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학] 편집위원 혜인
[그림 1] 4월 22일 컬럼비아 대학교 농성장 ©Stefan Jeremiah/AP Photo
낮 시간대의 대학 캠퍼스 잔디밭. 다수의 텐트가 설치되어 있고, 그 사이에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는 쿠피예를 착용하고 있다. 전면에는 팔레스타인 국기와 함께 “STOP FUNDING GENOCIDE”라고 적힌 손팻말이 놓여 있다. 뒤편으로 웅장한 대학 건물이 보인다. 그림 설명 끝.
2024년 4월 17일, 컬럼비아대학교를 시작으로 미국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흔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혹은 ‘전쟁’이라 불리는 학살에 반대하며 캠퍼스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그들은 잔디밭 위에 텐트를 설치하고 건물을 점거하며, 대학 당국에 학살과 식민지배와의 공모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해 봄 뉴스에는 체포와 경찰 투입 소식이 간간이 전해졌다—당신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묻는다. 캠퍼스를 점령하고 구호를 외쳤던 그들은 누구인가—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수업을 듣고 취업이나 걱정하는 평범한 대학생들이다. 같은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어떻게 대학에서 이러한 운동을 조직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어떤 단체에 속해 있으며,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한 명의 학생이자 한 사람으로서, 어떤 마음으로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외치고 있는가?
이 인터뷰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였다. 현재 미국 대학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활동하는 학생 P와 A를[1]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보다 가까이에서 전하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P: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교에서[2] 6월까지 학생이었고, 이제 막 졸업했습니다. 2020년에 만들어진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모임(Students for Justice in Palestine, SJP) ■■대학 지부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어요. 그 뒤로는 군 복무 때문에 18개월 정도 활동에서 물러나 있었고 복귀한 이후로는 단식 투쟁 두 번, 농성 한 번에 참여했습니다.
A: 저도 ■■대학교 학생이고 SJP의 성원입니다. 이제 막 1학년을 마쳤고 지난 1년 동안 여러 활동에 함께했어요. SJP는 수평적인 운영 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누가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 식으로 활동하지는 않아요. 꾸준히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주요 결정을 함께 내리곤 해요.
SJP 조직 안에서, 미국 대학 캠퍼스 전반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P: 우리가 요구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항 중 하나는 이스라엘로부터의 투자 철회 divestment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 단순히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나 집단학살에 대한 철회만이 아니라—물론 그것들도 포함되지만—이스라엘이라는 식민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철회를 의미해요.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철회에는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차원까지 포함돼요. 그러니까 우리는 교육기관들이 이스라엘과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봐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라든가, 이스라엘의 정착민 식민 프로젝트나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인사들을 학교에 초청하는 것까지 포함해서요.
A: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모임(SJP)은 미국이라는 제국의 중심부 안에서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만들고 확산시키려는 독립적인 지부들의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어요. 중앙 조직이 있지만 각 학교의 지부는 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편이에요. 그래도 많이들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건 P가 말한 투자 철회예요. 철회에 관한 논의는 대학이 집단학살에 어떻게 공모하고 있는지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거든요. 예를 들어 저희가 최근에 제출한 투자 철회 제안서는 ■■대학이 미국의 상위 10대 무기 제조사 중 다섯 곳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어요. 학교가 투자한 돈이 무기 생산에 쓰이고, 그 무기가 가자에 떨어지는 거예요. 이런 방식의 연결은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에 투자 철회는 운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요구인 거죠.
우리의 사명
점령된 터틀 아일랜드(소위 미국과 캐나다)에서 이어져 온 이전 학생운동의 유산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전국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 모임(SJP)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학생운동이 힘을 얻고, 단결하며, 서로를 지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추구한다. 우리는 자유, 연대, 평등, 안전, 역사적 정의에 기반한 실천 의제를 지지하며, 학생운동이 보다 높은 수준의 정치적 참여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지향한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구들을 갖추고 연결되며 규율 있는 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첫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모임(SJP)이 결성된 지 거의 20년이 지난 오늘날,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북미 전역의 대학과 캠퍼스를 휩쓸고 있다. 대륙 곳곳의 350개 이상 캠퍼스 조직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유, 정의, 평등을 위한 요구를 드높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 오고 있다 (...)
‘우리의 목적’ 선언문에서 미국과 캐나다를 ‘점령된 터틀 아일랜드’라고 지칭한 게 인상 깊었어요. 이 표현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 표현이 팔레스타인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궁금해요.
P: ‘터틀 아일랜드’라는 표현은 북미와 중미를 지칭할 때 일부 선주민들이 사용하는 용어예요. ‘점령된 터틀 아일랜드’라는 말은 미국과 캐나다가 선주민의 땅 위에 세워진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구조라는 점을 드러내는 거죠.
