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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그리고 결혼

[특집 '트랜스젠더'] 편집위원 열음

어렸을 적의 나는 스물다섯이 되기 전에 결혼할 거라며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왜 스물다섯이라는 숫자를 고집했던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추측해보건대 스물다섯에 결혼해 나를 낳으신 엄마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 어렸던 나에게 엄마와 아빠는 틀림없는 어른이었고, 따라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엄마와 아빠처럼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려야 한다고, 그래야지만 나도 어엿한 어른이 될 수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 그때의 나에게 결혼이란 일종의 통과 의례였던 것도 같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관문. 거기에 더해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살 수 있다니, 뭣 모르는 철부지 꼬마가 결혼을 동경하기에는 차고 넘치게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도 외쳐왔던 스물다섯을 고작 이 년 남겨둔 지금, 나는 더 이상 결혼을 동경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당장 졸업하고 뭐 해 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누군가와 만나서 그 사람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라는 건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부터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데 누구 인생에 관여합니까, 안 그래요? 다만 스물다섯의 엄마에게 묻고 싶은 것들은 점차 쌓여갔다.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어? 아빠가 그렇게 좋았어? 나를 가졌다는 걸 알았을 때는 어땠어? 무섭지는 않았어? 나였다면….


한편으로는 내가 내게 주어진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너무 당연하고 하찮게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택지에 있는 결혼을 거부하여 스스로 비혼으로 남은 경우와 아예 선택지에 결혼이 주어지지 않아 강제로 비혼이 된 경우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해봐야 했다. 내게 동성의 애인이 생긴다면, 그리고 걔랑 어떻게든 같이 살고 싶어진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지? 물론 결혼하지 않고도 같이 살 수야 있겠지만….


당분간은 하지도 않을 결혼인데도 자꾸만 결혼에 대한 잡념이 늘어갔다. 흔히들 결혼을 사랑의 결실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라면, 결혼하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거야? 아니, 애초에 기혼자들은 정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해서 결혼까지 하게 된 게 맞기는 하고? 철없는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결혼을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명확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마침 이번 여름호의 특집 주제가 ‘트랜스젠더’로 정해진 것과 그 언젠가 유튜브를 떠돌다 마주했던 ‘성소수자부모모임’(이하 부모모임)의 부모님들을 떠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찾았다. 결혼을 경험했으며, 현재의 결혼제도가 포용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며 매일 그들의 나은 삶을 고민하는 사람. 고민 끝에 부모모임 측에 인터뷰 제안서를 넣었고, 감사하게도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답신을 받을 수 있었다. 함께 고민해주겠다며 선뜻 답하신 분들께 나의 미숙한 잡념들을 그대로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럴듯한 질문을 구성해보려 몇 날 며칠을 또 결혼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결혼 이거, 막연히 생각해왔던 것보다 더, 훨씬 더 이상하더라고. 그렇게 오월의 어느 날, 기혼자 셋과 비혼자 하나가 학생회관 3층에 위치한 고대문화 편집실에서 만났다. 퀴어 그리고 결혼에 대해 눌러 담아왔던 보따리들을 잔뜩 풀어낼 준비를 마친 채로.




열음: 인터뷰를 시작해 볼게요. 우선 귀한 시간 내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인터뷰는 1부와 2부로 진행이 될 건데, 1부는 ‘퀴어한 결혼’으로, 결혼을 경험해 본 기혼자의 입장에서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한국의 결혼제도에 관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고요. 2부는 ‘퀴어와 결혼’으로 퀴어 자녀를 둔 부모로서 앞으로 젊은 세대의 결혼, 퀴어의 결혼권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1부: 퀴어한 결혼

 

열음: 우선 인터뷰이 님들의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애니: 남편과 86년에 결혼하여 여태까지 살고 있는 기혼자입니다. 또 뭐가 필요할까요… 됐나요?

열음: 네! (웃음) 반갑습니다.

메이: 저는 1996년도에 결혼을 했어요. 그때가 제가 서른둘이었거든요. 저희 때만 해도 결혼은 스물다섯에서 스물일곱이 적령기였고, 그 나이가 넘어가면 노처녀였으니…. 그래서 저는 결혼을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 늦은 나이에 떠밀리듯이 결혼을 했습니다.

위니: 저는 결혼을 95년에 했는데, 저는 그때가 만으로 스물네 살이었어요. 저희 때만 해도 이십대 중반에 결혼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어서 제가 친구들 중 첫 결혼이었고, 심지어 남편은 졸업하기 두 달 전이었어요.

열음: (메이 님과 위니 님의 나이 차이인) 6년 새 또 적령기가 늦춰진 거군요.

위니: 맞아요. 저는 어떻게 보면 둘이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서 현실적인 고민 없이 결혼을 했네요.


열음: 다들 30년 전쯤에 결혼하셔서 지금껏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계신데, 결혼할 당시 그리고 오늘날 어떠한 결혼관을 가지고 계신가요?

인터뷰이 일동: (정적)

열음: (웃음) 사실 결혼관 같은 거 평소에는 생각 잘 안 해보잖아요.

애니: 맞아요. 그때는 결혼관이고 뭐고 안 하면 안 되는 세대였으니까. 저는 60년생이니까 스물일곱에 결혼을 했는데도 조금 늦었던 거예요. 유학까지 다녀오고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 중이었는데 어떻게 또 친구 결혼식에 가서 남편을 만나게 돼 가지고… 더 초이스가 없는 것 같아 그냥 한 것 같아요. 다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들어요. 제대로 된 상대가 아니면 비혼도 나쁘지는 않다!

메이: 저는 결혼을 서른둘에 늦게 했는데, 당시 직업이 해외 출장을 많이 다니는 직업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연애를 할 시간도 없었고 별로 그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았는데, 결혼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떠밀리듯 했어요. 부모님께서는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용납을 못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제 의견보다는 부모님의 의견을 따랐던 것 같아요. 저는 결혼을 만난 지 3개월 만에 했어요. 선보고 3개월. 그래서 결혼관은 없었던 것 같고, 어제 무슨 책을 읽다가 ‘내가 이런 마음으로 결혼을 했겠구나.’ 이런 생각은 했어요. “내가 될 수 없는 너, 네가 될 수 없는 나. 이런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으로 등을 기대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온 것 같네요.

메이: 결혼관은 저희 애로 인해서 바뀐 것도 많죠. 그전까지는 장성한 여자와 남자가 적당한 시기가 되면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크면 또 가정을 꾸리고. 이렇게 아주 보편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면…. 결국은 어떤 문제가 내 문제가 되었을 때 그걸 실감하는 것 같아요. 무언가가 내 문제가 되었을 때 ‘아 그게 다르구나.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니까요. 이게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관계를 맺고 싶어서 결혼을 하는 건데, 그러려면 상대방이 꼭 이성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내가 이끌리고 내가 가장 편안해지는 사람과 있는 것이 결혼이라면 꼭 상대가 이성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결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위니: 전 결혼관 같은 건 별로 갖고 있지 않았고. (웃음) 연애를 하게 되면서는 그저 매일 헤어지는 게 싫으니까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부모님도 너네만 좋으면 그러라고 하셔서 일사천리로 얘기가 진행되고 결혼을 했어요. 근데 결혼을 하고 나서 며칠 지나니까 남편 뒤에 커튼으로 가려져 있던 ‘시댁’이 보이는 느낌! 결혼할 때까지도 잘 몰랐어요. 시부모님이 부담을 주신 건 아니지만 여자 입장인 저로서는 순간적으로 부담이 확 들었던 게 생생해요.

열음: 그럼 위니 님께서는 연애의 끝이 결혼이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하신 거네요?

위니: 네. 결혼이라는 제도의 진지함보다는 “헤어지지 않고 매일 같이 사는 게 너무 좋다!” 하는 생각으로. 둘 다 어렸으니까요. 그땐 비디오방 같은 게 유행이어서 학교 앞 비디오방에 자주 갔는데, 결혼을 하면 같이 영화를 보다가 헤어지지 않고 그대로 같이 잘 수 있다! 이게 정말 좋다는 생각으로 단순하게…. 그래서 인터뷰 질문지를 받고 ‘어 별로 생각 안 해봤는데~’ 싶었네요.

애니: 확실히 저랑 십 년 차이가 나니까 우리 때랑은 다른 것 같아요.

