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집위원 소은
‘집’이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집은 살아감에 있어 필수적인 공간이자, 더 내밀하게는 기억이 축적되는 장소다. 나에게 집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지대이며, 방에 놓을 물건들을 고르는 일조차 애정을 품게 만드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집’은 그런 관념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어릴 적 나는 단지 공간만 있으면 집이 된다고 믿었지만, 오늘날 집의 개념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우리 사회에서 집은 빚을 내서라도 소유해야 하는 경제적 자산이자, 사회적 계급의 상징이며, 재테크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누군가는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해 ‘주택왕’이니 ‘빌라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다른 누군가는 계약 사기를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또 누군가는 생활에 필요한 환경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곳에서 살아간다.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을 넘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와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주택시장은 이러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주거를 둘러싼 구조적 모순과 그로 인한 불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2022년, 대한민국의 언론에는 ‘전세사기’라는 단어가 매일같이 오르내렸다. 특히 ‘건축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인천 전세사기 사건은, 무려 2,708가구의 주택을 보유한 소유주가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돌려막기’ 수단으로 이용한 대규모 범죄였다. 주범 남 모 씨와 공범 29명은 각각 최대 징역 15년을 구형받았으나, 피해자들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은 무려 2,000억에 달했고, 피해자 중 네 명이 목숨을 끊었다.[1] 전세사기의 위험성이 알려진 후 정부는 2023년,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피해 주택을 공공주택 사업자가 매입해서 피해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세사기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신고된 전세사기 피해 누적 사례는 약 5만 건이고, 이 중 3만 1천여 건만이 전세사기로 확정되었다. 전세 계약의 특성상 임차가 끝나야 피해가 드러나기 때문에, 처음 화제가 불거진 2022년 이후에도 피해자 수는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임대인의 사기 의도를 입증하지 못해 신고조차 하지 못한 사례를 감안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전세 사기는 임대인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임대자가 세입자의 보증금을 투기 자금으로 유용하다가 이를 반환하지 못하는 행위다.[2] 대표적 사례인 무자본 갭투자는 ‘지급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보증금 반환 채무를 승계’하는 방식으로서, 건축주나 분양 대행 업자가 사전에 공모해 미분양 주택을 무자본으로 매입한다. 이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매입 자금을 충당해 차익을 남긴다.[3] 전세값이 매매가보다 높을 때는 이익을 남길 수 있으나, 시세가 하락하면 보증금 반환이 불가능해진다. 이와 유사한 ‘깡통 전세’도 보증금 미반환이 본질이며,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고 계약을 체결한 후, 만기 시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다.[4]
전세는 주로 무주택 청년층이 선택하는 주택 임차 계약의 형태이므로 피해도 이들에게 집중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 중 약 25%가 20대(7,418명), 49%가 30대(14,039명)다. 이런 현실 속에서 청년층 사이에서는 ‘누구나 전세 사기를 당할 수 있다’라는 불안이 확산되었다. 인터넷에는 ‘이렇게 하면 전세사기를 피할 수 있다’며 선순위 채권을 확인하거나 계약서 항목과 임대인의 수익 구조를 꼼꼼히 살펴보라는 당부가 공유되기 시작했고,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예방 교육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만으로는 전세사기를 완전히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부주의로 전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전세사기가 개인의 주의력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2025년 6월 발생한 ‘잠실 센트럴파크 청년안심주택’ 강제 경매 사태다. 이 사건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주거 공급 사업 ‘청년안심주택’ 중 민간사업자가 운영하는 공공지원민간임대(이하 ‘민간 임대’)에서 발생했다. 해당 정책은 주거 안정과 주거난 해소를 위해 서울시가 주변 시세 대비 30~70%(공공임대의 경우), 혹은 75~85%(민간 임대의 경우)의 임대료 주택 임대를 제공하는 정책이다. 청년안심주택이 공공의 이름으로 공급되는 만큼, 잠실 센트럴 파크 입주자들도 신뢰를 바탕으로 해당 주택에 입주하였다. 그럼에도 지난 2월, 잠실 센트럴파크 청년안심주택은 238억 원 규모의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 채 강제 경매 상태로 넘어갔다. 시행사는 세입자들이 낸 보증금 중 약 200억 원은 대출 상환에, 약 40억 원은 사업비와 이자 상환 등으로 소진했다. 전형적인 ‘돌려막기’였다. 더군다나 이 시행사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도 가입하지 않아, 국가 차원의 피해 구제도 불가능했다. 서울시는 해당 사안에서 ‘서울시는 임대 주체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시는 주택 공급 허가 단계부터 민간사업자의 세금 체납 여부와 보증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할 의무가 있을뿐더러 애당초 해당 사업은 서울시가 주거 안정을 목표로 시작한 정책이었다.[5] 서울시의 무책임한 태도는 민관 협력 공공사업이라 하더라도 전세 사기에 노출될 수 있으며, 공공임대주택도 주거 상품 논리에 종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전세사기가 계약상의 과실이 아닌, 제도적 관행과 관리·감독의 실패, 피해 구제 방법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문제임을 확인하게 한다.