A: ‘점령된 터틀 아일랜드’라는 표현이 비판하는 정착민 식민주의의 구조는 현재 팔레스타인에서도 시온주의 운동에 의해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어요. 또한 시온주의 운동은 미국의 자금과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죠. 즉, 이 표현에는 우리의 운동이 미국 안에서,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방 운동과 연결돼 있고 함께한다는 인식이 담겨 있어요. 예를 들어 미국의 랜드백 운동Land Back Movement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전 학생운동의 유산과 영향력을 바탕으로...”라는 표현도 있는데,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운동은 과거의 다른 학생운동들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나요?
A: ■■대학의 사례를 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던 학생운동 당시에는 학교 중심부에 판자촌shantytown을 세우기도 했고, 더 최근에는 월스트리트 점거Occupy Wall Street 운동의 흐름을 이어 “Occupy ■■ College”라는 이름으로 캠퍼스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어요. 이전 운동들에서 나온 구체적인 실천들이 지금 우리의 행동에 영감을 주고 있어요. 투쟁의 유산은 일종의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어요. 특히 팔레스타인 운동이 얼마나 느리게, 그리고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움직여 왔는지를 생각하면요. 예컨대 남아공 운동도 실제로 ■■대학에서 투자 철회를 쟁취하기까지 10년이나 걸렸어요. 그걸 생각하면 이런 운동은 쉽게 몇 년 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원래 오래 걸리는 일이었고, 실제로도 그래 왔다는 걸요.
이전 운동들과 비교했을 때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판자촌 점거 당시에 우익 성향의 학내 언론단체가 어느 날 밤 망치를 들고 들어와 사람들이 안에 있던 판자촌을 전부 부숴버린 일이 있었어요. 다음 날, 학교는 그 학생들을 즉각 비난했죠. 그런데 지금은 천막을 치고 점거를 시작하면 몇 시간도 안 돼서 학교 측이 직접 나서서 철거하고 경찰을 불러 학생들을 체포해요.
P: 저도 예전 운동에 대한 대학 당국의 대응 방식과 지금 팔레스타인이라는 말만 꺼내도 나오는 반응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걸 확실히 느껴요. 이스라엘에 반대하거나, 시온주의를 비판하거나, 미국과 시온주의의 관계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반유대주의라고 몰아가는 일이 있고 이게 무기처럼 사용되고 있어요. 반유대주의라는 말이 나오면 행정 측도 굉장히 당황해요—동문 기부자나 정치권 인사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까 봐요.
A: 오늘날 이 운동은 위협적, 범죄적, 비이성적인 테러 행위로 간주되고 있어요. 이게 바로 ‘팔레스타인 예외Palestine exception’의 일부인데, 팔레스타인 운동 내에서 누군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이 범죄화되는 경향이 있죠. 그 근저에는 인종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기억에 남는 예시가 있는데, 가장 최근의 농성 당시 어떤 학생이 와서 분필로 “아랍인은 폭격하고, 유대인은 돈 낸다Arabs bomb, Jews pay”라고 쓰고 간 일이에요. 9·11 이후에 널리 퍼졌던 혐오의 정서를 그대로 재현한 거죠. 모든 아랍인은 폭력적이고 테러리스트라는 식의 혐오 말이에요.
그런데 찬양받고 있는 과거의 운동들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방식의 행동을 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이나 60년대의 민권운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죠. 시민 불복종의 일환으로 법을 어겼어야만 했다는 것에 동의해요. ■■대학에서도 이런 과거 운동들을 자랑스러운 학교의 역사 일부로 소개해요. “우리 학교 학생들은 늘 정치적으로 깨어 있었고, 이는 지성의 증거다”라면서요. 팔레스타인 운동을 학생운동사적 맥락 속에 두는 것은 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해요.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특별한 것도, 전례 없는 일도 아니에요. 만약 그들이 이전의 운동들을 지지한다면, 논리적으로 이 운동도 지지해야 하는 게 맞는 거죠.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남부의 가자 외곽 지구를 공습하는 공동 무력 작전을 개시하였다. 초기에는 ‘하마스가 음악 축제에 민간인을 살해하러 왔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이 사실인 듯 보도되며 테러의 이미지가 글로벌 노스의 여론을 크게 자극하였다. 10월 7일 이래 서양의 여러 정부는 앞다퉈 이스라엘 지지를 표명하며 군사 장비를 지원하고,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지지를 표명하는 각종 활동을 금지하고 정치적 자유를 축소하였다.
‘10월 7일 하마스 공격’, ‘공습’, ‘기습’으로 불리고 있는 이 작전의 다른 이름은 알-아크사 홍수 작전Operation Al-Aqsa Flood이다. 2000년대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도발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을 침탈해 왔다. 특히 2022년 4월에는 알-아크사 사원이 위치한 하람 앗-샤리프에 쳐들어가 피신한 시위대와 신도들을 무차별 구타하고 발포 및 체포하였다.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에서는 알-아크사 사원을 사수해야 한다는 총의가 모였다. 이번 군사 작전의 주요 요구 사항 중 하나는 알-아크사 침탈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알-아크사 홍수라는 작전명은 여기서 유래하였다. 이 공격은 일반적으로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시작점으로 이해된다. 이스라엘은 즉시 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하마스를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가자 지구 전역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공습과 포격을 감행했다. 이러한 국면은 장기화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랍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운동을 모두 테러로 간주하는 인식이 주류 언론이 10월 7일을 다루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10월 7일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P: 저는 10월 7일의 도덕성이나 전략적 효과성에 대해 정말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고, 또 반드시 그런 논의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정당했는가, 아니었는가? 효과적이었는가, 아니었는가?—이런 질문들을 두고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해요. 하지만 저는, 10월 7일을 두고 어떤 의미 있는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그날의 사건이 역사적인 저항 행위였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분명히 저항이었고, 테러가 아니었어요. 저는 그 점을 매우 강하게 믿고 있어요.