위니: 그러니까요. (저랑 메이 님이랑) 5년 (메이 님이랑 애니 님이랑) 5년 이렇게 차이인데, 느낌이 되게 다르구나~

애니: 왜냐면 저희는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집안 대 집안, 맞선 이런 게 더 흔했어요. 90퍼센트 이상이 선을 봤던 시대니까요. 저희 때는 연애가 자유롭지가 않았어요. 결혼을 늦게 하는 것도 당연히 안 되고.

위니: 그럼 친구 분들 중에서 결혼을 안 하신 분들은 거의 없으셔요?

애니: 어유, 다 했죠~ 이혼은 했을지언정 결혼을 아예 안 한 친구는 한 명도 없어요. 다들 집안 대 집안으로 떠밀리듯이….

메이: (애니 님과 위니 님) 두 분 나이 차이가 11년인데 이렇게 많이 변했네요. 저희 때는 애니 님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누군가와 소개를 해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결혼을 안 하는 건 아예 선택지에 없었던 것 같네요.


열음: 네, 그럼 일단 이 질문은 여기서 마무리해 볼까요? 다음 질문에 대해 하실 말씀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한국에서 결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라는 질문이 있어요. 우선 제가 이 질문을 쓴 의도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아까도 말씀하셨듯이 결혼이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라기보다는, 특히 예전에는 조금 더 집안과 집안 간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실제로도 그랬잖아요. 그런 시대에 결혼을 하신 입장에서 ‘한국에서의 결혼’은 과연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메이: 한국에서 결혼이 갖는 의미는 과거나 현재나 그렇게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개인으로서는 생각하는 게 많이 바뀌었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의 일이라기보다는 집안의 일이거든요. 남들에게 ‘우리 집안이 이렇게 좋은 집안과 결혼을 했고’, ‘우리가 이런 일가를 이루었고’ 하는… 보여주기 위한 게 강한 것 같아요.

애니: 맞아요. 제 지인도 아들이 십 년 전에 결혼을 했는데, 엄청 반대를 했대요. 반대의 이유를 물어봤더니 여자네 집안이 별로라서… 아들은 ‘얘가 아니면 안 돼.’라고 하니까 아들을 아예 안 볼 생각을 했는데, 결혼식까지 안 가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친척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부부만 참석을 했대요. 참석‘은’ 했대요. 이렇듯 고작 10년 전인데도 집안을 이유로 반대를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위니: 여기 있는 우리만 해도 그렇게는 생각 안 하잖아요. 그러니 세대가 지날수록 결혼의 의미가 많이 바뀔 것 같아요. 저랑 남편이 이제 막 50대에 들어오게 됐는데, 40대인 지인들 중에서도 이미 결혼 안 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희 남편도 그런 얘기를 해요. 몇 살 아래의 후배들한테 ‘왜 결혼 안 하냐’, ‘결혼을 했냐’라고 묻는 게 이제 실례라고 느껴진대요. 차차 결혼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열음: 지금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왔는데요, 결혼할 당시와 지금,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느끼… 시는 거죠 다들?

인터뷰이 일동: 네네. (웃음)

메이: 어떻게 보면 현재 젊은 분들은 왜 이렇게 결혼이라는 제도가 옛날 그대로 집안과 집안이 얽혀서 하는 거냐며 불평할 수는 있지만, 분명히 바뀌었고 또 바뀌어 가고 있거든요. 최근 5년 들어서 확 뭔가 터지듯이 바뀌고 있는 걸 느껴요. 결혼이라는 제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고, 내가 누군가가 좋으면 그냥 그 사람과 살면 되는 거지, 혼인신고까지 하고 얽매여서 살아야 하나?

위니: 그리고 부부라고 해서 묶어서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요즘 해요. 예를 들어 동문회보를 받는 경우도 남편과 저는 둘이 같이 사니까 하나만 보내주었는데, 남편은 굳이 전화해서 “우리는 각각 회비를 내는데 왜 내 이름으로만 보내냐, 하나씩 보내라.”라고 했거든요.

메이: 그렇죠. 전 그런 생각도 해요. 혼인신고는 우리가 편하게 구청 가서 하잖아요. 근데 이혼을 하려면 둘이 합의를 했어도 법원에 가서 숙려 기간을 거치고. 혹은 재판 이혼을 하려면 또 복잡해요. 저는 그런 과정 자체가 최종적으로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결혼을 우리가 둘이 합의해서 구청 가서 하듯이. (위니: 그럴 거면 결혼도 숙려해보고 하라고 해.) (열음: 결혼은 아무렇게나 막 시켜주고!) 네~ 결혼은 한 사람이 가도 신고가 되잖아요. 저희도 남편 혼자 가서 했거든요. 어쩌면 결혼제도 자체가 그거인 것 같아요. 남과 여가 만나서 결혼을 해서 출산을 해야 한다! 하지만 결혼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아이를 낳거나 하는 문제와는 상관이 없어요. 내가 누군가와 같이 살면 행복할 것 같아 하는 건데. 동성이든 이성이든 연상이든 연하든 다 떠나서… 결혼을 결정할 수 있는 나이는 정해놔야겠지만. 대신 이혼을 하고 싶으면 구청에 가서 간편히 할 수 있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연사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일동 웃음)


열음: 굉장히 재밌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다음 질문이 조금 더 재밌을 것 같아요. 만약 오늘날 결혼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또 다시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을 결심하셨을 것 같나요?

인터뷰이 일동: (웃음)

열음: 나중에 인터뷰 실릴 책… 집에 가져가면 곤란해지시는 거 아니에요?

메이: 저는 우리 애랑 질문 목록 보면서, 바로 대답을 했더니 애가 “엄마… 아빠 들어….” 이랬거든요. (일동 웃음) 저는… 안 해요! 결혼이라는 제도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너무 많이 막아놨기 때문에. 다만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이 아이가 준 행복이 너무 컸고, 아이는 완벽한 내 편이니까요. 남편도 내 편 아니거든요. 아이에게 온전히 내 사랑을 다 주고 걔가 하는 모든 걸로 인해 기쁨을 얻잖아요. 그러니까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내가 낳든 입양을 하든 해서 자식은 어떤 형식으로든 있으면 좋겠다. 근데 결혼은… 남편이 싫어서가 아니라 결혼으로 인해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놓쳤기 때문에….

열음: 예를 들어 어떤 것을 놓쳤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메이: 저는 대학을 가지 않았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사정 상 졸업과 동시에 계속 직장 생활을 했는데, 저는 운이 좋았던 게 제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해서도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하다가 그냥 결혼하는 애들도 많았고… 여자들은 자기가 학교에서 습득한 것만큼 활용하지 못하는 사회였거든요. 근데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어쩌다 전문직을 맡아서 외국 회사를 가게 되고…. 내가 가진 학력 이상의 일을 하며 해외도 많이 다니고, 이렇게 확장될 수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외국 지사에 나가는 일이라든지를 다 포기를 하게 된 거예요. 뭔가 더 배우고 싶고 하고 싶고 이런 걸…. 결혼을 한 사람도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위기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결혼하지 않았으면 저는 지금, 물론 어떤 게 더 좋은 삶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제가 원하는 삶에 가까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있어요.

열음: 만약에 메이 님이 남성이었어도 결혼을 거부하셨을 것 같나요?

메이: 결혼하죠~ 결국은 불평등의 얘긴데, 저는 일산이 집이었는데 회사를 강남으로 다녔어요. 집에서 회사까지 한 시간 반, 시간을 넉넉히 잡으면 두 시간. 그렇게 먼 거리를 출퇴근을 했거든요. 그런데 저녁에 와서 밥은 제가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당연한 거예요. 집에서 5시에 일어나서 나갈 때도 남편이 뭔가를 먹고 나갈 수 있게 준비를 해 놓고 나갔는데, 저녁도 내가 하고 있어요. 그러다가 남편이 뭔가를 하면 그건 너무 감사한 일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제가 남자였다면 당연히 결혼하죠. 지금은 가사 분담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지만 저희 때는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어우, 남자였으면 했겠죠~ 저 같은 와이프랑 하죠~ 마다할 이유가 없죠.

열음: 다른 분들은 어떠셨을 것 같나요?

위니: 결혼은 했을 것 같아요.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고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결혼을 하고 나서 지금까지 안정감을 느껴요. 저는 결혼하고 나서 이 사람이 낮에는 어디 다른 곳에 있더라도 밤에는 나한테 오는 게 좋았어요. 그건 지금도 좋고. 그래서 시집살이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제도로서의 결혼을 묻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결혼을 묻는 거라면 했을 것 같아요.

