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는 게 왜 불편해?

[칼럼] 편집위원 수민


0. 들어가며


사람들은 여자가 벗으면 불편해한다. 제니가 노출 있는 의상을 입었을 때, 캣츠아이가 짧은 치마를 입었을 때, 권은비가 가슴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었을 때 X(구 트위터)는 발칵 뒤집어진다. 인용 수천 개가 달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의상을 보며 자신이 느낀 바를 마구 발설한다. ‘천박하다’, ‘저급해 보인다’부터 시작하여 ‘이런 옷을 입는 건 여성 인권의 퇴보이다’라는 말까지. 그리고는 덧붙여 묻는다. 여자가 왜 이런 옷을 입어야 하는지. 그렇다면 나는 그 말에 반문하고 싶다. 문제가 될까요? 밈으로 하하 웃으며 넘겨버리고 싶지만 정말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존한다. 웃다가 생각해 보니 웃을 때가 아닌 거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1. 저 사람 지금 섹스어필 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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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X(구 트위터)의 인용 게시글. 해당 게시글의 글쓴이는 타임라인을 내리다가 인상이 찌푸려졌다며 여성 아이돌들을 벗겨두고 섹슈얼을 어필하는 일을 그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X

출처: https://x.com/flip_the_world_/status/1941904835189813298

X(구 트위터)의 인용 게시글. 글쓴이는 “탐라 내리다가 자동적으로 인상 찌푸렸음”, “제발 여돌들 벗겨두고 섹슈얼 어필하게 만드는 짓거리 그만하자고 제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아이돌의 성이 상품화된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성 상품화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성적인 이미지를 이용하여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은 아이돌 산업이 작동하는 중요한 기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남성 아이돌도 남성성을 판매하고 여성 아이돌도 여성성을 판매한다. 그런데 여성 아이돌이 벗거나 선정적인 안무를 소화했을 때만 비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2025년 진행된 워터밤 행사에서도 여성 아이돌만 벗은 건 아니다. 카이는 무대 중 셔츠 단추를 풀어 상반신 전반을 노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카이가 섹스어필을 한다고 욕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우리는 섹스어필 자체가 본질적으로 부정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섹스어필은 행위자의 자유이며 선택이다. 이에 대해 여성 아이돌이 정말 섹스어필을 주체적으로 선택했을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여성 아이돌이 섹스어필을 주체적으로 선택했든, 그렇지 않든 여성 아이돌은 섹스어필을 하는 안무를 수행할 수 있다. 만약 소속사의 강요와 억압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이돌의 인권이라는 별개의 논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중요한 건 여성 아이돌이 섹스어필 안무를 선보였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여성 아이돌’의 섹스어필만을 문제 삼을까. 그 이유가 그들이 더 쉽게 성적 대상화되기 때문이라면 비난의 화살은 여성 아이돌이 아니라 그들을 성적 대상화하는 사람에게로 향해야 한다.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식의 논리는 사용할 필요도,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 여성 아이돌들이 긴팔 긴바지를 입고 나와야 한다는 말은 여성은 밤에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말과 같이 부당한 책임 전가로 이어질 뿐이다.


그럼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카이가 섹스어필하면 비난하지 않고 권은비가 섹스어필하면 비난하는 이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이선옥은 볼거리로 파편화된 여성의 몸은 팔리는 몸, 즉 언제나 공격받을 수 있는 몸이 되며, 열등성이 새겨진 몸이 된다[1]고 말했다. 여성의 몸은 열등하지 않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질 수는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쉽게 여성의 몸이 열등하다고 느끼기에 여성의 섹스어필을 욕하고 비하한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여성이 과도한 노출이 있는 옷을 입었을 때 ‘왜 저런 옷을 입었을까.’라고 생각하거나, 여성 아이돌이 샤랄라한 프릴 스커트 대신 쓰리피스 슈트를 갖춰 입고 나왔을 때 ‘거봐, 이렇게 입으니 훨씬 낫네.’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인 여성성 혐오이다.


퀸덤 (2019)에서 AOA는 마마무의 너나 해라는 곡을 커버했다. 이때 AOA는 짧은 치마 대신 슈트를 입고 하이힐 대신 구두를 신었다. 이 무대에 많은 여성들이 열광했다. 그들이 열광했던 이유 중 가장 일차원적인 이유는 지금껏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고 섹스어필을 하는 안무를 수행했던 AOA라는 그룹이 슈트를 입고 움직임이 절제된 안무를 수행했다는 점이다. 이 열광에는 노출이 적은 의상 혹은 슈트를 입은 여성 아이돌을 보는 게 훨씬 편안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전제된다. 지금 하고자 하는 얘기는 ‘여성 아이돌이’ 의상을 편하게 혹은 불편하게 느끼는 것을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상관없이 ‘수용자의 입장에서’ 의상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다.