A: 운동 안에서 흔히 쓰이는 구호 중 하나는 “10월 7일에 시작된 게 아니다It did not start with October 7th”예요. 우리는 10월 6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해야 해요. 10월 7일은 마치 아무 이유 없이 테러 조직이 갑자기 음악 페스티벌을 공격한 ‘괴이한 사건’이 아니에요. 그게 전쟁의 시작점도 아니었고요. 이 사건은 수십 년에 걸친 아파르트헤이트, 민족 청소,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그들의 땅에서 강제로 쫓아낸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해요. 정치 교육을 할 때는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하마스는요?
P: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내에서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는 한 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 오랫동안 참여해 온 분들 중에서도 하마스의 전략이나 전술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하마스는 주류 언론이 묘사하듯이 ‘테러 조직’이 아니에요.
하마스에 대해 흔히 들을 수 있는 수사는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제거해야 한다’, ‘뿌리 뽑아야 한다’, ‘파괴해야 한다’는 식이에요. 그런데 하마스는 단순히 이스라엘이 이른바 ‘대테러 진압 캠페인’ 같은 걸 통해 파괴하거나 없애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하마스는 하나의 이념이고, 이스라엘의 억압이 심해지고 집단학살 행위가 더 악화될수록 오히려 더 강해지는 사상이죠. 그래서 저는 ‘하마스를 제거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은 결국 극도로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말살하려는 전형적인 ‘대테러’ 레토릭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레토릭은 집단학살 정책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해요.
또한, 미국 대학 캠퍼스의 팔레스타인 운동 내부에서 하마스는 우파 진영이 의도적으로 꺼내 드는 논쟁거리예요. A가 말한 아랍인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이용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곧바로 테러나 폭력 옹호로 몰아가려는 거죠.
A: 또한, 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통치 방식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건 전적으로 팔레스타인 민중이 결정할 문제예요. 하마스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당이고요. 그들의 해방은 그들 자신의 힘으로 쟁취될 거예요. 미국의 대학생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독립을 ‘가져다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우리의 과제는 우리가 속한 미국이라는 국가 그리고 우리가 몸담은 체제를 방해하고 흔드는 것—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10월 7일은 ■■대학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나요?
P: ■■대학이 자랑하는 것 중 하나가 이른바 “대화 프로젝트Dialogue Project”라는 건데요. 10월 7일 직후 중동학과와 유대학과가 함께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에 대한 ‘시민적 대화’를 열었다는 사실을 대학 측은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겼어요. (저는 그때 막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라서 행사에 참석하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괜찮은 행사였을 수도 있죠) 문제는, 대학이 이걸 자신들이 얼마나 ‘문명화된’ 기관인지 보여주는 일종의 장식처럼 사용했다는 거예요. “우리 학생들은 10월 7일의 충격에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학문적인 자세로 모여 지역의 역사를 공부하고 토론했다”고 말이죠. 공부와 토론 (...)—지금 집단학살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A: 대학 당국은 캠퍼스 내 어떤 문제든 간에 해법은 결국 “더 많은 대화”라고 강조해요. 모든 사람이 자기 정치적 입장을 나누고 서로 이야기하면 해결된다는 식이죠. 근데 전 그런 식으로 위안받기를 원하지 않아요. 지금 문제가 존재하고 제 “정신 건강”이 영향을 받는 건 학교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무기 제조업체에 자금을 대면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었으니 괜찮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돼요.
SJP의 대응. 10월 7일 이후 어떤 활동들을 하셨나요?
A: 조직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0월 7일 이후로 SJP 운동이 미국 전역,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어요. 다만 분명히 강조하고 싶은 건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에요. SJP가 성립된 것도 2011년 컬럼비아 대학에서였고요. 미국 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고,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자금을 대 왔기 때문이죠. 미국에는 규모 있는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도 존재하고 있고요.
일단 저희 학교에서는 10월 7일 직후 소수의 학생들이 캠퍼스에 천막 농성을 시작하고 여러 다른 학내 단체들과 협력해서 요구안 문서를 함께 제안했어요. 요구안은 투자 철회뿐 아니라 다양한 학내 단체의 요구들이 담긴 문서였죠. 학교는 농성하는 학생 두 명을 체포했어요. 체포하면서 내세운 이유 중 하나가 “천막 안에 폭탄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어서 위험하다”는 거였어요.
