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편집장 은희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되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일제히 ‘민주주의의 회복’이자 ‘광장의 승리’라고 보도했다.[1] 작년 12월부터 광장의 목표는 명확했다. 하나는 윤석열 정권의 퇴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회대개혁’이었다. 사회대개혁을 목표로 제시한 것은 단순히 윤석열을 대통령 자리에서 내쫓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 분야에 있어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민이 차별받고, 장애인이 지하철조차 타지 못하며, 폭우에 사람이 죽어가는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이다. 집회 시작 때마다 나오던 평등 수칙은 이러한 시민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함께 약속합시다,
1. 서로가 서로의 광장이고 민주주의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만들어갈 민주주의는 지금 바로 이 곳에서 시작합니다.
2. 민주주의는 성별, 성적지향, 장애, 연령, 국적 등 서로 다른 사람이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에서 가능합니다.
3. 집회 발언 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4. 특정 대상에 대한 욕설이나 차별, 혐오, 외모 평가 발언 없이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에겐 싸울 힘이 충분히 있습니다.
-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2]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랐던 시민들은 광장에서 자신과 다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을 동료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배웠다.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타인과도 함께 연대할 수 있음을 배웠다. 12월 21일부터 22일까지 남태령에서의 연대나 12월 2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후 전장연) 안국역 출근길 집회에 2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던 것이 이를 보여준다.[3]
그러나 윤석열이 파면되고 4개월이 지난 지금, 광장은 우리가 기대하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고 기억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 이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나 다른 민중가요와 함께 여의도, 한강진, 안국역 등 그동안의 집회 장면을 편집한 영상들이 온라인 공간 위를 떠다녔다. 영상의 의도는 명확했다. 응원봉, 키세스, 말벌동지 등의 이미지들을 소환하는 것. 이러한 영상들을 보며 사람들은 가슴 벅차했고, 광장을 그저 ‘힘들지만 뿌듯했던 경험’ 정도로 기억했다. 정작 남태령이나 안국역 전장연 집회와 같은 연대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는데 말이다. 윤석열이 파면된 후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동력을 잃은 연대는 점차 희미해졌다. 광장과 일상은 분리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분리된 광장을 제도권 정치가 흡수해 버렸다. 제도권 정치는 광장을 ‘빛의 혁명’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광장의 핵심이었던 의제는 외면하는 태도를 보였다. 장애, 젠더, 차별, 환경 등 광장을 채웠던 수많은 의제가 ‘나중에’라는 이유로 사라졌다. 늘 그래왔듯 민생과 경제 성장이라는 단어들만이 정치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뿐이었다. 일상과 분리된 광장은 제도권 정치의 입맛에 맞게 소비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윤석열 파면’이라는 강력한 슬로건 없이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과 같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단체 없이도, 광장이나 공론장을 지속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제대로 논의조차 해보기도 전에, 윤석열 파면과 비상행동의 활동 종료와 함께 광장은 너무나 쉽게 사라지고 말았다. 크고 작은 개별적인 집회가 열리고는 있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의제를 들고 한곳에 모여 발언하고 이해하는 형태의 광장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제도권 정치의 언어로 그때의 광장이 납작하게 소환될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윤석열이 파면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광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광장은 신성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도, 필요에 따라 열고 닫는 무언가도 아니다. 당연히 악당 하나를 몰아냈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광장은 우리의 삶 속에서 지속되어야 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윤석열 파면은 민주주의의 승리인 동시에 민주주의에 큰 숙제를 남겼다. 우리는 광장을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의 광장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아직 광장은 끝나지 않았다.
편집장 은희 | a0520choi@naver.com
[1] 윤석열 파면에 이재명 “국민께 감사”, 권영세 “진심으로 사과” (2025.04.04.). 한겨레21.
[2]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2024.12.13.). 함께 약속합시다, [X 게시글].
[3] 남태령 넘고 ‘행동파’로 각성한 청년여성… “누구도 그들 막을 수 없을 것” (2024.12.29.). 한국일보.
참고문헌
기사 및 온라인 자료
― 류석우·손고운 (2025.04.04.). 윤석열 파면에 이재명 “국민께 감사”, 권영세 “진심으로 사과”. 한겨레21. Retrieved from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7118.html
― 박지윤 (2024.12.29.). 남태령 넘고 ‘행동파’로 각성한 청년여성… “누구도 그들 막을 수 없을 것”. 한국일보. Retrieved from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2716550002107?did=NA
―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2024.12.13.). 함께 약속합시다, [X 게시글]. 접속일 2025.08.11.. Retrieved from https://x.com/yoonoutaction/status/1867498200141336964?s=46&t=BTfMsGv8wvTGpHCW7krA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