애니: 만약에 제가 젊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저는 연애를 실컷 해보고 싶어요. 연애를 많이 못 해 봐서…. 결혼은 다시 돌아가도 할 것 같고, 지금 남편이랑 하는 것도 괜찮고. 대신 연애는 많이 해보고 싶어요. (웃음)

위니: 주위에 보면 부부가 대화 없이 지낸다거나 함께 잠자리를 한 지 몇 년이 되었다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섹스리스 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소통이 없는 부부들, 한 집에 그냥 살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래요.

메이: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산다는 지금의 결혼이 보기에는…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엉망진창이거든요. 엉망진창이에요.

열음: 여기 계신 인터뷰이 분들은 화목하게 살고 계시지만…

메이: 화목하지 않아요.

열음: 아, 그건 아니에요? 포장하려고 했는데 포장지를 찢어버리신…

메이: 그냥 살아요~


열음: 그러시군요…! 그럼 이제, 다시 제도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많은 2030 세대들이 비혼을 선언하고 나섰는데, 기혼자로서 파악하기에 비혼 선언의 원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애니: 안 맞는 게 크지 않을까요. 아까도 말했듯, 본인이 존중받지 못하고 자기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살면 살 수 없는 거니까.

메이: 결국 다시 평등의 문제죠. 두 사람이 결혼을 했을 때 결혼으로 인해 둘이 똑같은 이득을 봐야 하는데, 결혼이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갔을 때, 누가 더 이득을 많이 볼 것인가. 그건 남성이거든요. 남성들이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남성이에요. 그건 변치가 않아요. 현재 비혼을 선언하는 분들 중에 물론 남성 분들도 있을 거예요. 남자들이 뭐 자기네들도 힘들다고 얘기를 하지만, 비혼을 선언하는 사람이 열 명이라면 그 중 일곱은 여성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원인은 결국 평등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위니: 거기에다가 지금 경제적인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잖아요. 다음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우리도 짐작하고, 실제로도 그렇고. 결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비용과, 결혼한 후의 비용 등을 사회가 받쳐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 세대도 20대들에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묻기가 어려운 게, 메이 님께서 말씀하신 문화적인 부분에 경제적인 문제가 겹쳤으니까 굳이 묻지 않아도 이해가 가죠. 혼자 사는 것도 버거운데, 여러 가지의 것들이 맞물려서 굳이 결혼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된 것 같네요.


열음: 그러면, 2030 젊은 세대들 말고 인터뷰이 님들의 또래. 40~60대들 중 ‘졸혼’ 혹은 ‘황혼 이혼’ 등 이혼을 선언하고 나서는 분들도 몇 년 새 많이 증가를 했어요. 현재까지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계신 여러분의 입장에서 파악해 본 그 원인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메이: 그것도 아마, 예전에는 이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경제적으로 ‘내가 이 결혼 생활을 끝내고 독립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겠죠. 그런데 지금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이혼을 해도 사회적으로 지탄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게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잖아요. 옛날에는 매일 뚜드려 맞아도 또 밥 해주고… 종속적인 관계로 살았거든요. 이제는 이혼을 해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됐기 때문에 아마 이혼을 하는 퍼센테이지가 좀 커진 것 같아요.

열음: 그렇다면 2030세대가 비혼을 선언하고, 50대 이상이 졸혼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같다고 보시는 건가요? 젊은 세대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 50대 이상은 ‘이혼해도 괜찮다’라는 것을 알게 된 데 똑같은 기제가 있다…?

메이: 비슷할 것 같아요. 결혼이란 제도에 묶이지 않고 살아가도 괜찮은 사회, 그렇게 해도 누군가한테 눈총 받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봐서는 뭔가 좀 닿아있는 느낌이 들어요.

위니: 아까도 잠깐 얘기했지만 부부 간 소통을 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는 너무 없기 때문에…. 이왕 결혼을 했으면 어떤 의미로든 반려자잖아요. 이성으로서 되게 좋을 수 있고, 이성으로서는 아니지만 같이 살아가는 벗으로서도 좋을 수 있는데 부부끼리 서로 소통하는 문화가 우리나라는 너무 없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저랑 남편은 운 좋게도 일찍 만났고, 학교 생활을 같이 했고, 지금도 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 자주 이야기하고 밥 먹고 술도 같이 잘 마시는데, 그러면서 남편이 주위 지인들한테 들은 얘기를 해 주거든요. 친구나 성당이나 동네에서 알게 된 아저씨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자기도 깜짝 놀란대요. 많은 중년 부부들이 정말 심할 정도로 소통이 없구나 하고요. 여기에 아까 메이 님 말씀대로 혼자 살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생기고, 경제적으로도 독립이 가능해지면서 언제든 이혼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열음: 다음 질문도… 인터뷰가 실릴 책을 숨겨야 할지도 모르는 질문인데. (웃음) 혹시 지금의 배우자와 이혼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혹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애니: 저는 없긴 했어요. 한 번도 이혼까지 생각해본 적은…. 싸움은 당연히 해봤는데 이혼까지 생각해 볼 정도로 싸웠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메이: 저는 당연히 있었겠죠. (일동 웃음)

열음: 메이 님, 책 보내드려도 괜찮은 거 맞죠…?

메이: 어차피 남편은 안 본다니까요. (위니: 우연히라도 볼 수 있…) 아이, 우연히라도 안 봐요. 책꽂이에 제 책만 있어요. 저는 이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결혼하고 1년 미만이었을 때. 그 이후에는 그야말로 제가 보호자라는 생각, 안쓰러움, 애틋함 이런 걸로 살고 있어요. 결혼이라는 게요, 사랑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정과 의리, 이런 걸로 사는 거예요. 형제애 이런 거. (열음: 부부애 말고 형제애, 전우애?) (위니: 어떤 ‘애’든 있으면 돼요.) 네~ ‘애’가 있으면 살아요. ‘애증’이라든지, 그런 ‘애’만 있으면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애틋함이 있어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결혼 1년 미만일 때 ‘이혼해야겠다.’ 싶어서 보따리를 싸서 나온 적이 있어요. 그건 뭐였냐면, 결혼이라는 건 두 사람이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한다는 그런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평생 다르게 살다가 같이 살게 되면 분명 다른 점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계약서를 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제적인 거를 떠나서 서로 지켜줬으면 하는 생활 규칙이 필요해요.

메이: 그런데 당시의 남편은 결혼 전과 결혼 후에 동일한 생활을 하더라고요. 상대방을 배려해줘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거죠. 여전히 새벽 두 시 세 시까지 친구들 만나서 놀고. 저는, 여자는 결혼으로 인해서 바뀐 게 많잖아요. 새벽에 일어나서 쌀이라도 씻어 놓고 준비를 하고, 저녁에 오면 시장을 보고 하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똑같이 해주는 밥 먹고 친구들 만나고 그러다 보니까, 결혼하고 몇 달 후에 이건 같이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거예요. 내가 생각했던 결혼은 이게 아닌데. 결혼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에게 득이 되려는 건데 ‘왜 나만 바뀌었지?’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 밤에 보따리를 싸서 나왔어요. (위니: 근데 이혼은 안 하셨네요?) 이유가 있어요. 그때 제가 임신을 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완전 초기였는데, 우리 남편은 운이 좋았던 거죠. 우리 애 덕에 버림받는 걸 면했어요. 그렇게 들어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거예요.

애니: 얘기를 듣다보니까 결혼에 대한 교육이 필요할 것 같아요.

위니: 아까 규칙이라고 이야기하신 게 꼭 필요해요. 회사도 들어가면 규칙이 있는데 같이 살기로 한 사이에….

애니: 절대 무슨 ‘사랑’? 사랑만으로 살 수는 없어요.

위니: 그래도 저는 아직도 남편하고 사랑한다는 문자를 주고 받아요. 그걸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다행히도 이혼을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남편이 중간에서 잘해서 무난히 지냈어요. 다만 남편이랑 저는 단둘이 살았던 게 따지고 보면 일 년이 안 돼요. 그게 늘 아쉬움이 있어서, 아이들이 독립해서 단둘이 오붓하게 사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열음: 어느덧 1부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는데,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위해서 뒷받침되어야 할 제도 및 배우자 간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위니: 제 남편은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며 존경심도 들고 배우려고 노력하게 돼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주고, 서로 배울 만한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게 배우자 간에 필요한 태도가 아닌가 생각을 해요.

