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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

[특집 '트랜스젠더'] 편집장 현정

1999년, 선글라스와 야구 모자를 쓰고, 해군 티셔츠를 입은 모니카 헬름스가 직접 만든 최초의 트랜스젠더 깃발을 손에 들고 있다. ©  Monica Helms/Buzzfeed

트랜스젠더 깃발은 하늘색, 분홍색, 흰색, 그리고 다시 분홍색과 하늘색을 띤다. 이 깃발은 트랜스여성이자 해군 재향군인인 모니카 헬름스(Monica Helms)가 1999년 고안해낸 것으로, 2000년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헬름스는 깃발의 각 색깔이 상징하는 바를 이렇게 설명한다. “맨 위와 아래에 있는 줄무늬들은 남자아이의 전통적인 색깔인 하늘색이죠. 그 옆에 있는 줄무늬들은 여자아이의 전통적인 색깔인 연분홍색이고요. 가운데에 있는 줄무늬는 흰색으로, 트랜지션 과정을 거치고 있거나 중성,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성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거예요.”[1] 특히 헬름스는 색깔 순서가 흰색을 중심으로 상하 대칭을 띠고 있음을 짚으며 “어떤 방향으로 걸든, 언제나 옳은 방향이에요. 이건 우리가 우리 삶에서 옳음을 알아내는 것을 상징해요.”[2]라 말한다. 즉, 깃발을 통해 성별 이분법 아래서 여성 혹은 남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한 이들은 물론 이분법 안에 포함되지 않는 성별로 정체화한 이들까지 모두 옳다며, 그들 모두를 온전히 포괄해내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깃발은 여섯 가지 무지개색부터 무채색까지 넘나드는 다른 성소수자 상징 깃발들과 함께 퀴어퍼레이드뿐 아니라 생활공간 곳곳에서 성소수자의 존재와 그들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데 쓰이고 있다. 유독 또렷한 세 가지의 빛깔은 그들이 분명 여기 있음을 보여준다.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세 색깔 속에서 우리는 이미 ‘트랜스젠더’라는 개념이 함축하는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트랜스젠더’는 기본적으로 포괄적 용어(umbrella term)로 쓰이는 단어이기에 국가 혹은 문화권에 따라 구체적인 정의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사회의 성별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글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0)의 정의를 빌려 “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다른 성별 정체성을 지닌 사람”으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정의가 가리키는 공간은 넓다. 미디어에서 (그나마) 흔히 노출되는 출생 시 지정된 성별은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트랜스여성, 혹은 지정성별은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트랜스남성 그 이상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뛰어 넘어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성별로 정체화하는 논바이너리(nonbinary) 트랜스젠더가 있다. 성별 정체성이 없다고 정체화한 에이젠더(agender), 중성적 성별 정체성을 가진 안드로진(androgyne), 개별적인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진 바이젠더(bigender),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오가는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등의 존재도 그 공간의 무한함을 어렴풋이 가늠해 볼 수 있는 좌표가 되겠다. 이 공간은 성확정수술 등 의료적 조치 여부나 법적 성별 정정 여부 또한 묻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마다 원하거나 필요하다고 느끼는 의료적 조치는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다른 성소수자 정체성과 교차하기도 한다. 가령 트랜스젠더는 이성애자일수도, 동성애자일수도, 무성애자일 수도 있다.


