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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관흠 Apr 19. 2020

격전지에서

21대 국회의원 선거 취재기

이번 주는 꽤 힘들었다. 

코로나로도 취재가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 국회의원 선거날도 수요일에 있던 때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광진을' 선거구 취재를 맡았다. 정치신인 고민정과 잠룡으로 불리는 오세훈이 붙어 모두가 주목하는 격전지였다. 국민의 일꾼을 뽑는 매우 중요한 날에 취재 장소도 격전지라 흥미진진하리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남들 다쉬는 휴일에 일하는 입장으로서는 솔직히 그냥 '빡센 날'이었다. 빨리빨리 결과가 나와서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초격전지에서의 하루


언론사에서의 선거날은 대목이기에 모두가 일찌감치 어제부터 자리를 잡아놨다. 나는 고민정 후보 사무소에서 취재를 했다. 투표 종료 시간이 다가오는 18시쯤 돼서야 고민정 후보가 사무실에 등장했다. 담담한 듯하면서도 긴장된 얼굴이었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 발표가 다가오자 고민정 후보는 두 손을 꽉 쥐며 긴장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걸 찍고 있는 나 또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드디어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할 거라는 예측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차례로 선거구마다의 예측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민정 후보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할 거라는 예측이 나오자 환호와 염려가 뒤섞인 반응이 나왔다. 오차범위 내의 승리 예측이었다. 


10분 정도 상황을 지켜보고 고민정 후보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사무장의 말로는 당선이 확실시되면 다시 온다고 했다. 후보가 자리를 뜨자 지지들과 기자들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나는 미리 먹어둔 터라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집중해서 일했더니 몸이 많이 굳어있어 스트레칭을 하며 생각했다. 자정이면 끝나겠지?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두 후보의 표차는 줄어들었다. 3천 표에서 2천 표로 2천 표에 천 표로.. 이대로 가다간 개표가 끝나야 결과를 알 수 있을 듯했다. 자정쯤 끝날 것을 기대한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타사 기자들도 점점 체념을 하고 있었다. 몇몇은 이제 끝날 거라는 희망이 남아있는 듯했지만 새벽 2시가 넘어가자 모두가 털썩 주저앉아 박카스만 마셔댔다.  새벽 3시 사무실이 분주해졌다. 개표율이 85%를 향해가고 있던 때였는데 미리 정보를 받은 모양이다. 곧 후보가 온다고 했다. 라이브 방송 준비를 하고 후보자를 기다렸다.


고민정 후보가 등장하자 지지자들은 연호를 하며 그녀를 환영했다. 초접전 끝의 승리. 

대통령 곁에서 많은 일들을 봐온 것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표정은 정치신인 답지 않은 표정이었다. 물론 웃고는 있었지만 절제된 표정이었다. 눈물이 나올 법도 한데 오히려 우는 직원을 위로해줬다.


배우자의 꽃다발 수여식과 함께 포옹을 했다. 그리고 남편이 당선인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선입견인지 몰라도 참 시인다운 행동이라 생각했다. (고민정 당선인의 남편은 고민정의 학교 선배이자 시인이다.)

아나운서, 청와대 대변인 출신답게 당선소감도 무리 없이 했다.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감사인사를 했다.

그러다 마침 자신의 당선소감 화면이 TV에 방송된 것을 발견했나 보다. 그걸 보는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그 표정은 신기한 것을 보는 표정이었다. 고민정 당선인이 그렇게 절제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실감이 나지 않았어서 그랬나 보다. TV에 자신의 당선소감이 나오자 그제야 실감을 한 것인지, TV를 바라보는 표정이 오늘 본 표정 중 가장 진실되어 보였다.


현장을 마무리하고 차에 올라타니 새벽 4시. 돌아가는 길에 라면을 먹을까 하다 잠이 쏟아져서 얼른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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