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등(동)의 믿음에 관한 회고

[특집 '대학'] 편집위원 정후

0. 기억들


#1 악몽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대학에 입학한 지 3년째인 나는 아직도 수능에 관한 악몽을 꾼다. 1학년 때는 내가 아직 고등학생인 채로 수능을 보는 꿈, 사실 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한 것이었기에 재수를 하는 꿈을 꿨다. 2학년이 되고 나서는 꿈의 내용이 달라졌다. 나는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사람들은 수능을 보라고 한다. 나는 이미 대학교에 합격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사람들은 그런 건 상관없으니 수능을 보라고 한다. 나는 수긍한다.


#2 유년기

나는 사립 초등학교와 강남 8학군, 그중에서도 서초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그곳의 아이들은 대부분 안정적인 환경에서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가끔 이유도, 어디로 가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떠나는 아이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다. 밝기만 했던 짝꿍 A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A는 나에게 가족들과 시골로 내려간다고 했다. 나는 평소에 A의 지우개를 부러워해서 빌려달라고 했었으나, A는 나를 약 올리며 빌려주지 않았다. A는 떠나기 전 그 지우개를 나에게 주었다. 그렇게 A는 전학을 갔다.


다음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기억이다. 재미없는 농담을 자주 하던 친구 B가 있었다. 아이들이 뭐라 하든 B는 농담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농담이 멈췄고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B는 인사도 없이 떠났다.


중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이다. 재미없는 장난을 치던 친구 C가 있었다. C를 보며 초등학교 4학년 때의 B를 떠올렸다. 나는 아파서 약 한 달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 사이에 C는 전학을 갔고, 영상 편지를 남겼다. 나에게도 직접 인사하지 못해 아쉽다며 잘 지내라고 말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C가 왜 전학을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아무도 모른다고 답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이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D가 있었다. D와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연락이 끊겼다. 친구들과 재수를 하면 어떡하냐는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중 한 친구가 D와 만난 이야기를 꺼냈다. 집이 어려워지자 D의 부모님은 D에게 재수를 못 시켜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중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이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다. 우리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아버지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어머니는 자주 소리를 질렀고, 울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서초구를 떠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월세로 전전하며 서초구에서 ‘버텼’다.


서초구에 살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아니 서초구를 떠난 지금까지도 나는 왜 부모님이 서초구를 떠나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며 나는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고 행선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떠난 아이들이 왜 떠났는지 함부로 추측하는 법을 배웠다. 이 글은 내가 아직도 꾸는 수능에 관한 악몽, 떠나간 아이들에 대한 기억과 내가 오랫동안 품은 의문에서 시작한다.




1-1. 8학군을 떠나지 못한 이유


8년째 아버지는 다음 달이면 자신이 사업을 통해 돈을 벌어 우리 집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8년째 우리 집은 아버지의 낙관에 많은 것을 투자했다. 언제 돈을 벌지 모르니 서초구에서 월세로 살고, 적금을 깨고, 은행에서 빚을 지고, 사채를 쓰고, 이자를 내는 등….


그렇게 나는 서초구에 남았다. 다음 달이면 나의 기억 속 아이들처럼 왜, 어디로 떠나는지 친구들에게 알려주지도 않은 채로 서초구에서 떠나야 할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원래의 중산층으로 돌아올지도 모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부모님은 공부하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부모님이 누나와 나의 대학 진학 때문에 서초구에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집은 나의 학벌을 위해 그곳에 남은 것이었고, 수많은 걸 희생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고생을 본 나는 중학교 때까지는 하지 않았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성적은 빠르게 올랐다. 그러자 부모님은 나에게 좋은 대학교에 진학해서 성공하라고, 그러면 우리 집이 다시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나는 학벌이 더 이상 사회적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학벌이 좋지 않으면 성공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봤다. 그때 아버지는 돈을 벌지 못했고, 어머니는 200만 원 언저리의 월급을 벌었다. 나는 중간고사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학원비로만 한 달에 200만 원 가까이 썼다. 하지만 성적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다. 나는 3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쓸 돈을 계산했고, 내신 성적이 얼마나 오를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우리 집에는 학원비를 낼 돈도 없고, 성적도 원하는 만큼 오르지 않으리라 결론을 지었고, 그렇게 내신을 포기했다. 어머니는 학원비 때문에 포기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수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당시 조국 사태를 보며 나는 역시 수시는 돈 많은 집 애들이나 할 수 있는, 그들만을 위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수능은 모두가 같은 시험을 보는, 오로지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공정한 제도라고 믿었다. 돈이 없어서 수시는 준비는 못 하지만, 내가 실력만 기른다면 수능을 잘 볼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래서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이후 나는 정시로 대학에 가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자 원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모의고사 성적일 뿐이었다. 목표에 점점 가까이 가고 있는 듯했지만, 수능을 보기 전까지는 그 실체를 만질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는 점점 올라갔다. 내가 좋은 성적표를 들고 올 때마다 집안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어쩌면 내가 우리 집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대학에만 잘 간다면 우리 집이 다시 행복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로 나아지지는 않더라도 집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길을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걸 차치하고도 부모님은 나의 학벌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하고 투자했다.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종의 배신이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원하던 대학에 왔다. 원하는 위치에 도달했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했다. 내가 그리던 행복하고 화목한 집은 돌아오지 않았다. 성적과 학벌은 마치 아버지의 사업처럼 낙관만 갖게 할 뿐, 그것이 목표하는 집안의 안정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1-2. 수능에 대한 낙관


