 전학대회의 의결을 무시하는 행위다.’ 대단한 착각에 오만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다수결’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의결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다수결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 중 하나인 것이지, 유일한 정답이 될 수 없다. 특히 그 다수결의 결과가 소수자를 밀어내고 배제하는 결과라면 다수결의 결과조차 오답이 될 수 있는 것이 정당한 민주주의다.


모두의 의견을 “동등하게” 개인의 한 표로써 수렴하는 투표 절차 속에서는 구성원들 간의 집단적 차이가 삭제된다.[18] 아이리스 영은 이렇게 구체적인 주체들이나 주체 집합의 관점·속성·성격·이해관계를 초월적 ‘관점’, 즉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 바라보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불편부당성의 이상’이라고 부른다.[19] 불편부당한 초월적 주체라는 이상은 세 가지 방식으로 차이를 부정하거나 억압한다. 첫 번째로, 그 이상은 상황의 개별특수성을 부정한다. 둘째, 감정을 배제하기 위해 어떠한 ‘상황’이라는 맥락에 위치한 사람의 구체적 개별특수성을 사상시킨다. 사람들 간의 차이를 만들어 내고, 각 개인을 개별적으로 특수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바로 욕구와 감정인데, 불편부당한 이성은 그런 욕구와 감정에 대립한다. 마지막으로, 불편부당성의 이상이 개별특수성을 통일성으로 환원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도덕적 주체들의 다양성을 단일한 하나의 주체성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총학생회와 전학대회 대의원들은 불편부당성의 이상을 꿈꾼다. 여위와 소인위가 소수자 의제를 다루고 있다는 특수성을 지워버리며 전학대회의 자리에서 다수의 대의원들을 상대로 단체의 대표자들이 단체의 ‘결백’ 혹은 ‘순수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적 특수성을 부정한다. 과도히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대의원들에게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달라는 참관인의 말에 한 대의원은 ‘이 자리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자리가 아니다.’, ‘회칙에 따라 엄격하고 공정하게 심사해야 하는 자리이다.’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참관인의 말은 감정을 개입시켜 부당한 행위를 저지른 단체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재인준해 달라는 말이 아니다. 아이리스 영의 말대로 사람들 간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감정인데 그들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는 허상을 표방하고자 한다. 그렇게 오로지 ‘참관인’이라는 하나의 주체성만을 여위와 소인위 대표자들에게 부여하며 그들의 특수성을 통일성으로 환원시킨다. 참관인이라는 주체성을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역사 속에 존재해 온 맥락과 상황을 삭제하고 오직 참관인이라는 주체성 하나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집단 간 차이가 존재하는 곳에서, 그리고 어떤 집단은 억압 받고 어떤 집단은 특권을 누리는 곳에서는, 개별특수성을 보편화하려는 경향이 그런 억압을 강화한다. 특권 집단의 관점, 경험과 기준이 정상적이거나 중립적인 것으로 구축된다. 다른 집단들의 경험이 이 중립적인 경험과 다르다면 그 집단들이 보여주는 차이는 비정상과 열등함으로 구성된다. 총학생회와 대의원들은 여위와 소인위가 드러내는 활동의 방향성과 운동들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만 이는 그들이 스스로를 불편부당하다 착각하며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억압 받는 이들의 경험과 가치는 무시되고 침묵당한다.


여기서 영은 ‘차이의 정치’를 주장한다. 집단 간 차이를 인정하는 해방적 정치는 평등의 의미를 새로이 파악한다. 불편부당성의 이상은 평등한 사회적 지위를 모든 사람을 동일한 원칙, 규칙, 기준에 따라 취급하는 것으로 상정한다. 반면, 차이의 정치는 평등을 모든 집단이 참여하는 것이자 모든 집단을 포용하는 것으로 파악하며, 이러한 평등은 때때로 피억압 집단 또는 불이익을 받는 집단을 위한 별도의 조치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영의 주장은 사회정의를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정책은 때때로 특정 집단들을 특별히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사회에는 ‘다수결=민주주의’라는 비좁은 정치에서 벗어나 해방의 정치가 필요하다. 새로운 정의의 평등이 필요하다. 개별특수성을 인정하고 다름을 만들어 내는 감정과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 이번 공대위의 이름은 ‘민주적 학생사회를 위한 고려대학교 공동대책위원회’이다. 공대위에서는 분명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자 했다. 다수결의 결과로 짓눌린 소수 대의원들의 목소리에 주목했고, 여위와 소인위의 말로 쓴 기자회견문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여위, 소인위 외의 다양한 단체들 또한 공대위에 참여하여 힘을 보태었고 학내 구성원들에게 서명을 받아 피억압 집단 또한 평등한 지위에 설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공대위의 활동은 '다수결'이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넘어, 사회적 차이를 인정하고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천적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학생사회는 불편부당성의 허울 아래 감춰졌던 다양한 개별 특수성을 재조명하고, 진정으로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지위에 설 수 있는 '새로운 정의의 평등'을 향한 노력을 실천해야 한다. 소수자를 밀어내는 다수결의 결과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