트랜스규범성

이처럼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유연하고, 확장적이며, 무한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자유로운 성질은 사회 속에서 현상되며 다름 아닌 ‘트랜스젠더’의 이름으로 유연성을 잃기도 한다. 이는 모순처럼 들린다. 성별 이분법을 넘어선 자유로운 다양성을 살아 내는 존재인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자유를 구속한다니 말이다. 다만 이는 트랜스젠더가 품고 있는 자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트랜스젠더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전략’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이에 관해서는 이후 논의를 전개하며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제약이자 전략인 이것의 정확한 이름은 ‘트랜스규범성(transnormativity)’이다. A. H. 존슨(2016)은 트랜스규범성을 “트랜스젠더의 경험, 정체성, 내러티브를 이분법적 의료 시스템과 그에 대응하는 기준에 맞춰 구성하는 패권적 이념”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일부 트랜스젠더(가령, 의료적 조치를 따르는 트랜스젠더)의 정체성, 특징, 행동을 정당하고 규정에 따른(prescripted) 것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힘을 주는(empowering) 기능을 한다. 그러나 그 외 트랜스젠더(가령, 의료적 조치를 따르지 않는 트랜스젠더)를 소외하고, 종속시키며, 비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기도 하다. 즉, 트랜스규범성은 의료적 조치를 따르는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그렇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틀린 것이라 말하며 가려 버린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의 오직 일부만을 인정하는 트랜스규범성은 젠더화된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와 밀접히 연결되어 트랜스젠더에게 강요된다. 이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예시 하나를 우리나라의 성별 정정 허가에서 요구되는 의료적 조치 관련 요건들[3]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정신과 진단, 생식능력 제거수술, 그리고 외부성기 성형수술을 마쳤어야 한다는 것인데, 특히 외부성기 성형수술은 신체와 성별 정체성이 일치해야 한다는, 또 성기가 여성 또는 남성의 그것과 일치해야 한다는 성별 이분법 안에 트랜스젠더를 묶어 둔다. 무엇보다 성확정수술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트랜스젠더가 있음에도 직접적인 제도적 강제에 따라 수술을 택하게끔 강제한다. 이는 성별 이분법 안에서 포착될 수 있는 트랜스젠더만을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트랜스규범성은 트랜스젠더 내부에서 재생산되기도 한다. 이는 조금 의아하게 들린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생물학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성별 이분법 아래 한정짓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어째서 트랜스젠더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구축해두었을 공간인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안에서마저 스스로를 억압하게 되는 것일까?


우선, 트랜스젠더 내부에서 트랜스규범성이 작동하는 예시 하나로 트랜스젠더들의 ‘패싱(passing)’을 들 수 있겠다. 이는 트랜스젠더가 본인이 정체화하는 성별로 외모와 옷차림을 표현함으로써 시스젠더로 인지되고자 노력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트랜스젠더는 지배적인 젠더 이미지를 과장해서 표현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트랜스여성의 경우 자신이 여성임을 사회적으로 “티를 내기” 위해 다른 의료적 조치보다 가슴 수술을 보다 먼저 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트랜스젠더 내부에서 나타나는 트랜스규범성은 젠더 표현뿐만 아니라 정체성 자체를 성별 이분법에 따라 규정하게끔 유도한다. 이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 “순혈주의”라고도 칭해지는, ‘진정한’ 트랜스젠더를 상정해내는 것을 가리킨다.[4] 교류와 정보 공유를 위해 형성된 커뮤니티 속에서 트랜스젠더들은 트랜지션을 통해 성취하려는 젠더 이미지를 토의하기도 한다. 이때 젠더화된 성별 이미지가 일종의 기준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트랜스여성 혹은 트랜스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정체성, 즉 “100% 여자” 혹은 “100% 남자”가 등장해 그들만이 “올바른” 트랜스젠더라 정의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이분법적 성별 정체성에 따라 젠더와 신체를 일치시키지 않는 사람들 역시 트랜스젠더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형성되는 ‘진짜’ 트랜스젠더 정체성은 트랜스젠더들 안에서 재생산되고 내면화된다. 나아가 일부 트랜스젠더는 이러한 성별 이분법적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바탕으로, 이분법적 젠더 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목표하기도 한다. 즉, 본인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일종의 신체적 ‘질병’으로 간주해 의료적 조치와 성별 정정을 통해 “일반 여자”, “일반 남자”가 되어 “정상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손인서, 2018: 209).


어째서 트랜스규범성이라는 경직된 개념이, 트랜스젠더 내부에서마저 유효하게 소비될 뿐 아니라 새로이 생산되며, 공고해지기까지 하는 것일까? 앞서 짧게 언급한 ‘전략’이라는 단어를 해석하며 그 이유를 찾아가 볼 수 있겠다. 트랜스규범성의 의미와 그가 작동하는 모습을 돌이켜 보았을 때, 그것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작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성별 이분법 아래 익숙한 두 정체성만 남겨 두었다. 이는 주류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쉬운 두 정체성이기도 했다.


이때 상기해낼 것은, 트랜스젠더가 사회 속에서 삶을 꾸려나가며 경험하고 있는 차별이다. 트랜스젠더는 신체와 성별 정체성의 불일치감으로 인한 심리적인 고통을 겪을 뿐 아니라 두 개의 성별로 나뉘어진 주민등록 체계(와 그에 기반해 운영되는 고용, 행정 업무, 정치 참여 등의 어려움), 학교, 병원, 화장실 등 공공시설, 사회적인 인식, 성별 이분법적 문화로 인해 수많은 차별 속에서 살아 간다. 차별은 온 방면에서, 사소하게부터 중대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차별을 피하는 것은 간절한 일이 된다.