전세 사기는 단기간에 생겨난 범죄가 아니라, 한국의 주택 시장 구조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현상이다. 전세가 투기의 한 형태로 자리 잡은 시점은 1970년대의 급속한 산업화와 주택 공급 확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평균 11%에 달하는 고도성장과 지속적인 주택 가격 상승, 은행의 가계대출 제약은 주택 분양을 높은 시세 차익을 보장하는 투자·대출 수단으로 기능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중산층 위주로 전세가 분양 자금 마련 수단으로 활용되며, 일종의 투기 방식으로 자리잡힌 것이다.[6] 주택 가격이 안정적으로 상승하는 구조에서는 갭투자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시장이 하락세로 전환되면 보증금 반환 불능의 리스크로 전환된다. 결국 여러 채의 주택을 폭탄 돌리듯 투자하며 수익을 내던 소유주들이 파산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보증금을 낸 세입자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과 역대 정부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역대 정부는 전세 자금 대출과 보증 확대를 주택시장 활성화의 수단으로 활용하였고, 그 결과 전세 자금이 시장 유동성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가 고착되었다. 2007년 이명박 정부는 서민 주거 안정을 명목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도입해 HUG, HF(주택금융공사) 등 기관 보증으로 최대 1억 원까지의 대출을 보장했다. 이후 2009년에는 대출 한도를 2억 원으로 늘렸고, 무주택세대주 요건을 폐지했다.[7] 이어 2017년에는 박근혜 정부가 주택 가격의 100%까지 전세 보증금 보증을 허용하여,[8] 다주택 소유주들의 무자본 갭 투기를 부추겼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의 보증금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안전망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고, 민간 임대 사업자에 대한 법적 감시(의무 보증 가입 등)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주택은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소유하고 투기하는 자산’으로 전환됐다. 주거 정책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논의에 머물렀고, ‘삶을 꾸리는 권리’로서의 주거권 논의는 사라졌다. 그러므로 전세사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과 시장이 주택을 투기의 대상으로 만들고 세입자의 권리를 소외시킨, 주거권 보장의 총체적인 실패가 빚어낸 구조적 현상이다.
이렇게 구조적으로 발생한 주거권 침해는 전세사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택이 투기 수단으로 전락한 구조에서는 세입자의 권리가 전세사기처럼 계약·금전 거래의 차원에서 위협받을 뿐 아니라, 물리적이고 환경적인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침해받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비적정주거지다. 전세 사기가 세입자들의 경제적 권리를 훼손하는 문제라면, 비적정주거지는 인간다운 삶의 기본 조건인 안전한 거주 공간을 위협한다.