우리는 입시를 통해 얻는 학벌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좋은 대학’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학벌이 더 이상 사회적 성공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본 조건인 학벌에 추가적인 능력까지 있어야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대학 진학률이 이를 방증한다.[1] 따라서 학벌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 이전보다 어려워진 현실의 반영이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사람들이 지니는 관습적 삶의 방식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한 삶의 양식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해졌을 때도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삶에서 예측하지 못한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때도 그것을 관습적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잉 경계심’을 발휘한다. 사람들은 관습적인 삶의 방식, 신자유주의 이전의 삶,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정상 가족을 이루는 삶의 경로에서 이탈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존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트라우마적 사건’을 겪어도 기존 삶의 장르로 돌아오려 애쓴다. 따라서 그들은 삶의 토대가 무너진 현재도 기존의 경로를 밟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적어도 원하는 것을 얻는 과정 속에 있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위태로운 삶 속에서는 목표를 향해 전진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보내며 낙관하는 상태가 희망 사항이 되기도 한다. 목표를 이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이다(Berlant, 2024).


성공에 대한 낙관은 수능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한다. 알렉스 윌리엄스는 ‘부정적 연대’라는 개념을 통해 왜 사람들이 복지 축소와 같은 정책에 동의하고 ‘적(다국적 기업, 신자유주의화된 정부 등)’에 맞서 연대하지 못하는지 분석한다. 사람들은 사회 안전망이 무너지고 불평등이 심화된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어차피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자신이 견디는 가혹한 현실을 다른 모든 이들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들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성공을 거두는 100만 명 중 한 명이 본인일 것이라 믿는다. 이런 성공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람들은 열망에서 기인한 이 모순된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성공했을 때 최대한의 이익을 누릴 수 있도록 불평등을 심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세상이 평등해질 일은 없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Williams, 2010).


수능은 개인에게 고통을 견딜 것을 강요하고 학벌이라는 불평등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수능을 응시하는 것은 그것이 정당한 평가 체계를 지니고 있다고 인정함을 전제한다. 그래야 시험에 따른 결과를 수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수능에 대해 불평하지 못하며, 이를 통해 얻는 성공과 실패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또한 사람들은 (관습적인 삶의 형식으로 인해) 수능에 투자한 자신의 노력이 학벌과 그에 따른 사회적 성공으로 보상될 수 있다고 믿으며 희망 고문에 빠진다(안희제, 2024).


수능은 나에게 안정적이고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장치였다. 나는 수능이 공정하게 성공을 보장하는 제도이며, 나의 노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일상을 유지할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수능 자체가 지니는 문제점이나, 수능을 보도록 하는 체제를 의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이를 의심한다는 것은 우리 집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수능이 끝난 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관습적인 삶의 형식이 나로 하여금 수능을 우리 집의 해결책으로 믿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2-1. 중산층을 연기하기