그래서 트랜스규범성의 실천은 차별을 피해 생존하는 한 방법이 된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에서 다시금 하위 집단을 골라 내 그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트랜스여성 혹은 트랜스남성이 아닌 성별 이분법을 벗어나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트랜스젠더는 “이상하”고 “좀 튀는 행동을 하는” 이가 되며, 이들은 다시 소위 “트랜스젠더 욕 먹이는” 사람들이 된다. 이렇게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성별 이분법 바깥의 이들에게 전이시키거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부가적인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커뮤니티 내 갈등, 또는 사회에 대한 순응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회이며, 그럼에도 트랜스젠더가 그들의 정체성을 아예 포기해버린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리어 사회적 소수자인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로서 주류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집단적인 노력이자 대응의 결과, 주류 사회로의 “융화”를 위한 불가피하고 전략적인 선택(손인서, 2018: 217)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실패하고 만다. 트랜스규범성에 자신을 꼭 맞춘 트랜스젠더라 해도,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사회 속에서 “수술한 사람” 심지어는 출생 시의 지정성별로 인식된다. 즉, 이분법적 성별 정체성 주장이 생존 전략으로 제시되며 활용되고 있음에도 대중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몰이해, 또는 부정적 인식은 여전하기에 인식 전환 없이는 주류 사회로의 편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트랜스젠더는 “이분법적 정체성의 주장은 때로 트랜스젠더로서의 사회적 인정을 향한 저항을 상징적으로 부정하고 결국 트랜스젠더로서 자기부정의 효과를 낳는 것”이라 바라보기도 했다(손인서, 2018: 217).


나아가 트랜스규범성의 전략적 실천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부정적인 결과를 남기기도 한다. 우선, 성별 정체성, 성적지향, 그리고 의료적 트랜지션 여부에 따른 커뮤니티 내 위계가 형성된다. 성별 이분법에 상응하는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 그에 상응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거나 의료적 트랜스젠더를 거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 비교되어 “진짜” 트랜스젠더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커뮤니티 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일종의 ‘자본’으로 활용되어 “지위 경쟁의 내깃돈”이 된다(손인서, 2018: 215). 이는 나아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임시성과 불연속성을 함의하기도 한다.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원하는 성으로 살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수술도, 성별 정정도 아닌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벗어날 때이다(이키도, 2019: 216)”라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와 단절한 어느 트랜스젠더의 말처럼,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을 포기하고 주류 사회에 끼어 들어가는 것이 그들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트랜스규범성이라는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사뭇 모순되는 듯한 개념을 살펴 보았다. 이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내부의 이야기를 꺼내어 흠 잡거나, 그들 안의 갈등을 전시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님을 밝히고 싶다.


트랜스규범성을 살펴 본 이유는, 주류 사회 안에서 시스젠더 정체성을 갖고 생활하는 대중들에게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얼마나 환상 속의 것처럼 멀리 느껴지든 간에, 그들은 이 사회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존재하고 있으며, 그때 무거운 억압을 경험하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트랜스젠더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이 흔히 말하듯, 트랜스젠더가 ‘선택’한 것이니 감수하고 씩씩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들은 현실적인 전략으로 트랜스규범성을 찾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실패하곤 한다는 것 역시 우리는 이제 안다. 다만, 이때 그 실패의 원인을 찾을 곳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는 점은 재차 강조되어야 한다. 트랜스젠더로 하여금 트랜스규범성을 택하게 한 것은, 그 규범 안에 맞지 않는 트랜스젠더는 더욱 적극적으로 차별하겠다는 사회였으니 말이다.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전략을 구태여 꺼내 들게 한 것은 사회이고, 따라서 트랜스젠더의 생존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 역시 사회이다.


트랜스젠더, 여기

사회는 트랜스젠더에게 아주 좁은 자리만을 내어 주었다. 이분법적 성별 체제 안에 트랜스젠더라는, 무한함을 함의하는 정체성을 끼워 넣으려 했다. 이는 그 자리 안에 스스로를 끼워 넣는 것이 가능했던 이들에게는 충분한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공간이 있기는 하니 말이다. 자리를 내주는 이들에게도 ‘이만하면 됐지’ 같은 쉬운 만족감을 허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분법적 성별 체제’라는 조건적 공간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결국 처음부터 부정하는 것이 된다.


