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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Oct 26. 2020

걱정 마, 엄마가 왕언니야!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나에게 와서 묻는다.

“엄마, 누구 엄마보다 나이 많아?”

“엄마, 어느 선생님보다 나이 많아?”

“그럼, 엄마가 제일 나이 많아. 엄마가 왕언니야”


이 대답은 초등학교 3학년인 지금까지 안타깝게도 유효하다.     

요즘 사회 전반적으로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산모의 나이가 고령화되는 추세라고 신문이나 모든 언론 통계들은 떠들고 있지만, 나는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연장자인 엄마들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늘 엄마가 나이가 더 많다고 하면 우리 딸은 마치 나이 많은 게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으쓱해져서 “우리 엄마 진짜 최고다. 이 세상에 엄마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없나 봐. 엄마, 누구 좀 혼내줘”라고 부탁을 한다. 지금 우리 딸 또래에서는 한 살이라도 많은 언니가 엄청 부러울 때이니, 나이로 엄마에게 대적할 사람이 없는 왕언니라는 게 무슨 든든한 백이라도 가진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엄마는 어디 가든지 제일 나이 많은 왕언니니까, 뭐 기분 나쁜 거 있으면 엄마한테 다 말해! 내가 혼내줄게”라고 쓸데없는 허세를 섞어 딸이랑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어른이 돼서 싸울 때도 힘이 센 것보다 “당신 몇 살이야?”라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봐서 나이 많은 게 더 효과적인 경우도 종종 있으니, 아이들 세상에서도 엄마가 왕언니로 나이가 많은 것이 꽤 쓸만한 무기가 되는가 보다.   

   

아빠, 지금 엄마한테 너라고 했어?


차 안에서 남편과 장난 섞인 농담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딸아이가 묻는다.

“아빠, 지금 엄마한테 너라고 했어? 아빠가 엄마보다 나이 적은 거 내가 알고 있는데 아빠 지금 엄마한테 까불었어?”라는 딸의 말에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서로 쳐다보곤 너무 웃겨서 차 안에서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래, 아빠 나한테 까불지 말고 높임말 써. 동생이 까불고 있어”라고 하자 남편은 할 말은 많은데 하지 않겠다는 듯 영혼 없이 “그래 알았어”라고 할 따름이었다. 그때는 우리 딸이 한창 어린이집에서 나이를 따지고 언니, 오빠, 동생을 가르고 자기에게 함부로 까부는 동생들을 따끔하게 혼내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니 차 안에서의 서열 정리를 확실하게 한 후에는 아마 본인이 해야 할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했었는지, 엄마 아빠가 왜 그리 웃는지에 대해 관심도 없고 물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연상 연하 커플인 우리 부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이 터울을 크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신 연령이 비슷했던 것 같다. 나만 남편 또래의 정신 연령대로 하향 평준화된 것이 아닌, 둘 다 훅 낮춰진 어느 상태로 쌍방 하향 평준화되었다고 서로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살다가 마치 개기 일식같이 주기도 일정하지 않고,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순간이지만 내가 연장자의 근원적인 책임감 내지는 의무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평소엔 서로 막 대하고 살지만, 내가 남편보다 본 것도 많고 경험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어느 순간 그것들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남편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는 속이 훤히 비치도록 사물의 이치나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경우도 아주 드물지만 존재하기는 한다. 


아무리 헐렁해 보이는 사람도 절대 나이를 헛먹은 수 없다는 그래서 어느 구석에서든지 아침 햇살에 이슬이 맺힌 것처럼 연륜이 또는 지혜가 맺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경험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런 아주 드문 경우에 남편은 믿기지 않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지만, 결국 이 왕언니의 혜안에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기도 한다.     


때로는 이 왕언니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나보다 어린 엄마들, 그녀들이 나를 보며 언니랍시고 자꾸 인생에 대한 진지한 답을 원한다거나 어른 대접을 한다고 불쑥 예의를 차리는 것도 당황스럽고, 반대로 나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하대하는 것 또한 불편하기도 했다. 이런 불편하고도 어정쩡한 상황은 그들이 아닌 바로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다른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또래 엄마들과 또는 이웃과 자연스레 어울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냥 편안하게 나를 내려놓고 가감 없는 솔직한 모습으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한 내 모습을 보일 때 상대방도 나에 대해 올바른 이해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이치이니까. 


나의 허접하고도 어수선한 내 모습 그대로 왕언니지만, 많은 부분이 채워져 있지
않은 모습 그대로 커밍아웃해버렸다. 


그녀들은 처음엔 아마도 내 나이에 한번 놀래고, 그다음엔 너무 많은 부분이 비어 있는 왕언니라는 타이틀에 한 번 더 놀랐지 싶다. 어떻게 보면 나의 넷째, 막내 동생뻘인 엄마들과 어울려 함께 산다는 게 참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때론 그들은 나보다 더 세심하고 감각도 있고 진보적인 엄마들이 많아서 내가 배울 점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아닌 누구 엄마가 되어서 만난 이후에는 엄마라는 임무를 수행함에서는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 한 생명, 한 우주를 나름대로 책임지고 탄생시키고 만들어 나가는 “엄마 조물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저 나이에 이렇게 못했는데 참 대단하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서도 다 묵묵히 해내다니 정말 존경스럽다’라고 생각할 때가 참 많다. 이렇게 야무지고 세련된 엄마들 틈에서 나는 또 많은 것을 배워간다.      

지금은 또래 엄마 모임에 나가면, 어느덧 내 친구들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엄마들도 많다. 그중 마음이 맞는 엄마들과는 아무 허물없이 친구같이 마음을 트고 지내게 된다. 또래 아이를 키우며 나누는 여러 고민부터 시작해 여러 인생사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가끔은 나보다 더 진중하고 사려 깊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때론 그들에게 나의 고민도 나누고 많은 위안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들은 내 동창들처럼  내 인생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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