아버지의 사업이 망한 이후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오웰의 표현대로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 계급 사이의 두꺼운 완충재(Orwell, 2010:167)’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내가 서초구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집안 상황을 이야기했을 때, 그들은 나에게 ‘어차피 너는 서초구에 살고 있고, 그렇다는 건 너희 집이 잘산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내가 우리 집이 불행하고 가난해졌다고 생각하는 건 기만이 아닐까? 그리 심각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자기연민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라고 말했다. 그래도 너는 밥은 굶지 않고, 이 모든 걸 겪고도 너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등. 나는 불행해서는 안 됐고, 현재를 불행하다고 여겨서도 안 됐다. 자주 우는 어머니에게도, 자주 미안하다고 하는 아버지에게도, 우리 집은 행복한 집이며 나는 불행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쩌면 아직 우리 집은 망하지 않았으며 전형적인 한국 중산층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서초구에 산다는 유리한 조건을 지닌,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사람으로서 나는 공부를 잘해야만 했다. 이런 조건에서 공부를 못 하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모의고사를 잘 보면 나의 환경 덕이라고 생각했고, 모의고사를 못 보면 나의 능력과 게으름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주변에 있는 한국의 중산층 가정을 보고 나도 아직 여기에 속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모방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인생의 큰 고비 없이 평탄하게 자란 척을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쩌면 불행한 걸지도 모른다고, 또 그럴 만한 환경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의 사회적 위치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 건지 고민했다. 나는 불행할 만한 위치에 있는가? 혹은 안정적인 위치에 있는가?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불행하지 않으며, 불행하더라도 그 원인은 나에게 있음을, 그러므로 거기서 벗어나는 것도 내 책임임을 상기했다.



2-2. 계급의 관습과 낙관


#1 영국의 문화평론가 마크 피셔는 노동 계급 출신이라는 낙인이 오랫동안 남아서,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낙인은 자신이 대학원에 다닐 때도, 대학의 강사가 되었을 때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노동 계급은 그들이 점유하기로 되어있는 사회적 영역을 벗어나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고 여기 있을 자격이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 밖에 있는 그들의 공간으로 돌아가면 그들이 거기서 겪는 고통은 다 개인의 책임이라며 너의 의지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입받는다. 이러한 이중 구속은 노동 계급에게 평생의 우울함과 무기력증을 안긴다(Fisher, 2014).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나이절 바턴〉 (Stand Up, Nigel Barton, 1965)을 이런 관점에서 분석한다. 옥스퍼드의 장학생으로 다니며 특권 계층이 되어 원래 출신 계급에서 멀어진 나이절 바턴은 “새로 얻은 특권과 지위를 포기하기는 싫지만 그것들을 몸에 밴 것처럼 받아들이거나 즐길 수 없고…그것을 거부하며, 출신을 결코 잊지 않지만 태생이 자신에게 남긴 흔적들을 수치스러워하는 것이다. 또 그런 수치심을 수치스러워한다(Fisher, 2023).”[2]


#2 미국의 영문학자 로런 벌랜트는 신자유주의 시대로의 이행기를 살아가는 노동 계급 집안을 담은 영화 〈인력자원부〉 (Human Resources, 1999)를 분석하며, 집안의 아들 프랭크가 “가족들이 비축해 온, 안달복달하며 모았으되 아직 투자되지는 않은 문화적·사회적·경제적 자본”이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계급 상승에 대한 가족들의 낙관이 투사되어 있다. 그는 아버지가 일하는 공장의 관리직 인턴으로 취업한다. 이후 프랭크의 계급 불안(노동 계급 출신이지만 이를 부정하고 관리직으로 계급 상승을 이뤄내야 한다는)은 그가 노동 계급 아버지를 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표면적 이유와 계급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이면적 이유로 그들은 자신들의 낙관과 열망에 대해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대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예의 바르게 굴고, 낙관적으로 살며 서로를 보호하고 환상을 유지한다. 동시에 자신들의 투자가 잘못된 일이 아니었기를 바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노동 유연성으로 인해 아버지는 은퇴(해직)하고, 프랭크는 기존 규범과 관습이 무너진 신자유주의의 위태로운 삶—뉴 노멀에 적응하지 못하고 내파된 채 답보 상태에 머문다(Berlant, 2024).