비적정주거지는 법적으로 명확히 정의되지는 않았으나, 통상적으로 생활에 부적합하고 열악한 거처를 뜻한다. 대표적으로 고시원, 쪽방처럼 전용면적 2평 미만에 다수의 입주민이 취사실·세면실·화장실을 공유하는 형태나, 혹은 반지하·옥탑·비닐하우스·컨테이너처럼 본래 주거용으로 설계되지 않은 공간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주거지는 보통 보증금 없이 일세나 월세로 운영되며, 저소득층이나 일용직 노동자가 주로 거주한다.[9] 더불어, 이러한 비적정주거지는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집주인과 입주민 간의 수 직적 권력관계를 법적으로 보완할 장치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입주민들은 언제든지 퇴거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국토교통부의 통계에 따르면 최저주거기준 미달 주택 거주 가구는 약 81만 가구(2023년)로, 전체 가구 수 대비 2006년 16.6%에서 2023년 3.6%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방의 크기와 구조 등 물리적 요소만 반영하고, 여관이나 모텔, 비닐하우스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적정 주거 환경을 포함하지 않아 실제 거주 인구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 용산구 쪽방촌의 사례를 보자. 1.5평 남짓한 대부분의 방은 채광이 부족하고, 짐을 몇 개만 두면 한 사람이 발을 쭉 뻗고 눕기 어렵다. 노후화된 건물은 난방이 잘되지 않고 위생에 취약하여 기저질환 주민의 비율이 높다. 2024년 겨울, 동자동의 한 건물은 수도 동파로 계단에 물이 넘쳤고, 넘친 물은 한파로 인해 곧장 얼어붙어 주민들이 고립되었다. 그러나 집주인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언론 보도 후에야 용산구청과 서울역 쪽방 상담소가 나서서 얼음을 깨뜨려주었다.[10]
2018년 서울 종로구 국일 고시원 화재는 7명의 사망자와 11명의 부상자를 냈다. 해당 고시원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규정 이전에 지어졌고, 서울시의 노후 고시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사업도 건물주가 거부하여 화재 시 작동되어야 하는 스프링클러·소화기·화재 경보음 등 최소한의 방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일부 방은 창문조차 없는 ‘먹방’이었고, 화재 당시 방에 창문이 있는 입주민은 배관을 타고 탈출했지만 먹방 거주민들은 대피조차 할 수 없었다.[11] 재판부는 해당 화재의 원인을 전열기구 사용으로 화재를 일으킨 (이미 사망한) 세입자로 판단했고, 스프링클러 설치를 거부하고 건물을 방치한 건물주와 안전 관리 의무를 방기한 국가의 책임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12]
이후 「소방시설법」과 「다중이용업소법」 개정으로 고시원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었지만[13] 참사 2년 뒤인 2020년 영등포의 고시원 화재에서는 간이 스프링클러가 있었음에도 불길을 막지 못해 사망자가 발생했다.[14] 이는 안전설비만으로는 비적정 주거가 갖는 주거 환경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과밀한 방, 좁은 복도, 협소한 창문 등 열악한 주거 구조 자체가 안전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15]
홈리스행동은 이러한 고시원 참사를 ‘집이 없어 생기는 죽음’이라 명명했다.[16] 여기서 집은 단순히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위생과 안전이 보장되고 위기 발생 시 사회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으며, 공동체와 단절되지 않는 관계망의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의 「주거를 위한 5개년 정책 계획」의 말을 빌리자면 비적정주거지 등의 임시거처는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17] 주택은 안정성과 보존 가능성을 갖춘 정착의 공간이어야 하며, 사회적 관계망의 기반인 자립의 공간이야 한다. 그러나 난방 시설과 목욕 시설이 없고, 언제든 집주인의 마음대로 쫓겨날 위험이 있으며, 건강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지금의 비적정주거지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관계망의 터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좁고 협소한 주택이 여전히 수만 채나 존재하는 것일까? 그 배경에는 산업화 시기 도시로 인구가 몰리며 일용직 노동자들의 거처로 마련된 역사, 정부의 주택시장 활성화 정책에 따른 주택 설계 규정 완화 등 복합적 요인이 있지만, 오늘날까지 해당 구조가 재생산되는 직접적인 이유는 비적정주거지가 임대인의 수익 모델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동자동 쪽방의 월 임대료는 20~30만 원 수준이다. 웬만한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능가하는 평당 비용이다. 소득이 없는 빈곤층이 거주하는 특성상 임대료는 현금으로 받아, 건물주는 건물 한 채당 연간 약 1,400만 원의 임대 순이익을 올린다. 월세 소득 공제 등 제도적 장치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국세청의 과세 추적에서도 자유로워, 사실상 쪽방은 세금 없는 보장된 현금 수입원이 된다.[18] 또한 고시원이나 쪽방 세입자들은 한 번 입주하면 보증금 등을 요구하는 다른 주거지로 옮기지 않는 경향이 있어 거주 기간이 장기적이다. 이러한 낮은 퇴거율을 바탕으로 좁은 공간에 다수 세입자를 수용하고 시설 개발이나 보수 없이 방치하는 것이 ‘저위험 고수익’ 투기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19]