애니: 제도에 앞서, 배우자 간의 태도. 존중과 배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메이: 부부 각자가 잘하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그대로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것. 바꾸려고 하면 안 돼요.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을 밀어주고 지지해주고…. 그리고 제도는, 아까도 제가 이야기했듯 결혼을 구청 가서 쉽게 하는 것처럼, 끝내고 싶을 때도 쉽게 끝낼 수 있어야 한다. 이혼을 쉽게 할 수 있으면 문란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서로한테 최선을 다하게 될 수도 있죠. 또, 지금의 이성애 결혼에서 벗어나 누구라도 함께 살 수 있게 동반자법[1]이 얼른 마련이 돼야 할 것 같아요.


열음: 그렇다면, 제가 준비한 1부의 질문은 여기까지인데 혹시나 인터뷰를 진행하시면서 하고 싶었는데 질문지에 없어서 못 했던 말들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나 있으실까요?


메이: 결혼 생활하면서 자녀가 꼭 있어야 하는가? 요즘에는 자녀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도 많잖아요.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결혼을 해서 출산을 꼭 해야 하는가? 아니면 없이 살아도 되는가?

애니: 그건 개인의 문제인 것 같아요. 요새 임신이 쉬운 것도 아니고.

메이: 저희 때는 결혼하고 1년 이내에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고 봤어요.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거나, 특히 여자한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어른들은 지레짐작하셨거든요.

위니: 두 분 결혼하실 때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은 하셨어요?

애니: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였죠.

메이: 저도 당연하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때는 결혼을 해서 아이가 없는 것도 이상한 거예요. 지금은 아이가 있는지 물어보는 거 자체가 엄청난 실례가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땐 스스럼 없이 물었던 거예요. “너희 결혼한 지 일 년이 지났는데 왜 애가 없니? 이유가 뭐니? 병원에 다니니?” 그런 질문을요.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신혼한테 덕담처럼 하는 말이었어요. 폐백을 할 때 대추나 뭔가를 던져 주는 것도 애를 많이 낳으라는 의미잖아요.

애니: 저는 애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결혼 전 처녀 때는 ‘결혼하면 강아지 12마리를 데리고 살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마음대로 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도 천천히 낳았어요. 일 년은 아이를 안 가지고, 그 후로는 어쩔 수 없이 낳아야 하니까 낳았는데 그래도 내 애니까 강아지랑은 비교가 안 되고 좋더라고요. 저희 큰 아들은 결혼을 해서 벌써 아이를 낳았는데, 저는 걔가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아이를 낳으면 그 애를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저희 애한테 오는 거니까 그것도 좀 그래서…. 그래서 아이 낳으라는 소리도 안 했고, 지금도 둘째 낳으라는 소리 제 입에서는 절대 안 나와요.

메이: 저희 때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지 이런 고민은 별로 하지 않고, 그저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자기 밥 숟가락은 알아서 갖고 태어난다고 보고요. 하지만 지금 젊은 부부는 아이를 낳으면 그 애한테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고,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교육시킬지 그런 걸 생각하다 보니까 아이를 낳아서 우리가 제대로 키울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힘들면 자식을 안 낳죠. 애가 싫어서 안 낳는다기 보다는 경제적인 여건이 안 돼서 애를 안 낳는 게 큰 것 같아요.


위니: 아, 궁금한 게 있어요. 1부가 ‘퀴어한 결혼’이라고 했는데, 저희의 결혼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 결혼이잖아요. 어떤 의미로 이렇게 제목을 붙이셨나요?

열음: 아, 1부와 2부가 ‘퀴어’ 그리고 ‘결혼’이라는 단어가 똑같이 들어가잖아요. 1부는, 한국의 결혼제도 자체가 ‘이상하다’, ‘독특하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어쨌든 결혼이라는 것은 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평생을 약속하는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집안’의 문제, ‘정상 가족’의 문제, ‘이성애’의 문제, ‘평등’의 문제 등등이 덧붙여져서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이랑은 또 다른 형태의 결혼이 만들어졌잖아요. 그게 좀 ‘이상하다’는 의미에서 ‘퀴어한 결혼’이 됐어요.


위니: 또요, 지금의 1 대 1 결혼제도가 생긴 것은 얼마 안 되었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최근에 다자 연애, ‘폴리아모리’[2]에 대한 논의와 관심도 늘고 있어요. 저희 부부는 아이가 성소수자인 걸 알게 되며 그런 종류의 책이든 정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남편이랑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 우리 사회는 대개 두 사람만의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배우자나 애인 외에 또 다른 애인이 생긴다는 게 이상한가. 만약 우리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서로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 이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메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평생토록 사랑하는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위니: 그것도 만들어진 관념일지도 몰라요.) 그런 것도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결혼을 섹스와 연관시켜서 생각하는 것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애니: 확실히 세대 차이가 있나 봐요. 저는 절대… 남편이 외도를 하거나 여자친구가 있다? 못 봐요, 그 꼴은. 만약 그렇다면 당장 이혼이야. 여사친까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친구가 있다…? 저는 그건 못 볼 것 같아요.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결혼 생활에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게 서로에 대한 에티켓이다… 이런 사고 방식이 있어서. 확실히 (위니 님과의 사이에 있는) 10년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메이: 저는 그래서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 반려인으로 같이 살기 전에 계약서 같은 걸 쓰며 의견을 조율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열음: 모노가미를 지지하는지 폴리아모리를 지지하는지…. 좋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폴리아모리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1부가 마무리가 되는 것 같은데, 지금 12시 37분이거든요. 한 45분까지만 쉬고 그 다음에 2부를 진행을 해 보겠습니다.


꽤 긴 시간 이어진 인터뷰에 피로하시리라 판단해 가진 쉬는 시간인데, 어째 쉬는 시간에도 수다가 끊이지를 않았다. 메이 님은 못 다한 남편 흉을 보셨고, 애니 님은 폴리아모리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정작 위니 님은 편집실 창문 너머로 자리한 캠퍼스의 정경을 보며 당신의 대학 시절에 푹 젖어 계셨는데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금방 흘러 인터뷰를 재개할 시간이 되었다.


2부: 퀴어와 결혼

 

열음: 인터뷰를 다시금 시작해 볼게요. 1부에서는 기혼자의 입장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조망했다면, 이제는 퀴어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결혼제도를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거예요. 다시 한 번 자기 소개를 하면서 2부를 시작해 볼게요.

애니: MTF 트랜스젠더 딸을 둔 엄마입니다. 자녀로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어요.

메이: 저희 애는 1997년생이고요, 트랜스젠더 딸이에요. 올 1월에 성확정수술을 받았고, 성별 정정도 4월 중순 경인가에 서울가정법원에서 확정을 받았어요.

위니: 애니 님 자제분도 성별 정정을 하셨나요?

애니: 현재 애가 캐나다에 있는데요. 한국은 꼭 수술을 해야지만 법적 성별 정정을 해주잖아요. 근데 거기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3] 무서워서 수술을 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도 있거든요. 그거 안 해도 거기는 성별 정정이 되니까 거기서 하려고 그러고 있어요.

메이: 그리고 우리가 MTF, FTM 이런 표현을 쓰잖아요. 그런데 저는 가능하면 그런 표현을 안 쓰려고 하는 게, 당사자 분들이 말씀하시기를, MTF, FTM는 내가 인위적으로 뭔가를 선택해서 전환됐다는 느낌을 들게 하기 때문에 그 표현이 사람에 따라서는 듣기가 거북하기도 하대요.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애니: 그러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메이: 트랜스젠더 퀴어라고 부르든가, 젠더퀴어, 트랜스젠더 딸, 트랜스젠더 아들이라든가.

위니: 이건 당사자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애니: 맞아요. 우리 애는 따로 이야기하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용어로 칭해줘야 하는 줄 알았어요.

위니: 저희 아이는 기존의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FTM’인데, 자기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해요. 아이는 수술도 했고 여성에서 남성으로 법적 성별 정정도 했지만, 스스로를 이분법으로 구분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래서 “엄마가 너를 소개할 때 뭐라고 하면 좋겠니?”라고 했더니, 젠더퀴어라고 해주는 게 가장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사자들한테 한 번 물어봐 주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이는 일상에서의 젠더 표현도 남자나 여자 어느 쪽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편이에요. 바지를 입기도 하고 가끔은 치마를 입기도 하고요. 처음엔 그런 모습을 보고 시어머님은 성별 정정을 괜히 한 건 아닐까 걱정하며 혼란스러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 어머님께 요즘은 남자 옷이니 여자 옷이니 구분하지 않고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게 젊은 사람들 감각이니까 걱정하시지 마라고 말씀드리니까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하세요. 아이의 경우를 보면서, 사람들이 성별 정정한 트랜스젠더에게 이분법적인 젠더 표현을 오히려 더 기대한다는 것, 그것이 당사자에게 부담과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애니: 저도 아이가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알고 아이가 호르몬 치료를 받고 하면서 ‘아 그럼 얘는 이제 우리가 아는 여성의 모습으로 가고, 행동도 그렇게 되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얘는 그냥 얘고, 본인이 느끼는 불편함만 없애는 거지.