바턴, 피셔 그리고 프랭크 모두 계급 불안을 겪으며 자신이 정확히 어디에 속하는지 알지 못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자기구속의 힘, 낙관과 관습이 작동하고 있다. 낙관은 우리가 스스로 삶의 양식을 바꿀 수 없을 때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힘이다. 이 힘은 더 나은 삶이 불가능할 때도 작동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한 사회적 조건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으로 인해 노동 시장의 유연화가 일어나고 복지가 축소되며 사회 안전망은 무너졌다. 일상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낙관을 주입받는다. 마치 (경영학을 전공한) 프랭크처럼, 우리는 자기 자신이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적 주체이자 자기계발적 주체로서 이윤만을 신경 쓰며 성공할 것을 강요받는다. 또한, 기존 복지국가 차원의 지원은 가족 단위의 투자로 대체된다(Dardot et al, 2024:210). 사람들은 개인(가족)의 노력을 통해 노동 계급에서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낙관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프랭크가 업무에 나서자, 그는 온전한 중산층-관리자도 되지 못한 채 노동 계급과 중산층 사이에서, ‘인턴’이라는 불안정한 답보 상태에 갇힌 것처럼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관습은 우리가 현재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힘이다. 관습적 삶의 양식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기존의 사회적 토대에 따른 삶의 양식을 유지하던 조건이 변해도 사람들은 직관을 통해 과거의 살아가는 방식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직관은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으로, 이를 통해 우리의 정동이 특정한 형식을 가지게 되고, 그 형식이 삶에 대해 믿을 만한 느낌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는 사람들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계발되는 것이다. 이렇게 직관을 통해 우리는 위태롭고 예측 불가능한 삶 속에서도 재습관화를 통해 일상을 유지하거나, 적어도 일상의 삶을 살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보존하려 한다(Berlant, 2024). 그렇기에 기존의 삶과 다른 양식-계급의 삶을 사는 것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를 통해 체제는 개인이 사회적 이동(그게 상승이든 하락이든)을 스스로 부정하게 하고 사회의 계급 상태를 유지한다. 실제로 개인에게 변화가 일어났어도 사람들은 이것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이 상상적 믿음이 그들을 원래 상태에 머물도록, 혹은 머물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자신의 삶이 여전히 살 만하며,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을 때, 낙관과 관습이 결합한 이중구속이 발생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아무리 위태로운 삶에도 더 나아질 기회가 잠재한다고 믿도록, 그러므로 현재 상태의 취약함과 우울을 지우고 긍정하도록 만들기에 대부분의 삶에서 이중구속이 발생한다. 현재의 관습적 삶을 유지하면 더 나아질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낙관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된다(Berlant, 2024). 낙관이 관습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이 이중구속은 사회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구조적 모순을 숨긴다. 개인의 삶을 온전히 직시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게 만든 채, 그저 낙관하며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상태에 갇히게 만든다. 변화는 상상될 뿐, 실현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의도적으로 이런 간극을, 불만족 상태를 유발한다(Berlant, 2024). 이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는 실제로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체제에 저항하지 않고 그 안에서 목표를 꿈꾸도록 만든다.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사회는 사회 이동이 가능한 곳이다. 스스로가 적응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취약해진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가능한 사회 이동이란 계급의 하락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추락마저 부정하며 원래의 삶을 살고 있다고,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고 상상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우리가 실제로 속한 계급, 속한다고 상상하는 계급, 속하고 싶은 계급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다.


바턴, 피셔 그리고 프랭크는 모두 노동 계급에서 벗어나려 하기에 자기 계급의 흔적을 수치스러워한다. 그 흔적은 기존 삶의 양식을 유지하는 체화된 직관으로 인해 숨길 수 없다. 동시에 계급 상승에 대한 낙관 때문에 노동 계급이라는 출신을 인정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계급 상승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불안정성으로 인해 완전히 일어나지 않고, 유보된다. 이런 계급 불안은 수치심, 우울증, 무기력증, 내파를 유발한다.


이렇듯 사회 안전망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불안정한 삶에 적응하는 것은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는 책임화 수법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는 뭐든지 될 수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주입받는다. 그러므로 개인의 고통은 각자 감당해야 한다고 여겨지고, 우울의 사회적 맥락이 사라진 채 자기연민으로 받아들여지거나(Fisher, 2014), 개인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여겨진다(M. Silva, 2020:35).


이런 낙관과 관습은 몰락한 중산층인 나를 구속했다. 정상적인 한국의 중산층 가정에 둘러싸여 내 가정의 몰락을 부정당했고, 스스로 부정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내게 주어진 사회적 영역은 ‘정상적’이고 ‘화목’한 중산층 가정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스스로에게 중산층 자녀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강요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의 양식 이외에 내가 아는 다른 방식의 삶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삶의 형식만 유지하면 더 나은 삶을 살 기회가 오리라 생각했다.