우선 절차적이거나 경제적인 이유에서 이분법적 성별 체제 안에 들어가는 것부터 쉽지 않기에,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트랜스젠더라는 성별 정체성 이상의 것, 수많은 부가적인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령 법률적 지원과 금전적 여유, 주변인들의 지지가 그것이다. 이는 성별 정정을 위한 법률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성별 정정을 시도하는 것은 복잡할 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일이기 때문이며, 성별 정정을 위해서는 정신과 진단서뿐만 아니라 외부성기 성형수술 등 의료적 조치를 완료했다는 확인서 역시 필수적이기에 수술 비용부터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 또는 남성 성별 정체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들이 있다. 그러한 이들에게 혹자는 그저 출생 시 지정성별에 따라 살거나, 어쩔 수 없으니 여성과 남성 중 하나를 택해서 살라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트랜스규범성의 ‘조건적 환대’로서의 한계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는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2015)에서 빌려온 단어로, 말 그대로 환대를 철회 가능한 것으로 여기며 특정한 행동 노선에서 벗어났을 때, 환대를 도로 빼앗는 것을 칭한다.


김현경은 책에서 외국인의 예시를 들며 조건적 환대를 설명한다. 외국인이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 “우리 문화를 칭찬하는 교양 있는 이”라면 환대가 주어지나, 그가 교양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정착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여자들을 건드린다면 그에게 주어진 환대는 곧 철회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환대의 철회가 정당화되곤 하는 이유는 그들이 “돌아갈 수 있는” 자기 나라가 따로 있다는 점에 있다고 쓴다. 그러나 이는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것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이기도 할뿐더러 돌아갈 ‘다른 나라’가 없는 이들을 부인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논의로 돌아와, 바로 이 ‘여기가 싫다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는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을 ‘선택’의 영역의 것으로 곡해해 (특히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의 삶이 힘들다면 출생 성별 혹은 여성 혹은 남성 중 하나의 성별 정체성을 택하라는 이야기로 적용될 수 있겠다. 돌아갈 나라가 없는 이들, 외국인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 외국인이라는 운명 속으로 추방된 사람, 외국인으로서의 삶 외에 다른 삶을 택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이 말은 그가 결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김현경, 2015: 69).


즉, 조건적 환대는 트랜스젠더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는 시늉을 하되 결국에는 여성과 남성을 위한 자리만을, 전과 다를 바 없이 남겨둔다. ‘트랜스젠더’는 그 무엇보다 너른 공간을 필요로 하는 개념임에도, 트랜스젠더들은 좁은 공간에서 차별을 받아들인다는 조건 하에 사회 안에 머무를 자격을 얻고, 조건부로 주어진 성원권 안에서 자신에게 ‘베풀어진’ 관용의 한계를 시험하지 말 것을 요구받는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모욕에 동의할 것이 강요되며, 모욕당하는 자가 모욕에 동의할 때 그것은 모욕이 아닌 질서가 되어, 모욕당하는 자 스스로 그의 본질을 부정하게 된다(김현경, 2015: 131).


사회로부터 트랜스젠더에게 주어진, 환대의 얼굴을 띤 트랜스규범성이 ‘조건부 환대’에 불과하며, 이가 차별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은 명확하다. 그리고 ‘조건부 환대’뿐일 트랜스규범성을 트랜스젠더에게 교묘하게 쥐어주고, 또 요구한 이가 사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 글의 마지막 목표는 사회가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트랜스젠더를 진정 ‘환대’하는 사회가 어떻게 가능할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오늘날 주류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젠더 이분법은 너무나 익숙하고 내재화된 체제일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그 틀을 벗어난 사회가 어떻게 가능할지, 미래를 상상하는 가장 첫 단계에서부터 일종의 한계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한계를 핑계 삼아 불완전한 구조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정말 함께 그 미래로 가 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글을 이어 보려 한다.


미래의 세계를 하나씩 그려내 보기 위해 ‘환대’의 개념을 다시 불러내보자. 『사람, 장소, 환대』에서 김현경은 ‘환대’함을 “자리를 주는 행위”라 설명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 ‘사람’이 되며, ‘사람’이 되어 “자리 혹은 장소를 갖”게 된다(김현경, 2015: 207). 우리는 어떻게 트랜스젠더를 위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트랜스젠더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너무나도 가능하고, 그건 지구 위 어떤 나라들에서 이미 당연한 이야기임을 설명하기 위해 아래 국가인권위 연구용역보고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0)에서 논의된 ‘자리 마련’의 사례들을 모아 두었다. 이미 있는 자리들을 함께 살펴 보며, 우리가 글을 읽는 여기에도 자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종이 위의 자리

트랜스젠더를 위한 자리가 필히 마련되어야 할 공간 하나는 종이 위, 즉 설문 항목에서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구주택총조사 등 정책 수립을 위한 조사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랜스젠더를 정책집단으로 가시화하는 것으로 트랜스젠더가 겪는 생계, 주거, 고용 등의 취약함과 차별을 해소할 정책의 근거가 될 것이다.