P: 그 후 단식 투쟁이 2024년 2월쯤에 있었어요. 그때 우리가 내세운 첫 번째 요구는 “투자 철회 절차를 시작하라”는 것이었어요. 두 번째는 “이 학교에 팔레스타인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을 학교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라”는 거였어요. 당시 학교는 이스라엘이나 유대인 문화, 유대인의 삶에 대해서는 말하면서도,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학생들이 존재하며, 고통받고 있다’는 내용을 공식적으로 포함한 성명을 학교가 낼 수 있을지 실험해 보고 싶었던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학교가 그런 이메일을 보내긴 했어요. 마지막 요구는 10월 7일 직후 농성 투쟁 중 체포된 두 학생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 학생들의 재판이 우리가 단식 투쟁을 하던 시기에 진행 중이었는데, 우리는 학교가 이 학생들이 폭력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정해 주길 요구했어요. 결과적으로 학교는 이들이 폭력적이지 않았고, 기존의 묘사는 부정확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놓았어요. 물론 그게 법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결국 두 학생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요.
2024년 점거 농성 타임라인
- 4월 17일 컬럼비아대학교 학생들이 1차 연대 농성을 시작하였다. 이후 대학 당국은 뉴욕 경찰을 투입해 농성을 강제 해산하며, 이 과정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 1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점거 농성은 곧 미국 전역의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 4월 24일 텍사스대학교 오스틴 캠퍼스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 해산을 위해 기동경찰이 투입되었다. 경찰은 페퍼 스프레이와 공포탄을 사용했으며, 시위대 57명이 무단침입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러한 무력 진압은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었으나, 이후 다른 대학 캠퍼스에서도 반복되었다.
- 4월 29일 대학 당국이 1차 투자철회안을 거절하자, 컬럼비아 학생들은 해밀턴 홀을 점거하고 그 이름을 힌드 홀(Hind’s Hall)로 개칭하였다. 힌드 홀이라는 개칭은 같은 해 1월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살해된 6세 아동 힌드 라자브(Hind Rajab)를 기리기 위함이었다.
- 4월 30일 UCLA 대학에서 시오시스트 맞불 시위대가 농성장의 바리케이드를 폭력적으로 철거하려 시도하며 시위 참가자들을 공격하였다. 대학 측은 명백한 폭력 확산의 징후와 농성 내부 학생들의 반복적인 도움 요청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 6월 초 집계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대학 캠퍼스에서 3,100명이 넘는 인원이 체포되거나 구금되었다.
조직 방식이 궁금해요. 중앙에서 함께 결정해서 진행한 건가요?
P: 각 학교의 지부 대표들이 소통하는 단체 채팅방이 있긴 해요. 하지만 실제 농성은 꽤 자율적으로 이루어졌어요. 그냥 뉴스에서 농성이 시작된 걸 보고 각자 친구들에게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면서 “우리도 하자” 하고 자체적으로 결정한 거예요.
[그림 2] 힌드 홀 점령 ©Gabriella Gregor Splaver/Columbia Spectator
밤의 대학 건물. 건물에는 “INTIFADA”와 “HANDS OFF HILL”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건물 앞에는 마스크와 쿠피예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팔짱을 끼고 건물 입구를 막고 있다. 일부 인원은 건물 상부의 난간에 걸린 현수막 근처에 서 있다. 그림 설명 끝.
이런 변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무슨 생각을 했나요?
P: 매우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운동을 하다 보면 늘 마주하게 되는 윤리적 질문이 있어요—이 대의를 위해 나는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우리는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고 인생에 대한 계획도 다르잖아요. 어떤 행동에 참여하든 정신적·신체적·경제적·법적 위험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해요. 결국 이 운동에 기여하는 일과 나 자신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죠. 저 역시 늘 그 질문 앞에서 쉽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안전과 삶의 기반을 감수하면서까지 행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A: 컬럼비아에서 시작된 농성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됐어요. 정말 많은 학교들이 동시에 농성을 시작했기에 국제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거죠. 에모리대 학생들이 최루탄에 맞서고, LA에서는 헬리콥터가 출동하고—이런 일들이 전국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지니까 언론의 주목도, 대중의 지지도 크게 높아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전반적인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정치적 의식을 갖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림 3] 경찰이 UCLA 농성장 바리케이드 일부를 강제 철거한 뒤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Etienne Laurent/AFP/Getty Images
방패와 헬멧, 보호 장비를 착용한 경찰들이 줄지어 서 있고, 맞은편에는 마스크와 보호구를 착용한 시위대가 서로 팔짱을 끼고 대치하고 있다. 바닥에는 시위 현장의 잔해가 보인다. 그림 설명 끝.
이런 ‘정치적 분위기’가 형성된 데에는 체제의 강한 반발과 경찰의 개입도 작용했을 것 같아요.