정부가 이러한 비인간적인 주거 환경을 방치하고, 건물주들이 이를 활용해 규제 없이 이익을 얻는 동안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은 외면당했다. 2021년, 동자동의 주거 취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용산구는 합동 〈서울역 쪽방촌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2026년까지 해당 구역 내 조성될 주택 총 2,410호 중 1,250호를 쪽방 거주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한다. 특히 쪽방 주민 이주를 위해 해당 지구 내에 선이주단지를 조성하고 주민들을 임시 이주시키는 선(先)이주 선(善)순환 계획을 포함하여 주민들과 주거권 단체의 큰 환영을 받았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 거주민의 주거권 안정과 기존 생활권 및 사회적 망을 해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민 생활권을 보장한다.
그러나 동자동 쪽방촌의 건물주들은 자신들의 소유권을 이유로 공공개발에 반대하며 민간개발을 주장했다.[20]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발표된 직후, 토지·건물주 일부는 국민의 힘 부동산시장 정상화 특별위원회 간담회에서 ‘서울 한복판 노른자 땅에 왜 공공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냐’라고 반발했다.[21] 건물주들은 자신의 건물을 쪽방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여 정부 복지 지원을 끊어 주민들을 간접적으로 쫓아내기도 했고, 자체적으로 쪽방 주민 실태조사를 진행하며 거주민 수를 실제보다 축소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했다.[22]
그럼에도 동자동 주민들은 지역 조직을 만들고, 공공주택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토론회, 집회, 사회운동 단체와의 연대, 용산 집무실 맞은편에서 공공임대주택의 진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해 왔다. 동자동의 사랑방 마을 주민 협동회 차재설 부이사장은 인터뷰에서 공공임대주택 정책 발표 후 “주민들은 다 기뻐했다”며, “이제 내 공간이 생기고 화장실 문제를 비롯해서 다 해결이 되니까”라고 공공임대주택을 원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한 주민은 “죽기 전에 집다운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가난해서 쪽방에 살지만 지금의 쪽방은 있어서는 안 되는 주거 형태”라고 말하면서 공공임 대주택 착공을 촉구했다.[23]
그러나 소유주들의 반발로 논의가 지지부진해져 4년이 지난 현재까지 재생 사업은 진행되지 못했고, 그 사이 140여 명의 주민이 생을 마감했다. 동자동 재개발을 둘러싼 모습은 누군가의 주거권을 침해하는 공간이 소유주에게는 자산 모델이자, 재개발 시 수익을 낼 수 있는 수단임을 보여준다. 쪽방촌 주민 건강 상태 및 주택 위험성에 관한 연구가 이미 여러 차례 진행되었음에도 이러한 비적정주거지가 합법적으로 공급되는 것은 정부가 이를 적극 방치하여 주택 상업화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돈이 된다면 어떤 집이든 제공해도 괜찮은 사회에서 주거 취약계층은 계속해서 열악한 주거지로 밀려난다. 비적정주거지는 시장에 의해 의도적으로 주변화된 이들의 주거권이 어떻게 침해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주택자들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쓰다가 반환하지 못하는 전세사기, 좁은 방 한 칸에 사람이 생활하는 현실의 이면에는, ‘주택’이 거주 공간이라는 본래의 가치가 아니라 재산 증식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이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인간 소외적 주거 구조를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까? 해답은 분명하다. 주거를 수익의 대상이 아닌 삶의 기반으로 재정의하고, 그간 부재했던 주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수 있도록 기존의 공공 임대주택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다.