공부를 잘하고 수능을 잘 보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삶의 형식이자, 이를 통해 다시 정상적인 중산층이 될 것이라는 낙관이었다. 낙관과 관습이라는 두 힘(‘우리 집은 망했지만 다시 중산층이 될 수 있어’와 ‘우리 집은 망했지만 여전히 중산층이야’)으로 인해 나는 중산층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중산층에 도달하지 못한 채 다가가기만 하는 ‘답보 상태’에 빠져 있었다(Berlant, 2024). 이런 계급 불안에서 오는 나의 우울을 그저 현실(입시)을 회피하고자 하는 핑계로 여겼고, 우울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나를 압박했다.




3-1. 실망의 대학


나는 대학이 내(우리 집)가 투자한 것들을 보상해 주리라 믿었다. 그것이 즐겁고 낭만적인 대학 생활이든, 안정적인 취업의 보장이든, 어떤 것이든 나에게 효용을 가져다주길 바랐다. 하지만 내가 입학한 대학은 무기력, 실망 그리고 실패만이 난무하는 장소였다.


대학에 온 사람들 모두 다들 무언가 하나씩 약속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것처럼 보였다. 낭만적인 대학 생활, 취업 등 기대를 품으며, 다른 곳은 몰라도 ‘이 대학’만은 원하는 것을 주리라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하게 된 것은 다시 한번 유보된 목표이거나, 혹은 그 목표가 이루는 게 실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취업을 위해 대학에 온 사람이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취업을 위해 대학뿐만 아니라 다른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또 다른 과제거나, 학벌이 있어도 취업은 애초에 안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전자, 다시 말해 유보된 상태에서 버텨보다가 후자의 사실을 직시한다. 그러고는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소수자로 인해 자신이 불이익을 당했기에 목표를 못 이뤘다며 분노할 수도 있고, ‘대학’ 자체가 아니라 ‘내가 온 대학’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다시 입시를 치를 수도 있다.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행은 선형적이지 않기 때문에, 양측을 오가는 심리 상태를 지니게 할 것이며,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반응을 동시에 보이게 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내가 바란 것은 안정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근거였다. 그게 가능하다는 희망을 대학에서 찾길 원했다. 적어도 대학에 들어가며 우리 집의 상황이 변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상황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근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고, 우리 집이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생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집안을 원래대로 돌이킬 방법은 더 불확실해졌다. 입시를 준비할 때는 수능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내가 대학 입학을 위해 많이 투자했으니 나에게 뭔가를 돌려줄 거라고 어떻게든 효용을 찾으려고 했으나, 정작 돌아온 것은 ‘이 대학에 왔으니, 네가 목표를 위해 준비하기에는 용이할 거야.’ 등의 답변뿐이었다.


이런 답보 상태에 갇혀 나의 우울은 점점 더 심해져 갔고, 나는 애초에 우리 집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며 무기력해졌다.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수업 도중 심한 공황발작을 겪었다. 그제야 내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3-2. 답보 상태라는 가능성


대학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약속한다. 취업, 계급 상승 등과 같은 것들을 약속함으로써 우리를 ‘정상’적인 생애 경로에 가둔다. 실상 대학은 자신이 약속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졸업 이후에는 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목표 달성을 유보한다. 입시 이후에 또다시 낙관을 주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학생이라는 관습적 지위에 갇혀 우리의 취약한 지위(사회적 안전망의 붕괴로 인해 불안정 노동에 이미 시달리고 있거나, 시달릴 것이라는 점, 이런 불안정 노동을 하기 위해 스펙을 쌓기 위한 무임금 노동 등을 하고 있다는 점 등)를 잊는다. 그러고는 자신만은 IMF 이전의 대학생처럼 안정적인 직장을 얻으리라, 대학에 왔으니 안정적인 생애 경로에 오른 것이라 생각한다. 축제를 즐기고, 밤새 술을 마시며 ‘대학의 낭만’을 쥐어짜는 이면에는, 과거의 대학생이 가졌던 관습적 지위를 즐기고 있다는 확신을 받고 싶은 불안이 존재한다. 미래를 낙관했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던 대학생의 관습성이 나에게도 적용되면 좋겠다는 낙관이 우리를 구속한다.