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 가능성 하나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있다. 이는 5년 주기로 실시되어 정책 수립과 각종 통계작성의 기초자료로 활용되며, 성명, 성별, 생년월일 등 인구학적 정보와 혼인, 경제활동 상태, 주거형태 등의 가구와 주거 정보가 조사된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반영될 만한 자리가 없다. 조사에서 성별은 남녀 두 가지 중에서만 응답할 수 있고 성별 정체성을 별도로 묻지도 않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통계에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캐나다 연방통계청은 2021년에 이루어질 인구총조사 질문에 지정성별(sex at birth)과 젠더(gender) 항목을 추가했으며, 영국 역시 2021년 인구총조사에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하기 위한 연구를 거쳤다. 특히 단순히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성소수자들의 응답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움을 인지하고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을 어떻게 질문하고 수집할 지에 관한 전략을 마련했다. 가령 성별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구분할 것, 성별 정체성에 대한 응답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할 것, 성별 질문 시에 성별 정체성을 별도로 묻는다는 사실을 안내할 것과 같은 원칙을 도출해 이를 바탕으로 설문지를 구성했다.


이밖에도 보건복지부의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 여성가족부의 성희롱실태조사, 가족실태조사 등 정부 각 부처에서 진행되는 정책 수립을 위한 실태조사에서도 트랜스젠더가 정책 수립을 위한 인구집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어지는 맥락에서, 법적 성별 정정 사건에 관한 통계 역시 필요하다. 현재 트랜스젠더 법적 성별 정정 사건은 착오·오류에 의한 등록부 정정,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등 여타 가족관계등록 관련 사건들과 동일한 사건번호가 부여되고 있다. 이는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내역을 파악하기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대법원에서 법적 성별 정정 사건에 대해 별도의 사건번호 부여 등의 조치를 취해 트랜스젠더 법적 성별 정정 사건의 실태를 파악하고, 성별 정정 절차 개선을 위한 근거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사법부 주관으로 매년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사건의 수, 인용 수 등에 대한 통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리에 부착된 불필요한 성별 떼내기

꼭 필요하지 않은 성별 표기나 구분을 생략하는 것도 트랜스젠더의 자리를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우선, 주민등록번호 및 기타 공문서에 성별이 표기되는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불필요하게 명시된 성별은 트랜스젠더의 생활 면면에서 인권침해와 차별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주민등록번호는 7번째 자리에 성별을 표시하고 있고, 이는 출생 시 부모가 등록하는 성별에 따라 부여된다. 그리고 이 주민등록번호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의료기관 이용, 담배 구입 및 술집 방문, 보험 가입, 은행 이용, 투표 참여, 주택 관련 계약 등 일상생활 곳곳에서 신분증의 역할을 하는 문서들에 그대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트랜스젠더들이 일상 곳곳에서 성별 불일치감을 경험하고 혐오 시선에 맞서 추가적인 설명 혹은 증빙 서류를 덧붙여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의심받거나 서비스 이용 자체를 거부받기도 한다. 성별이 표기된 것은 장애인등록증과 외국인등록증 등 다른 신분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주민등록변경제도가 2016년 시행되었으나, 이를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생명, 신체, 재산에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거나 성범죄 피해자 등에 한정되며, 그 변경방식 역시 생년월일, 성별을 제외하고 뒤의 6자리만을 임의번호로 변경 가능한 차원에 그친다.