메이: 그래서 저도 이제는 남성에 대한, 여성에 대한, 이런 개념이 없어졌어요.

열음: 맞아요. 남성이 아니라고 해서 여성인 건 아니니까요.

위니: 아무튼, 저는 둘째가 젠더퀴어예요. 저희 아이는 자궁과 가슴 수술을 했지만 더 이상의 수술은 바라지 않더라고요. 부모모임에서 다양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을 만나 보면, 본인들이 바라는 트랜지션의 정도도 모두 다르고, 법적인 성별 정정을 모두 꼭 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자신의 경제적 능력, 건강 상태, 개인적인 형편,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에 따라 모두 다르죠. 그건 시스젠더나 이성애자도 마찬가지인데, 성소수자라고 하면 머릿속에 어떤 전형을 만들어 놓고 끼워 맞추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위니: 여자와 남자를 좌표 상에 일렬로 쭉 세워 놓는다면, 100% 남성, 100% 여성이란 건 없고, 그 사이에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고 하잖아요. 물론 양끝에 시스젠더들이 좀더 많이 모여 있겠지만요. FTM 트랜스젠더의 경우도, 수술이 힘들어도 성기 재건까지 바라는 트랜스젠더 남성이 있는 반면, 자궁이나 가슴이 제거된 정도에서 만족하는 사람도 있고, 외과적 수술은 하지 않고 호르몬 요법만 쓰는 분도 있고요. 아이 덕분에 많은 성소수자 분들을 만나면서, 게이나 레즈비언은 어떻다, 트랜스젠더는 어떻다 하는 식으로 성소수자를 함부로 일반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열음: 많이 배워가네요. 저도 앞으로 조심하도록 해야겠어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면, ‘자녀와 연애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시는 편인가요?’ 음, 전 사실 저희 부모님하고 그런 얘기 잘 안 하거든요~

위니: 저희도 그래요. 이건 꼭 성소수자 자녀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녀의 프라이버시이기도 하니까요. 또 혹시 그런 이야기가 불편하거나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굳이 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자기가 이야기를 먼저 한다면 얼마든지 전 환영이고요. 아이가 커밍아웃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에 성적 지향이 어떤지는 아이에게 물어봤었네요. 아이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는 알아두어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저희 아이는 성별로 호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메이: 저는 아이의 연애에 대해서는, 동성이든 뭐든 그냥 얘가 연애를 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 나이 대에는 많이들 연애를 하고 저도 해봤으니까, 얘도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 물어볼 수는 없어요, 사실~ 얘가 성소수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잘 안 물어보잖아요. 하지만 속으로는 얘가 연애도 하고 누굴 좀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얘가 슬쩍 지나가면서 “엄마 몰랐지? 나는 연애도 하고 해. 그 사이에 난 누구랑 만나기도 했어.”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막연히 생각한 게, 얘가 트랜스젠더 여성이니까 당연히 남성하고 사귀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건 또 아니더라고요. “엄마 나는 여성, 남성으로 나누어서 사람을 만나지는 않고 굳이 정하자면 나는 범성애자인 것 같아.” 이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성별보다는 사람에 끌린다고…. 그리고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 자체를 안 해봤대요. 한국의 이 결혼제도와 자기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결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고 결혼할 생각도 전혀 없지만 살다 보면 또 모르잖아요. 근데 그때도 지금의 제도권에 들어가는 결혼을 할 것 같지는 않고,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같이 살 수는 있겠다는 얘기를 했어요.

위니: 저는 애니 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자제 분이 캐나다에서 결혼을 하신 거예요?

애니: 잘 된 케이스죠. 커밍아웃을 했을 때가 대학교 4학년이었어요. 당시 저는 서울에 있었고 아이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캐나다에서 다니다가 대학을 미국에서 다녔는데… 2차 성징 전까지는 엄청 밝아서 우리가 ‘해피 보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가고 나서 애가 갑자기 너무 말이 없어지고 우울해진 거예요. 그래서 얘가 왜 이럴까 고민을 하는데, 학년이 올라가도 계속 애가 너무 우울한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디스포리아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참다 참다 그때 아이를 앉혀 놓고 화를 내면서 대화를 시도했는데 애가 말도 못하고 계속 우는 거예요. 그래서 상담을 데려갔어요. 근데 상담사도 진짜 원인을 모르니까 상담을 계속 했는데도 실제 나아지는 건 없는데, 저는 안일하게 생각을 한 거죠. 이후에 얘가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 자기 친오빠한테 먼저 커밍아웃을 한 거예요. 근데 첫째도 미국에서 살아서 다행히 개방적인 성격이라 저한테 “엄마 걔가 트랜스젠더래. 근데 그건 뇌랑 몸이 다르게 태어난 거라서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근데 그 자체로 저한테는 충격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못 살겠다’ 하면서 5일 동안을 울며 지내다가 트랜스젠더 관련 강의를 보고 얘를 받아들이게 됐죠. 그렇게 내 마음을 바꾸고, 내 속에서 얘에 대한 성 전환을 하고 나니까 낫더라고요.

애니: 졸업 이후 아이는 아직 취직도 안 된 상태고 하니까 일단은 아이가 한국에 왔는데, 어쩌다 트랜스젠더 모임을 나간 거예요. 요즘 애들은 인터넷으로 다 자기들끼리 아니까~ 거기서 FTM인 지금의 애인을 만난 거죠. 자기들끼리 만나다가 저한테도 소개를 시켜 주고 그랬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그런 거야. 그때 둘은 그냥 사귀는 사이 정도였지만, 둘이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야 캐나다에서 사는 게 훨씬 편하잖아요. 특히 저희 애는 캐나다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일단은 얘네 둘을 캐나다로 보내고 싶은 마음에… ‘둘을 꼭 결혼시켜야겠다.’ 이런 마음보다는 둘을 캐나다로 보내면 훨씬 살기 편하니까 얘(지금의 사위)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그냥 혼인신고를 해서 캐나다로 가는 건 어떻겠냐고 했죠. 혼인신고를 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거든요. 저희 애는 아직 서류상으로는 M인 상태고, 걔(지금의 사위)는 서류상으로는 F고 호르몬 치료도 안 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혼인 신고를 해 가지고 대사관에서 영주권 신청을 해서… (위니: 둘이 캐나다 간 지는 얼마나 된 거예요?) 꽤 됐어요. 근데 둘이 살면서 너무 잘 맞았던 거죠. 왜냐면 서로 완전히 자기가 느끼는 성별로 봐 주니까.

열음: 두 분 (메이, 위니 님) 너무 부러워 하신다~

위니: 그러면 실제로 결혼을 시키신 거니까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보셨을 것 같아요.

애니: 그렇지는 또 않았어요. 그때 당시에는 둘이 진짜로 결혼해서 끝까지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건 아니었고 필요에 의해서 결혼을 시킨 거였기 때문에… 가서 헤어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어요. 근데 계속 지켜보니까 둘이 서로 의지하고 너무 잘 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여기(한국)에 있고, 걔는 거기(캐나다)에 있어도 마음이 하나도 걱정이 안 돼요.

위니: 그게 배우자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메이: 네, 밖으로 보이는 ‘정상 가족’ 이것보다는, 두 사람이 공감하며 살아가는 마음. 그게 이상적인 거죠.

애니: 우리 애도 그런 말을 한 게, “엄마, 우리 너무 편안해. 나는 걔를 완전히 남자로 보고, 걔는 나를 완전히 여자로 봐 줘.” 하면서 편하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위니: 저로서는 지금 가장 바라는 게 그거예요. 우리 가족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아이들도 엄마 아빠랑 생일이면 뭘 같이 하고 이런 걸 좋아해요. 그날도 밥 먹다가 옛날이야기가 나와서 우리 부부가 연애했던 이야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둘째 아이가 너무 너무 쓸쓸하고 외로운 표정으로 “엄마, 내 인생에는 그런 게 없을 것 같아.” 이런 말을 해서 제가 굉장히 마음 아프고 미안했어요…. ‘나한테 애인이 생기고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생길까.’ 하는 생각까지 아이는 했던가 봐요. 사실 지금 가장 간절히 바라는 건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소수자이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없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거예요.