이 감정은 여성의 몸이 ‘바람직하게’ 노출되거나 덜 노출되어야만 편안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을 내포한다. 슈트를 입으면 보기 좋고, 짧은 치마를 입으면 보기 불편하다는 것은 명백한 여성성 혐오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성 또한 여성성 중 하나이다. 물론 억압적이고 편협한 시선이 얹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가치들까지 하나하나 혐오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그 여성성을 자신의 의지로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에 대한 혐오는 결국 ‘여성스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자신의 내면부터 시작하여 다른 여성, 더 넘어서는 남성들까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떠한 여성성, 남성성이든, 사회가 만들어낸 성별 규범에 갇히지 않고 각자의 고유한 모습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 특정 성별의 특성 자체를 혐오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




2. 여성 인권 하락하는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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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X(구 트위터)의 인용 게시글. 워터밤 축제에 참석한 여성 아이돌의 사진과 영상을 보면 하나도 즐겁지 않다는 원본 트윗에 여성 인권이 하락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쓴 인용 게시글이다. ⓒX

출처: https://x.com/wlxnk3/status/1941899121159475565

X(구 트위터)의 인용 게시글. 글쓴이는 “걍 워터밤 하지 말자. 여성인권 하락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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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X(구 트위터)의 인용 게시글. 여성 아이돌을 사랑하면 워터밤 축제에서의 모습을 보고 괴로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원본 트윗에 인용 트윗을 올렸다. 해당 인용 트윗에는 ‘남성들의 눈치를 보느라 페미니즘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여성의 날도 못 챙기는 한국 여성들이 벗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냐’라는 논지의 글이 담겨 있다.(현재 해당 게시물은 삭제되었다.) ⓒX

X(구 트위터)의 인용 게시글. 글쓴이는 “남자 눈치 보느라 현실에서 페미니즘의 페도 입밖으로 못 꺼내고 여성의 날도 못 챙기는 한녀들이 벗을 권리 주장하면 웃기긴 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 설명 끝


여성이 원하는 옷을 입고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여성 인권의 실현인데, 여성 아이돌의 의상 선택을 두고 여성 인권 하락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성 아이돌이 성적 대상화 당하는 현실은 분명히 인권을 침해받는 상황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인권 침해 사건이 여성 인권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지금 상황’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옷을 벗더라도 그것이 여성 인권 신장에 도움 되는 일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성이 남성의 눈치를 보느라 페미니즘의 ‘페’ 자도 꺼낼 수 없는 상황에서 벗을 권리를 주장하는 일은 너무 빠르다고. 하지만 그런 때는 기다린다고 해서 오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는 만들어 나가야 하는 가치이다.


노출 있는 의상을 입은 여성 아이돌이 자본주의적 남성 중심 사회의 ‘성 상품화’에 이용되는 점을 비판하고자 한다면, 여성 아이돌 개인의 영상에 비난조의 댓글을 쓰기보다 자본주의의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물론 그런 지적이 여성 아이돌이라는 상대적 약자 위치에 서 있는 여성들이 상업적 이득을 위해 비자발적으로 성적 이미지를 판매하는 것을 우려하기에 비롯되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여성 아이돌은 시스템 내에서 완전히 수동적인 존재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안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 내고, 팬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은 능동적인 행위자가 된다. 여성 아이돌의 활동을 단순히 성 상품화에 이용되는 것으로만 해석한다면 여성 아이돌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즉 시스템에 의한 착취 가능성과 여성 아이돌 개인의 주체성 발현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오히려 여성 인권의 하락은 여성 아이돌이 벗을 때가 아니라 일부 대중들이 여성 아이돌의 영상을 무분별하게 캡처하고 확대하여 여성 인권 하락과 연관 지으며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 발생한다.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의 근원은 여성 아이돌이 아니라 여성 아이돌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판단하는 시선에 있다. 그들이 옷을 벗은 여성 아이돌을 보고 ‘여성 인권 하락’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성적 대상화라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아이돌이 주어진 안무와 콘셉트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여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수행하기 위해 해 왔던 노력과 과정, 그리고 수행하는 모습을 다 지워버리고 여성 아이돌을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한 말들은 앞으로의 공론장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3. 저급하고 천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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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X(구 트위터)의 인용 게시글. 여성 아이돌 권은비의 워터밤 축제 무대 동영상이 게시된 원본 트윗에 “아너무저급해”라고 쓰인 사진을 올린 인용 게시글이다. ⓒX

출처: https://x.com/quddiralthsu/status/1942010673233625422

X(구 트위터)의 인용 게시글. 글쓴이는 금발의 남자가 머리를 쥐어싸고 ‘아 너무 저급해’라고 말하고 있는 사진을 게시하였다. 사진 설명 끝.