사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 제도처럼 개인을 식별하는 번호에 성별을 비롯한 개인정보가 포함하는 경우는 흔치만은 않다. 2017년 한국헌법학회가 행정안전부 연구용역으로 실시한 '주민등록제도 발전방안 연구'에 따르면 OECD 35개국 중 80%인 28개 국가가 국민 개개인을 식별하는 개인식별번호를 부여하고 있었는데, 이중 11개 국가는 식별번호에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않았으며,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터키,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스라엘의 8개국은 무작위 임의번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독일의 경우는 개인식별번호를 부여하지 않는 대신 여권, 운전면허증, 조세, 복지 등 사회 각 영역에서 고유의 식별번호를 사용한다. 미국도 영역별 신분확인체계를 활용하되,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이는 지역번호, 집단번호, 일련번호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는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다. 번호의 주체가 번호 변경을 요구할 시 1년 3회의 범위에서 총 10회 이내 변경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도 개인식별번호가 무작위 임의번호인 11개의 숫자와 검증번호인 1개의 숫자, 총 12개의 숫자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분증의 경우는 어떠할까? 독일의 경우 만 16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ID카드(Personalausweis)를 신청해야 하며, 카드에는 이름, 성별, 주소, 생년월일, 사진, 학위, 국적, 출생지, 개인식별번호 등의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다만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08년 부모가 자녀에게 성중립적인 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으며, 2020년부터는 간성으로 태어난 이들의 성별을 ‘다양한(divers)’, 즉 신분증 상 ‘X’로 표기할 수 있게끔 하였다. 미국은 국가신분증제도를 운영하지는 않으나, 각 주에서 신분증으로 활용하고 있는 다양한 신분증의 형태가 있다. 그중 가장 자주 사용되는 것은 운전면허증으로, 워싱턴 D.C. 외 15개 주에서는 자격 있는 전문가의 증빙으로 운전면허증 상의 성별표기를 쉽게 변경할 수 있고, 뉴욕, 플로리다 등 9개 주에서는 법원 허가나 의료인의 증명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일본의 신분증인 ‘마이넘버카드’에는 성별이 표기되어 있으나, 이가 트랜스젠더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성별 부분을 가릴 수 있는 케이스를 함께 배포하고 있으며, 신분증으로 자주 활용되는 건강보험증의 경우도 트랜스젠더의 불편을 고려하여 신청할 경우 성별을 건강보험증 뒷면에 표기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2014년 정부 차원에서 성별표시의 문제점에 대해 연구를 진행한 후, 이를 바탕으로 2024년부터 신분증에서 성별표기를 모두 없애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나아가, 공문서의 성별 표기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한국의 많은 공문서에는 관행적으로 성별 표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선거인명부의 경우 「공직선거법」 제37조 제2항 “선거인명부에는 선거권자의 성명·주소·성별 및 생년월일 기타 필요한 사항을 기재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성별 표기가 의무화되어 있기도 하다. 공문서상 유일하게 유연한 성별 표기가 가능한 곳은 국가인권회 진정서로, 진정인이 자유롭게 성별을 기재할 수 있도록 성별란을 공란으로 두고 있다. 이는 트랜스해방전선 등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들이 2019년 2월 국가인권위의 진정 서식 성별 표기란이 ‘남, 여, 남(트랜스젠더), 여(트랜스젠더)’로 표기돼 성별 이분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 같은 서식이 인권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진정을 제기하여 개선된 것이다.


한편 일본의 오사카부, 아이치현 등 여러 지자체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신청서, 허가서 등 서류를 전수조사하는 과정을 거쳐, 성별표기가 불필요한 경우는 삭제하고, 표기가 필요한 경우라도 자유기입식으로 하거나 뒷면에 표기하는 등의 대안을 검토해 성별표기에 유연함을 보이고 있다. 호주의 경우는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성별정보를 수집하는 모든 부서와 기구는 그 부서의 기능이나 활동에 필요하거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아닌 성별정보는 수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유권자 등록을 별도로 해야 하는 미국의 경우, 네바다, 몬타나, 버지니아, 오리건, 워싱턴, 유타, 캘리포니아 주 등 여러 주에서는 유권자 등록 신청서에 성별정보를 포함하지 않거나 포함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있다.


자리에 부착된 불필요한 성별 표기를 삭제하는 것은 문서 위 얘기만이 아니다. 이는 물론 3차원의 공간에도 적용된다. 이에 관해서는 대표적으로 화장실과 관한 논의가 있다. 트랜스젠더는 화장실, 탈의실, 목욕탕 등 두 개의 성별에 따라 분리된 시설을 이용하고자 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무관하게, 외적인 모습에 따라 괴롭힘과 폭력, 혹은 오해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화장실이라는 너무도 당연하고 기본적인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힘들기에, 외출할 때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음료를 섭취하지 않거나 외출 자체를 제한하게 되기도 한다. 즉, 화장실의 문제는 트랜스젠더를 공적공간에서 배제하는 결과로도 이어진다(홍성수 외, 2020: 109)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성별 정체성에 따른 화장실 등 이용을 보장하는 것,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이용 등으로 민원이 제기되었을 때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 성중립적인 화장실 등을 설치·운영하는 것의 세 가지 차별 대응 방법이 논의되지만, 앞선 두 방법의 경우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는 결국 어느 쪽 화장실도 선택하지 못하는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동등하게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성별구분 없는 성중립화장실이 설치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된다(홍성수 외, 2020: 115). 성중립화장실이라 함은, 단순한 남녀공용화장실이 아닌 기본적으로 성별구분을 자체를 전제하지 않은 채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칭한다.[5] 이미 유럽의 많은 국가들, 특히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경우 기본적으로 모든 공중화장실을 성중립화장실로 운영하고 있으며, 대만 역시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연구 이후 국립대만대학교에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하는 등 변화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해외 사례와 사뭇 다르게 한국의 경우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공중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필수적이며, 이를 어길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은 개선명령, 폐쇄명령, 철거명령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고(제13조), 명령을 위반할 시 과태료가 부여된다(21조). 특히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남녀공용화장실의 안전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러한 화장실의 성별분리[6]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로, 위 공중화장실법의 적용대상이 확대되기도 했다.