1989년 이전의 한국 공공임대주택은 저소득층 및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보다는 한국전쟁과 경제개발로 도심으로 모여든 인구를 수용하고 재정비하기 위한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이었다. 공공이 최초로 공급한 임대주택은 1960년 지어진 ‘마포아파트’였으나, 이 주택은 중산층조차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의 임대료가 책정되어 있었다. 이후 1972년 처음으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공급된 ‘개봉주공아파트’ 역시 주거복지의 목적보다는 대한주택공사의 미분양 주택 처분이라는 배경에서 등장했다. 해당 주택은 입주자 모집 경쟁률이 13대 1을 넘는 등, 이른 시기부터 공공임대를 필요로 하는 세입자의 수요가 높았음을 보여준다. 두 주택 모두 공급 몇 년 내에 민간 분양으로 전환되며 ‘공공의 주거 공급’이라는 가치를 잃었다.
본격적으로 공공임대주택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1989년 노태우 정권의 영구임대주택 도입이다. 해당 정책의 도입 배경에는 판자촌 주민들의 주거 투쟁이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정부는 경제 개발을 위해 저렴한 노동력이 필요했으나 매년 30만 명씩 서울로 몰려드는 인구를 적정 주거지로는 감당할 수 없어, 적극적으로 판자촌을 노동인구를 수용할 거점으로 개발했다. 단순히 판잣집 건설을 허가하는 것을 넘어 거주민 관리와 전기 및 수도까지 지원한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택지 부족으로 판자촌이 재개발 대상이 되었고, 88 올림픽을 위한 도시 환경 조성까지 맞물리며 판자촌은 급속히 해체되기 시작한다.
재개발 이후 판자촌 주민들은 안전한 주거지로 이주할 만큼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기존의 판자촌이 해체되며 그나마 남아있던 저렴한 주거지도 모두 값이 올랐고, 1988년에는 집 값이 폭등하며 겹쳐 주거 불안은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상계동·사당동·돈암동·구로동 등 서울 각지 재개발 현장의 세입자들은 임대주택 건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투쟁 끝에 1989년 2월, 노태우 정부는 25만 호 영구임대주택 건립 계획을 발표했고, 서울시도 재개발 아파트 중 일부를 임대주택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85년까지만 해도 이사비 지원에 머무르던 재개발 세입자 보상은 1989년 공공임대주택 입주권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한국 공공임대주택의 본격적인 출발점이었다.[24] 2025년 현재 누적 공공임대주택의 규모는 170만 호를 넘었고, 2021년 OECD 평균 재고율인 8%를 웃돈다. 이후 공공임대주택은 판자촌 주민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으로 공급 범위가 확대되었고, 당시 마련된 정책 구조는 큰 변화 없이 오늘날까지 유지되며 흔히 ‘89체제’라 불린다.
89체제에는 네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물량주의에 입각한 대량 공급이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체 주택 대비 재고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택지 개발을 핵심 공급 방식으로 삼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보조적인 특별법을 제정해 보조해 왔다. 노무현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 중앙정부 주도의 절대적 공급 구조다. 중앙정부가 물량 목표를 설정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이를 정해진 기간 내에 공급하며, 지방 정부의 개입력은 미약하다. 2018년 기준 전체 공공임대주택 재고 중 LH 공급분은 71.2%에 달했고, 지방공사 공급분은 17.2%에 그쳤다. 셋째, 정권별로 새로운 유형을 도입하되 기존 유형과 중복되지 않게 운용한다. 노태우 정부의 ‘영구임대주택’과 ‘사원 임대주택’, 김영삼 정부의 ‘50년 공공임대주택’, 김대중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노무현 정부의 ‘10년 공공임대주택’ 및 ‘매입·전세임대주택’ 등,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령상의 공공임대주택 6종류 외에도 각 정부는 새로운 유형을 추가로 공급했다. 이는 정치적 차별화를 위한 전략으로 볼 수도 있으나, 공급 유형이 시기마다 달라져 실수요자에게 혼란을 준다. 넷째, 재정 지원의 소극성이다. 정부는 직접적인 재정 투입을 최소화하고, 사업자는 개발된 택지를 민간에 매각하거나 공공분양주택으로 공급하여 공공임대 재원을 충당한다.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이 공공임대주택의 일부로 포함되는 것 또한 이 과정에서 정부가 사업자의 이윤을 고려한 결과로 볼 수 있다.[25]
해당 체제는 도입 당시의 사회 경제적 여건과 시민들의 요구 속에서 설계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주거 환경이 요구하는 조건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우선, 택지 개발 중심의 물량주의는 비율상의 재고를 늘리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실제 수요 구조와는 무관하게 ‘양’에만 집중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2024년 8월 기준, 6개월 이상 공실 상태인 공공임대주택은 약 5만 호(전체의 5.1%)였고, 지역별 공실률이 가장 높은 충남의 경우 12.8%에 달했다.[26] 10채 중 1채 이상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이다. 지역 정부의 공급분까지 포함하면 전국 공실은 무려 10만 호에 이른다.
