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특집 '여성주의 학내기구' 여는 글] 편집위원 상민
지난 10월 8일, 중앙대 서울캠퍼스 확대운영위원회[1](이하 확운위)에서 총학생회 산하 특별기구인 성평등위원회(이하 성평위)의 폐지 안건이 가결되었다. 이 안건은 9월 30일 에브리타임에 익명으로 올라온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대한 연서명 (총학생회 국으로의 조정)”이 확운위 안건 상정을 위한 요건[2]을 충족시키는 재학생 405인의 연서를 받음에 따라 상정된 것이었다. 처음 게시글이 올라온 지 일주일 남짓한 시간 만에 중앙대 서울캠퍼스의 성평등을 위한 자치기구가 사라졌다.[3]
이 폐지는 절차상으로 여러 문제가 있었다. 우선 연서명을 받은 구글 폼의 제목은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대한 연서명 (총학생회 국으로의 조정)’이었으나 실제 확운위에서 상정된 안건은 괄호 속 문구가 빠진 ‘성평등위원회 폐지의 건’이었다.[4] 둘째, 에브리타임에 게시글을 올렸던 발의자는 ‘신변 보호’를 명분으로 확운위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안건에 대한 질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셋째, 해당 안건에 대한 성평위 측의 입장을 밝히기 위한 신상 발언마저 부결됨에 따라 투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성평위는 어떤 입장 표명도 할 수 없었다. 학내의 성평등 문제를 총괄하는 특별기구를 폐지하는 문제임에도 아무런 민주적 토론을 거치지 않은 채 이뤄진 졸속 표결이었다.
비단 절차상의 문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상정된 안건은 성평위가 “여성주의인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기에 “학내의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고 성평등을 수호하는 것이 아닌, 특정 성별만 생각하는 편향된 방향성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으며, “20대 대학생 사이에서 성별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는 근거로 “범사회적으로도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단체를 비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경희대 총여학생회 폐지 확정과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을 그 예시로 들었다. 하지만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경희대 서울캠퍼스 총여학생회(이하 총여)는 4년째 공석인 조직을 재개편하기 위해 여학생들의 투표로 해산된 것일 뿐 여성주의가 ‘그릇된 사상’이라서 폐지된 것이 아니다. 또한 여성가족부 폐지론은 2001년 여성부의 설립 이래 항상 있었던 주장이 현재의 안티페미니즘 세력의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의 일환으로 목소리가 커진 것에 불과할 뿐 페미니즘이 잘못된 것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강하다고는 하여도,[5]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범사회적으로” 공인된 주장이 전혀 아니다. 성평위 폐지 표결 결과 참석인원 101명 중 찬성이 59명, 반대가 21명이었음에도 정작 표결 직전 토론에서 찬성 측에서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주장이 그렇게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주장할 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말이다. 말없이 찬성표를 던진 이들은 대안도 필요 없고, 성평위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페미니즘’ 네 글자에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사실 이는 그렇게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아마도 페미니즘에 대한 학내 백래시가 가장 거셌던 해는 2018년일 것이다. 당시 서울 내 세 대학(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의 총여학생회(이하 총여)가 도미노처럼 연달아 폐지되며 학내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총여학생회 폐지가 큰 이슈가 되었었다. 당시의 상황과 2021년 벌어진 〈뿌리〉의 폐지는 겹치는 지점이 많다. 다만 이번 사건이 달랐던 것은 총여도 아닌 총여의 대안기구가 폐지된 최초의 사례였다는 것뿐이다.
2019년 3월 발간된 《이화》 98집 ‘기울이다’에서는 총여학생회 특집을 기획하여 총여 역사 쓰기, 2018년 총여 폐지 사태 정리, 총여 폐지를 둘러싼 담론 분석 그리고 동국∙성균관대 활동가와의 수다회로 지면을 알차게 채운 바가 있다. 하지만 분량상의 문제로 총여학생회 폐지의 역사를 정리한 글 하나가 미처 실리지 못하였고, 이 글은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당시 편집장의 하드디스크 속에 잠들어 있었다. 비교적 잠잠하던 2019년과 2020년을 지나, 〈뿌리〉[6]의 폐지가 그 잠을 깨웠다.
한국의 페미니즘이 2015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듯, 총여에 대한 백래시 역시 2018년에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총여 폐지론은 페미니즘 리부트보다도 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본 소특집은 무엇이 학내 여성주의 기구의 존립을 어렵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어떻게 단체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전자를 세밀하게 분석한 「총여학생회, 그 사라짐의 기록」을 이번 《고대문화》에 실을 것을 제안드렸고, 필자인 시은 님이 흔쾌히 응해주심에 따라 이번 여성주의 자치기구 소특집으로 엮게 되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편집위원 상민 / poursoi0911@gmail.com
[1]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회칙」 제4장 제23조에 따르면 확운위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가 열리지 못할 경우 최고 결정권을 위임받”으며 그 구성에서 각 학과/학부 학년대표가 제외된다는 점이 전학대회와 다른 점이다.
[2]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회칙」 제4장 제28조에 따르면 재적 대표자 1/5 이상의 연서 혹은 회원 300인 이상의 연서로 개회 전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
[3] 중앙대 서울캠퍼스의 총여학생회는 2014년 4월 전학대회에서 폐지되었고,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성평등위원회가 같은 해 9월 총학생회 산하의 특별자치기구로 출범하였다. 하지만 서울캠퍼스 총학은 몇 년간 지속적으로 성평위의 자치권을 침해해왔고, 특히 성평위 폐지 당시 총학인 〈오늘〉은 홈페이지 조직도상에서 성평위를 ‘총학생회 산하 위원회’로 격하시키기까지 했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중앙문화》 80호의 「내일의 성평위, ‘오늘’이 만들어라」를 참조하라.
[4] 총학생회장은 만약 폐지안이 가결되면 “국으로의 조정에 대한 안건으로 가부결을 부치든 토론을 진행하든 확운위가 끝난 후 협의체를 구성하여 TF 활동을 통해 위원회를 대체할 수 있는 국을 신설하든 여러 발전적인 방향에 대해 대표자 의견에 맡겨 달라”고 했지만 폐지 안건 가결 후 후속 조치에 대한 안건은 모두 부결되었으며 이에 대한 토론 시간 역시 별도로 주어지지 않았다.
[5] 이와 관련해서는 본지 여름 144호 7-8쪽에 실린 졸고 「‘이대남’이라는 백래시」를 참고하라.
[6] 중앙대 서울캠퍼스 성평위는 독자적인 대수와 이름을 사용해왔으며 〈뿌리〉는 8대 성평위였다. 총학 측에서는 지속적으로 성평위 측에 별도의 대수와 이름의 사용을 지양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문민기, 김현경 (2021.06.). 내일의 성평위, ‘오늘’이 만들어라, 중앙문화 80호 〈끝말잇기〉, 38-47.
채효석 (2019.12.). 학생자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학생자치제도 안내. 중앙문화 77호 〈사이버 대학〉, 34-49.
기사 및 온라인 자료
김지현 (2021.10.11.). 성평위, 결국 폐지 수순 밟아… 대안도 없었다. 중대신문. Retrieved from http://new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36142
중앙문화 교지편집위원회 (2021.10.09.). [속보] 서울캠퍼스 성평위 폐지… 학생 상정안 가결돼. 중앙문화. Retrieved from https://cauculture.net/280?category=772697
중앙대학교 성평등위원회 〈뿌리〉 (2021.10.10.). 2021년 2학기 확대운영위원회 ‘성평등위원회 폐지의 건’ 가결 관련 보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