자리 주인 이름 제대로 붙이기

이미 있는 공간이 당신의 자리가 맞다고 끄덕이는 것 역시 트랜스젠더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즉,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정체화한 성별로 생활할 수 있게끔, 성별 정체성에 대한 법적 인정 및 성별 변경에 관한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변경에 대한 법률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법원에 의해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란 정정 허가를 통하여 신분증상 성별 표기 변경과 법적 성별 변경이 이루어진다. 이는 명확한 법률 없이 트랜스젠더 개인이 개개 판사를 설득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말하며, 특히 현재 법적 성별 정정을 준비할 때 요구되는 의료적 조치 관련 요건(정신과 진단, 불임, 외부성기 성형수술), 미성년자 자녀 관련 요건, 나이 관련 요건(미성년자의 성별 정정 사례 극소수), 나아가 전과와 채무에 관한 소극적 요건이 폐지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절대적인 환대는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것, 정체성에 대한 인정은 특정한 서사내용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서사의 편집권에 대한 인정(김현경, 2015: 215)’임을 환기했을 때 높은 성별 정정의 장벽은 트랜스젠더의 자리를 마련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해외의 경우, 아르헨티나의 사례가 특히 주목할만하다. 아르헨티나는 과거 성확정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에 대해 법원의 허가로 이름 및 출생증명서상 성별 변경을 허용해왔다. 그러나 2012년 「성별 정체성법(Ley de identidad de género)」의 제정으로 의료적 조치 없이 성별 변경이 가능해졌다. 특히 미성년자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되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도록 해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법원이 이를 결정하도록 했다.


독일에서는 기존 나이 관련 요건, 혼인 관련 요건, 생식능력 결여 요건, 성적외관 변화 요건 등이 점차 헌법불합치판정을 받으며 성별 정정을 위한 요건들이 점점 더 트랜스젠더 본인의 판단을 신뢰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이러한 엄격한 성별 정정 요건들에 관해 연방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판결을 내리며 밝힌 바가 인상적이다. 연방재판소는 수술에 관한 요건에 대해 “(수술이) 신분법적인 승인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요구된다면, 수술에 대한 (의료적) 지시도 없고 자신의 성전환성의 지속성을 위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침해를 유발하고 건강상 훼손을 감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입법자가 성전환성의 지속성에 대한 증명을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라 설명했다. 나아가 불임을 위한 수술 강요는 “이를 행하지 않는 경우 자신이 인지하는 성별에 대한 신분법적 승인을 포기하게 하여 자신의 법적 성별과는 모순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해야 하거나, 또는 신체적 변경과 기능의 손실을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하여)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방법을 선택함으로 인해 자신의 인간으로서 자존감에 저촉될 수 있는 중대한 수술을 받게 하는 강제상황이 초래된다. 당사자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지 그는 항상 자신의 심리적 또는 신체적 완전성에 관련된 중대한 기본권을 침해받게 된다”고 말한다(홍성수 외, 2020: 45).


이 글은 트랜스젠더 깃발 속에 표현된 유연함을 살피며 시작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의 온전한 삶을 위해 필요한 건 광야와 같은 자유뿐만이 아니다. 트랜스젠더는 우리 곁에 있다. 같은 사회 속에서, 같은 공기의 압력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흩날리는 자유가 아니라 그 자유를 오롯히 실천할 수 있는, 바로 여기의 자리이다. 유연하고 포괄적인 깃발이 마련되어 있다면, 그 깃발을 꽂을 수 있는 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땅은 충분히 딱딱해야 한다. 경직된 제한을 연상시킨다 해도, 그것은 딱딱한 만큼 튼튼함을 의미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땅에서 자유는 오래, 더 높이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뻗어나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마련된 땅임을 잊지 않고, 단단함을 이유로 위축하지 않고, 도리어 한껏 넉넉한 자리를 만들어 두어야 할 것이다.