양적 확대에만 매달린 결과, 1989년 추진 당시 목표나 마찬가지였던 OECD 평균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을 넘어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취약 계층 밀집 지역에는 개발 가능한 택지가 부족하여 주택이 공급되지 않았다. 반면, 더 넓은 주거 환경을 원하는 비저소득층 무주택자들에게는, 물량 확대를 위해 절반 이상이 전용 31㎡ 이하로 설정된 공공임대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했다. 그 결과 두 수요 계층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 채 공실이 발생했다.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짓기만 하면 주택이 필요한 사람들이 입주할 것”이라는 전제는 이미 무너졌다. 주택은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이 밀집한 지역과 실제 수요 패턴에 맞추어 배치해야 한다.
또한 중앙집중적인 공급과 정권별 ‘실적 쌓기’식 물량 공급은 수요 계층의 주거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정권마다 유형과 지원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안정적인 주거를 필요로 하는 계층에게 혼란을 준다. 현재의 공공임대 정책은 ‘공공임대 확대’라는 사회적 목표보다 정책 성과를 부각시키기 위한 정치적 동기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잠실 센트럴 청년 주택 사례처럼 공공이 공급을 주도한다 하더라도 민간사업자의 여건 완화를 명목으로 운영이 시장 이익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공급 몇 년 후 민간에게 분양되는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 또한 이름만 공공일 뿐, 장기적인 주거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상황 등으로 정부가 진정으로 보호해야 할 세입자의 주거권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위와 같은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 정책에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민간 비영리 주체가 적극 참여하도록 공급의 기반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주택{social housing}’ 개념에 해당하는 정책 방향으로, 주택 공급을 주거권 보장의 관점에 맞추고, 협동조합이나 사회 주택 기업 등과 같은 민간 비영리 조직이 공공과 함께 주택을 공급하며 중앙집권적인 공공임대주택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기존의 공공임대주택이 3~4인 중산층 핵가족을 표준 소비 계층으로 상정하고 정부 주택 공급 정책의 일부로서 공급했다면, 사회주택은 주거권과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비영리 주체가 실제 수요에 맞추어 공급한다. 중앙정부는 사회주택의 목적·대상·배분 방식·입주 조건·임대료 등의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민간 비영리 단체의 공급을 지원하고 건강한 주택 공급 생태계가 구축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사회주택은 주거 책임에 공공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공공주택과 유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시민의 주거권 보장을 목표로 하고 공급 주체로서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구분된다. 사회주택의 임대료는 시세의 80% 이하로 책정되고, 2년마다 5% 이하로만 인상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계약갱신권의 범위가 일반적인 임대차 계약에 비해 길기 때문에 안정적인 생활의 보장이 가능하다. 공급 주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서울의 한 사회주택의 경우 2년 단위 계약을 4번까지 갱신할 수 있는 등,[27] 일반적인 임대주·세입자 관계에 비해 세입자의 생활 안정권이 크게 보장된다. 이러한 주거권 보장이 사회주택 법안으로 제정되거나 주택 시장 전반에 확대되어야 입주자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사회주택은 2000년대 초, 공급자가 주택을 직접 소유하거나 민간에서 임차하며 공동체의 의미를 강화하고 주거 안정을 목표로 천천히 시작되었다. 법적 기반이 불안정했던 초기 이후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과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다양한 사회적 기업, 비영리조직이나 공동체가 사회주택을 형성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배경이 마련되어 천천히 그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이러한 형식의 사회주택은 수요층의 직접적인 필요와 요구에 기반해 형성되므로 유연한 주거 보장이 가능하고, 가치 지향적 사회적 기업 등 민간 주체에 의해 조성되므로 주거를 중심으로 하는 관계망 구축에 용이하다.
