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자 불명

[특집 '대학' 닫는 글] 편집위원 하영

더 이상 글의 힘을 믿지 않는다.


대학의 벽은 너무나 공고하다. 그 벽에 틈을 만들 수는 있는지, 도대체 어떤 틈을 만들어야 하는지 종종 갈피를 잃는다. 그러나 갈피를 잃은 그 모든 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대학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나의 언어는 언제나 대학一으로 상징되는 온갖 언어와 지식一의 것이었다. 글을 쓰기에 앞서 온갖 논문과 학술서를 뒤진다. 나의 언어가 나의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무수한 순간들로 글을 썼다. 그리고 대학에서 외쳤다. 대학은 이런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고, 학벌주의는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하지만 언제나 미끄러진다고 느꼈다. 어떤 벽을 넘지 못한 채 자꾸만 미끄러지는 기분.


그리고 미끄러져 바닥에 흩어진 그 '나머지'들은 언제나 우리의 삶이었다. 아직 이름 없이 말해지지 않은 구체적인 나와 당신의 삶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실은 벽에 갇힌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어디든 돌아다니기로 했다. 길가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학교에서 광장에서 미끄러진 삶들을 다시 주워 담았다. 그럼에도 끝내 담아지지 않는 나머지들은 마음껏 흩뿌리려고 애썼다. 그 흩뿌려진 삶 틈새에서 누군가를一당신을一 정말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삶을 향해 다가가면서 비로소 대학을 다시 떠올렸다. 아직도 대학이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마음껏 주워 담고 흩뿌리고 만난다면 분명 대학은 벽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만나고 연결된다면 어떤 벽이든 끝내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


나의 언어는 여전히 대학 안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언어로 글을 쓴다. 대학에 다니며, (별일이 없다면) 대학을 졸업할 나의 언어는 앞으로도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말과 문자가 허공을 떠돌지 않기 위해서는 언제나 당신을 향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기어이 세상을 헤집고 다닐 것이다. 구석구석 당신을 찾아다닐 것이다. 나의 언어가 향해야 하는 그곳은 언제나 당신이므로.


더 이상 글의 힘을 믿지 않는다. 그 모든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을 쓰기 때문에 글의 힘을 믿을 수가 없어졌다. 벽은 대학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으므로. 따라서 언어와 문자에 포착되지 않는 삶을 언제나 남겨둔 채 끝맺을 수밖에 없으므로. 세상을 바꿀 만한 강력한 힘 따위 가질 수 없을 테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을 쓴다.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세상의 편린만은 담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글만큼은, 앞으로의 글만큼은, 오롯이 나의 감각과 마음에서 출발한다. 당신과의 만남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나의 언어가 다시 한번 당신에게 닿기 위해. 그 찰나의 마주침이 세상은 바꿀 수 없을지라도 나와 당신을 바꿀 것이기에.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그리하여 여전히 이 글도 어떤 삶을 남겨둔 채 끝맺는다.

어쩌면 영원히 담아내지 못할 나의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그 삶을 그리는 눈이 있다.

그 눈으로, 그 마음으로, 다시 온몸으로, 결국에는 나의 삶과 당신의 삶이 만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편집위원 하영 | choibook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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