6 나가며


이 모든 일을 겪으며 절망적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글에 담지도 못한 수많은 여성혐오적 발언과 백래시적 발언을 들으며 이런 상황에서 정말 우리가 설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 고민했다. 이미 많은 학교에서 총여가 폐지되었으며, 대학 내에서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전학대회라는 공공연한 장소에서까지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적 발언이 난무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발언이 백래시임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총학생회와 대의원들이 왜 자신들을 불편부당성의 이상에 위치시킬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절차적 공정성을 지켰기에 그 결과에 대해 어떤 비판도 가해질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들에게 불편부당성은 결정의 ‘무결점성’을 증명하는 장치라고 생각될 수도 있고 결정에 대한 면죄부라 생각될 수도 있다. 혹은 아주 단순하게 불편부당성의 이상이라는 위치에 서서 현재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겠다.


학교와 총학생회는 ‘정치’ 없는 대학을 꿈꾼다. 하지만 대학은 정치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지성 공동체로서 다양한 가치를 탐구하고 논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며 이 역할 자체가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학이 자신의 역할을 부정하며 소수자를 억압하고 배제하고자 한다면 이는 대학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기에 탄압과 차별에 더욱 크게 소리 내 외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져서는 안 되며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학 내 여성학 강의가 취소되고 여성학과가 폐지 위기에 놓여도, 안티페미니스트들이 수많은 백래시 전략으로 우리를 말살시키려 해도, 끝끝내 우리가 설 자리가 사라진다 해도 우리는 끝까지 외칠 것이다.



편집위원 수민 jellyfishtokill@gmail.com




교육부 (2023). 대학 성희롱 성폭력 전담기구 실태조사 보고서.

[1] 민주적 학생사회를 위한 고려대학교 공동대책위원회에는 (구)여학생위원회, (구)소수자인권위원회, 생활도서관, 민주학생기념사업회, 장애인권위원회, 석순, 고대문화, 뿌리:침, 수레바퀴, 대학생기후행동,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고려대학교 분회, 인권연합동아리 고대지부가 소속되어 있다.

[2] 권수현 (2023). 127-139.

[3] Erica Townsend-Bell (2020). 288-292.

[4] 신경아 (2023). 백래시 정치. 27-30.

[5] Jane Mansbridge and Shauna L. Shames (2008). 624-629.

[6] 신경아 (2023). 같은 글. 42-50.

[7] 총여학생회도 잇따라 폐지, 서울소재 대학 4곳만 운영 (2022.05.25.). 조선일보.

[8] 정다울 (2020). 51.

[9] 총여학생회 폐지, 백래시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2019.01.12). 한겨레.

[10] 교육부 (2023). 35-46.

[11] 고려대 “카톡방 언어성폭력 고발합니다” 대자보 파문 (2019.10.19.). 한겨레.

[12] 안미수 (2017). 113-134.

[13] 배유경 (2022). 109-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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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왜 여성은 기후 위기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까요? (2020.10.22.). 그린피스.

[18] 정다울 (2020). 같은 글.

[19] 아이리스 매리언 영 (2017). 200-220.





참고문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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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및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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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현 (2023). 백래시는 정치다: 대응도 정치적으로 - 신경아. 2023. 『백래시 정치: 안티페미니즘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나』. 동녘. 페미니즘 연구, 23(2), 127-139. 10.21287/iif.2023.10.23.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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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및 온라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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