배리어프리 사회주택을 지향하는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에는 비장애인·장애인·노인 등 다양한 거주민이 살고 있다. 이는 소득 분위나 장애 여부 등으로 입주민을 구분하여 주민 간 경계가 강화되고, 특정 공공임대주택 지역의 슬럼화가 발생하는 해외 일부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포용적이고 통합적인 거주 환경을 목표로 한다. 또한, 부산 북구에는 사회적기업 디자인팩이 공급 및 운영하는, 돌봄 지원 서비스를 결합한 사회주택인 도담 하우스가 있다. 이 주택은 취약계층과 탈시설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며, 유니버셜 디자인으로 주거 환경을 구성하고,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28]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존재하는 사회주택은 그 목적과는 달리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주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유니버셜하우징 협동조합의 심상득 이사는, 토지 임대부 사회주택 사업이 복잡한 허가 절차와 사업 선정 과정으로 인해 결국 토지 확보에 실패하거나, 기존의 분양 위주 금융 제도가 자금 조달의 큰 방해물로 작용하는 것을 지적 한다. 또한, 관료제 중심의 행정 문화에서는 행정 주체가 사회주택의 필요성과 지속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설립 이후에도 주택 유지를 위한 행정적 협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빈번히 발생한다. 주택 공급 주체가 안정적인 주거권 보장을 목표로 하더라도 외부 환경에 의한 계약 해지와 같은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청년들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추진된 ‘사회주택 리츠’ 사업은 사업자와 서울시의 소통 문제, 서울시 정책의 전환으로 기존에 목표로 한 20년의 거주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5년 만에 SH에 매각되었다.[29]
이처럼 사회주택 추진 과정에서 공공기관은 ‘지원’보다 관료적 주택 제도 내 ‘감시’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고, 법인을 통한 투기 방지를 이유로 강화된 종합부동산세 부과 등은 민간 주체의 사회 주택 건설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시점에서 사회주택은 정책 경직성과 경제적 불안정성으로 시범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며, 사회 전반에서 비중이 미미하여 비일상적 사례로 인식된다. 이를 극복하려면 사회주택을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고, 민간 주체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 관리와 법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현재는 사회주택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와 규정이 부재해 설립과 운영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고, 특별한 사명감이 없는 이상 구조적 한계로 인한 손실을 감내하며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프랑스는 공공과 민간 모두가 적극적으로 사회주택 공급에 참여하며, 특히 공공은 민간의 참여를 독려하는 실질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적정임대료 주거{Habitation à loyer modéré}로 대표되는 다양한 유형의 사회주택은 전체 가구의 약 19%를 차지한다.