P: 맞아요. 폭동 진압 장비를 착용한 경찰이 캠퍼스 안으로 들어와 학생들을 밀어내는 장면은 미국 역사뿐 아니라 어느 나라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어 온 억압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죠. 그런 장면 자체가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아요. 저희 학교에 온 경찰도 이것저것 많이 들고 왔거든요. SWAT 팀도 왔고 테러리스트 암살에나 쓰이는 장총이 실린 장갑 차량까지 끌고 왔어요.
이후 교수들 사이에서도 총장을 어떻게 비판할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어요. 일각에 서는 불신임 투표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결국 공식적인 견책 수준에서 그쳤어요. 저는 그 회의 현장을 직접 지켜봤는데, 교수들이 표현의 자유나 정치적 권리에 대해 이렇게까지 무지하다는 사실에 실망했어요.
A: 당시 저희 학교에서 90명 넘는 사람이 체포됐고, 그중에는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 두명도 포함돼 있었어요. 흥미로운 점은 올해도 같은 방식의 농성이 있었는데 이번에 는 학교 측이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작년에 경찰을 불렀다가 언론의 집중 보도를 받고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던 걸 의식한 거겠죠. 대신 이번에는 정학이나 퇴학 같은 징계 조치를 거론하면서 학생들을 압박했어요. 그 배경에는 최근 트럼프가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면서 “대학 지원 끊겠다”고 위협하는 상황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게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니까 학교 측도 전략을 바꾼 거죠.
결국 대학 자체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와야 할 것 같아요. 학교는 왜 팔레스타인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는가? 우리의 대학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성찰 말이에요.
〈전국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모임 ‘가자를 위한 대중대학’ 출범〉 서명
2024년 4월 20일
북미 전역의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모임(SJP) 지부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서, 여러 대학 캠퍼스에서 자치 구역을 수립하며, 극심한 대학 당국의 탄압에 맞서 자신들의 힘과 요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2024년 4월 20일, 전국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모임은 이스라엘에 대한 즉각적인 투자 철회를 대학 행정당국과 이사회에 요구하는 조직적인 압박 캠페인, ‘가자를 위한 대중대학’을 출범합니다. 수백 건의 학생사회 결의안, 당국과의 회동, 캠퍼스 시위를 거쳐, 수개월간 가해져 온 표적화, 괴롭힘, 체포 속에서도 학생들은 이제 압박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 당국이 우리의 요구에 응할 때까지 대학을 되찾을 것입니다.
컬럼비아 대학교 샤픽 총장의 비겁한 의회 증언은 유감스러운 전환점을 예고합니다: 대학 당국들은 친이스라엘 로비와 그들과 결탁한 우파 세력에 굴복하며, 국가와 일반 대중의 시선 속에서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학생운동을 팔아넘길 것입니다. 최근 사태의 고조는 대학을 위태로운 위치로 몰아넣었습니다: 기업 모델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교육 기관으로서의 정당성과 공적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대규모 학생 행동 앞에서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가자를 위한 대중대학’은 대학 당국의 입장을 완전히 불가능하게만들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대학이 더 이상 배움의 공간으로 기능하지 않으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부금을 운용하여 대학의 자산을 불리는 영리 기업으로 전락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대 기업체들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삶과 학생들의 뜻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위협하기까지 하는 이사회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체제 자체를 해체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와 그에 걸맞은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자신의 면과 명성, 장래의 커리어보다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헌신을 선택한 학생, 교수, 직원들로 이루어진 공동의 대열을 구성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팔레스타인은 지금 대학 캠퍼스에서의 전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 어느 때보다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Rutgers-New Brunswick SJP, Tufts SJP, Columbia SJP, Yalies4Palestine 등에 있는 동지들의 발자취를 따라, 전국의 SJP 지부들은 대학을 점거하고 대학 당국이 가자 민중을 위해 투자 철회에 나설 때까지 압박할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이 모든 투자 포트폴리오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집단학살 및 식민주의 공모에서 철회하며, 가자, 팔레스타인, 그리고 시온주의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모든 학생, 교직원을 방어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공개하라, 철회하라, 가자를 방어하라!
모든 권력을 학생운동에!
- 전국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모임 운영위원회
제가 이 선언문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건,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P: 대학의 신자유주의화—이건 ■■대학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사실이에요. 대학은 억압적인 사회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거나 지적 도전을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라, 개개인이 성공하고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커리어 생산 기계처럼 되어버렸어요. 그 현실이 실망스럽고, 때로는 정말 우울하게 만들죠. 하지만 동시에, 제도권 바깥에서 진정한 배움의 공간—비판하고 서로 배우며 대화하는 공간—을 갈망하는 학생들이 분명히 존재해요. 그런 열망은 이번 농성 중 만들어진 대안적 교육 공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우리는 탈식민 운동,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 등 기존 대학 강의실에서는 배제되어 온 시급하고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마침내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었어요.
A: 대학 안에서 운동을 조직한다는 건, 기존의 배움을 넘어서는 대안적인 학습을 실천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교육을 체제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전유하는 일이에요. 배움을 대학이라는 자본의 목적으로부터 되찾는 일—그것이 곧 운동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서 말씀해 주신 ‘대화 프로젝트Dialogue Project’가 떠올랐어요. 대학은 여전히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외양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정작 시위하는 학생들한테는 경찰을 부르잖아요. 그 기준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언제는 ‘대화’라더니, 언제는 또 ‘경찰 진압’일까요?