먼저 ‘저급하다’라는 단어는 수준이 낮거나 품격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노출하는 것이 품격이 떨어지는 일인가?’라는 질문에 “그럼 노출하는 게 품격 있는 일이라면 대통령도 비키니를 입지 않았겠나요?”와 같은 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최소한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사람의 품격은 옷을 얼마나 많이 걸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바는 상황에 맞는 옷차림(TPO)에 대한 얘기도 아니다.


사람들이 누군가가 양복을 입었을 때 권위 있고 품위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적 관습을 따르기 때문이다. 양복을 입었을 때 더 예의 바르게 보이거나 정중해 보인다는 인식을 학습했을 뿐, 옷 자체에 품위가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품위는 옷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관습적 품격’은 오랫동안 여성의 몸을 통제해 온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여성이 벗었을 때 그것이 ‘품격 없다’ 혹은 ‘저급하다’ 라고 낙인 찍는 행위는 여성의 몸을 길들이고 억압하고자 하는 가부장제의 잔재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잔재를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여성이 옷을 벗고 비키니를 입었다고 해서 저급하다고 욕할 수 없다. 그 사람의 품격은 옷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옷을 벗는 것이 품격 없는 일도 아니니까.


두 번째로 ‘천박하다’라는 단어는 순수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순수함이란 무엇일까.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처럼 특정 형태의 순수함만이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소녀의 ‘순수성’이라는 이미지는 근대 남성주의적 시각에 따라 구성된 허구적이고 억압적인 판타지이다.[2] 순수하지 못함은 비난이 될 수 없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순수’하지 않다.


여성이 몸을 드러내는 일이 ‘쉬운 여자’처럼 느껴진다는 게 그들이 말하는 ‘천박함’이라면, 그들이 소위 말하는 ‘쉬운 여자’는 우리 사회에서 누구를 칭하는 것인지가 너무도 명백하다. 옷을 벗는 것, 저급함, 천박함과 같은 단어들은 창녀 혐오와 연결된다.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경제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일을 더럽다고 느낀다면 그 감정은 여성의 성을 통제하려는 가부장제 사회의 산물일 뿐이다. 백번 양보해서 성매매 행위가 가부장제와 젠더 체계를 더 공고히 한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성매매 구조를 만든 사회 시스템, 포주, 구매자에게 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성노동자 개인을 혐오한다고 해서 그 어떤 정답도 나오지 않는다.

이는 뉴진스의 의상에서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뉴진스에게 ‘순수하고’, ‘건전하며’, ‘성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씌우고 그 이미지로 드러나는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았을 때 하나의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에는 다른 형태의 여성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이 전제된다. 이는 여성이 ‘성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할 때만 사회적으로 환영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진정한 의미에서 페미니즘으로서의 환대는 어떠한 여성성도 차별하거나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여성의 다양한 모습과 표현 방식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평등으로의 발걸음을 뗄 수 있기 때문이다.




4. 불편함이라는 감정


우리의 논의는 고착되어 있다. 여성의 몸에 대한 논쟁은 수없이 반복되어 왔고, 다시 또 반복되고 있다. 깊숙이 빠져버린 논의의 구덩이 속에는 불편함이라는 감정의 함정이 있다. 불편함의 감정은 아주 복잡한 층위로,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위에서는 다양한 불편함의 감정들을 살펴 보았지만 이는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쓰고 마구 행해지는 폭력에 불과하다. 여기서 나는 불편함의 감정을 두 가지로 나누어보려 한다. 첫 번째는 페미니즘으로서의 불편함이다. 이를테면 성적 대상화와 여성 아이돌을 착취하는 산업 구조 등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이 불편함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 불평등한 권력관계, 역사적으로 축적된 차별 등에서 기원한다. 두 번째는 혐오로서의 불편함이다. 혐오로서의 불편함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잣대와 맞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로부터 발생할 수도 있고, 여성성 혐오, 가부장적 시선, 창녀 혐오와 같은 특정 편견에서 비롯하여 발생할 수도 있다.


페미니즘으로서의 불편함을 드러내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불만을 토로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배제하는 일도 아니다. 이 행위는 권력관계를 뒤집거나 사회구조를 뒤엎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혐오로서의 불편함은 다르다. 개인적 불편함을 발설하는 순간 누군가를 배제하고 비난하며 또다시 차별하기 때문이다.