그러나 점점 취업시장에 나서야 할 시간이, 또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관습적 대학생의 지위로는 약속한 것을 받지 못하며 안정이 아닌 또 다른 경쟁을 통해서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대학은 그저 새로운 답보 상태를 위한 유보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는 실망한다. 그 평가 체계를 정당하다 생각하고 고통을 감수하며 노력을 투자한 입시에(안희제, 2024), 그리고 그 입시를 통해 얻은 학벌에 배신당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루어지지 못할 낙관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실망을 다른 개인·집단의 탓으로 돌리며 그들에 대한 분노로 표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선 우리가 답보 상태에 빠진 이유가 “우리가 그것을 이룰 역량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 일이 일어나도록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인지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답보 상태로 인해 느끼는 실망과 그로 인한 우울의 원인이 어느 개인의 책임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답보 상태를 야기한 것이 무엇인지 사회 구조적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알아가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학의 약속이 허황한 것이었음을, 그로 인해 우리가 답보 상태에 빠졌음을 직시하고 나면, 이 상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답보 상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기존 삶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에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형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답보 상태를 바라볼 때 우리는 이것에 생산적 잠재력이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Cvetkovich, 2025:50-54). 벌랜트는 답보 상태가 기존 삶의 방식이 작동하지 않는 순간이자 아직 무언가가 확정되지 않은 채 유보된 순간이라면,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 수 있지 않겠냐고 묻는다(Berlant, 2024). 답보 상태는 무언가에 붙들린 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의성을 발휘해 움직여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 창의성은 꼭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거나 도피하는, 현재의 붙들린 상태에서 벗어나는 움직임 전체를 말한다(Cvetkovich, 2025:51-52). 그렇다면 이 실망뿐인 대학에서 우리는 어떤 움직임을 발휘해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4-1. 실망의 대학에서 조건 없는 대학으로


츠베트코비치는 답보 상태에서 비롯된 우울을 견디고 직시하기 위해 ‘우울 일기’라는 회고록을 쓴다. 그는 개인의 내밀한 일상과 기억에 관해 쓰는 서술하는 회고록을 통해서 우울이라는 일상적 감정에 집중해 우리가 놓치던 감각들을 기록하고, 우울을 기존의 시각(부정적이며 치료해야 하는 개인적인 문제로 보는)과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세밀하게 우울이라는 감정의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우리는 우울의 원인이 개인의 역사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회고록 쓰기를 통해 자신의 우울이 지니는 ‘역사성’을 찾아낸다. 이런 역사성은 자신의 우울과 젠더 불평등·인종차별·계급 문제와의 연관성을 알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노예 제도로 인한 강제 이주 때문에 어딘가에 정착하지도, 속하지도 못했던 역사가 개인에게 남아 우울을 유발한다는 걸 발견하는 것이다. 이렇듯 회고록을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츠베트코비치가 찾아낸 대학과 관련된 우울의 역사성은, ‘실패한 계층상승의 추구’가 우울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대학을 통한 계층상승에 실패했기에 답보 상태에 빠진 우울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체제가 강요하는 성공 플롯에 자신이 맞지 않음을, 성공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구조가 설계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Cvetkovich, 2025:149-154, 221-263). 이를 통해 낙관이라는 환상에서 탈각해, 우리는 현재 대학이 약속하는 것들과 그 약속을 시행할 능력 사이에 괴리를 파악할 수 있다.


대학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답보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면(Cvetkovich, 2025:50-54), 대학이 올바른 것을 약속하고 그것을 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취업의 수단, 기업의 도구, 상징자본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기업화된 대학을 구성하는 토대 자체를 변화시키고 대학을 구성하는 조건을 다시 세우는 ‘탈구축’의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두에게 열려 있고 민주적이며, 진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자유를 보장받고, 지식을 가지고 사회에 참여하며, 무조건적인 주권과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기여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즉,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힘을 약속하고 이를 이행할 능력과 의지를 지니는 대학을 만들기 위한 탈구축 작업을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탈구축의 작업은 대학이라는 공간 내부에서만 일어나서는 안 된다. 대학의 위기와 실패(대학의 기업화와 동시에 일어나는 노동 불안정성)는 대학 내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인한 ‘노동의 위기’로부터 대학이라는 공간은 분리되어 존재하거나, 이에 대한 보호막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 사회를 조건 짓는 토대를 탈구축하는 작업이 우리에게 요구된다. 그리고 이런 탈구축에 필요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자 특권이며, 기업화된 대학에 맞서 조건 없는 대학을 만들 방법이라고 데리다는 말한다. 이는 단순히 대학 내에서 지식을 생성만 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사회참여를 통해 행동하고, ‘조건 없는 대학’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를 구축해 가는 행위수행적 움직임이다(Derrida, 2021:18-27, 67-70). 이 움직임을 통해 우리는 대학이라는 낙관에 붙들려 발생하는 답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대학이 유발하는 답보 상태를 이용해서 그것에 내재한 생산적 잠재력을 발휘하는 방법이다.