P: 재미있는 점 하나는, ‘대화 프로젝트’에 가보면 주변에 항상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거예요.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도 늘 경찰 네댓 명이 주변에 서 있는 거죠. 결국 대학에선 대화와 경찰이 함께 따라다녀요 (웃음). 경찰을 부르는 이유—바로 ‘팔레스타인 예외’ 때문이죠.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대학 안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하거나, 미국의 국익이나 대학의 물질적 이해관계에 반하는 움직임은 항상 감시되고 통제돼요.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경찰이 개입하고 탄압이 발생할 때, 그게 바로 이 사안이 진지하게 다뤄질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런 억압 자체를 미화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런 탄압은 언제나 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니까요. 다만, 경찰과 대치하게 되는 순간이나 학교 관료들이 우리의 발언을 검열하려고 할 때, 우리는 표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배우게 돼요. 또, 우리가 가진 지식을 통해 어떻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죠. 물론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겠죠.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A: 가장 최근의 경찰 연행도 아이러니하게도 ‘대화 프로젝트’ 강연 도중에 벌어졌어요. ‘대화 프로젝트’라는 자리에서 비판하는 목소리는 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는 건 정말 모순적이죠. 사실 이 대학이 말하는 ‘대화’는 언제나 학생들을 회유하기 위한 방법이었어요. 대화의 본래 의미는, 서로 이야기하고 나서 그 대화를 바탕으로 실천으로 나아가는 데 있잖아요. 하지만 이 학교가 말하는 ‘대화’는 그냥 말하고 끝내는 거예요. 말이 목적이자 끝이죠.
성명서에 나온 “대학을 되찾을 것...”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 구호가 팔레스타인 학생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학’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요.
P: 제가 생각하는 ‘‘되찾아야 할 대학”은, 사회적·정치적 실험의 공간으로서의 대학이에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타인과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공존의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함께 실험해 보는 장소 말이에요. 저는 그게 교육이 해야 할 일이고, 본래 인문학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요즘 인문학은 겨우 숨만 붙어 있지만요 (웃음).
그런 대학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이론과 실천 사이의 연결을 더 긴밀히 잇는 일이에요. 요즘 대학을 보면 냉소주의와 반지성주의가 공존하고 있어요. 행동하려 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라고 하고, 공부는 “뜬구름 잡는 얘기”라며 조롱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행동해야 하고, 동시에 공부도 해야 해요. 저는 이론과 실천, 학습과 행동 사이에 훨씬 더 건강하고 생산적인 관계가 가능하다고 믿어요. 그리고 대학은 그 관계를 키워나가는 문화가 존재해야 할 곳이에요. 제게 있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그 가능성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던 장소였어요.
A: 이건 P랑도 자주 나눈 이야기인데요—요즘 저희 학내 운동 안에서는 정치 이론이나 노선에 관한 토론을 일부러 피하려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건 아마, 우리가 지금 맞서고 있는 상대가 바로 ‘지적 대화’만 내세우는 대학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이론적 논쟁이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있었던 것 같고요. 하지만 동시에, 저도 P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해요. 운동에서 이론이나 정치적 사유를 배제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운동은 실천을 중심에 두어야 하지만, 그 실천이 어떤 정치적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설명해 보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게 곧 ‘배운다’는 것의 의미라고 봐요—과거의 운동을 이해하고 공부함으로써, 지금의 실천을 더 단단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가는 것 말이에요.
[그림 4] 컬럼비아 농성장 앞 가자를 위한 대중대학 현수막 ©Stefan Jeremiah/AP Photo
“WELCOME TO THE PEOPLE’S UNIVERSITY FOR PALESTINE”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 뒤편에는 대학 건물을 배경으로 팔레스타인 국기와 여러 개의 텐트가 설치된 시위 현장이 펼쳐져 있다. 그림 설명 끝.
이번 농성 운동이 학내에서 이렇게까지 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P: 음, 일단... 모두가 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 위해 나온 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그냥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보러 온 거죠. 실제로 사전에 운동에 관여했던 사람들—팔레스타인 의제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소수에 불과했고요. 잔디밭에 몰려든 수백 명은 대부분 그냥 장난치고 놀고 있었어요. 그중 일부가 체포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지지자’였던 건 아니에요.
흥미롭네요. 저는 대부분의 학생이 농성에 열렬히 함께한 줄 알았어요. 2024년의 농성이 성공적인 운동의 사례라고 느꼈거든요.
A: 농성을 쉽게 ‘성공적이었다’고 부르기는 어려워요. 물론 국제적인 관심을 많이 받긴 했지만, 농성 자체가 구체적인 물질적 변화로 이어진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대규모 체포 이후에는 학생 참여율이 눈에 띄게 줄었어요. 요즘은 SJP가 어떤 행동을 해도 예전만큼 참여하는 학생이 없어요. 작년에는 1,000명 가까이 모였는데, 지금은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훨씬 적게 나와요.