불편함은 또 다른 기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팬으로서 느끼는 불편함과 팬이 아닌 사람으로서 느끼는 불편함이다. 팬은 아이돌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들이 공격받았을 때 자신이 공격받은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 이로 인해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팬으로서 느끼는 불편함이 무조건적으로 페미니즘으로서의 불편함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팬으로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이 벗는 것을 반대한다’라고 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들이 아이돌을 ‘내새끼’라고 지칭하는 문화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팬들은 아이돌을 보호하고자 한다. 팬으로서 발화하는 혐오로서의 불편함은 복잡하다. 사회구조에 널리 퍼져 있는 가부장적 여성관을 답습한 것이 ‘사랑’과 ‘보호’라는 이름으로 다시 외면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팬 개인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저급 문화에나 빠진, 계도해야 할 가부장제의 딸로서 취급받았던 1세대 아이돌 여성 팬[3]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4세대~5세대 아이돌이 등장하는 지금에도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지 않는다. 또 일부 팬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저급 문화에 빠’졌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이를 내면화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팬덤 내부에도 가부장제적 시선이 어느 정도는 스며들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팬들이 자신의 아이돌에게 '벗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이돌의 몸이 외부의 성적 대상화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진심 어린 걱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몸을 ‘보호’되어야 할 것으로 한정하며 여성 아이돌의 주체성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불편함이라는 감정은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 팬으로서 아이돌에 대한 애정과 걱정에서 출발하여 혐오로서의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혹은 팬이 아니기에 여성 아이돌에게 가해지는 사회구조적 착취 시스템을 발견하고 페미니즘으로서의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또는 한 사람이 혐오로서의 불편함과 페미니즘으로서의 불편함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다. 불편함이라는 감정은 단지 한 사람 개인의 감정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회의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또다시 기존의 권력관계를 재생산해 내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복잡한 감정의 층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무엇 때문에’, 그리고 ‘누구를 향해’ 불편해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불편함'이라는 감정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불편함의 기원과 지향점,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미칠 파급력이다. 우리가 여성의 몸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혐오로서의 불편함'을 내면화된 편견으로 인식하고 과감히 떨쳐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동시에 '페미니즘으로서의 불편함'이 지닌 비판적 성찰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통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해체하여 진정한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5. 나가며


여성에게 벗을 권리가 있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거창한 글을 쓰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다. 나는 레드벨벳의 오래된 팬이자 페미니스트일 뿐이니까. 하지만 2025년 워터밤에서까지 똑같은 논의가 반복되는 것을 보자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내 안에서 튀어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성 아이돌이 옷을 벗은 영상을 인용하여 “역겹다”고 말하거나 “여성 인권이 너 때문에 퇴보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실망했다. 그리고 “내가 진짜 여성 아이돌을 사랑한다면 그들이 벗은 꼴을 보고 좋아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또 실망했다. 여성 아이돌을 사랑하면서 왜 벗은 모습까지 사랑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걸까?


나에게 레드벨벳의 벗은 모습까지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러하다. 그들의 의상은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데에 제약을 주지 못한다. 내 사랑은 끝없고 영원한 것이라는 둥의 우스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정말로 그들이 어떤 옷을 입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의 신체 부위가 눈에 먼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목소리로 노래하는지, 어떤 안무를 추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나는 실망하고 또 실망했지만 여기서 멈추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계속해서 레드벨벳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 아이돌을 사랑할 것이니까. 나의 이러한 사랑과 지지는 여성 아이돌이 더 이상 타인의 시선과 규제 속에서 '대상화된 몸'으로 존재하기를 강요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의 재능과 주체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 논의를 통해 '불편함'이라는 감정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함께 성찰하며, 여성들이 자신만의 서사를 온전히 써 내려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이다.


편집위원 수민 | jellyfishtokill@gmail.com



[1] 이선옥 (2003). 85-112.

[2] 이화영 (2017). 47.

[3] K팝 ‘여성 팬’의 ‘낮은 인권’은 돈이 된다 (2023.07.23.). 경향신문 플랫팀.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 이선옥 (2003). 대중문화의 성상품화와 인권. 아시아여성연구, 42, 85-112.

이화영 (2017). 한국 아이돌 산업에서의 소녀 이미지 브랜드화 경향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4507807


기사 및 온라인 자료

최이삭 (2023.07.23.). K팝 ‘여성 팬’의 ‘낮은 인권’은 돈이 된다. 경향신문 플랫팀. Retrieved from https://www.khan.co.kr/article/20230724101000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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