편집장 현정 / byulgot@gmail.com



[1] 모니카 헬름스와의 인터뷰를 담은 〈Huffpost〉의 “We Have A Navy Veteran To Thank For The Transgender Pride Flag” 영상 속 그의 이야기를 번역한 것이다.

[2] 〈Huffpost〉의 “Transgender Flag Flies In San Francisco’s Castro District After Outrage From Activists” 기사 중 트랜스젠더 깃발에 관한 헬름스의 설명을 번역했다.

[3] 현재 한국에는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절차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으나, 2006년 대법원에서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판례가 나온 이후로 개별 법원의 판단에 따라, 또 대법원 내부의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의 기준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 정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4]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관한 내용은 손인서(2018)의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 구성」을 주로 참고했음을 밝힌다. 해당 연구는 15명의 트랜스젠더와의 심층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결과이다.

가령, 트랜스남성 유정은 커뮤니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끔 좀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 여자도 남자도 아닌?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좀 욕 먹는 거 같아 가지고 저희 분위기가, 성소수자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 사람들 좀 배척하는 편이에요. (중략)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저희 이미지가 욕 먹는 거 같아 가지고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해요. 네. 이렇게 확실히 했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이미지가 좀 안 좋잖아요? 그것 때문에 저는 좋게 하려고 일단 저부터 잘하고 있긴 한데 다른 사람들이 안 그래주니까 음, 네.”

그러나 트랜스여성인 정원은 이렇게도 말했다. “딱히 지금 느끼는, 그냥 제 개인적으로 경험이나 이런 걸 느끼는 한 가지만 딱 말을 하자면, 사람들끼리 파가 나뉜다고 해야 하나? (중략) 꼭 너네는 이래야 한다, 서로 이런 싸우는 부분? 여성스러워야 된다, 꼭? 의료적 조치를 안 하는 것에 대해서 이건 문제다, 수술은 꼭 해야 되고 너가 이러하지 않으면 넌 TG(트랜스젠더)가 아니라서, 이런 거에 대해서, 가끔 그런 분들이 보이세요. (중략) 계속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억압시킨다? 다양성에 대해서 그냥 꼭 이래야 된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시는 분들,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요.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5] 성중립화장실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성별구분 없는 표지가 붙은 개별 방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각 방실의 크기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여야 하고 관련 보조 시설도 갖추어야 한다. 성별 등에 따른 편의시설(위생용품 수거함 등) 역시 똑같이 구비되어야 한다. 이때 해당 건물 내지 해당 층의 모든 화장실이 성중립화장실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 남녀 화장실을 그대로 둔 채 성별 구분 없는 화장실을 별도로 설치하는 것은 추가된 화장실을 이용하는 이들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더 알고 싶다면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모두를 위한 화장실’ 프로젝트(https://diversity.or.kr/toilet)를 참고할 것을 권한다.

[6] 이러한 대처가 온전한 답이 될 수 없는 단호한 이유를 특집 마지막 글, 상민의 “트랜스젠더, 군인, 죽음”에서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나영정 외 (2013). 트랜스젠더 정보·인권 가이드북: 트랜스로드맵.  (http://transroadmap.net/wp-content/uploads/2012/05/transroadmap_2nd.pdf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논문 및 저널

박보람 (2020). 시민교육을 위한 성적 시민성 개념 연구. 윤리교육연구, 58, 113-136.

손인서 (2018).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 구성. 경제와사회(120), 198-228.

이키도 (2019).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여/성이론(41), 211-219.

햇살 (2019). 트랜스젠더 청소년에게 생존 이상의 꿈을. 월간 복지동향(245), 23-28.

홍성수, & 숙명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 연구수행 (2020).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발간자료.

“Am I Trans Enough?”: Experiences of Transnormativity (2013). American Sociological Association, 1-20.

Johnson, A. H. (2016). Transnormativity: A New Concept and Its Validation through Documentary Film About Transgender Men. Sociological Inquiry, 86(4), 465–491.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김태규 (2019.03.29.). 국가인권위, 진정서에 남녀 외 성별 표기할 수 있도록 양식 개선. 투데이신문. Retrieved from 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117

Gray, E., & Vaglanos, A. (2017.07.27.). We Have A Navy Veteran To Thank For The Transgender Pride Flag. Huffpost. Retrieved from https://www.huffpost.com/entry/we-have-a-navy-veteran-to-thank-for-the-transgender-pride-flag_n_5978c060e4b0e201d57a711f

Sankin, A. (2012.11.20.). Transgender Flag Flies In San Francisco’s Castro District After Outrage From Activists. Huffpost. Retrieved from https://www.huffpost.com/entry/transgender-flag_n_2166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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