P: 그래도 어떤 성과가 있었다면, 팔레스타인이라는 의제가 학교 공동체의 공개적인 관심사가 되었다는 점이에요. 지금은 누구나 비록 얕을지라도 이 사안에 대해 알고 있고, 학교 측도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헌신할 준비가 된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걸 통해 당장 물질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 거죠. 언젠가 더 큰 진전을 이루려 할 때 이전의 행동들을 되짚으며 우리가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는 걸 보여주려는 거예요.
A: 예전에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의 고통은 완전히 무시되곤 했어요. 학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울 때도, 주로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유대인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나라를 갖게 되었다는 승리 서사로 다뤄지잖아요. 이스라엘을 건국하기 위해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강제로 내쫓았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아요. 저는 이번 운동을 통해 그런 부분들이 비로소 공적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구체적으로 ‘투자 철회’ 같은 물질적 성과 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스미스Smith College처럼 대부분의 투자를 철회한 학교도 있고, MIT처럼 갈 길이 먼 학교도 있죠. 그래도 미국에서 이처럼 활발한 운동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미국 정부나 이스라엘 정부 입장에선 어느 정도 위협으로 느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10월 7일 이후로 인도 대학과 이스라엘의 협력 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이걸 긍정적으로 보자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이 운동들이 국제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하나의 징후일 수는 있겠죠.
앞으로의 계획은?
A: 2025년 5월에 있었던 최근 농성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 우리의 주요 요구 중 하나는, 우리가 제출한 투자 철회 제안서를 표결에 부치라는 것이었어요.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학교는 몇 달 동안 아무런 응답도, 조치도 하지 않았거든요. 사실 이런 ‘시간 끌기’는 대학이 자주 쓰는 전술이에요—학내 운동은 어차피 4년 주기로 돌아가고, 학생들이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되기를 노리는 거죠. 그래서 이번엔 학교가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리도록 압박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결국 제안은 저희 예상대로 부결됐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건 통과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공식 문서로 남기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제도권의 절차를 통해 이 안건을 제출했고, 당신들은 그것을 확실히 보았고, 그리고 거부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게 앞으로 운동을 더 확장해 나가기 위한 정당성을 쌓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니까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여전히 학교가 투자 철회를 하도록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것이에요. 당장 변화가 생기진 않을 거예요—하지만 요구하지 않으면 변화는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그리고 또 다른 과제는 운동의 기반과 조직 역량을 회복하고 키우는 일이에요. 지난 1년간 활동이 많았던 만큼 활동가들도 많이 지쳤고, 우리가 쓰던 공간들도 많이 잃었어요. 지금은 다시 우리의 기반을 정비하고, 앞으로 꾸준히 행동할 힘을 다시 만들어야 할 때예요.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 싶어요. 왜 이 운동에 참여하고 계신가요?위험하고 힘든 일인데—왜?
A: 저는 종종, 행동에 나설 때마다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행동은 이것뿐이다—그런 마음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요. 무언가 구체적인 결과를 기대해서 행동에 나서는 건 아니에요. 다만 뉴스를 보면 너무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학살, 죽음, 제노사이드, 그리고 그런 일에 우리 학교가 연루돼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이 학교에 등록금을 내고 있는 학생으로서 행동에 나서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느껴요. 저는 이미 이 체제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바로 이 대학에 맞서 싸우는 일이에요.
P: 뭐, 교과서적인 대답으로는—그냥 옳은 일이니까요. 이걸 한다고 해서 제가 어떤 이득을 얻는 것도 아니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운동에 함께하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모두가 이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에게 정말 큰 영감을 줬어요. 무엇보다 각자의 입장에서 왜 이 운동이 중요한지, 또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이 굉장히 많은 걸 배우게 했어요. 그들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들의 억압에 물질적으로 공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가까운 존재들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항상 배우고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가 주어져요. 아마 그게 지금까지 제가 계속 이 운동을 이어오게 하는 힘인 것 같아요.
나는 얼마 전 47회차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집회에 참여했다. 방학이라 토요일이 비었고, 마침 팔레스타인에 관한 글을 쓰고 있던 참이라 일종의 의무감으로 나선 자리였다. 5호선을 타고 광화문에 내려 청계천을 따라 걷다, 집회 장소에 도착해 한적한 그늘을 찾아 혼자 앉았다. 아침에 내린 비 덕분에 유난히 살만하고 평화로운 오후였다. 집회의 첫 번째 발언은 죽은 친구를 위한 추도사.[3]
자신을 사진가라고 소개한 한 남성이 연단 위로 올라와 친구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 사진가의 친구는 팔레스타인인으로, 얼마전 서안지구에서 불법정착민의 총에 맞아 죽었다. 작은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느 날 이스라엘 점령군이 “여기에 군사 기지를 짓겠다”며 마을 사람들의 강제 이주를 명령하자 집을 떠나 이웃 땅에 새 터전을 꾸렸다. 그러나 약속된 군사 기지는 세워지지 않았고 대신 그 자리에 불법 정착민촌이 들어섰다. 그는 이런 상황에 놓여 자연스럽게 마을의 활동가가 되었고, 활동을 하다 어느 날 총에 맞아 죽었다.