4-2. 나가며


I should have known better / Nothing can be changed / The past is still the past / The bridge to nowhere / I should have wrote a letter / Explaining what I feel, that empty feeling[3]


수프얀 스티븐스의 〈Should Have Known Better〉은 그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우울한 답보 상태에 빠진 것에 관해 서술하는 전반부와, 자신의 우울을 표현함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애도하고, 미래를 상징하는 조카의 아름다움을 말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며 곡의 분위기가 밝게 변하지만, 극적으로 밝아지지는 않는다. 이는 그가 어머니가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였음을 표현한다.


이 글, 〈반등(동)의 믿음에 관한 회고〉는 답보 상태에서 비롯된 우울에 관한 회고록이었다. 이 글을 여는 기억을 지금 시점에서 다시 되돌아본다. 나는 왜 이 기억들을 끊임없이 떠올릴까? 말없이 떠난 친구들에 대한 뒤늦은 미안함 때문에? 그게 아니면 우리 집이 망한 것에 대한 억울함 때문에? 이 기억은 오랫동안, 아마 평생 나와 함께할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일은 떠나간 친구들이 돌아오는 것만큼이나, 우리 집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글을 쓰며 나를 괴롭히는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 글이 마무리될 때쯤에는 우리 집의 경제 사정이 나아져서 원래대로 돌아와 있기를 바랐을지도. 그런 극적인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내가 얻은 것은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약속받은 걸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낙관을 버리고 불가능성을 받아들이기. 또한 그 받아들임 자체에 변화의 가능성이 내재해 있음을 깨닫기.


그리 극적이지 않은 하루하루가 계속되겠지만, 나의 기억들과 함께 사는 법을 조금씩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이 글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낙관을 품게 된 것 같다.



편집위원 정후 | rkskek181@naver.com



[1] 지표누리 e-나라지표.

[2] 강조는 원문.

[3] Sufjan Stevens, 〈Should Have Known Better〉, 2015.




참고문헌

단행본

안희제 (2024). 증명과 변명 [전자 버전]. 다다서재. Retrieved from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6471021&start=pebook

로런 벌랜트 (2024). 잔인한 낙관 [전자 버전]. 박미선, 윤조원 (번역). 후마니타스. Retrieved from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765805&start=slayer

마크 피셔 (2024). 자본주의 리얼리즘(개정판). 박진철 (번역). 리시올.

마크 피셔 (2023), 대런 앰브로즈 (엮음). k-펑크 1 [전자 버전], 박진철, 임경수 (번역), 리시올. Retrieved from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7269620&start=slayer

앤 츠베트코비치 (2025). 우울: 공적 감정. 박미선, 오수원 (번역). 마티.

자크 데리다 (2021). 조건 없는 대학. 조재룡 (번역). 문학과지성사.

제니퍼 M. 실바 (2020). 커밍 업 쇼트. 문현아, 박준규 (번역). 리시올.

조지 오웰 (2010). 위건부두로 가는 길. 이한중 (번역). 한겨레출판사.

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피에르 소베트르,오 게강 (2024). 내전, 대중 혐오, 법치. 정기헌 (번역). 원더박스.


기사 및 온라인 자료

유진 (2023.03.07.).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마크 피셔 글 번역) [온라인 블로그]. 접속일 2025.08.10.. Retrieved from https://m.blog.naver.com/mjkyj0102/222666440286

허풍쟁이악마 (2024.06.17.). 알렉스 윌리엄스 - 부정적 연대와 포스트포드주의적 가소성에 대해 [온라인 블로그]. 접속일 2025.08.10.. Retrieved from https://blog.naver.com/impofperversee/223481903489

지표누리 e-나라지표,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520 접속일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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