프랑스는 산업화가 비교적 일찍 진행되어 1830년 80만 명에서 1836년 100만 명으로 6년 만에 인구가 급증했고, 주거 환경의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1841년 건축가 푸리에가 노동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주거하고 노동하기 위한 공동 주거·생산 주택인 ‘팔랑스테르{Phalanstère}’ 설계안을 제시했으며, 이를 1856년 젊은 사업가 고댕이 사회 복지와 결합된 공동 주거 단지 ‘파밀리스테르{Familistère}’로 구체화하는 등, 노동자와 빈곤층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민간 차원의 시도가 있었다. 해당 주택은 사회주의 확산을 견제한 보수파에 의해 오래 지속되지 못했으나, 이후 1870년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자발적으로 주택 공급을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1894년 사회주택의 민간 참여 자금을 지원하는 「지그리프드 법{Loi Siegfried}」을 시작으로, 1906년 주택협동조합 지원 체계를 명시한 「스트라우스 법안{Loi Strauss}」, 1921년 협동조합들에 저금리 융자를 제공하는 「2월 법안{Loi de février}」 등, 임대료와 사회주택 건설 논의에 민간 비영리 주체를 적극 포함시키는 법을 제정해왔다. 또한, 지방 단위가 사회주택 공급 결정의 주체임을 고려하여, 1990년 중앙정부는 지자체가 일정 비율 이상의 사회주택을 보유화하도록 의무화하고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다만 제재 수단이 보조금 감액과 벌금형에 그쳤기에 사회주택 설치를 회피하는 지자체가 나타났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2000년대 도입된 「도시의 연대 및 재생에 관한 법률」로 전체 주택의 20%를 사회주택으로 확보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강제적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파리 인근의 낭테르{Nanterre}는 전체 주택의 57%를 사회주택으로 구성하는 등, 지방자치 단위들이 사회주택 비율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사회주택에만 최대 건물 높이 제한을 완화하는 인센티브도 제공되는 등 사회주택 건설을 향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30]
2018년 기준 프랑스의 사회주택은 전체 550만 호인데, 공급기관은 공공기관인 ‘주거공공청(Office public de l’habitat)’과 민간기업인 ‘주거를 위한 사회적기업{Entreprise social pour l’habitat, ESH}’으로 나뉜다. ESH는 일반 민간 임대와 유사해 보일 수도 있으나, 영업이익을 사회주택 건설에 재투자해야 하는 규정하에 있고, 대부분의 주주가 주택을 위한 기업과 급여자 연합, 혹은 지방자치단체이므로 공공성이 보장된다.[31] 일반 법인과 개인 주주는 전체의 2%에 불과해 민간 주체임에도 공공성이 확보되는 구조다. 이와 같은 민간 주체의 유연한 사회주택 공급과 함께,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주거 환경에 따라 차등적인 비율로 주거비를 지원하는 가족 수당 기관{Caisse d’allocations familiales}, 세입자의 안정적인 거주를 보장하는 무기한 계약갱신권 등 다양한 주거 보호 정책이 결합되어 세입자의 권리를 안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주택을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은 주거권 보장의 초석임은 분명하나, 현재의 공공임대주택의 체제는 급변하는 사회 주거 환경과 복잡한 주거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 1인 가구 증가를 포함한 가구 구성의 변동, 취약 계층의 특정 지역 집중화 등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단순 공급 확대는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실질적인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생활권을 포괄하는 주택 유형의 확대가 우선되어야 하며, 비적정주거지가 밀집한 지역 등 특수한 상황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거 취약 계층에게는 기존의 사회주택보다 더 낮은 임대료를 책정하는 등 현실적인 여건을 반영한 법적·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아울러, 세입자 권리를 법적으로 강화할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다양한 사회주택 모델을 제도권 내에 포함시키고 국가가 이를 적극 지원하며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주택을 투기 수단에서 분리해 ‘집’으로서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5조 1항은 이렇게 명시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권리에는 음식, 의복, 주거, 의료,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사회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포함된다.”[32]
산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주거는 단순한 재화가 아니라 권리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매일 밤 잠을 자고 일상을 이어가는 세입자가 자신의 ‘집’으로부터 소외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주택이 단순히 거래 수단이 되면, 삶을 이루는 관계를 마련할 기반이자 안전한 사적 공간으로서 주택의 사회적 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세입자는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해당 공간에서 일상과 관계망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공간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며, 이를 보장하는 주택이 우리 사회에는 더 많아져야 한다. 이는 단순한 계약상의 권리를 넘어, 주거를 인간다운 삶의 기반으로 인정하는 관점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러한 요건이 충족된다면, 사회가 정하는 주택의 가치와 내가 생각했던 집 ―기억을 쌓고 안정을 누리는 공간―의 의미가 어느 정도는 겹칠지도 모르겠다.
편집위원 소은 | soeun042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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