나는 추도사를 따라가며 방아쇠가 당겨지기까지의 순간을 그려본다. 그와 불법정착민은 대치했을 것이다. 말싸움을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해 봐도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끝낼 마음을 먹을 수 있는지, 어떻게 방아쇠를 당길 결심을 할 수 있는지. 그 울려 퍼진 총성의 순간, 조금 전만 해도 살아있던 사진작가의 친구가 한 구의 시신이 된 그 순간을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죽은 후 군인이 나타나서 현장을 정리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군은 친구의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다. 마을 여인들이 10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이고 나서야 그가 팔레스타인 땅에 묻히는 것이 허락되었다. 반면 그를 죽인 불법정착민은 경찰서에서 간단한 심문을 받은 뒤 아무 처벌 없이 풀려났다.
그 친구의 피가 마르지도 않은 마을의 거리를 활보하는 살인자.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대지의 저주받은 여인들의 형형한 눈빛. 10일 동안 땅에 묻히지 못해 부패한 시신.
“그의 죽음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을.”
마지막 발언은 카이스트 대학원생노조의 성명문. 자신을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노조지부 카이스트분회 준비모임장이라고 소개한 한 활동가가 연단에 올라, 얼마 전 발표한 성명서를 결의에 찬 목소리로 읽었다. 카이스트 대학원생노조는 곧 서울에서 열릴 학술 심포지엄에 이스라엘의 대학 Technion IIT가 참여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Technion IIT가 이스라엘 군사 작전에 적극 기여하고 있으며, 그들이 개발하는 기술이 반인륜적 전쟁범죄에 직·간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또 다른 장면을 상상한다. 머지않아, 서울의 완벽히 정돈된 회의실—학살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정장을 입은 과학자들이 마주 앉아 있을 것이다. 커다란 회의 테이블, 대학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수막, 기술과 발전을 자랑하는 발표. 이스라엘 대학에서 온 연구자 역시 자신들의 성취를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그들의 손이 이미 팔레스타인인의 피로 더럽혀져 있다는 것을. 부패한 시신과 죽음의 냄새가 언젠가 이 방을 질식시킬 것이라는 것을.
발언을 마치며, 그는 다시 한번 간청했다.
“우리의 연구가 국가와 사회, 나아가 지구 공동체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그 오후에 들은 두 이야기가 이 글을 마무리하는 내내 잊히지 않는다. 나의 안온한 일상을 지탱하던 하나의 벽이 무너졌다.
그 벽은 친구의 시신과 과학자의 학술장을 가르는 대학의 울타리, 팔레스타인의 학살과 서울의 평화를 분리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장벽.
인터뷰 내내 A와 P는 그 벽을 넘어서는 연대를 말한다—팔레스타인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동시에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고. 나도 한 명의 학생이자 사람으로서 그 벽이 무너지는 미래를 상상한다. 우리의 연대가 그 벽을 무너뜨릴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대학의 미래시제이다.
팔레스타인은 우리의 미래시제이다.[4]
[1] 익명.
[2] ■■대학은 미국 동부에 위치한 대학이다.
[3] 발언문 원문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노션의 「47차 긴급행동 집회현장」 페이지에 게시돼 있다. https://platformc.notion.site/47-24b9b52bca448034b7dec57aa4d42196
[4] “팔레스타인은 우리의 미래시제다”라는 슬로건은, 팔레스타인문화연대가 2024년 6월 15일부터 29일까지 주최한 6명의 팔레스타인 작가를 소개하는 미술 전시회의 제목으로 사용된 바 있다. 전시와 문화연대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인스타그램 @kcapalestine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질베르 아슈카르 (2024).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 (번역). 리시올.
기사 및 온라인 자료
― Hay, A. (2024.05.03.). Major events in pro-palestinian protests at US universities. Reuters. Retrieved from https://www.reuters.com/world/us/pro-palestinian-encampments-us-
universities-2024-05-02/.
― National Students for Justice in Palestine. (2024.04.20.). National SJP Launches the Popular
― University for Gaza. Retrieved from National SJP website: https://www.nationalsjp.org/
statement-16.
― National Students for Justice in Palestine. (n.d.). Who Are We? Retrieved from National SJP website: https://www.nationalsjp.org/about.
― Splaver, G. (2024.05.12.). In Focus: When Hamilton Hall became “Hind’s Hall.” Retrieved from Columbia Daily Spectator website: https://www.columbiaspectator.com/main/2024/05/12/in-focus-when-hamilton-hall-became-hinds-hall/
― The New York Times. (2024.07.22.). Where Protesters on U.S. Campuses Have Been Arrested or Detained. The New York Times. Retrieved from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4/us/pro-palestinian-college-protests-encampment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