메이: 저희 애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질문지를 보면서, “엄마, 내가 우리나라 결혼제도로 결혼을 할 수나 있을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결혼이라는 것은 아예 생각 자체를 못 하고, 그냥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사는 그 정도로만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냥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 정도로만 바라는 거지, 그 뒤인 결혼까지는 아예 생각이 미치지를 못해요.

위니: 상대적으로 그런 면에서 동성애자 부모들이 부럽기도 해요. 편견이 있을 뿐이지 몸에 대한 그런 건 없으니까. 성소수자 안에서도 인원이 많은 편이고…

메이: 네, 우린 그분들이 부러워요~ 동성애자 부모들은 결혼 못 하고 애 못 낳는 거에 대해서 한탄을 하시지만 우리는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요~

위니: 그래도 성소수자 문제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기도 하는 게, 제가 2016년도부터 부모모임에 나갔는데 그때만 해도 트랜스젠더 당사자나 부모님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에 트랜스젠더 부모들과 당사자들 참여가 많이 늘었어요. 저는 퀴어에 대한 많이 바뀌고 있다고 느끼는 게, 부모모임에 오시는 부모들이 대부분 당황하고 놀라서, 아이를 혹시 바꿀 수 있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근데 최근에는, 애니 님도 그러셨다고 하셨지만 이미 아이의 커밍아웃을 잘 받아들이고 대충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신 분들이 많이 오시고, 뭔가 추가로 도움을 받거나 운동을 하고 싶으신 분들이 오시거든요. 요즘 부모님들 보면 동성애 정도는 비교적 빨리 받아들이시는 경우가 많구나 하는 걸 느껴요.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경우 법적인 문제나 의료, 제도의 문제 등 실질적으로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 게 많으니까, 부모들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부모모임의 분위기만 보아도 퀴어의 존재가 조금 더 가시화되고 친숙해진 것 같아요.

위니: 저는 죄송하지만, 일 때문에 곧 일어나야 할 것 같아요. 혹시 저한테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먼저 물어봐 주세요.

열음: 사실 질문이 아직 몇 개가 남았기 때문에… 질문지를 보시고 ‘내가 이건 꼭 한마디 하고 싶다.’ 이런 질문이 있으시다면!

위니: 자녀의 동거에 대한 질문이 있던데, 일단은 누가 좀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죠. 근데 이것도 편견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요즘에는 혼자 멋지게 사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어쨌든 아이가 바라는 대로 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우정이든 사랑이든 섹스든, 인간의 삶에서 소중하고 행복한 것들을 아이가 마음 편하게 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가족구성권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결혼제도를 넘어서서 이제는 동반자법이라는 개념이 사회에 일반화되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족이 되고 싶어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책임질 수 있고 사회가 그 관계를 인정하고 보호해주는 법적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또, 꼭 둘이 같이 살아야지 안정적이라고 보는 것도 편견일 수 있죠. 다양한 방식으로 사는 다양한 가구들을 사회 제도와 법률로써 보호하고, 사회 구성원들도 자연스럽게 바라본다면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로 소외받거나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당초에는 1시간 반으로 기획되었던 인터뷰였지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모두가 예상했듯 훨씬 길어진 탓에 오후 일정이 있는 위니 님은 먼저 떠나셨다. 남편도 분명 반가워할 거라며 〈고대문화〉의 지난 책들을 잔뜩 챙기신 위니 님께 연신 감사 인사를 드리던 나는 기어코 인터뷰 답례품으로 드리려고 준비해 둔 고대빵 롤케이크를 까먹고 말았다. 위니 님, 보고 계신가요? 위니 님 몫의 롤케이크는 애니 님께서 가져가셨어요…. 미숙한 인터뷰이의 실책입니다. 다음에 부모모임 정기 모임에서 만나 뵐 때는 더 맛있는 거 사 들고 갈게요. 아무튼, 계속 인터뷰 이어서 하자면,


열음: 다음 질문은, ‘퀴어에게 결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네요. 제가 질문을 쓴 의도는… 아까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결혼을 꺼리는 풍조잖아요. 근데 선택지에 결혼이 있는데 그걸 안 하겠다고 하는 입장과, 선택지에 결혼 자체가 없는 입장은 다를 거라고 생각을 해서예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결혼으로 묶이지 못해서 보호자가 될 수 없는 문제도 파생되고요. 그 결과 유산 상속이라든지, 하다못해 수술 동의서에 사인도 못 하는 상황이 되잖아요. 그런 여러 맥락에서 퀴어에게 결혼이란 무엇일지 같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메이: 퀴어가 결혼을 할 때는 그 ‘결혼’이라는 게 꼭 내가 가지고 있는 성 혹은 성별 정정을 받은 성과 반대되는 성이랑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분법적으로 남자는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고, 정상 가족을 이루어야 하고…. 이런 게 결혼이라면 퀴어에게 결혼은 현실적으로, 현재 제도로는 불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사람이 누군가와 같이 살 때, 이 사람과 같이 살면서 차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불안이 없고 안전하다고 느껴야 하거든요. 정말 이 사람이 내 반려자인가, 이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내가 이 사람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가가 확실해야지만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보는데, 그 편안함을 만들려면 동성혼도 중요하지만 동반자법이 제정되어서 같이 살고 있음에도 생기는 불안감이 없도록 해야죠. 거기에 대한 제도가 뒷받침이 된다면 결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죠. 특히 요즘에는 둘만 사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끼리 세 명, 네 명 이렇게 집을 구해서도 같이 사시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그게 어떤 성적인 관계를 다 떠나서 함께 살며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가족의 형태라고 보여지거든요. 가족의 범위는 한정 짓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정상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정상, 비정상 이것도 의미가 없고요. 혼자 살 수도 있고, 또 “우리 집엔 넷이 살아요.”라고 할 때 나와 내 동성의 파트너가 있을 수 있고, 고양이도 있을 수 있고, 강아지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럼 우리는 동물까지 함께 네 가족이 같이 사는 거죠. 그렇게 가족의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열음: 맞아요. 근데 애니 님 같은 경우는 자녀께서 이제 법적인 결혼도 하신 거잖아요.

메이: 근데 제가 또 걱정스러운 건, 한국에서는 혼인신고를 했잖아요. 한국에서는 혼인신고를 하고 캐나다에서는 시민권과 영주권을 갖고 거기서 살고 있는데 앞으로 따님이 캐나다에서 성별 정정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애니: 할 수 있어요. 지금 거기는 수술을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진단만 있으면 돼요.

메이: 만약에 둘 다 거기서 본인들이 원하는 성별 정정을 다 했어. 그런데 한국에서는 반대되는 성으로. 원래의 지정 성별로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데, 캐나다에서 성별이 바뀌었으면 여기 와서 혼인신고를 다시 해야 하나?

열음: 저도 이 부분이 궁금했던 게, 사실 지금 당사자 둘이 느끼는 자신들의 성별과 법적으로 혼인신고 되어 있는 성별이 반대인 거잖아요.

애니: 반대죠. 완전 반대인데, 법적으로만 그렇게 한 거예요. 글쎄, 왔을 때는 모르겠어. 만약 캐나다에서 성별 정정을 한다면 여권이 바뀔 거 아니야. 여권이 바뀌어서 오면은 어떻게 될지…

열음: 사실 애니 님의 자녀 분께서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저는 당연히 성별 정정까지 마치고 결혼을 한 걸로 알았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결혼 자체가 되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본인들이 느끼는 성별과는 완전히 반대로 결혼이 되어 있는데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고요.

메이: 그러니까요. 우리나라의 결혼제도는 지금 성별만 다르고 현재 결혼 중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결혼이 가능하잖아요.

애니: 얘기하다 보니까 떠올랐는데, 캐나다는 또 심지어 남성, 여성, 그리고 엑스(X) 성별 칸이 따로 있거든요. 그러니 아까 얘기 나온 것처럼 젠더퀴어인 사람들도… ‘나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야.’ 그럴 때 체크할 수 있는 그런 성별란까지 다 있으니까 캐나다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제 왔을 때는… 거기까지는 겪어보질 않아서 모르겠어요. 아무튼 한국도 최종적으로 캐나다처럼 가야 하는 것은 맞죠.

메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국도 결국은 세계의 그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이미 뭐 미국이나 캐나다나 독일이나 덴마크나 뉴질랜드나 이런 곳은 전부 동성혼이 합법이잖아요. 그러려면 많이 보여줘야 해요. 이게 사람들은, 안 보여서 어색한 거예요. 트랜스젠더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계속 보여줘야 하는 것 같아요. 드라마든 토크쇼든 계속 보여주면 결국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익숙해지게 돼요. 동성애의 경우도 드라마에서 가끔 나오긴 하지만, 약간 어둡게 나오고, 숨어서 나오잖아요. 근데 그걸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남녀가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똑같다는 걸 자꾸 보여줘야 해.

애니: 그나마 유튜브가 있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

메이: 그런데 그래도 지상파에서 보여줘야 해. 유튜브는 보는 내가 보기 싫으면 아예 안 보거든요. 그런데 지상파는 드라마 안에 동성 커플이 속해 있으면 그냥 보게 되거든요. 이런 식으로 이상하지 않다는 거를 자꾸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열음: 그리고 애니 님께서 말씀하시다가 되게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캐나다에는 여성 남성 그리고 엑스(X)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부분의 공문서가 그렇지 않거든요.

메이: 국가인권위원회에만 있어요. 그것도 이제 사람들이 계속 진정을 해서 바뀐거죠. 국가인권위원회에 우리가 뭔가 서명을 할 때는 성별란에 기타(other)가 하나 생겼대요.

애니: 그리고 그걸 바꿔야 해. 1, 2, 3, 4. (주민등록번호 뒷 7자리 중 첫 번째 자리)

열음: 맞아요. 그 얘기를 하려고 했어요. 사실 숫자 그거,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트랜스젠더 당사자한테는 너무 큰 부담이잖아요. 그 1, 2, 3, 4 때문에 취업 안 되지. 하다 못해 투표를 하려고 해도, 모습은 사회적인 통념상 여성인데 1로 시작한다 그러면 투표가 힘들어지잖아요.[4]

메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트랜스젠더 인권 실태에 대해서 최근에 조사했잖아요.[5] 국가에서 실태 조사한 건 그게 최초인데, 설문에 응한 사람 중에서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는 10프로 내외밖에 안되거든요. 그러면 90프로의 사람들은 사실은 수술을 못했거나, 안 한 거잖아요.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서 안 한 사람들이 훨씬 많은 거예요. 우리가 보통 트랜스젠더 하면 수술을 다 했고 모든 걸 바꾸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죠. 저희 애는 수술을 하긴 했는데, 7시간 걸렸거든요. 전신 마취를 하고 7시간이 걸리고 엄청난 피를 또 수혈하고… 그래서 심장 같은 다른 기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 수술을 못해요. 하다가 죽어요. 이건 정말 목숨을 걸고 하는 거거든요. 근데 힘든 걸 알면서도 그 과정을 선택하는 트랜스젠더는…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운명이니까. 그러니 그걸 안쓰럽게 봐주면 돼요. 안쓰럽다는 마음이 바탕에 있으면 절대 혐오는 못 하죠. 트랜스젠더는 선천적인 거예요. 유전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왜, 우리는 조금씩 다르게 태어나잖아요. 수십억 명이 다 다르잖아요. 하다 못해 쌍둥이도 다르게 태어나거든요. 우리가 상상도 못하게 복잡하게 태어나는 게 인간이잖아요. 트랜스젠더도 똑같아요.

열음: 저는 메이 님이 하신 말씀에 하나 덧붙이고 싶어요. “사람들이 트랜스젠더 혹은 소수자들을 안쓰럽게 봤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사회가 조금 더 진전된다면,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그냥… 그 사람들에 대해 아무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애니: 그게 맞다. 그게 맞는 것 같아.

메이: 맞아요.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야 하는데 아직은 그렇게 될 수가 없어서… 그래서 일단 그 사람들이 어쩔 수없이 겪어야 하는 일들을 안쓰럽게라도 봐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열음: 또,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는 말씀도 해주셨는데,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영화든 드라마든 미디어든 퀴어 서사를 다룰 때 너무 막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안 다뤘으면 좋겠어요.

메이: 맞아요. 막 슬프고 애틋하고… 너무 처절하고. 그렇게만 다루지 말아야 해요. 모든 퀴어가 그럴 것 같다는 추측하에 그렇게 만드는 거잖아요. 근데 그렇지 않잖아요.

열음: 사실 시스젠더에 비해서 트랜스젠더가 다소 힘든 삶을 살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모든 당사자들이 다 비극적인 모습으로 사는 건 아닌데 너무 미디어에서 그런 모습만 비춰주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쟤네는 우울해야 해. 힘들어야 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메이: 또요, 게이라고 하면은 막~ ‘여성스러운’ 모습만 가지고 있다? 그것도 절대 아니에요. 게이는 말 그대로. 그 사람의 성적 지향이잖아요. 또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너무 막 짧은 머리에… 거의 뭐 양복 비슷하게 입고, 막 털털거리면서 군화 신고 돌아다니게 만들어, 미디어에서.

애니: 저번에 KBS에서 방영한 한 다큐에서, 레즈비언 커플이 결혼을 하는데 둘 다 드레스 입고 나왔잖아요. 그다음 날 교회 사람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 다큐 이야기가 나왔어요. 근데 이 사람들이 재밌는 게, 한 명은 드레스 입고 한 명은 양복 입을 줄 알았다는 거야. 그랬는데 둘 다 드레스를 입었다고, 너무 이상하다고 그렇게 말을 꺼내더라고. 사람들 생각이 다 그렇게 편협해요. 게이 커플은 그럼 한 명은 드레스 입어야 하냐? 너무 웃겼어요. 얘기가 성소수자 혐오로 흐를까봐 그날 그 자리에서 그냥 커밍아웃을 해 버렸죠.

열음: 앨라이들의 역할이 그건 것 같아요. 앨라이들도 커밍아웃을 해야 해요. “내 주변에 누구 있다.” 그러면은 적어도 내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하잖아요.

메이: 맞아요. 그리고 미디어에서 트랜스젠더 역할을 내보낼 때 배우를 잘 썼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트랜스젠더 여성 역할은 누가 해야겠어요. 당연히 여배우가 해야죠. 왜냐면 여성이니까요. 하지만 〈대니쉬 걸〉, 〈헤드윅〉 이런 거 보세요. 전부 남자 배우가 트랜스젠더 여성 역할을 하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아, 트랜스젠더 여성이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남자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다니까요. 이건 완전히 잘못된 거예요.

애니: 저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아직 잘 모를 때 〈대니쉬 걸〉을 되게 재밌게 봤거든요. 제 딴에는 트랜스젠더 영화를 찾아봤으니까 아이에게 생색을 좀 내고 싶은 마음에 딸한테 영화 잘 봤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 반응이 별로인 거예요. 되게 반가워할 줄 알았더니…. 아이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뒤늦게 알았죠.

메이: 〈대니쉬 걸〉은 캐스팅뿐만 아니라 내용도 별로예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아무런 불편함도 없이 지내다가 여성복을 입게 되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성 정체성은 복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건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보고 또 오해하는 거죠 〈대니쉬 걸〉 말고 〈판타스틱 우먼〉 한번 봐 보세요. 그 영화는요, 실제 트랜스젠더 여성이 역할을 맡아서 연기하는데, 내용이 아주 슬퍼요. 저는 저희 애랑 같이 봤는데 애가 막 자기 이야기인 것마냥 울더라고요. 잘 만든 영화예요.

애니: 메모해 놓을게요.


열음: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으로, 1부와 2부 인터뷰에 오랜 시간 참여해 주셨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신 소감이 어떠신지 짧게 말씀을 듣고 인터뷰를 파하도록 하겠습니다.

애니: 소감… 결혼과 관련해서 여러 얘기를 나눴는데, 결혼은 제도를 떠나서 어느 상대를 만나느냐가 제일 중요한 거 같고, 또 한국의 결혼제도는 앞으로 여자, 남자. 그 이분법적 틀에서 딱 벗어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메이: 저는 이번 인터뷰 준비하면서 결혼에 대해서 거의 처음으로 집중해서 생각을 해봤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결혼을 나이가 차면 그냥 수순대로 해야 하는 것, 그리고 한번 결혼을 하면 상대방과 영원히 그 제도 안에 묶여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우리 애의 커밍아웃 전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좀 색안경을 끼고 봤던 것 같아요.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좀 있었거든요. “내가 보기에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데, 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까?” 하면서 괜히 걱정하고. 그리고 또 이혼한 사람들을 보면 “분명히 저 사람들은 문제가… 일단 성격에 문제가 있을 거야.” 하면서…. 저도 그런 사고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했던 것 같아요. 저 또한 사회의 압박 때문에 결혼을 한 케이스면서요. 내가 결혼을 했던 1996년이 지금 같은 시대였다면 내가 그렇게 3개월 만에 결혼을!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웃음) 지금은 그래도 그때보다는 다들 결혼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결혼을 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다행이죠. 그리고 결혼이라는 게 꼭 제도를 통해서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결혼은 그냥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니까 내가 이끌리고 내가 정말 저 사람과 같이 살고 싶고, 저 사람을 너무 내가 인격적으로 닮고 싶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에서 ‘아 이제는 같이 살아도 되겠다. 그럼 우리 결혼하자.’ 이렇게 가는 게 진정한 결혼인 것 같아요. 만약 그 과정에서 제도를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해도 괜찮겠죠.

열음: 만약에 현재의 결혼제도로서 안 된다면 동반자법을 통해서라도 같이 살 수 있다면 좋고요.

메이: 결론은… 결혼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다. 선택해서 내가 원하는 사람과 내가 원하는 시기에 그렇게 살아가는 게 결혼이죠. 그리고 요즘 20대 30대, 젊은 분들은 정말 힘든 시대를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안쓰러워요. 왜냐하면 저희 때는 뭐 고등학교를 졸업하든 대학교를 졸업하든 취업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실직자인 경우는… 일하기 싫어서 그냥 노는 사람은 있었지만 내가 일을 하고 싶은데 직장이 없어서 놀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보니까…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더 다재다능하고 상당히 뛰어난 분들인데 취업을 못하잖아요. 취업을 해도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건 너무나도 힘들고요. 그러니까 요즘 젊은 분들은 아마 결혼을 생각하기 전에, ‘내 생존’ 그게 더 급한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도 벅찬데 거기에다가 더하기 결혼은 무슨… 그건 언감생심이 되는 사회예요. 사회가 먼저 결혼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줘야죠. 하지만 지금은 ‘네가 결혼을 하면… (나라에서 무엇을 해 주겠다.)’ 전제가 ‘결혼을 하면’이야. 그게 전제 조건에 들어가서는 안 되고, 각자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사람과 살 수 있도록 돼야죠.

열음: 사실 국가가 말하는 ‘결혼을 하면’에서의 그 ‘결혼’에는 퀴어는 배제됐잖아요. 비혼주의자들을 위한 정책도 미비하고요. 그냥… 총체적으로 이상해요!

애니: 요즘엔 자식을 낳아서 키우는 것도 너무 부담스러워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출산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강요하면서, 막상 트랜스젠더에게는 생식기를 없애야 성별 정정을 시켜준다고 하니까 화가 나죠. '너네 같은 애들의 후손은 없어야 맞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해서 거기에 좀 화가 나요, 진짜. 왜냐면 트랜스젠더도 아기를 갖고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 생식기까지는 건드리면 안 돼요. 당사자가 “없애고 싶어.”라고 원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나라에서 강제적으로 “너는 생식기 다 없애고 와.” 이건 정말 잘못된 것 같다고 나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동성애자들이 아이를 입양해서 키울 수도 있는 거잖아요. 다 가능성을 열어둬야지, 아예 처음부터 다 못하게 하는 건 아니죠.

열음: 지금 한국에서는 동성 커플은 아예 입양 자체가 안 되잖아요.

애니: 결혼도 안 되고, 입양도 안 되고. 그냥 아무것도 안 돼요.

메이: 독신은 입양을 할 수가 있는데, 동성애자는 입양이 안 돼. 그런데 이건 정말 바뀔 거예요. 점점 아이를 낳지 않는 추세니까, 입양제도도 바뀌겠죠.

애니: 그러면서 뭔 출산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을 한대. 완전히 다 막아 놓고…. 어, 근데 벌써 2시 46분이에요.

메이: 너무 두서가 없었네.

열음: 아, 그러면 일단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제가 정리를 잘해 볼게요.

메이: 힘드실 거예요. 근데 어떻게 좀 해 보세요.



부탁하신 대로 어떻게 잘 해보려고 했는데 제가 요약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메이 님. 녹음을 아무리 들어도 도무지 뺄 만한 답변들이 없어 그날의 즐거웠던 네 시간을 몽땅 전하고자 하는 욕심에 글이 이렇게도 길어진 걸요.


인터뷰가 다 끝난 지금에야 조금 털어놓자면,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수도 없이 부끄러웠다. 결혼에 대한 온갖 의구심으로부터 인터뷰를 기획했으면서 인터뷰이들께 드린 질문 목록은 너무나도 기성의 결혼제도와 정상 가족 규범 내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좁다란 질문들로는 미처 듣지 못했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선뜻 먼저 꺼내어 주신 세 분께 다시금 감사를 드리며, 언젠가는 세 분과 다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로 만나고 싶다고 감히 청한다. 그때의 사회는, 그리고 나는 오늘의 모습에서 한층 나아갔기를, 그리하여 며칠 전 나누었던 이야기보다 조금 더 정상 가족 규범에서 벗어나고, 이성애자의 관점에서 벗어난, 기성 결혼에서도 벗어난 이야기를 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어쩌면 그즈음에는 ‘퀴어’와 ‘결혼’을 한데 묶어 인터뷰를 진행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고리타분한 것이어서 어느 곳도 내게 지면을 내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걱정도 미리 해 본다.


전사를 위해 인터뷰 녹음본을 들으면서도 부끄러움에 자주 타이핑을 머뭇거렸지만, 그럼에도 내내 미소지었다. 그 까닭은 아마 우리가 줄곧 ‘행복’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음을 깨달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간 넌지시 결혼 안 할 거라는 뜻을 내비치던 나에게 너 좋을 대로 하라며 무심하게 일관하던 엄마의 저의를 2부 전사 도중 무심코 알았다. 2부 내내 끊이지 않고 이어지던 무수한 대화들과 그 속에 어린 누군가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나는 크고도 선명한 사랑을 뭉쳐낼 수가 있었으니, 그리고 그건 절대 낯선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결혼은 통과 의례도, 일생을 살며 꼭 해치워야 할 퀘스트도 아니다. 그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 그렇기에 그 누구와도 할 수 있어야 하며, 언제라도 잘라낼 수 있는 것. 심지어는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결혼을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는 가장 먼저 각자가 원하는 행복의 형태를 그려보아야 할 테다. 아마 그렇게 그려낸 행복에는 어느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겠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오롯한 삶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지만 그 끝에서 마주할, 제각각의 행복이 모여 만들어 낼 무지갯빛의 유월을 상상하면 가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긴 여정을 떠날 채비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 좋을 대로 하라는 소리는 사실, 어떤 모습이든 좋으니 부디 행복하게만 살라는 소리였지? 스물다섯의 엄마에게 묻고픈 말은 아직 너무나도 많지만, 스물셋의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음에도 어쩐지 모든 답을 들은 듯하다. 초월 번역이래도 좋다. 그야말로 나 좋을 대로 생각하련다.



편집위원 열음 / yeoleumse@gmail.com


[1] 이때의 동반자법이란 ‘생활동반자법’을 이르는 말이다. 생활동반자법은 법률혼 이외의 형태로 동거하고 있는 이들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법률로, 2012년 당시 국회 보좌관이던 황두영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으나 10년이 지난 2021년 현재까지 발의되지 못했다.

[2] ‘폴리아모리’는 배우자의 또 다른 애정 관계를 인정하는 비독점적 다자간(多者間) 사랑을 이르는 말이다. 이와 대치되는 개념이자 현재의 일부일처제를 이르는 말로는 ‘모노가미’가 있다.

[3] 캐나다는 성 확정 수술을 하지 않아도 법적 성별 정정 요청을 넣을 수 있도록 성별 정정 요건이 한국에 비해 완화되어 있으며, 동성혼 역시 법제화되었다.

[4] 트랜스젠더는 신분증을 요구하는 모든 곳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 ‘남자 혹은 여자가 맞느냐’는 질문 등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응답자 중 193명(34.8%)은 “일상적 용무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가장 많은 이가 방문을 꺼리는 곳은 의료기관이다. 119명(21.5%)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봐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성별 정정을 안 한 상태에서 진료 접수를 할 때 주민번호를 불러주면 다 들리게 ‘남성이 맞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며 “안과나 치과 같이 성별 구분이 필요없는 곳에서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병원에 가기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적마스크 구입 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했던 지난해 봄에 “마스크 구입이 어려웠다”고 답한 이들도 86명(14.6%)이나 됐다.(박성진, 2021.02.09.).

[5]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국가기관 최초로 트랜스젠더가 겪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그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0)를 진행하였다. 만 19세 이상 트랜스젠더 591명이 설문에 참여했으며, 그중 법적 성별정정을 한 응답자는 8%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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